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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월화드라마 맨발의 청춘 제1회
방송일 1998년 2월2일 월요일
씬 1 철로변
깊은 산으로 둘러 쌓인 탄광촌 분위기의 철로변 개활지. 멀리 보이는 철로변의 거친 개활지에서 쫓고 쫓기는 패싸움이 벌어져 있다.
화면은 원경으로 그러한 정경을 담담히 잡고 있어서 누가 누구와 싸움을 벌이는지 알 도리가 없다.
비닐 박스에 담긴 전기기타 하나와 가방을 둘러 맨 청년 하나를 대여섯 정도되는 사내들이 쫓고 있는 듯 싶다.
청년은 제법 주먹 깨나 쓰는 모양인지, 중과부적임에도 상당히 잘 받아치고 있다.
여기까지는 아직 원경의 화면이라서 상세히는 안 보이지만, 그들 나름대로 상당히 치열한 싸움인 듯 싶다.
잘 받아치던 청년, 결국 머릿수에 쫓겨 달아나는데, 마침 저만치에서 철도 보수원들이 시소 타듯이 손잡이를 교대로 눌러 달려가는
간이 궤도차가 달려오고 있다.쫓기던 청년, 그 궤도차로 달려가서 올라탄다.
<※ 여기서 요석의 교복가슴에 이름표와 함께 달린 상장을 슬쩍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란 걸 명확히 하는 것이 나중에 올 우선생과의 씬이나 극장에서 낡은 필름을 보는 씬 등에 유리합니다.>
건달들, 뒤따라와서 그 궤도차로 올라타려고 매달린다.그런 건달들을 가방으로 후려 갈기로 발길질로 밀어낸다.
그 바람에 가방끈이 떨어지면서 그 안에 든 책과 노트 등이 사방으로 흩날린다.
여유작작 궤도차를 몰고 오던 나이든 철도 보수원들, 놀라서 미친듯이 시소 손잡이를 눌러대며 있는대로 속력을 낸다.
궤도차는 점점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어이 건달들을 떨궈낸다.
저 뒤에서 욕지거리를 하고 돌팔매질을 해대는 건달들. 금시 그들과의 사이가 아득히 멀어진다.
씬 2 달려가는 궤도차
다시 여유를 회복한 궤도차--
높은 산으로 둘러쌓여서 마을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이 철길 하나 뿐인 듯 싶은 느낌을 주는 지형이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철도 보수원들, 요석에게 목에 걸고 있던 땀절은 수건을 건네준다.
고개 숙여 보이고 그걸 받아서 코피를 훔쳐내는 요석.
다시 여유 있게 궤도차를 몰며 그들 나름의 노동요를 한 구절씩 주고 받으며 흥얼거리는 철도 보수원들.
그런 그들을 미소로 쓰윽 올려다 본 후 난간에 쭈그리고 앉는 요석.
<※ 여기서 자신의 가슴께를 한번 봐주도록 하든지... (or 다음씬에서) → 상장과 함께 이름표가 떨어져 나갔음.
(이름표 보다 상장에 더 마음이 쓰이겠죠)>
휘몰아쳐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쓸어 올린다. 아까의 그 치열했던 싸움질을 어느새 다 잊어버린듯,
혹은 늘 있던 일인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혹시 기타에 흠은 없는지 가만히 살펴본다.
씬 3 시골 고등학교 복도
복도는 저 끝까지 텅 비어 있다. 기타를 든채 여기로 걸어오는 요석. 한창 시험을 치르고 있는 중인 듯 싶다.
복도 창문 너머로 넘겨다 보이는 교실마다 시험에 몰두해 있다. 어느 교실 앞에 이르러 걸음을 멈춘다.
기타를 문 옆에 살그머니 내려놓고 자기 옷차림을 내려다 본다.
<※ 이름표 활용 할거면, 가슴께를 확실히 보여줄 것>
옷에 엉망으로 묻은 흙먼지를 털어낸 후, 교실문을 열려고 하는데 먼저 안에서 벌컥 열린다.
요석 (멈칫)...!
잔정이 전혀 없어 보이는 깡마른 표정의 남자 선생이 차가운 눈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선생 (요석이 가리려고 하는 기타를 내려다보고)어렵쇼? 이게 뭐야? 너 지금 학교에 요거 하나 들고 온 거냐? 가방은 엇다 팔아먹고!
요석 ....
박선생 이제 보니 이놈, 밤마다 시내에 있는 술집 나간다는게 사실이었구만! 그렇다고 학교에까지 이거 하나 달랑 들고 와? 니가 학생야, 딴따라패야?
요석 (고개 숙이고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박선생 (막으며) 어딜 들어가, 임마!
요석 ...
박선생 너같은 놈은 시험 칠 필요 없어! 나가!
