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27일, 월요일, Cochabamba, Hostal Florida (오늘의 경비 US $22: 숙박료 90, 점심 10, 저녁 6, 식료품 8, 버스표 40, 택시 10, 기타 4, 환율 US $1 = 8 boliviano) 오늘 지난 4일을 묵던 La Paz를 떠나버렸다. 고산증세에 손을 든 것이다. 아침 9시에 버스로 떠나서 오후 5시에 Cochabamba에 도착하였다. La Paz를 떠나서 몇 시간 동안 황량한 고원 지대를 달리다가 Cochabamba 근처에 가까워지면서 고도가 낮아지고 경치가 갑자기 푸른 평야로 바뀌었다. 고도가 La Paz의 3,660m에서 Cochabamba의 2,550m로 떨어지니 살 것만 같았다. Cochabamba는 푸른 산으로 둘려 싸여있어서 한국의 도시와도 비슷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La Paz를 예정보다 일찍 떠나서 좀 섭섭했다. Titicaca 호수에 있는 Inca 발상지라는 Isla del Sol과 (해의 섬) Isla de la Luna (달의 섬)도 가보고 La Paz 근처 트레킹도 해보고 산에도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못해서 좀 아쉽다. 그러나 고산증세 때문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La Paz에는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숙소에서 좀 쉬었다가 저녁 때 산보를 나갔다. 호텔이 중앙광장 가까이 있어서 근처에 있는 시장에 가니 포장마차 음식점들이 많고 사람들도 많았다. 그 중 사람이 제일 많이 모인 포장마차에 가서 저녁으로 고기볶음을 사서 먹었다. 싸고 맛 좋았다. 여행지도 Cochabamba는 볼리비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도시 같다, 기후가 좋고 평화스럽고 물가도 싸다 2003년 10월 28일, 화요일, Cochabamba, Hostal Florida (오늘의 경비 US $21: 숙박료 90, 점심 30, 식료품 25, 택시 16, 인터넷 6, 환율 US $1 = 8 boliviano) 오늘 우연히 이곳에 사는 한국 교포를 만났다. 시장 근처 지나다가 어느 사진관 안에 동양 여자가 있는 것을 보고 집사람이 혹시 한국 사람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반가워하면서 들어오라고 해서 만나게 되었다. 저녁식사 초대를 해서 저녁 8시에 사진관으로 다시 갔더니 사진관 주인 여자분 남편이 차를 가지고 나와서 함께 타고 한 10분 거리에 있는 그 분들의 아파트로 갔다. 두 분은 70대초인 것 같은데 15년 전 남편이 한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끝내고 이곳에 이민을 왔다한다 (교회 조직을 통해서). 경기도 말씨라 물어보니 우리 아버님 고향인 경기도 여주가 고향이다. 부인은 이북 말씨라 물어보니 집사람의 어머님 고향인 황해도 출신이다. 우리보다는 몇 년 위지만 이런 지연 때문인지 금방 친해졌다. 이 부부는 장성한 아들과 딸이 있는데 모두 한국에서 살고 있다. 딸은 출가했는데 사위는 대학 강사이고 곧 돌이 되 오는 외손녀가 하나 있다. 결혼 전인 아들은 신학대학에 재학 중이다. 이민은 다 같이 왔지만 두 자식들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부모만 이곳에 살고 있는 것이다. 부인은 사진관을 경영하고 남편은 근처에서 시계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 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부인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남편은 이곳이 편하다고 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남편은 한국에 돌아가서 자식들한테 짐이 되기 싫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인은 꼭 돌아가서 살고 싶다니 우리가 봐도 좀 안타까운 케이스다. 두 분이 사는 아파트는 이곳에서는 고급 아파트인데 한국 교포가 여러 가구 살고 있었다. 아파트에 당도하자마자 아래층에 사는 다른 한국 가족이 육개장을 만들었다고 저녁 초청을 해서 우리도 따라가서 그 집으로 내려가서 저녁을 먹었다. 한 80평은 되어 보이는 넓은 아파트에 가구도 고급이고 잘 사는 집인 것 같았다. 바로 옆 아파트에는 이집 여주인의 여동생이 사는데 어머님이 한국에서 다니러 오셔서 묵고 있었다. 고등학생 서넛이 나와서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꼭 한국의 친척 집에 온 기분이었다. 육개장이 나와서 맛있게 먹었다. 김치도 맛있고 젓갈도 맛있었다. 