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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수학에서 꼭 나누어야 할 이야기
왕규식
초등수학은 중등수학과 다르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수학은 초등수학이 아니라 중등수학일 가능성이 높다. 수와 식으로 엄격한 논리의 과정을 거쳐 결과를 도출해내는 수학. 논리의 오류가 없는 완벽성. 가장 간결한 형식성…… 이런 관념에 익숙한 어른들은 직관적이며 소설 같은 초등수학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아이들의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는 것처럼. 아이들의 수학을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중등수학의 관념을 초등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중등수학을 초등수학으로 끌어들이고 선행학습 시키는 사교육의 경우는 최악의 경우다. 말랑말랑하고 자유로워야 할 초등수학을 어렵고 딱딱하게 만들며 사형선고를 내리고 만다.
1. 초등수학은 뭘까?
경험, 관찰, 직관을 바탕에 둔 재발견이다.
경험과 관찰은 호기심을 낳고 호기심은 새로운 가설을 세운다. 가설을 펼치는 동안 삶이 자라고 이야기가 따라붙고 수학을 재발견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란다. 경험과 관찰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초등수학의 핵심이다.
초등수학과 중등수학의 차이를 몇 가지 예로 살펴보자. 1, 3, 5, 7, ( ),…의 수열이 있을 때 괄호에 어떤 수가 오는지 질문하면 거의 99% 초등학생과 초등선생님들은 9라고 답한다. 그 답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등수학에서는 어림없는 이야기다. 수열의 일반항을 정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수열을 홀수라고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다음 수가 어떤 수인지 알 수 없다. 만약 일반항을 이라고 하면 다음 수는 33이다. 그럼에도 초등수학에서는 경험과 관찰과 직관을 통해 ‘9’라고 이야기하고 이를 용납한다. 소설이며 직관이다. 잘못된 것이 아니다. 초등과정에서는 그런 직관과 규칙을 발견하는 힘(귀납적 사고력)을 기르는 중이다. 일반항에 근거한 연역적 전개는 그 다음 과정이다.
또 하나의 예로 국어교사모임에서 나온 질문을 살펴보자. “5 가르기를 할 때 1과 4, 2와 3으로 가르기를 할 수 있다. 그러면 5를 0과 5로 가르기를 할 수 있는가?”이다. 현실에서 존재하는 가르기이다. ‘내게 사탕이 5개 있는데, 네가 5개 다 갖고 나는 갖지 않을 게.’와 같은 가르기를 수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가르기는 옳다. 그런데 초등수학에서 가르기는 자연수 범위에서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수가 아닌 0이 포함 된 가르기는 틀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0과 5로 가르는 것은 맞다고도 할 수 있고 맞지않다고도 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초등수학에서는 정의와 분류를 정확하게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닐 때가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문제는 0과 자연수 집합에서 가르기를 한다는 점을 기준으로 미리 정하고 시작해야 0과 5 가르기도 정답이 되는데, 초등학교 아이에게 수의 집합으로서 0과 자연수 개념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처럼 초등수학은 정의, 공리, 정리로 시작하는 중등수학과 달리 대단히 경험적이고, 직관적이다. 그러다보니 논리의 비약이나 생략도 있을 수 있고, 엉성한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 점을 인정하고, 아이들의 소설 같은 수학을 지지해야한다. 그래야 삶이 있는 수학, 이야기가 있는 수학이 된다. 아니 우리 스스로 소설 수학에 빠져들어야 한다.
자유로운 수학공부는 어떤 발전 경로를 갖는가?
제대로 된 수학 공부를 한다면 아이들은 수학을 어떻게 만날까? 경험과 관찰을 통해 규칙을 발견하며, 그 규칙의 가설을 세운다. 가설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며 논리를 완성해나가며 수학을 재발견, 재구성한다. 이것이 초등수학의 핵심이며 발전 경로다.
경험과 관찰에 충실한 아이라면 분수 계산에서 ‘분수의 나눗셈은 분모는 분모끼리 나누고 분자는 분자끼리 나누면 되는가?’하는 질문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질문이 수학 발견의 시작이다. 분수의 곱셈에서 분모는 분모끼리 곱하고 분자는 분자끼리 곱한다는 것에 익숙하기에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다. 그리하여 와 같은 몇 가지 예를 통해 그 규칙이 성립함을 보이며 가설을 뒷받침 할 수 있다. 이런 경험에 의한 가설은 옳은 경우가 많다. 이 나눗셈의 경우도 옳다. 분모는 분모끼리, 분자는 분자끼리 나누어떨어지는 경우에는 분수 나눗셈을 아주 쉽게 만들어 준다. 반면 나누어떨어지지 않는 경우 분수의 분수(번분수)로 표현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어서 쉽게 상상하지 못할 뿐이다. 이 가설을 일반화시켜보면 다음과 같이 증명된다.
