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생거진천 전국백일장 수상작
[초등부 장원]
의병장 한봉수님
김진형[충북 진천 삼수초등학교 6학년]
“진형아, 너 대한민국의 남자지?”
“당연하지요 아빠는 뭘 당연한 걸 물으세요?”
“그렇다면 네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해 보았니?”
나는 아빠의 그 물음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버지께서는 다 알고 계셨나 보다.
만약 내가 살아야 할 나라가 없다면 어떨까?
그런 경험은 1910년 많은 사람들이 해 보았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일본에 끌려가 일을 했고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을 받들어야 했다. 그런 일이 다시는 오지 않게 하려면 광복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을 더 자세히 알고 존경하며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위인들께 배울 점을 배워야 한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나는 그 분들에 대한 역사를 더 알기 위해 진천에 있는 한봉수 의병장님의 비를 찾아 가보자고 했다.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하였고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충청도와 강원도에서 활약했던 한봉수님에 대해 더 잘 가르쳐주셨다. 아버지께서는 한봉수 의병장님이 청주 신외일면 세교리에서 태어났다고 하셨다. 한일합방이 되면서 군대가 강제 해산이 되어 김규환의 진에 들어갔고 일본군을 많이 물리쳤다고 한다. 1919년 홍명희. 손병희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활약했고 그 후로도 광복운동을 했지만 일경에게 체포되어 모진고문을 받고 수년간 옥고를 치루셨는데 대한민국정부는 공훈을 기리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은 공을 세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찾아가고 있는 비도 근사하겠다고 생각했고 충북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여 빨리 도착하고 싶었다. 도착을 해보니 기대 밖으로 의거비는 잡초와 나무가 너무 많이 자라있어 찾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의거비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 같았고 그 때문에 의거비도 부식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머리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는 분명 한봉수 의병장님은 청주 출신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 의거비는 청주에 있어야 하는 것이 맞는데……. 혹시라도 저 비석에 써 있나하고 살펴보았지만 비가 한자로 써 있기 때문에 아빠와 함께 보기로 했다. 하지만 비석에 다가갈 수 없었다. 풀이 길을 가로막았고 풀 속에 벌레가 많았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비석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아빠로부터 얘기를 듣기로 했다. 아빠의 말씀에 의하면 문백면 도하리에서 일본의 기마헌병들이 진천방면으로 가는 것을 보고 이곳에서 그 들을 사살하였으므로 이곳에 의거비를 세웠다고 했다.
내 상상 속에서 진천지방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일본군들에게 무기와 농기구를 들고 싸우는 의병들과 말을 타고 충칼을 들며 싸우는 일본헌병의 모습들이 너무 격렬히 떠올랐다. 의병들의 모습이 참 용감했다. 농기구를 들고 기마헌병들과 싸워서 이기다니 그 용기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작은 지방 하나 하나를 지키려고 힘쓰는 것이 참 놀라웠다.
이렇게 용감한 의병들의 의거비를 자동차의 매연에 찌들게 방치하고 풀과 나무가 뒤덮게 놔두다니…….
사람들은 무얼 하는 걸까? 참 실망스럽다. 나라를 위해 그 분이 하신 일에 알맞은 대접을 해 드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라가 어려울 때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겠는가.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적어도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분들에게 감사 할 줄 알고 은혜를 갚는 사람이 될 것이다.
[초등부 차상]
무궁화 빛 사랑
황수정[경기 안성 산평초등학교 4학년]
작년 식목일 우리가족은 뒤뜰에 무궁화를 심었다. 우리 집 뒤뜰에는 자그마한 밭이 하나 있는데, 나무를 하나정도 심을 만큼 정도의 크기가 된다. 아빠께서 그 곳에 무엇을 심으면 좋을 것 같냐고 가족들에게 물어봤다. 동생은 장미를 좋아해서
“분홍색 장미를 심는 건 어때요?” 하며 의견을 냈고, 언니는 손톱에 물을 들인다고
“아빠, 그러지 말고 봉숭아를 심어요.”
