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아홉 번째 봄의 자화상(自畵像)
거실(居室)에는 냉기가 아직
봄이라 하지만 여전히 쌀쌀하다. 거실에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의 양과 시간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 오전 한 때 온실과 같이 따뜻한 잠시의 시간만 지나고 나면 그 이후부터 밤까지는 차디찬 냉기와 싸워야 한다. 천성적으로 기후의 변화에 민감해서 추위나 더위에 오래 버티지 못한다. 차가운 냉기가 혹독하게 엄습하는 시간에는 차라리 무릎을 꿇고 싶도록 참담해진다. 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 배급 주듯 일정한 시간 햇볕이 거실에 할당되는 때를 이용해 창가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자세 그대로 밖을 내다본다. 그 자세로 우선 곧 닥쳐올 추위를 최대한 잊는다. 바꾸어 말하면 햇볕을 빛 한 오라기도 놓치지 않을 양으로 몸을 창 쪽으로 바짝 붙인 채 해바라기와 같은 몸 가짐새를 시종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참 따뜻하고 기분이 곧 좋아진다. 책을 읽어도 좋고, 책의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으면 그냥 창밖을 쳐다보기만 한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아무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무언가를 가만히 응시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때때로 사람의 지친 마음을 놀라울 정도로 편안하게 해주는데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넋이 나간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처음에는 햇볕을 쬐는 데만 너무 열중하느라 얼굴이 벌겋게 타는 줄도 몰랐다. 화끈거림을 느끼고 급히 거울을 보았을 때는 이미 잘 익은 홍시처럼 발갛게 익어있었다. 그저 그랬다. 그런 것에 기분이 좌우될 나이는 인제 지났다는 것인지 거울을 통해 자주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듯 들여다보는 나로선 그것을 잘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아침이면 제 시간에 그 자리에 앉는 일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열 시 전후.
아저씨, 아저씨는 늘 그 자리에만 앉아계세요.
앉은 자리가 지은 지 오래 되고 낡은 이 층 빌라로 들어가는 입구에 면해 있는 자리라 출입구로 들락거리는 이웃들은 불편하다. 나이가 지긋이 들었거나 심약해서 매사에 피해망상이나 대인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이 자리가 불안하고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가끔 짜증도 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언사에 귀를 기울이며 긴긴 하루 중 누리게 되는 그나마 얼마 안 되는 모처럼의 오붓한 시간을 포기하거나 체념할 정도로 흔들릴 나이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이제 나도 주어진 나만의 시간이나 할당된 햇볕의 정량같이 받지 않으면 이내 흔적도 없이 소멸될 성질의 것들을 고스란히 지키고 싶으니까. 과거처럼 양보해도 다른 사람의 것도 온전히 되지 못하는 것을 두고 혼자 양심가인 양 착각하거나 몰래 숨어서 희열을 즐기는 망상가가 더 이상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낸 지난날의 시간들로 서른아홉 번째의 봄은 더욱 스산하고 춥기만 할 뿐, 다가올 다음 계절의 풍성한 변화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거나 지금쯤 이 나이에 흔히 가질 법한 견고한 안착(安着)의 포근함과 더 높은 곳 혹은 미지의 다른 곳을 향한 재발진과 같은 희망은 어느 한 곳 찾을래야 찾을 길이 없다.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헝클어뜨려 엉망진창인 수렁과 같은 방들과 거실, 그리고 화장실, 이들 구석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이 차디찬 냉기를 당장 어떻게든 견디어 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살인적인 열기가 이 냉기를 그야말로 냉혹하게 굴복시킬 여름이 오기만을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즐겁고 야릇한 흥분에 찬 기대나 기다림이라고는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다. 그러니 매사가 눈에 뛸 정도로 밋밋해질 수밖에 없다. 그냥 햇볕만 쳐다보는 해바라기가 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을뿐더러 그나마 햇볕이 들어서지 않는 오후 시간부터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햇볕을 따라붙을 용한 발도 없는 해바라기 주제에 고뇌에 찬 철인(哲人)처럼 거실만 이리저리 서성이게 된다. 서른아홉 번째 맞는 찬란한 봄에 말이다. 그래서 서른아홉 번째 맞는 봄은 이러저러한 사정을 감안 어느 날 오후 별로 차림새도 갖추지 않은 평상복 차림으로 대신 묵직한 등산화는 챙겨 신게 하고 따스하고도 찬란한 자신의 마당으로 나를 끌어내었다.
