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스티브 잡스·김반석 등 CEO도 ‘몰입의 고수’… 집중이 성공 비결
리바트는 황농문 서울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몰입 의자’를 개발 중이다. 이 의자는 사용자들이 몰입에 적합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돕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황 교수의 이론을 제품화한 것.
김반석 LG화학 부회장도 황 교수의 팬이다. 이 회사의 주요 사업계획 상당수가 그의 몰입경영을 실천하는 김 부회장의 해외 출장 비행기에서 나온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휴테크 전도사인 김정운 명지대 여가경영학과 교수, 지식생태학자로 유명한 유영만 한양대 교수도 요즘 최고경영자들 사이에서 각광받는 학계의 멘토들이자, 통섭, 융합, 뇌과학을 비롯한 첨단 지식을 쉽게 풀어내는 지식 엔터테이너들이다. 이들 교수 3인방의 메시지를 집중분석했다. <편집자 주>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 수행자는 깨어 있을 때도, 깊이 잠들었을 때도 한결같이 ‘화두’에 매달려야 한다는 불가의 가르침이다. 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세계적인 석학들은 모두 이러한 가르침을 내면 깊숙이 받아들인 ‘선’의 고수들이었다.
지난 2002년, 미국 유학길에서 돌아온 황농문(52)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현 서울대 교수)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풀리지 않는 학계의 난제가 황 연구원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미국에 가족을 남겨두고 귀국한 뒤 텅 빈 아파트에 홀로 누워 이 문제를 생각하던 그는 ‘유레카’의 순간을 맞는다.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첩에다 샘물처럼 솟구치는 아이디어들을 잇달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해도 풀리지 않던 문제들의 해법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경이로운 체험이었어요.”
이러한 샘솟는 아이디어의 마중물이 바로 ‘몰입’이었다. 그는 몰입의 끝자락에는 늘 환희의 순간이 찾아왔다고 회고한다. 이 경험은 미국 유학길에서 만난 석학들의 비밀을 엿보는 창이기도 했다. ‘푸른 눈의 학자들은 밤늦게 까지 연구실에 남아 있는 법이 없었다.
술렁술렁 노는 듯하면서도 놀라운 성과를 끊임없이 발표하는 그들은 넘을 수 없는 벽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이들 앞에서 한없이 위축되곤 했는데, 그 비밀을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게 됐다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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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농문 서울대 교수 |
“몰입은 불가에서 말하는 삼매경과 유사한 상태다.
편안하게 의자에 누워 의식의 흐름에 몸을 실어라.” “퇴근을 한 뒤에도 늘 연구 과제에 몰두한 겁니다. 길을 걸을 때도,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도 그런 거죠. 몸은 비록 연구실에 없어도 그들이 머무는 곳이 연구실인 셈이었죠.”
이러한 깨달음을 정리한 것이 베스트셀러 <몰입>이었다. ‘몰입’이 불가에서 말하는 ‘삼매’와 닮아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한 강연장에서였다. 황 교수의 사고법이 불가의 ‘화두선’이나 ‘참선’과 유사하다며 관심을 표시하는 이들의 질문이 꼬리를 문 것.
불가에서 말하는 ‘삼매경(三昧境)’, 그리고 과학자가 제시한 ‘몰입’은 ‘쌍생아’였던 셈이다. 황 교수의 이러한 사고법에 주목한 것이 바로 ‘기업인’들이다.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그의 이러한 사고법에 공감하는 대표적 경영자다.
태엽을 풀어라 ‘상상의 나래’김반석 부회장은 해외 출장을 떠날 때 비행기 좌석에 최대한 편히 몸을 누이고 ‘몰입’에 빠져든다. 황 교수의 가르침을 경영에 접목하고 있는 셈이다. 이 회사의 먹을거리를 비롯한 주요 사업 아이디어는 대부분 이 때 얻는다는 것이 황 교수의 설명. 그는 김 부회장의 집무실에서 나눈 대화의 한 자락을 털어놓는다.
금융권에도 황 교수의 사고법을 실천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김형진 신한은행 멀티채널본부 상무가 대표적이다. 황 교수의 사고법에서 제품 개발의 힌트를 얻은 중견 기업도 있다.
리바트는 그의 아이디어를 빌려 ‘몰입’에 적합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이른바 ‘몰입 의자’를 개발 중이다. 그는 몰입이 현실의 문제를 푸는 유용한 사고의 도구라고 강조한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글로벌 무대를 주름잡는 경영자들도 모두 몰입의 고수들이다.
빌 게이츠는 자신은 물론 임원들에게도 생각 주간을 주고 있다는 것이 황 교수의 설명이다. 보리수 나무 아래서 진리를 터득한 ‘붓다’도 ‘몰입의 달인’이었다. 물론 상념을 모두 잊고 몰입에 빠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는 서울대 공대를 나와 불가에 귀의했지만 삼매경을 경험하지 못한 한 스님에 얽힌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강박’을 버리고, 슬로 씽킹(slow thinking)에 익숙해지라고 조언하는 황 교수는 뇌과학의 프레임으로 ‘몰입’의 실체를 조명한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소설을 왜 읽지… 행간의 여운“나는 놈 위에 노는 놈이 있습니다.” 김정운(49) 명지대 교수는 휴(休)테크 전도사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문화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여가학‘이라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학문으로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일하는 법 못지않게 쉬는 법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린 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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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명지대 교수 |
“창의력은 정보와 정보를 낯설게 연결해 새롭게 만드는 일이다.