또 하나의 예를 살펴보자. 의 뜻은 “2를 세 번 더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 중에는 “어디에다 세 번을 더하지?”하고 질문할 수 있다. ‘2에 2를 세 번 더하면, 가 돼 모순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0에 2를 세 번 더하는 것, ”으로 정리된다. 곱셈의 뜻을 제대로 알 뿐 아니라 0의 중요성(덧셈의 항등원)을 감지하며 수학적 인식이 깊어진다. 이를 거듭제곱과 곱셈의 항등원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 로 ‘2에 2를 세 번 곱한 것이 아니라 1에 2를 세 번 곱한 것이다.’ 은 1에 2를 한 번도 곱하지 않았기 때문에 1인 것이다.
스스로 수학 원리와 규칙을 발견할 수 있다면 수학의 재미에 빠져든다. 그 재미를 아는 것이 핵심이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처음 만날 때부터 수학의 재발견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선생들은 아이들이 수학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길잡이를 해야 한다.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수학교과서와 수학교육은 아이들이 수학적 발견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
2. 경험과 관찰은 무엇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모든 면에서 양의 감각을 키워야 한다.
양의 감각이란 어떤 기준단위를 바탕으로 전체 양을 가늠하는 감각이다. 그러므로 기준단위들이 자신의 몸에 배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에서 1m, 1kg, 1L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이것에 대한 감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또 자기 몸을 기준으로 양의 감각을 잡는 것도 필요하다. 한 뼘의 길이, 발바닥의 길이, 키의 크기, 몸무게, 허리둘레 등 자신의 몸에 대한 이해와 이를 기초로 양의 감각이 있어야 한다. 낚시나 등산과 같은 야외활동에서 길의 측정도구가 없을 때 자신의 몸을 기초로 양을 가늠한다. ‘한 발 길이’ ‘한 길 깊이’ 들은 그런 예이다.
양감 익히기는 생활에서 수업에서 수없이 해야 할 일이다. 예를 들어보자. 바둑알 10개를 보여주고(기준을 주고), 많이 모아 놓은 바둑알이 몇 개 일지 짐작해보는 일도 좋은 경험이다. 의 크기를 보여주고 교실이 몇 인지를 짐작해보기. 1m짜리 봉으로 정육면체를 만들어 1 , 1t 의 양을 느껴보기. 1분의 시간을 느껴보고 짐작해보기……이 구체적 양의 감각을 키우다보면 전체를 보는 눈, 관찰력이 높아진다. 전체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문제해결 능력이 높아진다. 자신 만의 기준으로 문제를 해석한다.
수에 대한 양감도 마찬가지다. 10, 100, 1000, 10000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공부의 핵심내용을 구체물로 조작, 활동해야 한다.
이것을 초등수학에서 하지 않으면 할 기회가 없다. 예를 들면 입체도형에서 핵심은 정육면체에 대한 공부이다. 정육면체가 3차원의 기본단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육면체 자체에 대한 조작 활동학습이 다양하고 폭넓게 이루어져야 한다. 정육면체 겨냥도 그려보기, 정육면체 만들기(종이, 장판, 나무젓가락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 봄), 전개도 그려보기(전개도는 11가지이다. 11가지를 빠트리지 않고 그리는 방법은 무엇인지 찾아보기), 전개도에 꼭짓점 새겨보기, 정육면체를 다양한 단면으로 잘라보기(무, 당근을 이용하거나 지우개, 스티로폼 등을 사용할 수 있음, 삼각형에서 육각형 모양까지 나옴) 등 활동거리는 많다. 이런 활동과 경험을 통해서 부피와 겉넓이, 모서리의 위치관계 따위의 문제들은 스스로 관찰, 발견 할 수 있다.