우리를 예상 안 했기 때문에 육개장을 맘껏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8월 26일 한국을 떠난 후로 처음으로 먹는 한국 음식이었다. 부산이 고향인 집주인은 49세인데 6년 전에 이곳으로 이민을 왔다. 한국에는 아직 하는 사업이 있어서 자주 왕래한다. 이곳에 이민 온 이유는 아들이 조기 유학으로 이곳에 8년 전에 와서 이곳에 먼저 이민 와있던 친척집에 머물면서 이곳 외국인 학교에 다녔는데 그것이 동기가 되어서 식구가 다 왔다. 집주인은 우리와 인사가 끝나자마자 아들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어느 대학으로 유학을 갔는데 SAT 수학 점수가 만점인 800점이어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토목공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내년 가을에는 대학원에 갈 예정이다. 딸은 이곳에서 치과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졸업한 후 한국에 돌아가서 치과의사로 일하는 게 꿈이란다. 들어보니 자식 자랑할 만하다. 자동차 기술자인 집주인은 이곳에서 자동차 부속품 가게를 하는데 부속품을 재생하는 기술 때문에 돈을 잘 번다고 한다. 이 도시에는 약 40 가구의 교포들 살고 있는데 그 중에 10여 가구가 한국 유학생이고 치과 아니면 약학 공부를 하고 있다한다. 이곳에서 공부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가서 자격증을 따고 치과의사나 약사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정말 세계 방방곡곡 한국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이 없는 것 같다.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이런 도시에 한국 사람이 40 가구나 살고 있고 한국 교회가 둘이 있다니 놀랍다. 집주인은 이곳 생활에 아주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우선 날씨가 좋아서 난방 시설이 필요 없다고 한다. 1년에 2개월 정도의 우기 외에는 항상 청명한 날씨란다. 고도가 2,600m 정도라 적당히 건조하고 공기도 좋다고 한다. 난방 시설이 있어야 하는 캘리포니아 날씨보다도 더 좋은 것 같다. 거기에다 집 값, 음식물 값 등 모든 물가가 싸다. 사람값도 싸서 이 집도 식모를 두고 산다. 미화 7만 불 정도면 좋은 집을 살 수 있고 1만 불이면 온 집안 식구가 맘껏 칠 수 있는 골프 회원권을 (월 회비 50불정도) 살 수 있다. 불편한 것은 한국 가는데 30여 시간이 걸리고 한국식품을 사는데 좀 힘들다는 것뿐이다. 미국에 사는 것 보다 더 좋다고 한다. 미국에서야 아무리 돈 있어도 기죽고 살아야 하는데 (이집 주인의 의견이다) 이곳에서는 돈 조금만 있으면 기를 쭉 펴고 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들의 이민생활은 뿌리가 내린 것이 아닌 것 같다. 일시 살기가 좋아서 살고 있을 뿐 영구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한국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 가도 열심히 잘 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내일도 또 와서 저녁 식사하라는 초대를 받고 차를 태워줘서 밤 11시경 호텔로 돌아왔다. Cochabamba 한국 교포가 경영하는 "Foto Corea" 사진관 Cochabamba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며 잘 사는 한국 아주머니, 남편은 근처에서 시계가게를 운영한다 공원에서 어린 두 딸을 돌보고 있는 아버지 볼리비아는 정세가 매우 불안정한 나라다, 며칠 전 La Paz에서 80여 명이 죽은 정변이 났는데 벌써 또 무슨 데모인가 2003년 10월 29일, 수요일, Cochabamba, Hostal Florida (오늘의 경비 US $19: 숙박료 90, 점심 24, 식료품 31, 환율 US $1 = 8 boliviano) 오늘도 저녁은 어제 갔던 신 장로 댁에 가서 먹었다. 어제 먹으려다 못 먹었던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생선 요리도 나왔는데 남미 강에서 많이 잡히는 수루비라는 생선인데 돼지고기 비슷한 맛이었다. 이곳에는 하루에 몇 시간씩 아리랑 TV가 나온단다. 그런데 영어 방송이기 때문에 별로 인기가 없다. 그 대신 신 장로 댁에는 한국 비디오가 많아서 12.12 사태에 관한 코리아게이트란 제목의 비디오를 두 개 보았다. 이틀씩이나 식사 대접을 받아서 너무나 고마웠다. 두 가족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부디 행복하시기들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