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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8일 금요일, Christchurch, Jailhouse Hostel
(오늘의 경비 US $84: 숙박료 30, 커피 4, 점심 9, 자전거 정비 55, 도서관 프린터 사용료 3, 환율 US $1 = NZ $1.2)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밖에 나가보니 어제와는 달리 청명한 날씨다. 어제 수퍼마켓에서 사온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피넛 버터를 듬뿍 바른 토스트, 오렌지 주스, 홍차, 요구르트, 그리고 복숭아 한 개의 아침 식사였다.
오늘은 Lonely Planet의 "Cycling New Zealand" 자전거여행 안내서에 나온 “Christchurch Parks and Gardens" 자전거 코스를 달리면서 Christchurch 구경을 하는 날이다. 이 도시의 이름난 공원과 정원을 연결하는 자전거 코스이다. 아침 8시경 자전거 코스가 시작되는 Botanic Gardens (식물원) 입구로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식물원 입구 근처에 와서 갑자기 대변이 급해져서 식물원 안에 있는 공중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제를 해결하고 나왔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Hagley Park을 가로 질러서 큰 도로로 나와서 배낭에 넣어둔 지도를 보고 자전거 코스를 확인하려고 정지했는데 등에 있어야할 배낭이 없다. 아차, 식물원 공중 화장실에 놓고 나왔구나 하고 황급히 자전거를 타고 식물원 공중 화장실로 달려갔다. 삼성 카메라, 삼성 갤럭시 탭, 아이팟, 킨들, 모든 여행정보, 장갑, 검은 안경 등 중요한 물건들이 든 주말 등산용 배낭인데 대변을 볼 때 화장실 바닥에 내려놓고 나올 때 그냥 놓고 나온 것이다. 좁은 화장실인데 어떻게 그냥 놓고 나갈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그러나 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라 그렇게 좁은 화장실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 속도로 자전거 페달을 돌려가면서 가는 도중에 별별 생각이 다 났다. 불과 20분 시간인데 그 사이에 이른 아침에 다른 사람이 식물원 공중 화장실에 들어왔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왔더라도 내 배낭은 건들이질 않고 자기 볼일만 보고 나갔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십중팔구는 아침에 운동을 하는 Christchurch 시민이거나 근처 호텔에 묵고 있는 관광객일 텐데 남의 배낭을 집어갈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혹시 나쁜 사람이 들어와서 집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배낭을 근처 관광안내소나 경찰서에 가져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화장실에 도착해서 들어가 보니 없다. 정신이 아찔해 진다. 작년 가을에도 서울 한강변 자전거 도로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두 번이나 배낭을 놓고 떠난 일이 있었는데 돌아가 보니 한 번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또 한 번은 근처 포장마차 음식점 주인이 보관하고 있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운이 따라주지 않는 것인가. 동행이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혼자 여행을 하니 생긴다. 그리고 나이가 든 탓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한담? 우선 화장실에서 제일 가까운 식물원 입구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갔다. 혹시 누가 배낭을 가져오지 않았나 하고 물어보니 가져오지 않았단다. 그러면서 식물원 Information Center에 가보란다. 자전거를 타고 식물원 Information Center에 가보니 역시 내 배낭은 없다. 직원이 분실물 보고를 하라고 해서 보고를 했다. 혹시 나타나면 즉시 숙소로 연락을 해주겠단다. 다음에는 식물원 입구에 있는 박물관에도 가서 물어봤으나 역시 없다. 마지막으로 길 건너에 있는 YMCA Hostel에 가서 물어봤으나 허사였다. 이제 식물원 근처에는 더 가볼 곳이 없다.
결국 경찰서에 가서 분실물 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분실물이 경찰서로 돌아오는데 때로는 며칠 씩 걸리는 경우도 있다면서 배낭이 돌아오면 곧 숙소로 연락을 하겠단다. 배낭을 찾을 수 있는 확률이 50%는 된단다.
경찰서 근처 커피점에 들어가서 커피 한잔을 시켜서 마시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 가를 생각했다. 홀로 대책회의를 한 것이다. 우선 잃어버린 물건 리스트를 만들었다. 모두 여행 중에 꼭 필요한 물건들이다. 배낭을 찾지 못하면 이 도시를 떠나기 전에 이 도시에서 다시 장만을 해야 한다. 북섬의 Wellington에 갈 때까지 Christchurch 만큼 큰 도시는 없다. 다행히 제일 중요한 여권과 현금 그리고 은행카드는 항상 허리에 차고 다니는 전대 안에 안전하게 있다.
우선 Christchurch 출발을 이번 일요일에서 내주 화요일로 미루기로 했다. 내주 월요일 오전까지 배낭을 못 찾으면 월요일에 잃어버린 물건들을 구입하고 화요일에는 Christchurch를 떠날 것이다. 월요일까지 매일 한 번씩 경찰서에 들려볼 생각이다. 물건을 찾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이제 대책은 세워졌으니 커피점을 나와서 오늘 자전거 타는 일정을 다시 시작했다. Christchurch에서 제일 큰 공원인 Hagley Park을 거쳐서 Mona Vale Homestead라는 정원 비슷한 곳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Hagley Park에서는 지금 여름 방학 때라 그런지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날씨는 너무나 좋았다. 배낭을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시립도서관에 찾아가서 우선 Christchurch에서 Queenstown까지의 자전거 코스 지도를 프린트했다. Lonely Planet의 뉴질랜드 자전거 코스 안내서 책은 너무 무거워서 책은 가져오지 않고 한국을 떠나기 전에 책을 컴퓨터 스캐너로 스캔을 해서 “jpg” 파일로 만든 다음에 이메일로 나 자신에게 보냈다. 그래서 여행 중에 필요할 때마다 현지에서 지도를 프린트를 해서 사용할 생각이다. 우선 당장 필요한 Christchurch에서 Queenstown까지의 자전거 코스 지도는 한국에서 프린트해서 가지고 왔는데 배낭과 함께 없어졌다.
Southgate 쇼핑몰에 자전거를 타고 가서 맥도날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길 건너에 있는 자전거 상점에 가서 비행기 운송 중에 훼손된 네 가지 수리를 했다. 그리고 짐받이를 떼고 붙이는데 필요한 조그만 렌치를 하나 샀다. 이제 자전거는 최고 컨디션이다.
갑자기 자전거 여행이 귀찮아 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는 몰라도 뉴질랜드에서는 자전거 여행을 쉽게 하는 방향으로 해야겠다. 이제 당분간 10여 년 전에 컴퓨터 없이 했던 남미 식으로 여행을 해야겠다. 여행기는 공책에 적고 인터넷은 인터넷 카페에 가서 하는 식이다. 카메라가 없으니 당분간 사진은 못 찍는다.
10여 년 전 남미 과테말라 여행 때 여행 첫날에 배낭을 잃어버렸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오늘 같은 식으로 잃어버린 것이 아니고 사기꾼들에게 당했었다 (중미, Guatemala, “2003년 중미 여행 시작, Xela 도착" 여행기 참조). 오늘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날이다.
잃어버린 주말 등산 배낭
Lonely Planet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안내서 책인데 무거워서 가져오지는 않고 스캔을 해서 만든 jpg 파일들을 나 자신에게 이메일로 보내서 여행 중에 필요할 때마다 프린트를 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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