요석 (시선 떨구고)...내신 마지막 시험입니다.
박선생 그거 아는 놈이 이러구 다녀? 나가.
요석 다시 고개 숙여 보이며 밀치고 들어가는데
박선생 이 자식이...! (따귀 올려치며) 나가라고 했지! 응? 너 같이 장난 삼아 다니는 놈, 우리 학교에 필요 없어!
요석 (O.L)단 하루도,
얻어맞은 요석, 강한 시선으로 선생을 올려다 보며
요석 (나직하나 힘 주어)...장난 삼아 다닌 적 없습니다.
박선생 (그 서술에 약간 흠칫)...!
요석 ...필사적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빈자리를 향해 걸어간다.
박선생 (잠시 그 서술에 질려 입 열지 못하고)....!!
학생들 모두 긴장해서 쳐다보는데, 요석 빈자리에 놓여 있던 시험지를 집어들고 돌아선다. 노한 기색으로 서 있는 선생의 앞을 지나 밖으로 나간다.
박선생 (기가 막혀서)허어...!!
씬 4 다시 복도
나온 요석..그 자리에 천천히 무릎 꿇고 앉아 시험지를 펼쳐 든다.
<※ 우선생이 끼어들수 있는 곳.>
요석 앞에 불쑥 내밀어 지는 만년필 하나.요석 올려다 보면 우선생이다.
길고 긴 복도... 거기 혼자 꿇어앉아 문제를 풀어 나간다. 마치 고행하듯 어둑한 복도 저 끝에 홀로 앉아 있는 그 모습...
그 반대편 복도의 끝에 있는 어느 교실의 문가에 나와 서서 그런 요석을 돋보기 너머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우선생(60세)
씬 5 숙직실(저녁 무렵)
난로에 연탄을 갈기 위해 돋보기 쓴채 힘들여 구멍을 맞추고 있는 우선생.한구석에 서 있는 요석.
우선생 (구멍 맞추며) 내 친구 가운데 하투루다 패가망신한 놈이 하나 있는데...그 인간 말이, 산다는게 결국은 화투판이라드라는 거야. 언놈은 팔자가 좋아서 광에다가 청단,홍단까지 다 쥐고 시작하고, ...또 언놈은 기껏 쥐었다는게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흑싸리 삼패야.
겨우 맞춰졌는지 허리 펴며
우선생 어이구, 됐다. (비로소 요석을 보며) 외할머니까지 돌아가셨으니...이제 사방팔방 돌아봐야 일가붙이 하나 없는 처진데....그래, 그건 분명히 흑싸리 삼 패다.
요석 ...
우선생 그렇다고 그 판이 무조건 지는 판이냐?....일찍 포기하지 말어.
요석 ...
우선생 산다는 건 물론 이기고 지고의 싸움하고는 다른거지만, 해보는데 까진 해 봐야지? (가만히 바라보고)...
요석 포기하지 않습니다...절대루.
우선생 (돋보기 너머로 가만히 보다가)...그럼 됐다...그 얘기를 하고 싶었어.
요석 보고 가보라고 끄덕인다. 요석, 인사한 후 옆에 세워 둔 기타를 집어든다. 요석 그대로 나간다.
우선생 씁쓸한 기색으로 그 뒷모습 바라다 본다.
씬 6 달리는 시내버스 안
- 여고 앞 (황혼녁)
요석 기타를 안은 채 창 밖으로 시선두고 있다. 저만치 창 밖으로 여자고등학교의 운동장이 가까워진다.
그 위로 불협화음의 브라스밴드 합주곡 들려온다.
트인 담장 너머로 교내 브라스밴드 여학생들이 체육복 등 편한 차림으로 합주와 동시에 분열 연습 중인 것 보이는데,
버스 그 앞에서 사람 내려주느라 잠시 멈춰선다. 사람들 내리고 있고.
수아 (E, 버럭) 야, 심벌즈!
씬 7 여자고등학교 운동장(황혼녁)
그 합주곡 계속되고 있고.이켠 교문 밖 버스쪽을 등지고 서서 호루라기 불며 지휘봉들고 지휘하는 수아.
수아 (E에 바로 이어서) 니 밥두 제대로 못 챙겨먹니?
그제서야 ‘챙’뒤늦게 울리는 심벌즈. 수아 잔뜩 인상쓰며 불만스런 표정인데,
연주에 게으름 피던 여학생 하나 문둑 운동장 앞에 정차한 버스에서 요석을 발견한다.
여학생, 요석을 향해 번쩍 손과 악기를 들고 흔들기 시작한다.
그러면 모두의 시선 그쪽으로 일제히 향하고, 와~ 함성지르며 다같이 손을 흔든다. 연주는 멈추고, 아수라장이 된다.