길가의 밭 옆으로 난 조그만 도랑으로 물이 흐르고 있다. 맑은 물이 아니다. 도랑 사이로 난 조그만 시멘트 다리를 전후해서는 콘크리트 옹벽이 잡풀과 듬성듬성 들어서 있는 아직 물길에 채 다듬어지지 않은 모서리가 곳곳에서 예리한 바위라고는 할 수 없을 돌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운치가 없다. 운치가 없으니 아련할 추억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발걸음도 잡아주지 못한다. 다음 길을 간다. 집을 나서고 이 곳까지 지나는 동안 무엇 하나 시선을 제대로 잡아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섭섭하지는 않다. 멀리 야트막한 야산의 훤칠한 소나무 가지 위에 드문드문 움지를 튼 새둥지들로 눈을 돌린다. 길가는 중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드문드문 둥지가 있다. 사이좋게 영역을 나누었다는 뜻인 것 같다. 그런데 한 둥지 바로 옆 나무에 둥지를 튼 것도 있다.
무작정 걸어보는 길
생각을 하지 않고 걷는다. 되도록이면 걷는 일에만 집중한다. 그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구차하게 달라붙는 사념들을 떨쳐낼 수 있는 것이 가능해지는 시간이다. 며칠 째 얼어붙은 몸이 서서히 풀어진다. 길을 반기는 눈치다. 대단히 반기는 걸음이다. 보폭이 활달해진다. 덩달아 시선도 어디 한 곳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노닐 듯 둘러본다. 그 걸음이 흥미로웠나, 흥겨워보였나.
저, 길 좀 묻겠는데요. 이 근처에 낚시터가 어디쯤 있는 지 혹 아시면 가르쳐주십시오.
큼직한 코뿔소 같은 흰 중형차를 옆에 세운 채 까무잡잡한 남자가 길을 묻는다. 낚시터, 낚시터라. 난 낚시를 해 본 지가 기억에 가물가물하다. 중학교 시절인가 아냐 고등학교 일 학년 때였을 거야. 난 술이라고는 집밖에서 집밖이라 하면 야외를 말하는데 불량배 취급을 받기가 싫어서 먹지를 않았다. 친구네 집의 구석진 골방에 몰래 숨어서 홀짝거린 적은 몇 번 있어도 그리고 고등학교 이 학년까지는 키가 자라지 않았다. 그때 간 곳은 겨울 바다였다. 아마 받아간 술만 추위를 이기느라 서둘러 마시고 왔었지. 낚시줄은 바닷가 바위 틈서리에 온통 휘감아놓고서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말이다.
이 곳에 온 지 얼마 안돼서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조금 지나와 보니 낚시터를 알리는 현수막이 길을 가로 막은 채 허공에 펄럭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되돌아가서 알려주고 싶지만 차를 가진 그로서는 가깝겠지만 그냥 걸음을 걷는 나로서는 꽤 먼 거리다.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하등 서운할 리가 없는 사람일 것이다.
좁은 이 차선으로 많은 차들이 지나간다. 햇빛 때문에 모자를 쓰긴 했지만 땀이 흐를 정도는 아니다. 시골이라 그런가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창고처럼 지은 축사들만 덩그러니 자리한 채 새로 입주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원래 밭이었거나 논이었던 땅들에 변화가 생기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떠나갔겠지. 사람대신 차들 행렬만 실컷 본다. 덤프차는 먼지를 휘날리고, 목적지는 알리지 않은 채 차들은 묵묵히 어디론가로 끊임없이 가고 있는 시간. 난 그 인적이 드문 황량하기만 시골길을 터벅터벅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가고 있다. 볕이 좋아서.
