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live/J62v9gb-6Po?si=DaGswpXN-y1aPV8w
디모데전서 강론 05
디모데전서 2:8-15
남자와 여자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사도가 된 바울은 보내심을 받은 그대로 믿음 안에서 진리가 된 아들들에게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을 경계하고 바른 교훈의 복음을 나누기 위해 서신을 보내면서 가장 먼저 죄인 중의 괴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게 하심을 고백한다. 그리고 신화와 성취함이 없는 족보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였는데 이는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함을 언약적 차원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한 분 중보자 그리스도 예수를 대속물로 주신 것은 언약 때가 이르러 주신 증거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남자, 여자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많은 설교자들이 남녀의 역할 문제로 이해한다. 즉 교회 내에 남자와 여자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느냐 문제로 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직분을 맡은 자가 하는 일, 사건, 혹은 봉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본문이 남자에 대해서는 한 절만 언급되었지만 여자에 대해 더 많이 기록한 것은 여자가 선악과를 먹은 죄를 범하였기에 남자보다 여자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본문을 그렇게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바울 사도는 진리가 된 아들들에게 다른 교훈을 경계하고 바른 교훈인 복음을 말하다가 뜬금없이 교회 내에서 남녀가 각자의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교훈을 준다는 것이 문맥적으로 맞지 않다. 그렇다면 본문은 남녀의 역할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남자 여자를 통해 복음의 본질을 어떻게 말씀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8절). 중보자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기에 이를 위하여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어 믿음과 진리 안에서 이방인의 교사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러므로”라고 말하였다면 앞의 말씀이 원인과 이유가 되어 전파하는 자나 사도가 다 같이 믿음과 진리 안에서 오직 중보자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전파하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남자”란 ‘아네르’로 ‘사람, 남자, 남편, 신랑’이라는 뜻으로 히브리어 ‘이쉬’의 역어로 사용되었는데 성경에서는 남녀 관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말씀한다(엡 5:22-27, 31-32).
그렇다면 이제 “남자”가 되었다는 것은 이 땅에 남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남자로서 먼저 된 자이다(마 19:30, 20:16). 그러기에 다른 교훈에 미혹되어 신화와 족보에 집착하여 분노와 다툼을 일으키는 것과는 관계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것을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라는 표현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주는데 “손”이 ‘능력’을 상징한다면 “거룩한”이라고 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일하심이 기도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기도”란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고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심을 내 안에 담아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남자가 된 자는 하늘의 것을 구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분노와 다툼이 없이”라는 표현에서 “다툼”의 ‘디알로기스모스’는 ‘생각, 토론, 의견, 의심’이라는 뜻인데 신약 성경에서 대부분 ‘악한 생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참고 막 7:21, 눅 6:8, 롬 1:21 등). 예수 그리스도가 된 자라면 분노와 악한 생각을 드러내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손, 즉 십자가의 능력을 담아내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의 모든 것을 위해 하는 기도이다.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9-10절). “또 이와 같이”라고 하였으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된 남자가 전하는 복음에 의해 여자, 즉 교회가 되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남자와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가 된 자와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 그래서 먼저 된 자든 나중 된 자든 오직 한 몸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드러나는 것이다(엡 4:12).
“여자”의 헬라어는 ‘귀네’로 ‘여자, 아내, 신부, 과부’라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처녀이든, 기혼이든, 과부이든 모든 연령의 ‘여성’을 지칭한다. “단정하게”란 말의 ‘코스미오스’는 ‘질서 있게, 존경스러운, 영예로운, 고결한’이라는 뜻이고, “옷”이란 ‘카타스톨레’는 ‘카타스텔로’(질서를 회복하다, 진정키시다, 정당한 자리에 두다, 옷을 정리하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정당하고 합당한 행위, 옷, 의복, 옷을 입는 것’을 뜻한다. “입으며”라는 표현의 ‘엔’은 ‘~안에, ~와 함께’라는 뜻이다. 즉 여자가 교회 되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 그 안에 들어갔다는 의미로 표현한 것이다(갈 3:27).
“소박함”이라는 ‘아이도스’는 ‘경건, 겸손, 두려움’이라는 뜻이고, “정절”이라는 ‘소프로쉬네’는 ‘신중, 자제, 근신, 안정된 마음’이라는 뜻이며, “단장하고”의 ‘코스메오’는 ‘배열하다, 정리하다, 질서있게 두다, 꾸미다’라는 뜻이다. 정리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예롭고 고결한 행위가 드러남으로 소박함, 곧 경건으로 인한 겸손의 상태, 정절, 곧 자제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잘 정리되어 배치된 상태가 교회의 모습이라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다른 교훈 비진리의 미혹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은 문자적으로 보면 당시 에베소 아데미 신전의 창녀들 모습과 같은 것을 거부하라는 것이나 언약적 관점에서 보면 “땋은”이란 말의 ‘플레그마’는 문화적 차원에서 포도나무 덩굴이나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세공품이나 화환을 가리키는데 치장된 “머리”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는 말씀을 많이 배워서 지식적으로 우두머리가 되어 남을 가르치려는 모습이다. 신화와 족보에 집착하면서 말이다.