수아 (지휘봉으로 말리며) 야, 야야... 니들 정말...(주동 여학생 쏘아보는데)
여학생 (고갯짓으로 버스쪽 가리키며 장난스레) 언니,서방님...
수아 그제야 돌아보면,요석이 이쪽을 보고 있다가는 수아와 마주치자 고개 돌려버린다.
여학생들 (동시에 외치는) 서방니임...
수아 쫓아가서 한마디 하려는데, 부웅 버스 떠나버린다. 여학생들 킬킬거리며 웃는데, 수아 잔뜩 골나서 호루라기 란하게 불어대고.
수아 (빽 소리지르는) 니들 집에 안 가고 싶지?
씬 8 창천시의 길거리(저녁 무렵)
어둑해져 가는 시골 소음의 거리--
찬바람이 휴지를 휘감고 불어오는데, 추위 탓인지 저 까지 거의 인적이 없는 쓸쓸한 모습이다.
그 길을 기타 둘러맨 채 묵묵히 걸어가는 요석의 모습---
초라한 무채색의 화면 속에 저 앞에 유독 하나 도드라지게 빛나는 네온의 술집 간판 하나--
그 네온 간판으로 초점 흐려지도록 쭈욱 다가가면
씬 9 룸살롱 악사 대기실 (밤)
원맨 밴드로 일하는 악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방이다.
기타음도 맞춰 보고-- 화투를 치기도 하고-- '그런 구석에서 기타 끌어안고 참고서를 보고 있는 요석.
혼자만 공부에 몰입해 있는데, 마담이 문 열고 들여다보며
마담 막내야! (손짓하며) 뭐래? 8호실
요석, 기타 챙겨 들고 일어서는데
악사1 영계가 좋긴 좋다! 제일 먼저 팔려 가는구나!
악사2 김언니 우리도 좀 챙겨주쇼. 나 어저께두 한타임밖에 못 뛰었어.
마담 (흘기며) 이런 촌구석에서 한 타임이면 됐지,뭐!-- 빨랑 나와
씬 10 룸살롱의 방 (밤)
시골 싸롱답게 허름하기 짝이 없는 방이다. 요석, 기타를 맨 채 앰프를 끌고 들어온다. 앰프를 설치한 후 인사를 꾸빽하는데
개코 (E)새얘꺄-- 니가 토껴봤자 청천 바닥이제
개코 여그가 뭐 시베리야 벌판이냐? 황영조가 뛰어불면 끝에서 끌까지 가는디 30분두 안 걸릴 코딱지 만헌 동네에서 말이다잉.
요석의 책가방 테이블위에 있어야 함.
요석 (담담하게)책가방..을 돌려주러 일부러 여기까지 오신 것은 아닐테고..
메주 (O.L) 요 싸갈머리 없는 새끼 봐라잉? (요석의 뺨을 냅다 갈긴다)너 시방 요걸(깁스한 개코의팔) 보구두 뭐 느끼는 것이 읍냐?
요석 (고개 돌아간 채 그대로. 가소롭다. 차라리 픽 웃어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중앙에 폭 파묻히듯 팔짱끼고 앉은 강수, 그런 요석을 눈만 들어 유심히 보고 있다.
메주 어어? 웃어? 이 새끼가.. (다시 한번 손 쳐드는데)
요석, 이번에는 순식간에 그 팔을 꽉 비틀어쥔다.고통으로 소리지르며 일그러지는 메주.
메주 크읔! 이, 이거 못 놔?
요석 (비틀어 쥔 채 무게를 실은) 놀러왔으면.. 조용히 놀다 가. 알았어?
요석, 잠시 메주를 노려보다가 거칠게 팔을 놔 버린다. 메주, 버티고 있던 제풀에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스타일 구겨진 메주.
메주 (눈 뒤집혀) 오냐, 오냐 그래애..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며)
벌떡 일어나서 다짜고짜 옆에 있던 리듬박스를 번쩍 들어올려 내려치려는데,
강수 (E)되았다.
메주 (리듬 박스 들어올린 그 자세 그대로)형님?
개코 (동시에) 형님?
강수 (버럭) 되았다고 허지 않아!!(냅다 재떨이를 날려 버린다)
룸 한구석에서 박살이 나는 재떨이.메주와 개코 쑥 들어간다.
슬그머니 리듬박스 내려놓는 메주, 요석을 향해 이를 간다. 요석, 그제서야 강수쪽을 본다.
강수 (뜻밖에 우호적인 투로)나가 널 한번 보구 잡다고 했다.
요석 ...?
강수 시방 고3이라고?
요석 (대답할 가치도 없다. 시선 외면한다)..
강수 졸업하믄 뭐 헐거냐?
요석 (눈만 들어 강수 보는)
개코 (이게 아닌데 하는) 형니임..?