여전히 아이들은 뛰어놀고
희한한 것은 많은 길을 혼자서 걸어왔는데 별로 지치지 않는다. 이야기하며 가는 사람도 없고, 눈에 쏙 들어오는 정경도 별로 없는데 난 그런데 별로 지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것은 아마 내 발끝 혹은 심장의 어느 어두운 심연의 끝에서 곤두서 있을 차디찬 눈의 주시 때문이리라. 그 눈이 감지 않는 한 난 쉴 수 없음을 안다. 언제부턴가 나를 따라다니는 집요한 시선을 발견했고, 발견한 그 이후로는 결코 뇌리에서고 주변에서고 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몸의 일부인 양 달고 다니는 편이 그래도 덜 신경 쓰이겠다고 마음먹은 후부터는 좀 나은 편이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대여섯 어울려 놀고 있다. 무엇을 하고 노는 건지는 모르겠다. 좌우간 재잘거리고 있다. 큰 개가 달려와 그들 주변에서 멈춘다. 땅을 보기도 하고 꼬리를 흔들다가 지나가는 나를 보고는 무섭게 짖는다. 노인들 둘이 밭에 앉아 이야기를 하다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나를 한참동안 바라본다. 그 놈 참 무섭게 짖어대는군. 그 소리를 들었는지 잠시 후 고개를 돌리고 노인들도 고개를 돌리며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또 있다. 어릴 때는 보기 힘들었던 오렌지를 파는 천막이 가는 길 도중에 있었다. 난 집 근처에 있는 큰 매장을 순간 생각했고 각 음식점 코너마다 비치되어 있는 시식 코너에서 약간씩 시식하던 것을 이상적인 습관처럼 떠올리며 천막 안의 여자를 쳐다본다. 여자도 그렇게 하겠노란 듯 두꺼운 오렌지 껍질을 칼로 벗기고 있다. 미리 칼을 넣어 토막을 내어놓았던 모양으로 꼭지가 보이는 하단 부분을 벗겨내고 있다. 난 다가가며 여전히 쳐다본다. 그 때 아이들이 창고처럼 지은 텅 빈 축사의 시멘트 마당에 임시로 들여놓은 컨테이너에서 뛰어나온다. 컨테이너는 놀이방 같이 꾸며져 있다. 껍질을 다 깐 여자는 속살이 얼얼하게 드러나는 알멩이를 한 입 가득 베어 물며 아이들을 데리고 컨테이너로 들어간다. 그 뒤의 야트막한 산에 소나무가 제법 총총히 심어져 있는 숲에도 새들의 둥지가 보인다. 까치 한 마리가 주변을 맴돌며 가지에 앉았다가 날다가를 한다.
사람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차 소리들뿐이다. 난 차가 없다. 차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 물론 차가 있으면 싶은 때도 있다. 아주 많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운전 면허증을 따야 하는데 무엇을 배운다는 게, 그것이 운전 면허증을 위한 것이라는 게 싫다. 운전이라는 것이 싫은 것이 맞을 것이다. 난 기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어릴 때도 없어서 그랬는지 장난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제법 커서 아버지를 따라 어른들을 찾아뵐 때 따라나서게 되었다. 동생도 따라 갔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어도 동생은 나와 여러 면에서 달랐다. 그것은 그 때나 지금 생각해 보나 여전히 흥미로운 일이다. 제사를 지내고 음식이 들어오기 전에 방에서 늘 하던 방식대로 얌전히 기다리던 때였다. 점잖게 앉아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눈치를 주었지만 동생은 구석에 있던 장난감을 보고는 손을 달랑 뻗어 가지고 가져와서는 갖고 놀기 시작한다. 순간 동생의 장난감을 뺏어 가지고는 제자리로 갖다놓으라고 으름짱을 놓는다. 동생이 고개를 숙이며 울상을 짓는다.
갖고 놀구로 나 놔라.
자전거도 그래서 고등학교에 가서나 겨우 배웠고, 군 제대 후 학원도 가지 않고 한 번 만에 운전면허를 동생은 딴 반면에 난 아예 응시조차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평생 운전을 업으로 사신 아버지와 무슨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끔 안 해 보는 것은 아니지만 별 마땅한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난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나답지 않게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두 발로 걷는 걸음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몰랐다. 막연한 반항인가도 싶었고 걷는 운동인 등산은 동생이 더 좋아했는데 그런데 난 반항 같은 반항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며 지금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버지와도 동생과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 가야 멈추는지
비닐하우스에 색깔이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두 종류의 흙이 겹쳐 있다. 그것만 보면 늘 빵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먹음직스런 롤케익을 떠올리게 하는 황토 흙과 그 위에 약간 시큼한 향기가 갓 익은 뚝배기 음식처럼 흘러나오는 소똥 거름이다. 초코렛처럼 까맣다. 무럭무럭 김이 새어나오는 것 같다.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선 채 담소를 나누던 부부가 내가 지나가자 잠시 말을 멈추며 돌아봐 준다. 실은 둘 다 남자인 줄 알았는데, 등을 돌린 약간 체구가 작은 사람이 여자의 음성을 내고 있었다.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싶은데 등을 돌리고 있어서 대신 남편인 듯한 남자의 둔한 얼굴을 쳐다보며 지나간다. 이제 농촌에는 일군들이 없다. 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소설책에서나 생각해왔고 저녁 시간대에 방영하는 TV 농촌 프로그램에서나 보았던 떠들썩함은 그러니까 지금은 없는 것이다. 경작할 밭이 없는 것은 분명 아닌데 사람들이 없는 것이다. 다 어디로 갔는가.