“금”이라는 ‘크뤼시온’은 변하지 않는 진리를 상징하지만 그 변함없는 완전한 진리를 땋은 머리처럼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다는 뜻이다. “진주”라는 말의 ‘마르가리테스’는 ‘보화, 값비싼 돌’인데 천국의 보화, 은혜를 상징하지만 진주가 만들어진 특성을 따라 보자면 자신만 알고 있는 말씀으로 오직 자신의 수고와 노력에 의한 것임을 자랑한다는 뜻이다. “값진 옷”이란 값비싼 옷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처럼 드러낸다는 것이다. 베드로전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벧전 3:1-6)
아내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가 아니라 남편에게 말씀을 순종함이고 정결한 행실이라고 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된 상태가 여자의 단장이다. 이것은 썩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땋은 머리, 금, 진주, 값진 옷”은 외적인 것이고 육적인 것으로 썩는 것이나 “단정한 옷, 소박함, 정절, 단장”은 내적인 것이고 영적인 것으로 썩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인 여자의 단장은 외적인 것이 아닌 말씀으로 단장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잘 정리된 존재로 오직 “선행”으로 드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마땅한 것”이란 ‘프레포’는 ‘어울리다, 합당하다’라는 뜻이다. 즉 교회에게 어울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행하신 선한 일이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11절). “순종함으로”라는 말의 ‘휘포타게’는 ‘휘포’(~에 의하여, ~아래)와 ‘탓소’(순서 있게 정렬하다, 배열하다)의 합성어인 ‘휘포탓소’(예속시키다, 복종시키다)에서 온 단어로 ‘복종, 예속, 종속’이라는 뜻이다. “조용히”라는 말의 ‘헤쉬키아’는 ‘고요함, 안정, 침묵’이라는 뜻으로 침묵하라는 의미이다. “배우라”라는 말의 ‘만다노’는 기본적으로 ‘마음을 어떤 것에게로 향하게 하다’라는 의미에서 ‘익숙해지다, 경험하다, 알게 되다, 이해하다, 가르침 아래에서 배우다’라는 뜻이다. 즉 여자인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서 침묵함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12절)라고 바울 사도는 선언한다. 여기서 “주관하는 것”이란 말의 ‘아우덴테오’는 ‘지배하다, 다스리다’라는 뜻이다. 즉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를 다스리시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는 십자가 앞에 할 말이 없는 자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롬 3:19)
여자인 교회가 침묵하면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13-14절)라고 하였다. 즉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는 것을 창조 언약을 통해 계시하심으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에서 하나 될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여자가 속아 죄 가운데 매인 상태가 되어야 했고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누리는 것이 언약의 완성이다. 그래서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고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고 말씀한다(고전 11:3-10). 즉 남녀 관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구원을 계시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15절). “그러나”라는 표현은 죄의 권세 아래 있게 되었지만 구원이 주어지는 반전을 말씀하기 위한 접속사이다. 이 말씀은 단순히 여자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하와”라는 여자에 대한 말씀이다. 의미상 ‘그녀의’라는 표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역하면 ‘그러나 구원을 얻을 것이다. 만일 그녀의 정숙함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 안에 머물러 있는 출산으로’라는 말이다. “해산”의 ‘테크노고니아’는 ‘출산, 해산’이라는 뜻인데 단수로 표현되었다. “정숙함”의 ‘소프로쉬네’(‘신중, 자제, 근신, 안정된 마음’)는 9절에서 “정절”로 번역된 단어와 같다. 즉 신중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믿음과 사랑과 거룩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이 “해산”이고 “구원”이다.
자기들의 종교 놀이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비난한 자들을 두고 예수님께서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 11:19)라고 하셨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눅 7:35)라고 하였다. 즉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거부한다고 할지라도 지혜이신 예수님께서는 천국 백성, 곧 아들들을 만드실 것이고 그것으로 진리의 진리 됨이 드러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하여 교회를 통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난다. 그래서 이제 여자인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계 12:5)
결국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낳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오직 복음을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을 만드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율법을 이루신 남편을 믿고 사랑한다는 것은 이전 남편 율법에서 벗어남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이런 여자는 씨를 받고 잉태할 뿐만 아니라 해산하여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얻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졌음이 증명된다(20241020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