강수 (개코에게 시퍼렇게 눈 흘기고는 다시) 단도직입적으루다, 나가 니 맘에 들어뿌렀다.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 읍냐? 이것들(개코와 메주) 안즉 애들여.
메주 (?) 형님 시방 뭔 말을..
강수 (O.L 인상 확 쓰며) 찌그러져 있어라잉? 그랴도 웬만한 주먹에는 코피도 안나던 것들이었단 말이시.
요석 (참았던 웃음 픽 터져 나온다)
개코와 메주 욱하고 가만있지 못하고 강수와 요석을 번갈아 살피면,
강수 (불쾌하지만 누르고) 극장 뚱보하고 너허고 워떤 사인지는 몰라도, 니가 나 허는 사업에 초를 친 것도다 우리가 인연이 될라고 그란 게 아니겄냐? (사이) 워쪄? 이 고강수 밑에서 한번 안 커 볼라냐? 나가 지금은 이래뵈도 언제꺼정 요 쥐구녕만한 창천 바닥서 썩을 위인은 아닝게.
요석 (천연덕스레)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 같은데. 보다시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게다가 나는 체질상 누구 밑에 있는 걸 못참거든요.
강수 (발끈한다. 잡아 먹을 듯 노려보는)..
요석 (팽팽하게 마주보는)..
강수 (느닷없이 호탕하게 웃어 젖히기 시작한다) 으하하하하하하.. 핫하하하하하... 좋았어! 배짱이 맘에 들어부렀다. 내일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오늘 내 길을 간다? 캬! 고게 바로 나의 신존데? 언제 나하고 독대 한번 혀야 쓰겄다? 일대 일루, 사내대 사내루. 워뗘? (떠보는데)
요석 같은 말 두번 안합니다. (기타 걸고 연주 준비하는)
메주 (욱해서) 어쭈, 형님 말씀을 씹어? (강수 본다)
강수 (칼날처럼 요석을 쏘아본다)..
요석 얘기 끝났으면 노래들이나 신청하시죠. 어이,기브스?
개코 (잔뜩 열 받고) 저걸..
요석, 노래책 던져 주고는, 아무거나 즉석 연주 시작한다. 강수의 시선, 그런 요석을 놓치지 않고 뚫어지게 본다.
모욕당한 기분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강수. 후일을 도모하는 느낌으로.
씬 11 영화관 객석 (밤)
형편없이 낡은 시골 영화관이다. 영화가 다 끝나고 밤 늦은 시각인지 텅 비어 있다. 청소를 끝낸 노인이 입에 꽁초를 문 채 문 닫고 나간다.
씬 12 동 영화관 영사실 (밤)
만보가 일을 하는 곳이다. 기름 걸레로 구석구석을 닦고 있는 만보.
골동품 같은 카셋트에서 지글거리는 음색으로 흘러 간 유행가 흘러나오고 있는데 여기에 들어서는 요석.
만보 (깜작 놀라 주위 살피며) 야, 너 괜찮냐? 고강수가 너 찾는다는 소문이던데!
요석 (대꾸없이 카셋트 끄며) ...누가 촌구석 영화관 아니랠까봐.
하며 담배 한갑 던져준다.
만보 야, 괜찮냐구!
요석 보면 모르냐?
하며 품안에서 몹시 낡은 필름 깡통 하나를 꺼내준다.
만보 (그 필통 깡통 보며) 뭐야 이게? (살피고) 와- 언제적거냐? 20년두 더 됐겠다..
요석 걸어볼 수 있지?
만보 (?) 영감한테 혼날텐데.. 잘못하믄야. 영사기 텅스텐 다 나간단 말야..
요석 (거기엔 대꾸없이)필름 안 다치게 잘 걸어. 외할머니 유품이야. (옆으로 가서 영화보기 편한 자세로 느슨히 앉는다)
만보 (!) (사이, 문득) 야, 고강수가 얼마나 겁나는 놈인데! 똥배짱도 제발 부릴 때 가서 부려, 임마!
씬 13 동 극장 이층(밤)
영사실 옆, 만보와 나란히 앉아 아랫층 스크린을 보고 있는 요석.
만보는 혹여라도 기계를 다칠새라 그 곁에 붙어 앉아 있다. ( 정확한 구조는 몰라도 영사기 옆에서도 아마 관람할 수 있을 겁니다.)
스크린에 70년대쯤의 한국 영화라고 짐작되는 화면이 펼쳐지고 있다.
세로로 가는 빗줄기가 잦은 것으로 보아 무척 오래되고 보관상태가 나쁘다.
대사보다 영상과 음악이 흘러가는 장면인데, 한순임, 카사블랑카에서의 잉그리트 버그만처럼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굵은 눈문방울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한없이 애잔한 느낌으로 상대 남자의 볼을 쓰다듬고 있다.