이만한 거리면 땀이 흐를 만도 한데. 사람은 아무 것도 의식하지 않는 때가 있다. 그 집요한 시선도 느끼지 못할 만큼. 현철 농장의 현수막이 장난처럼 걸려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가만 있자. 일회용 라이터에 적혀 있었지. 그 일회용 라이터는 얼마 전 아내와 오랜 만에 들어간 읍내에 있는 커피숍에서 얻었고. 커피숍이랄 것은 없었고 다방이래야 어울린다. 듬성듬성 앉아 멀쭘한 흐릿한 시선으로 우리를 쳐다보던 시골 촌로들. 그 촌로 중 한 명과 다방의 늙고 살이 찐 레지가 어느 날씨 좋은 날 차를 내어 놀러가서 현수막에 적힌 한 그릇에 칠천 원인 보신탕을 먹었거나 닭백숙을 먹었거나 하여간 음식을 늘어지게 먹고 나오는 길에 레지도 아닌 촌로가 서운한 느낌에 한 개 집어왔을 일회용 라이터 현철 농장. 그것이 바로 이 곳에 있었군.
그 날 난 아내의 이야기만 들었다. 난 아내와 이혼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고 지난겨울 내내 헤어져 있다가 그 날 찾아갔는데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 지 희한하게도 이혼에 대한 말도 못 꺼내게 할 것처럼 시종 겨울을 아들과 난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계속 늘어놓았다. 시간이 좀 흐르고 아내는 배가 고프다며 맥도널드에 가서 햄버그가 먹고 싶다고 했고, 한 개도 아닌 두 개를 한 번에 해치우는 식성을 보자 그렇지 않아도 만나자마자 무언가 허기진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난 태권도 도장에 갔다가 돌아온 아들을 같이 데리고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사주었다. 난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아내의 식성은 여전히 무서울 정도로 놀라웠다. 그 음식을 먹는 내내에도 이혼에 관한 한 마디의 말도 난 꺼내지 않았다.
그 날 저녁 난 집에서 잤고 거짓말 같은 일상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누군가 환각이나 착각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은 누구의 몫인가. 현실 밖의 세계에서 아직 떠돌 듯 길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 한 채 헤매는 이는 누구인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지금 낯선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듯 우리는 모두 일상이라는 현실 밖에서 겉도는 것은 혹 아닌지. 여러 생각이 겹치듯 한 번에 일어나 길을 가는 중에 지나간다.
길은 산으로 이어지게 마련
사실 길은 한적한 곳이 좋다. 가도 가도 별로 변화가 없는 길은 가긴하지만 생각을 이어주지 못한다. 봄볕에 쑥을 캐러 나온 어린 모녀가 간혹 보인다. 군부대 앞을 지날 때는 성묘 온 부부의 낯설어 하는 눈길을 볼 수도 있었다.
삼거리에서 두터운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어 쉬기로 한다. 햇빛이 좋으니까 길을 나섰고, 신발도 벗으며 양말도 벗는 기회가 있다. 지나가는 차량들에서 호기심어린 눈빛이 보인다. 운전자보다 대개 옆 좌석에 앉은 사람들로부터 짜증과 피곤함을 길가 도로에 앉은 난 명확하게 느낀다. 끌려 다니는 사람 같은 표정들을 하고 있다. 등산복 차림의 부부 한 쌍이 내려온다. 남자는 지쳐 보이는 오십 대이고 여자는 생생한 남편보다 조금 나이 어린 듯한데 길가에 앉아 그들을 쳐다보는 내 눈길을 대담하게 받는다. 되받아서는 아래위로 예리하게 훑어보기까지 한다. 관능적이다. 물론 그것은 내 생각일 뿐, 부부는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며 지나가는데, 꼭 숲에 무언가 찾으러 다니는 장사꾼 같다.
그들이 내려온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 보기로 작정하고 길을 올라 숲으로 들어선다. 양지바른 곳에 무덤이 많다. 이 곳 어디에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나 전에 살던 고향에는 이렇지 않았다. 그곳은 도시라서 그럴까 싶기도 하지만 이 곳 묘분의 모양이 한결같이 같다는 사실은 퍽 흥미로운 일이다. 봉분을 둥글게 만들고 그 주변에 언덕같이 반달 모양으로 둘러싸게 해놓았다. 멀리서 보면 참 원만한 곡선이다. 햇노란 잔디로 그려내는 반원과 반원의 입체적 만남. 죽음의 한 형태는 죽어서도 예술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미소를 지었다.