라고 의견을 냈다. 하지만 나는 아빠께서 우리들에게 질문을 하시자마자 바로 정한 나무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국화 ‘무궁화’이다. 시골로 이사 와서 처음 심는 나무이고, 또 우리나라의 국화라는 뜻 깊은 나무이기 때문에 나는 ‘무궁화’를 뒤뜰에 심자고 졸랐다. 언니와 동생도 처음에는 자기가 심고 싶은 것들을 심자고 졸랐다. 하지만 내가 무궁화는 아무렇게나 놔두어도 잘 자라니깐, 혹시 집에 아무도 없어도 며칠 동안은 끄떡없이 자랄 수 있다며 고집을 부려서 결국 아빠께서는 나중에 심을 자리가 조금 더 나면 그 곳에다가 장미나무와 봉숭아를 심기로 하고, 내 의견대로 무궁화를 심기로 했다.
나는 나무를 심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나무를 어떻게 심는지 잘 모르는데 무궁화 씨앗을 이틀정도 물에 담가놓았다. 씨앗을 너무 깊게 넣으면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해서 많이 깊게는 넣지 않았다. 무궁화는 딱히 손길을 많이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더 잘 자라라고 비료를 사다가 땅에 뿌렸다. 처음에는 냄새가 나서 무궁화근처에 가기도 싫었는데 그래야지 만이 무궁화가 잘 자란다고 해서 나중에는 내가 직접 비료를 뿌리기도 하였다. 매일매일 물을 듬뿍 주고, 얼마가 지났을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무궁화가 싹이 터 있었다. 너무너무 기뻤다. 나무가 자라려면 참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무궁화가 나무가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기뻤다. 나는 정성을 다해 애정으로 무궁화를 키웠다. 무궁화를 키우다 보니까 내가 무궁화의 엄마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났다.
무궁화는 애정이 없다면 자 자라지 못한다. 항상 좋은 말만 해주어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궁화가 꼭 나 같았다. 나는 꼭 엄마 같았고 말이다. 엄마는 항상 내게 좋은 옷만 입혀주고 좋은 음식만 사주고 좋은 말만 해주려고 애쓰신다. 나는 무궁화가 더 잘 자라기를 바라며 좋은 말을 해주고 물을 주고, 사람을 듬뿍 준다. 무궁화를 키우는 데는 참 힘들었다. 물을 주는 것을 깜빡한다면 가끔 정말 죽어버릴 것처럼 가지가 마를 때도 있었다. 나도 엄마의 속을 애태우기도 했다. 무궁화를 키우면서 내가 엄마가 되어본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더 이상은 나도 엄마께 효도를 해서 엄마가 나를 키우는데도 힘드실 것 같다. 그래서 더 이상은 힘들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잘 자라주는 무궁화를 보면 나도 몰래 그냥 마음이 뿌듯하다. 엄마도 나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할 것 같다. 나는 내가 무궁화를 보며 느끼는 것처럼 엄마가 나를 보며 뿌듯할 수 있도록 효도를 하며 살 것이다 엄마의 무궁화 빛 사랑을 받으며 말이다.
산
최화연[충북 진천 문백초등학교 6학년]
우리나라에는 아주 멋진 산들이 많아요
대둔산, 한라산, 백두산, 설악산
아주 많은 산들이 있어요
그 중에 대둔산은 탈모에 걸렸나 봐요
우리머리에 머리카락이 없듯이
산에 나무가 많이 없어요
백두산은 밥을 많이 먹었나 봐요
덩치가 제 꿈처럼 커다래요
한라산은 너무 화가 많이 났나 봐요
머릿속에 불을 품고 있어요
설악산은 가을에는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설악산 얼굴에 빠알간 단풍이 빛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아주 멋진 산들이 많아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우리나라 산이 아닌
세계의 산들을 일주 할 거예요.