그 영상 위로 얹히는 만보의 다소 흥분된 목소리, 요석은 아무 말 없이 영상에만 몰입해 있다.
만보 (E) 와.. 한순임이잖아?
요석 .. (놀랍게 만보를 본다. 알고 있었구나, 하는)
만보 우리 영감, 이 여자 팬이잖아. 한창때 죽었대지 아마? 영화 찍다가.
요석 .. (시선, 다시 영화로)
만보 (사이에도 영상은 계속 흘러간다) 근데, 어떻게 이런 게 느이 외할머니한테서 나왔지? 할머니도 팬이셨나?
요석 ...
만보 (E) 왜 죽었을까? 자살이겠지?
요석 .. (그 말에 문득 만보를 본다)
만보 숨겨논 아들도 하나 있었대는데.. (혼자) 하여간 연예인들이란..
요석, 자기만의 생각으로 되돌아가는. 그 위로 얹히는
외조모 (E, 불안감에 소근거리는 소리로) 뭣허러 왔어,어여 가..
씬 14 외조모의 한옥
(1981년 회상-제1부의 시점을 '95년으로 잡았을때. 깊은 밤)어두컴컴한 어느 방 안
5세된 요석, 아랫목에 잠들어 있고, 한지를 붙인 나무문살 밖으로 두 여인의 그림자가 달빛을 받아 비치고 있다.
외조모 (E) 그눔들이 뒤쫓아오기라도 허면 어쩔라구 여길 또 와...
한은설 (E) 어무니, 자는 것만 잠깐 보구 갈게. (애절하게) 잠깐만...네?
두런거리는 소리에 눈뜨는 요석. 옆자리 할머니를 찾는데 빈 이부자리자, 부시럭 거리며 일어난다.
요석 (눈 부비며 나가며) 할머니...(문 연다)
열린 문 틈으로 속적삼 차림의 외조모와 화려한 양장차림의 한은설, 승강이 하고 있는 모습이 어린눈에 들어온다.
방 안에서 방 밖을 훔쳐보듯 계속, 열린 문 틈으로 보여지는.
외조모 어이구, 내 새끼...(품으려는데)
한은설 요석아...(와락 달려가 안는다)
요석, 영문모르고 안긴 채로 멀뚱히 외조모만 바라보고 있으면, 외조모, 돌아서서 치맛자락으로 눈물 훔친다.
한은설, 역시 다짜고짜 울음부터 터져 나온다. 소리죽여 우는 그들.
그러자 요석도 왕 울어버린다. 외조모, 화들짝 놀라 요석을 한은설에게서 떼어낸다.
한은설 (떨어지지 않으려고 더 꼭 끌어안는다) 요석아...미안해, 엄마가 미안해...미안해...어쩌면 좋아,우리 요석이...불쌍해서 어쩌나, 우리 요석이...
(E) 자동차 클랙슨
외조모 (요석을 달래며) 너 타고 온 차 아니냐? (애가 닳아)어여 가. 온동네 사람 다 깨울 참이여?
한은설 (차마 떨어지지 못한다) 흐흑...
외조모 (안되겠는지 있는 힘껏 떼어낸다)놔라, 가야 해 넌. 니가 가야 니 자식이 제대루 살아...
한은설 (떨어져 나가며) 요석아, 공부 열심히 해? 알았지? 공부 열심히 해, 알았지?
요석 (할머니에게 붙들린 채로 끄덕이면)
한은설 그리구...엄마 잊지 마. 엄마 잊어버리면 안돼? 알았지? 엄마 안 잊을거지? 약속하지...
요석 ...(영문 모르고 보고 섰다)
(E) 다시 자동차의 클랙슨.
아까보다는 좀 더 다급하게
외조모, 한은설을 떠밀듯이 하여 마루를 내려보낸다. 한은설, 연신 뒤돌아 보며 마당을 가로질러 간다.
한번, 두번, 세번...그리고는 냅다 뛰어간다. 요석의 눈에 이미 텅 빈 마당 엄마는 가고 없다.
외조모, 그제서야 참았던 울음 한꺼번에 터지며 요석을 틀어안고 퍽퍽 울기 시작한다.
요석 (NA) 그 밤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씬 15 **극장 2층(다시 현재, 새벽)
영사기 옆.만보, 고꾸라져 가고 있다. 저 아래 필름 다 돌아가서 하얀 빛만을 받아내고 있는 스크린.
그 한켠 밖으로 통하는 창문 앞. 검은 커텐을 걷고 서서 새벽빛을 받아내고 있는 요석.
요석 (NA) 그 여자를 잊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한때 잊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씬 16 극장 일각(다른달-여러날 경과후의)
TV 켜져 있고. 만보와 요석, 작은 반상에 라면 먹고 있다.그러나 제각각인 그들.