영산홍과 개나리가 곳곳에서 환하게 얼굴을 내민다. 산을 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무척이나 고적한 길을 혼자 걷는다는 것은 황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른아홉 번째 맞는 봄에 이런 고적한 산길을 호젓하게 걷고 있다.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영화 속 장면 같기도 하고 오를수록 경사가 완만하며 내려다보이는 숲은 지난해 쓸쓸했던 가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떨어진 낙엽은 여전히 온 숲을 뒹굴고 있다. 겨울만 빠진 셈이다. 몇몇 나무에는 시든 가랑잎이 대롱대롱 매달린 채 그 추운 겨울을 난 것 같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마음 저 깊은 속에 응어리로 남은 채 아직 살피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들이 주억주억 떠밀려 나온다. 머리가 간단히 맑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복잡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것도 아닌, 오히려 어중간해서 모처럼 밟는 이름 모를 산의 초행에 대한 예의를 흐리게 한다. 다른 때 같았으면 벌써 어떤 식으로든 감탄사가 터져 나왔을 텐데 목젖에서 가물가물 거리다 만다. 앉은 채로 뻐구욱거리며 울던 뻐꾹새가 낙엽을 밟는 소리에 놀라 후다닥 허공을 차고 날아오른다. 처음 보는 새도 제법 있다. 그러나 꽃은 영산홍이 주류다.
꽃잎을 하나 따서 입으로 가져가 씹는다. 진달래를 먹는 법은 소설책에서 배웠다. 주인공이 어린 소년이 되어 고향에서 자라던 모습을 회상하는데 먹을 것이 별로 없던 당시의 친구들과 산에 올라 진달래를 따먹던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의외로 맛이 있다. 첫맛이 달고 씹는 맛이 사각거리며 재미있고 목안으로 삼킬 때 간지러움은 어린애처럼 킥킥거리게 한다. 간혹 벌레가 붙어 있지는 않은 지 조심스레 뒤집어보는 것을 잊지 않는다. 꼬챙이도 가는 것을 하나 바닥에서 줍는다. 지팡이 노릇을 제대로 시켜보니 그럴싸하다. 경사진 바닥을 먼저 탁탁 두드리며 가는 모습이 마치 산의 기세를 보러 다니는 풍수가처럼 보인다. 그럴 것 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 누군가 날카로운 가는 철사줄로 경계를 지어놓았다. 왜 그랬는지는, 국립공원처럼 보호해야 할 귀중한 숲도 없는데, 산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도 아닌, 산불조심이라고 걸려있는 조그만 네모난 천 앞에서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더 귀중하고 절박한 문제를 생각해야만 할 것 같아서다.
너 그렇게 대책 없이 팔리지도 않을 글을 써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나갈래. 일자리라도 어디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가.
내가 알아서 할 문제야.
그 흔한 문예지에 작품을 몇 번 내놓아 보았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말았다. 돈이 들어올 구석이 몇 년째 안보이자 모두는 불안하고 초조하다. 아내는 더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혼은 늘 아내의 내세우는 입장이지 내가 건드릴 사안은 아니다. 그런데 난 지난겨울 결국 갈라서자고 먼저 이야기했다. 난 지금 산길을 터벅터벅 올라간다. 이것은 내가 평소에 하고 싶던 일인데, 지금 서른아홉 번째 맞는 봄에야 비로소 실현하고 있다. 편하지도 확신에 찬 마음도 없이 오르고 있지만 그럴수록 더욱 덤덤해지는 마음도 곁에 있다. 난 그래도 글을 계속 써야한다고 마음을 먹고 있다. 이것은 신념일수도 있겠지만,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이제는 신념이라기보다는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느낌을 가지게 함이 더 강하다. 언제든지 훌훌 털 수 있게 하는 것이 지금 나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 지 모른다. 결코 난 이 짓을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 산을 넘어 고개를 지나고 또 다른 산 고개를 지나 바람처럼 산속을 헤맬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은 순전히 글을 쓰고 난 이후 가질 수 있게 된 지금의 생활방식이다. 후회할 것도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이유도 서른아홉이 되어 맞는 봄에 선 나로서는 없는 것이다.
왜.
왜.
왜 그렇게 해야 하나.
왜 왜 왜.
마주친 등산객에 말을 붙이니
안녕하십니까.
갑작스레 인사를 한 것도 아닌데 인사를 받은 상대는 당황한 듯 인사를 받긴 하는데 서둔다. 얼른 지나간다. 문득 얼마 전 국어사전에서 보았던 낱말 하나가 떠오른다.
출세【出世】[-쎄] ꃃꂨꂣ ①숨었던 사람이 세상에 나옴. ②입신(立身)하여 훌륭하게 됨. ~욕 / 입신 ~. ③[불]제불(諸佛)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사바세계로 나옴. ④[불]세상을 버리고 불도(佛道)로 들어감. 출가(出家).