‘낯설게 하기’의 에너지는 휴식에서 온다.” 휴식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자극제이자 무덤덤한 일상 탈출의 비타민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피카소가 남긴 위대한 예술작품이나, 산업부문을 뒤흔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바로 이러한 ‘낯설게 보기’의 산물이었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의 이론과 경영학의 접목이다.
“빗자루는 성인들에게는 청소 도구에 불과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하늘을 나는 마법의 도구입니다. 주인공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이야기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 소설가가 바로 조엔 롤링이죠.”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꼬리를 문다. 평소 집에서 해먹는 간단한 음식을 외식 메뉴로 삼아 성공한 것이 맥도널드를 비롯한 패스트푸드 업체들. 창의력은 정보와 정보를 낯설게 연결해 새롭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낯설게 하기를 ‘조합 놀이’라고 불렀다.
이 천재 학자가 만든 ‘E=mc2’라는 공식은 에너지, 질량, 빛이라는 기존 개념을 조합한 결과다. 멘델의 유전법칙도 수학과 생물학의 통섭의 산물이다. 김 교수는 사물을 색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재충전의 기회가 ‘휴식’이라고 강조한다. 휴식이 창의성의 밑거름이라는 것.
하지만 여름휴가를 떠날 때도 자기계발서, 경영서를 지니는 최고경영자들이 적지 않다고 그는 지적한다. 이러한 ‘오버싱킹(over thinking)’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소하거나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걱정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들을 놓치는 실수가 되풀이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문제는 리더들의 이런 불안감이 직원들에게 바람처럼 퍼져나간다는 점이다. 리더의 눈짓, 표정, 몸짓이 불안을 실어 나르는 매개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질식시키는 즉효약이다.
그는 한 번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세대는 불우하다고 강조한다. 과중한 업무 부담에 짓눌려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것이 이들의 현주소다.
강박에 사로잡힌 이들의 일반적인 증상이 바로 ‘혼잣말’을 늘어놓는 일이다.
주변에 이러한 경영자가 있으면 한번쯤 의심해보라는 그는 일주일에 70시간 이상 일하는 경영자들도 실제 업무시간은 30시간 내외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고 덧붙인다.
“정보의 크로스오버(cross-over)가 가능한 편안한 공상과 몽상의 상황을 자주 가질수록 우리는 더욱 창의적이 됩니다.
우리는 정말 잘 쉬고 잘 놀아야 합니다.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세요.” 주말이나, 휴가 때 경제경영서보다 차라리 소설책을 읽으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詩의 여유로움과 느림의 美學유영만(48)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용접공 출신 학자다. 고등학교 시절, 그의 가방에는 늘 쇳덩어리와 금속 줄이 있었다. 쇳덩이와 줄자가 그의 성문종합영어이자, 수학의 정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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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 한양대 교수 |
“두 가지 이상의 것들을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융합이
지식인들에 요구되는 능력이다.”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취업한 첫 직장이 한국전력 평택 화력발전소. 고졸 사원으로 안정적인 처우를 받은 꿈의 직장이었지만, 삶의 좌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강철을 깎으며 실습을 하던 기억은 지금은 아득하다. 하지만 손가락 끝에 전달되던 쇠의 차가움, 뜨거움은 강렬하다. 쇠를 다뤄보지 않으며 이 두 가지 모순된 속성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뜨거움과 차가움, 가벼움과 무거움, 용접공과 대학교수.
유영만 교수는 상충하는 이미지의 지식 생태학자다. 지난 19일 오전 11시, 한양대 교정. 그의 ‘스마트폰’에서는 한 386 가수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뱃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묵직한 저음의 노래. 김동률의 <사랑한다는 말>이 그의 컬러링이다. 충청북도 음성 촌마을의 시골소년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쳤다.
유 교수는 자신의 이력만으로도 최고경영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스토리 텔러’다. 그의 트위터 팔로워(follower) 수만 무려 1만 여명. 그가 주목받는 배경은 인간승리의 드라마와 더불어, ‘문학·사학·철학 분야’를 종횡으로 오가는 폭넓은 사유가 있다. 유 교수가 지난 12년간 쇠를 깎듯 공들여 집필한 책들이 무려 58권.
유 교수의 연구실에는 철학(철학의 탈주), 디자인(디자인의 역사)을 비롯한 폭넓은 분야의 책들이 빼곡히 차 있다. 박제된 지식만으로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수도공고의 실습장, 한국전력의 평택 화력발전소, 교육담당자로 5년간 근무한 삼성그룹이 유 교수의 도장이었다.
공들이면 나의 모습이 재현된다“‘용접’ 이야말로 푸른 불꽃으로 이질적 금속들을 하나로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통섭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지요.” 공고시절은 상아탑에서 배울 수 없는 삶의 지혜, 통찰력의 밑거름이었다. 그는 박사의 박자가 한자로 엷을 박자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두 가지 이상의 것들을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융합이 지식인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라는 것. 그는 다작의 비결로 몰입을 꼽는다.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도 집필 작업을 중단한 법이 거의 없었다는 유 교수의 말에서는 ‘결기’도 엿보인다. 그가 요즘 손에 펼쳐드는 책은 시집과 동식물 관련서다.
동식물 관련서는 바람, 풀벌레, 곤충 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자연을 엿보는 지혜의 창이다. “위대한 일은 잡념에서 출발해 상념에 빠진 사람이 집요한 집념으로 파고들 때 이뤄집니다.” 맥가이버형 인재를 뜻하는 <브리꼴레르형 인재>를 조명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요즘도 하루에 4~5시간 정도 수면을 하고 있다.
브리꼴레르형 인재는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에서 따온 제목이다. 시에서 무한한 상상력의 노하우를 배우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이코노믹리뷰 박영환 기자 yung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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