만보는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며 라면을, 요석은 문제지 말아들고 입시공부 하며 라면을 먹고 있다.
요석 (공부가 잘 안되는지) 좀 꺼.
만보 입시생도 뉴스는 봐야지. (먹으며 뉴스에)
요석 (잠시 보다가 내버려두고 공부하는) ...
남앵커 (E) ...서울지검 특수1부는 오늘 오전, 서울 방배동 카페 골목 노상주차장 운영권을 두고 담합입찰을 통해 낙찰받고 이를 위해 경쟁자를 집단 폭행한 박일규씨 등 조직폭력배 4명을 강요와 입찰 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습니다.
만보, 뉴스에 관심 가지며 다 먹은 수저 내려놓고 TV를 향해 앉는다.조그맣게 남자앵커가 보이고, 뉴스 계속 흘러나오는 위에,
만보 (끅 트림하고) 요석아, 물.
요석 자식. 아주 상전이네.(곱게 흘기며 일어나 소반 들고 나간다)
TV 속. 앵커에게로 차츰 카메라 다가간다. 소리도 차츰 가까워지게. 화면에 앵커 사라지고,
자료화면 나오는데 기성재가 검찰청 계단을 빠르게 걸어 내려오고 있고 기자들이 우르르 양쪽으로 몰려서서 마이크를 들이대는 류의 모습들.기성재는 계단 아래에 주차돼 있는 검은 승용차에 오르려는 중이다. 그 화면 위로 얹히는,
남앵커 (E) 검찰은 또 공범 심모씨 등 3명을 입찰 방해죄로 불구속 입건하고 장유일씨를 지명수배 했다고 밝힘으로써,
요석, 물 가지고 들어온다.
남앵커 지난해 2월 현재 담당인 기성재 부장검사의 조직폭력 사건 전담 이후 계속된 쾌거중의 하나로 기록되게 됐습니다. 참고로 기성재 부장검사는...
만보 (물 받고 마시고) 요석아, 너 법대가라? 법대가서 검사 해라.
요석 (다시 책 잡고 앉으며) 뜬금없이 왠 법대야?
만보 멋있잖냐, 뉴스에도 얼굴 팍팍 나고. 크...(TV로 시선 옮기며 부럽다)
남앵커 (E) 임용 이후 순환근무 기간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쭉 특수부에서 조직폭력 문제를 전담해 오고 있습니다.
요석, 만보따라 시선 TV로 옮아가다가 다음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화면 무심히 본다. 검은 승용차에 오르는 기성재의 옆모습.
씬 17 골목길 (밤. 현실)
긴 오르막의 골목길... 기타를 등뒤에 둘러맨 채 천천히 걸어오는 요석.
전파상, 구멍가게, 농기구상 등... 소읍에 있을 법한 가게들이 전부 문을 닫고 있는데...저만치에 정육점 하나만 불을 밝히고 있다.
씬 18 정육점 (밤)
무료하게 턱 괴고 혼자 앉아 있는 수아. 내실에서 들려오는
어머니(E) 수아야, 이것아.. 문 닫구 들어 와! 새벽까지 고기 팔 일 있냐?
수아 (버럭) 아이, 알았어!....
흘겨보며 입술 삐죽인다. 그때 정육점 앞을 지나가는 요석. 수아, 반갑게 화색 돌며 뛰어 나가려다가....
얼른 내실 쪽 돌아보고 눈치를 보며 소리 안 나게 진열장 문을 연다. 그리고 큼직한 고깃덩이를 끙끙대고 끌어낸다.
얼른 칼을 들어가죽에 몇번 쓱쓱 문질러 날을 세운 후 잽싸게 큼직한 덩어리를 짤라 낸다.
아버지(E) 수아야! 뭘 허는디 이렇게 꿍지럭거려!
수아 (급히) 아아, 알았어요! 들어 가요, 들어 가!
어머니(E) 보시요, 정신 없는 년인디.또 뭔 짓거리 허고 있는 지모르겄고만! 싸게 좀 나가 보랑께요!
수아, 허겁지겁 그 고깃덩이를 신문지에 두르르 말아든다. 동시에 내실에서 등을 긁적이며 나오는 아버지.
아버지 (그걸 보고 깜짝 놀라) 어? 아니, 이 눔에 지집애, 뭐 허는 거여!
수아 아이, 뭐 하긴!
수아, 썰고 남은 정육 덩이를 팽개치고 총알같이 밖으로 뛰쳐 나간다.
씬 19 골목길 (밤)
신문지로 싼고 고깃덩이를 들고 튀어나와 잽싸게 자전거 바구니에 그걸 던져 넣은 후 몰고 달아나는 수아. 아버지가 뛰어 나오며
아버지 아이구, 저 년 저 거... 썰어두 좋은데루만 썰어 가지고 갔네이!