이 낱말을 보고 이제 난 드러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숨어서 살 이유가 없는데 마치 숨어서 사는 사람처럼 남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비친 적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입신하여 훌륭하게 됨은 글쎄 라는 생각이 든다. 훌륭해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일지 지금으로서는 모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관심의 방향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고개 하나를 넘자 이곳까지 차가 오를 수 있는 도로가 보이고 중량감 들어 보이는 차 두 대가 주차해 있다. 멀리 기계음 소리가 들려오는데 벌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르다 보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들어 생각이라는 게 사색을 하는 수준인지 망상으로 흐르는 건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눈앞의 현실을 망각하는 아찔한 순간도 점점 많아진다. 사람이 어두운 공간에 갇히게 되면 무슨 생각부터 하게 될까. 중학교 때 물리 선생은 교회의 장로이셨는데 어느 날 수업을 시작하면서 안경을 쓴 눈을 흡뜨면서 조그만 체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있을 때일수록 아무도 안 보니까 내 마음대로 해야지가 아니라 그럴수록 누군가 같이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몸가짐을 잘 해야 합니다. 바지 안에 손을 넣어 주물럭거리거나 가시나 몸이나 떠올리는 음흉한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마시오.
조금 전에 지나간 사람의 얼굴이 재삼 떠오르면서 아는 체 한다는 것에 소홀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들여다본다. 정작 알아야 할 것은 외면하고 알아서 하등의 필요도 없는 불편한 것들만 등에 산더미처럼 지고 다니면서 표정을 이렇게 저렇게 일그러뜨리는 얼굴을 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 우리들이 과연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고, 초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 집만 건너면 다 안다는데.
산에서는 세상 소리가 들리지 않고
산 이름을 나름대로 풀어가며 오른 길, 정상이라고 짐작되는 꼭대기에 별 무리 없이 다다르자 난데없이 여자의 그것도 나이가 육십에 가까운 소리가 불쑥 터져 나온다. 미리 보내는 경계조의 소리라고 짐작하고 난 그곳으로 곧장 오르지 않고 옆의 큰 바위 곁의 그늘로 돌아들어 몸을 앉힌다. 잠시 망념이 잦아든다. 그 소리에 언뜻 형체를 바라본 것 같다. 이어 도란도란 나누는 말소리도 들려왔고. 아랫도리에 갑자기 힘이 느껴지며 긴장이 된다. 땀이 금방 식고 한산한 찬기마저 돈다. 그만 내려가기로 마음먹고 허전하게 일어섰다. 일어선 마음은 발길을 곧장 아래로 향하지 않고 정체를 알고자 하는 강한 발심으로 이어진다. 남자들이었다. 작업복 차림인데 아래 고개에 세워둔 차와 관계가 있을 것 같고, 지금도 요란하게 들리는 보이지 않는 기계음 소리의 장본인들 같다. 나무를 벌목하는 건지, 땅을 갈아엎는지, 둘 다 같이 한꺼번에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내려가고 난 자리에, 바람을 막도록 세워진 바위 틈서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간간히 등산객들이 지나간다. 능선을 따라 더 가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기우(杞憂)가 발길을 잡으려 한다. 지금까지의 지나온 시간이 다 그랬다. 가는 데까지 가볼 것을 권유하는 마음이 충동질하듯 생긴 것은 최근이다. 여전히 그 가운데서 갈팡질팡한다. 난 그런데 아는 것이다. 어느 쪽도 모두 나 자신의 뜻이라는 것을. 그리고 모두는 나름대로 존재의미를 선연하게 지니듯 나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드러낼 때 그 의미들은 하나같이 옳으며 어느 쪽을 따라가던 상관이 없음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능선을 따라 행여나 하면서 더 가보기로 한다.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산 정상에 난 능선들의 길은 그동안 많은 등산객들이 다녀가면서 길들여 놓아 걷기에 매우 편안했다. 마치 집 안에 만들어놓은 정원 속으로 난 산책로처럼 발걸음이 가볍다. 이왕 나섰으니 산 하나를 더 넘어보기로 한다.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이어지는 산의 이름을 묻는다.