공부의 핵심내용은 기준이 되는 것을 삼으면 된다. 평면 도형의 넓이는 정사각형을 기본 단위로 하기 때문에 정사각형(직사각형) 공부를 해야 한다. 원과 같은 곡선의 도형에서는 단위 정사각형이 몇 개 들어가는지 살펴보기를 하고, 원을 잘라서 직사각형 만들기를 해보면서 다각형이 아닌 도형의 넓이를 어떻게 구하는지 관찰하게 한다. 수와 셈에서는 십진법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활동해야 한다. 십진법을 기준으로 덧셈의 가로셈과 곱셈의 가로셈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하는 활동들이 필요하다.
구체물을 가지고 활동학습을 해야 경험과 관찰이 제대로 이루어지며 규칙의 발견과 가설 세우기가 가능해진다. 교육 내용에 따라서는 경험과 관찰을 하기 어렵거나 그런 모형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교사들이 끊임없이 연구 개발해 나가야 한다.
수학 공부를 발표하자.
수학은 문제를 풀어 답을 내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푸는 과정이 맞기까지 한다면 더 이상 살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공부는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표하는 데 있지 싶다. 틀리면 틀리는대로 발표하는 것이 큰 공부다.
모든 문제 해결 과정에는 경험과 관찰, 발견이 녹아 있기 마련이다. 이것을 발표하게 해야 한다. 수와 식으로 표현하지 못하면 말과 글로, 그림으로,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토론이고 이야기다. 혼자서 발표하기 힘들면 작은 모둠을 조직하고 그곳에서 자유롭게 발표하는 것도 좋다. 그 과정에서 오류는 검증되고 자신의 생각은 깊어진다. 수학이 삶이되고 이야기가 된다.
초등수학은 수와 식으로 풀이 과정을 명확하게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때가 많다. 표현의 형식화를 따로 공부하지 않으며 익숙하지 않고, 연습도 않는다. 따라서 과정을 수와 식으로 표현하고 형식화하는데 한계가 있다. 형식화가 어렵다보니 어른들에게 비난을 받는 경우도 많다. ‘풀이과정에 맞는 식을 쓸 줄 모른다’, ‘연습장에 풀이 과정은 없고 이곳저곳 끼적거림만 있다’, ‘직관에 의해서만 푼다’ 등이 그런 예다. 이런 평가를 심하게 받는 것은 옳지 않다. 초등 수학의 핵심을 수학의 형식화가 아니라 내용을 스스로 경험, 관찰,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학 공부 내용을 발표하는 것은 형식화를 대신하는 것이다.
수학 공부의 발표는 자연스럽게 토론의 힘을 배우고 서로의 힘을 모으는 법을 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상대방의 비판이나 지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훈련이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발표하기 힘들거나 좀 더 중요한 공부는 ‘수학일기’를 쓰게 하여 스스로 정리해보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수학 발표가 자연스러워지고 일상화된다면 수학 공부의 여러 제약들을 없앨 수 있다. “계산기를 써도 되는가?”와 같은 질문은 아이들의 공부 과정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써도 된다. 우리가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은 계산의 구조를 아는 것이다. 세로셈이든 가로셈이든 계산의 구조를 알고 계산의 전략을 세울 줄 알면 된다. 모든 계산을 손으로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계산기를 이용해서 더 많은 규칙과 기준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1/7, 2/7, 3/7, 4/7, 5/7, 6/7을 계산기를 이용해서 소수로 고쳐보면 규칙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을 손으로 하려다보면 계산에 지쳐버릴 수 있다.
수학발표 내용이 깊어지면 예술로, 통합교육으로 발전할 수 있다. 수학연극, 수학그림, 수학 글쓰기, 수학 노래 만들기 들은 좋은 경험이 된다. 이런 발표를 통해 수학을 깊이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관찰과 경험의 범위가 크게 넓어진다.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질서, 새로운 발견들을 맛볼 수 있다.
수학이 이야기라는 점은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에게 해주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수학 내용이 인류 문명의 발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해석한 수학, 경험한 수학 이야기가 있다.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깨달은 이야기, 풀이 과정에 대한 이야기, 잘못한 이야기 등 아주 많은 이야기가 있다. 배우는 사람에게 가장 많은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일수록 배움이 크고 깊을 것이다.
선생은 아이들이 배우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발표가 자유롭기만 하다면, 아이들이 우리에게 들려줄 수학이야기가 무궁무진할 것이다.
틀리고 실수하면 어떠랴. 틀리고 실수할 수 있는 특권이 학생에게 있는 것 아닌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아이들 모습이 설렌다.
첫댓글 오랫만에 들어와서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행으로 옮기도록 노력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