씬 20 요석의 집 앞 (밤)
요석, 문을 열려는데 수아의 자전거가 달려와서 가로 막는다.
요석 (보면)....?
수아 왜 이렇게 늦게 다녀? 얼어 죽는 줄 알았네....
요석 누가 기다리래?
수아 (머쓱하게 보다가 입술 삐죽)
요석 니가 자꾸 이러니까 기집애들이 그딴소리 하는거 아냐?
수아 (짐짓)무슨...소리?
요석 (치사해서 그만둘까 하다가)...내가 왜 니 서방님이냐?
수아 (애교스레 웃으며) 싫었니?
요석 집에 가. 기집애가 겁도 없이... (들어가려는데)
수아 벼엉신...
요석 (문득 올려보면)?
수아 (정색해서) 니가 뭐 그리 잘났냐? 그래봤자 너한테 나밖에 누가 있니?
요석 (쨍, 매섭게 돌아본다)
수아 (서슬에 움찔 겁먹고 중얼)...그렇게 고약하니까 강수패 같은 애들이 눈독을 들이지..
요석 (외면하며) 니 걱정이나 해.
수아 (고깃뭉치 냅다 안겨주며)야. (=자...)
요석 (영문모른 채 받으면)?
수아 먹구 힘내서 공부 해. (자전거 끌고 가버린다)
요석 (붙잡듯)야, 야...
수아, 어느새 자전거 몰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요석, 자신의 손에 얹힌 고깃뭉치를 본다. 고깃뭉치.
씬 21 요석의 방안 (밤)
작은 스탠드 하나 켜놓고 담요 덮어쓴 채 벽에 기대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요석.
씬 22 요석의 방문 앞 (밤)
겨울바람이 모질게 쓸고 지나간다. 세숫대야가 덜그덕 거려대는 소리만 들려올 뿐 사위는 깊은 적막에 잠겨 있다.
씬 23 요석의 방안 (밤)
책 보던 요석, 문득 열린 서랍 안에 놓여 있는 은박지로 싼 물건에 시선이 간다.
그걸 가만히 집어서 들여다 보다가.. 은박지를 열어보면,사진 한장이 나온다.
동 사진 인서트 - <한창 아름다울 시절의 한순임이 어느 중년의 남자(기성재)와 함께 찍은 사진>그 사진.
요석 그 사진을 깊게 보는데,거기 기성재의 얼굴 위에서.O.L
씬 24 법과대학의 건물로 다가가면서
기성재 (E)말론 브란도의 <갇 파더(Godfather)> 본 사람?
씬 25 법과대학 계단 강의실
법과대학생들 앞에서 강의중인 기성재.
칠판에 <00대학교 법과대학 제 36차 실전강의>라 쓴 현수막 걸렸지만 강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간간히 웃음 베어나는.
앞씬 기성재 대사에 바로 연결되도록, 씬이 열리면 학생들 우르르 손을 돈다.
기성재, 거의다 손을 든 것을 보고 흐뭇하게 웃는다. 학생들, 기성재의 미소에 의기양양해진다. 그 정도는 당연히 봤다는 것.
기성재 안본사람?
두서너명의 학생들 쑥쓰러운 듯 손 올린다.
기성재 좋아, 내리고.
마치 죄인처럼 손을 내리자, 학생들 피시시 웃는다.
기성재 이거 문제 있구만, 응?
학생들, 무슨 소린가 집중한다.
기성재 아니,장차 검사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전부들 그 영활 봤으니, 이거 또 얼마나 마피아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들을 가지고 있겠어, 응?
그제야 잘못 짚었다는 듯 학생들 와르르 웃음 터뜨린다.
기성재 나도 원 투 쓰리 포, 전부 다 봤는데, 아무래도 원이 압권이지. 아쉬운 대로 투도 괜찮고. 어떤 사람들은 그게 총질이나 해대고 그러니까 무슨 갱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거 아니죠? 차라리 서사시지. (떠올리듯) 그 음악, 카...죽이지 않나? 그 악기가 뭐야, 사람 심금을 울리는 간드러지는거 그거...? 하모니카는 아니고,
승준 (E) 콘서티나겠죠.
기성재의 아들 승준(22)이 학생들 속에 끼어있다.
기성재 (내심 흐뭇하면서도 얄밉게)어, 자네. (지목하고)누구 곡이었지?
승준 (괜히 나섰다 싶다가 내친김이다) 코폴라가 만든 원, 투의 경우는 둘 다 니노 로타와 작업을 했죠,아마.
기성재 (빗대듯)자네도 검사 되면 안되겠어.
모두 와를 웃음.승준, 의미있게 혼자 웃는다.