혼자되는 시간
오를수록 일단 소리가 멎는다. 오르느라 최대한 천천히 걷지만 그래도 간간히 목젖을 넘어 오는 거친 숨소리가 있고 방에 가만히 앉아 밖을 향해 귀 기울이다 보면 섞여 들리는 그런 소리가 없다. 소음에 가까던 소리는 오던 중에도 계속 따라오긴 했다. 어디쯤에서 자를 것인지가 쉽지 않았다. 머릿속의 혼란은 길을 바지런히 가게 하는 힘이 은연중 되기 때문에 그냥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길을 가는 중에 대부분의 생각이 정리되며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리고 피로가 서서히 차오르게 되지만 여간해서 정리가 어려운 사념들이나 사념들로 인해 난무하는 환청에 가까운 이명들은 길을 가게 하는 동력원으로 이 동력이 소진되는 시점에서 길은 끝나거나 행로를 바꾸도록 한다. 그래서 결코 무작정 버릴 것만은 아니다. 무작정 버릴 만큼 불필요한 것은 삶을 적나라하게 펼쳐놓고 볼 때 없다 라고 오래전부터 굳게 다져왔다.
매일 전쟁처럼 치르던 출근과 퇴근이 없자 세상 밖으로 밀려난 허전함이 처음에 있었다. 그때가 벌써 칠 년 전이다. 그래도 시간은 멎지 않고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는데 초바늘의 돌아가는 속도가 전과 달랐다. 시간은 흐르는데 이정표가 하나 둘 매일 나도 모르는 새에 사라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유령처럼 휘리릭하며 사라지는데 가슴이 무너질 듯 놀라며 두근거린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이 불가항력적으로 허물어지는 세상과의 경계로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을 난 뭔가 빼앗기는 것 같아 일부러라도 몸부림치는 시늉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답답했다.
철조망 아래로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나이 든 여자 셋이 목까지 수건으로 덮은 모자를 쓴 채 불룩한 배낭을 등에 지고 내려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만 가면 길이 갈라지는 샛길이 나오는 모양이다. 축령(逐嶺)의 의미대로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섬을 이루듯 끝없이 사방으로 이어져 있는데 시각적으로 그 전후가 뚜렷하며 명암이 서로 간에 확연해서 봉우리만 따라가면 저 너머 희미하게 이어지는 이름 모를 산에도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산 아래는 만지면 촉감이 부드러운 융단과 같이 보슬보슬한 가지 끝을 일렬로 세운 갈색 나무들이 있고, 간간히 초록빛 선명한 소나무가 숲을 이루며 한 영역을 점하고 있다. 그 아래로 골이 이어지고 민가 몇 채가 원색의 지붕을 얹은 현대식 가옥으로 자리 잡은 채 조그만 부락을 형성하고 있다. 그 중간 양지바른 곳에는 묘소가 서너 개씩 자리한 채 봄볕을 즐기고 있다. 대체로 동글동글하다. 초가지붕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전체가 산등성이가 보이는 원만한 곡선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데, 오르는 길 방향을 제외하고 어디를 둘러보나 비슷비슷한 취락형태다. 그러니까 지금은 원색의 정체불명의 지붕모습을 한 가옥이 이곳의 정서가 되며 내 기억 속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부각되는 전통의 모습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가만있자, 그렇지. 난 그 이후 기억 속의 어린 시절부터 해서 전통으로 회귀하기 시작했고 연어처럼 더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원시와 같은 근원성에 다가가고 있었지.
결국 야수가 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땅의 전통에 대해서는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군, 본능적 원시성에 앞서 정체성에 관한 문제였던 것 같다. 그 사이사이 머릿속을 현란하게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남사당패나 무당의 몸짓이 침투하듯 괴롭혔지.
그것에 대해 매순간 난 도망치듯 애써 피해 다녔다. 홍역 걸린 사람처럼 얼굴이 뜨거워지고 매일 밤 난 다른 사람의 얼굴이 되는 무서운 꿈에 시달렸다.
우리가 쓰는 일상적인 말의 의미에 대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단(檀)이라는 말에 어떤 주술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몇 집 건너 흔하게 세워진 것이 교회인데, 그것은 이 땅 사람들의 신기(神氣)의 소산일 것이라 것, 그리고 한자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우리말에서 어쩌면 나의 향후를 제시해줄 뭔가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다소 치기어린 엉뚱한 접근, 길은 그래서 내가 고른 많고 많은 정신적 길라잡이중 푯대가 되었다. 오늘 이 따스한 봄볕에 길을 나선 것도 그 길이라는 말 때문이다. 길에 홀려 길에 나선다. 그럴 나이의 봄에 과연 난 접어들었을까.
단절(斷絶) 그리고 또 단절(斷絶) 그러나 잠시
드디어 두 번째 산의 정상에도 도착했다. 이미 좌우에는 이곳보다 더 높은 곳이 없다. 누가 일부러 갖다놓은 듯 큰 바위가 두세 개 이곳에만 있다.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아까보다 더 편안한 마음으로 산 아래를 굽어본다. 매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편 채 유유히 허공을 활강하고 있다. 일체의 소리가 멈춘다.