[초등부 차하]
그림 연습
라지수[충북 진천 상산초등학교 6학년
내 학교 내 책상은
검정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한 개, 한 개 열심히 그려놓고
점심을 먹고 오면
검정 그림들은 사라지고
깨끗해져 있는 내 책상
범인은 분명 남자 애들이겠지만
증거가 없으니 넘어갈 수밖에……
허무해진 마음에
괜스레 친구들을 괴롭힌다
“그러게 책상 말고 공책에 그리지”
자주 말은 듣지만
친구의 잔소리는 금방 잊어버리고
또다시 책상에
검정그림을 하나하나 그린다
책상은 내 그림 연습장
남자들은 지우개.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종이
이서진[충북 진천 학성초등학교 4학년]
공책, 색종이, 스케치북
내가 사용하는 종이들은
긴 여행을 통해
내 손까지 오게 되었다
산에서 나무로 살다 트럭을 타고, 공장을 거쳐
문구점에서 주인을 기다리다
나를 만나게 되었다
내게서 잠시 여행을 멈춘 종이는
나와 함께 공부하고
나와 함께 그림 그리고
나와 함께 만들기를 한다
그리고는
새로운 종이로 태어나
새로운 주인을 만나기 위해
다시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미래의 우주인
신주경[충북 진천 삼수초등학교 4학년]
오늘은 에어로켓 만들기 본선 대화가 있는 날입니다 장소가 서울 교육대라서 정말 오랜만에 서울에 가게 되었습니다. 낯선 곳에 대한 기대감과 대회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광고판을 빽빽이 채운 참가자의 명단이 적힌 인쇄물이 반갑다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어머나! 제주도에서 온 아이도 있네.”
“대구에서도 왔어요.”
본선 대회답게 전국에서 온 친구들이 운동장 천막 아래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높고 눈부신 햇살과 간지러운 바람이 만국기와 친구가 되어 우리를 응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족경연부문, 고난이도 물로켓부문, 에어로켓부문, 물로켓부문으로 나눠지는 가운데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로켓머리 부분에 절연 테이프를 붙이고 낙하산을 실로 연결하고 날개를 3개 만들어 120도 각도로 달았습니다.
“잘해라. 엄마, 아빠가 응원할게.”
언니, 오빠들도 열심히 만드는 가운데 고낭이도 물로켓 작품이 발사되었습니다. 고난이도는 낙하산과 만국기가 열하나씩 연결되어 있습니다. 발사대를 박차고 오른 물로켓이 까마득히 올라갔다가는 낙하산으르 타고 살랑살랑 내려옵니다.
“우와! 멋지다. 정말 잘 만들었네.”
얼마나 높이 오르는지, 낙하산과 만국기가 몇 개 펼쳐지는지, 수직으로 올라가는지, 실 연결은 잘 되었는지 등등으로 점수가 매겨졌습니다. 폴리스 라인 밖에서 부모님들이 박수 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엄마가 나를 보고는 오른 손을 흔들어 보이십니다.
‘멋지게 만들어 볼게요. 기대하세요.’
마음은 로켓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릅니다. 저마다의 꿈을 실은 낙하산들이 봉봉봉 펼쳐질 때 마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로켓이 발사될 때 마다 작품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도 로켓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로켓과 나는 하나다.’
나로호가 발사될 때 이소연 언니가 이런 마음이었을까요? 오늘 만큼은 나도 미래의 우주인이 되어 봅니다. 얼마를 기다린 끝에 드디어 내 에어로켓이 발사되었습니다.
‘하늘 끝까지 날아올라라. 그냥 이대로 우주까지 가볼까? 언젠가는 내가 저 로켓의 주인이 되고 말테야.’
햇살이 눈이 부십니다. 시원한 가을바람과 함께 잠자리가 찡긋 응원해 줍니다.
‘참 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