그런데 이건 대체 무슨 소리지.
머리 뒤쪽 방향에서 들려온다. 멀리 도로에서 달리는 차량들의 소리는 아니다.
웅웅웅.
근처 비행장이 있는 모양이군. 만약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래서 이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고 적군의 비행기가 저 소리를 내며 처음으로 이 땅에 접근했을 때 초라하고 무지한 이 곳 사람들은 얼마나 혼비백산했을까.
하늘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소리가 내려오는 걸 보니 저 신령한 하늘에서 무슨 일이 터진 것이 틀림없어.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을 했을 게야. 후훗.
걸어올 때 군 초소가 있었는데 부대 전경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더 멀리 북한강이 보이고 강변을 끼고 고층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다. 눈대중으로 직선거리를 재어보니 이곳과 집이 있을만한 곳까지의 거리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꾸불꾸불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지만 조그만 야산에 가려있다. 그래서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차들의 행렬은 계속 이어진 채 좀체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참 신기하다. 오늘날의 기적은 바로 저것이 아닐까. 자신의 길은 이미 끊어졌는데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이곳저곳을 달리는 사람들. 그것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 자신들을 숨겨주고 안에서 보호한 채 움직이게 하는 차들 때문이라는 듯. 그들은 모두 차들을 숭배하는 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하잘 것 없는 육체보다 더욱 숭배할 것이다. 그래서 오는 길에 그토록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돌아가는 길에서
비교적 오르기도 수월했고 내려오는 길도 잃어버리는 법 없이 차들만 다니는 도로로 내려섰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사람 구경하기는 더 어렵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법은 없다. 누구든 앞만 보고 살아가게 되어 있는데 지나온 길을 더듬어 돌아가며 올 때 머릿속으로 지나간 잠시잠깐의 생각들을 소가 되새김질하듯 다시 떠올려본다. 지금의 내 나이가 기억의 순서 없이 아무렇게나 떠올리고 그냥 넘겨버려 두서가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지는 않다. 난 따스한 봄 길을 걷고 싶어서 봄기운에 홀린 듯 걸어 나왔고 작년의 이맘때와 올 해의 다른 점이 과연 무엇인지 지금껏 수십 번도 더 넘게 봄을 맞고 떠나보내면서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스스로 되짚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일정한 보폭으로 지금 걷는 걸음처럼 내 지나온 삶들은 한 번의 거름도 없이 무심하게 그냥 지나쳐 온 것은 아닐까. 즉 말하자면 이 세상에 대한 어떤 성찰과 느낌 없이 그냥 지나치듯 살아왔을 반성이랄까, 회상이랄까. 아무튼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지나온 삶이 무심했다면 그래서 무사히 통과해왔다면 앞으로의 삶은 그렇게 녹녹치 않을 것이고, 녹녹치 않고 저번처럼 무난하게 흘러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지금의 내가 원하는 방식은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꼭 되짚어보고 싶은 것이다.
걸어가는 도로 위로 아지랑이가 슬슬 피어오르고 있다. 오렌지를 파는 여자도 그 모습 그대로 무료한 듯 앉아있다. 시내 안에 있는 웬만한 대형마트에 들르면 쾌적한 분위기에 살 수 있으니 굳이 차를 세우려 들지 않는다. 시골이라 좀 더 신선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구태의연한 생각인 것이다. 그들은 어줍잖은 실력으로 도시 시장의 흉내를 내느라 조그만 점처럼 붙여놓은 상표부터 수십 개씩 한번에 담아놓은 상자까지 온통 영어인지 불어인지 가늠하긴 힘든 글자로 도배하고 있다.
오렌지 하나가 불어터진 채 어느 창고 앞에 떨어져 있다. 그것을 줍는다. 낯선 상표가 붙어있다. 누군가의 손에서 왜 버려졌는지, 썩어서 버렸는지 아니면 흘린 것인지 그냥 버린 것인지 어느 부분은 아직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껍질을 벗겨 으적으적 씹는다.
나의 서른아홉 번째 봄은 이렇게 외지고 떨어진 시골에서 외제 상표로 덧칠을 해야 하고, 그러나 버림받은 채 어느 구석진 자리에 떨어져 썩어가고 있는 오렌지를 성큼 들어 으적으적 씹으면서 맞고 있는 것이다. 다 먹은 껍질은 젖소를 집단 사육하는 농장 근처에다 아무렇게나 던져준다.
길은 이제 어느덧 끝나가고 자주 산책하는 길로 접어든다. 무사히 집까지 가려면 조금 더 걸어가야 하지만 다 온 듯 마음이 가볍다. 사람이 드문 길을 계속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봄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