기성재 자, 여담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 영화에서 찾아내야 할 것들은 그런 낭만적인 환상이 아니라 차라리 그 속에 들어있는 작가의 냉소주의겠지.
학생들 (진지하게 듣는 태도가 돼 있다)
기성재 마피아 얘기를 하려다 엉뚱하게 빠졌구만. 자,제군들이 알다시피 마피아는 현재 국제 조직폭력계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데, 우선 발생적인 기원부터 한번 살펴 보자구. 누구 공부 좀 한 사람 있나?
법학도1 (일어서서) 19세기 초쯤에 나폴레옹에게 쫓겨 시칠리아 섬으로 숨어들어간 나폴리 왕실 내에서 자생적으로 결성됐다고 알고 있습니다.(앉고)
학생들, 와하고
기성재 (장난스레) 사전을 외웠구만.
다시 와르르 웃고
기성재 맞았어. 중요한 건 반정부 성향을 띠었다는 건데,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듯이, 시간이 가면서 차츰 이게 처음의 색깔을 잃고 산적조직화 했다는 점이야. 범죄 조직으로 변모한 거지..
(E) 맹렬히 달려가는 차 바퀴소리가 짧게 물리면서.
씬 26 비포장의 시골길
낙엽들이 내려쌓인 길을 뚫고 맹렬한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고급 자동차들. 차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뱃길이 열리듯 낙엽이 흩날린다.
검은 그랜저 두 대가 선행하고 그 뒤에 최고급 벤츠, 그리고 제일 후미에 승합차 한대가 따르고 있다.
선도차와 승합차에 모두 건달들이 가득 들어앉아 있다.
씬 27 동. 벤츠 안
가죽장갑을 바싹 당겨 끼며 일전을 준비하는 장상엽(32). 한켠 과일바구니에 가죽장갑째 사과 하나 집어들고 덥썩 베문다.
뭔가 궁리할 때의 그의 습관이다. 와작거리며 사과를 씹고 있는 상엽.
고급스런 코트며 흐트럼 없이 빗어넘긴 머리 등이 그의 호사 취미를 엿보게 한다.
앞자리 조수석에 부친 장명석의 심복인 칼잡이 재식이 앉아 있다. 돌아보고.
재식 회장님께 먼저 보고를 드려야 됩니다. 나중에라도 회장님께서 아시면. (카폰 드는데)
상엽 (OL) 내려 놔요! (앞으로 머리 내밀며)
재식 사장님?
상엽 재식이형? (사이) 항명인가?
재식 ..... (수화기 든 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상엽 내가 알아서 한다구 했지? 아버님한테 이만 일로 신경을 쓰시게 해서야 되겠어? 안그래요?
재식 (마지못해 수화기 내려놓고) 그렇담 저 혼자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이런 일로 혹 다치기라도 하시면 제가 난처... (하는데)
상엽 (OL) 형 내려!
재식 ?
상엽 (살기등등하게) 내려서 맞장 떠. 살아남는 사람이 가는 거야, 오케이?
재식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상엽 (씨근대다가 운전대를 잡은 덩치의 뒤통수를 괜시리 갈기며) 기냐 겨? 더 빨리 못 가?
재식 (낮게) 더 밟어.
기성재 (E) 현재 24개나 되는 패밀리로 분열돼 있다고는 하지만
씬 28 법과대학 계단강의실
기성재 그래도 마피아에게는 지금껏 그 전통을 지켜올 수 있게 하는 독특한 맹세의식이라든가, 예를 들면 오메르타가 그건데 그런 것들이 있어서 상당한 결속력을 만들어 내고 있지. 근데 국내로 들어오면 문제가 달라져.
열심히 듣고 있는 학생들. 그 속의 승준.
씬 29전창고 (원경)
멀리 보이는 염전창고. 바람이 휘몰아쳐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 앞에서 칼던지기 연습도 하고 동전 따먹기도 하며 무료하게 때를 기다리는 칠팔명의 덩치들. 창식패들이다.
여기로 먼지 휘날리며 맹렬히 달려들어오는 상엽 일행의 자동차들.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급정거하는 승합차와 다른 차들. 차가 채 서기도 전에 튀어내리는 덩치들.
일순 아수라장이 되고 창식패들 사방으로 헤쳐 뛰기 시작한다.
그러나 맹렬히 쫓아가 뒷덜미를 나꿔채고 이내 곤죽을 만들어 버리는 상엽패들.
제일 나중에 차에서 내리는 상엽. 어김없이 손에 빨간 사과 하나 쥐고 던져올렸다 받았다
하며 여유있게 나아간다. 위의 하면 뒤에 앞 씬에서 계속 이어지는 기성재의 강의.
기성재 (E) 주로 보스 개인의 처신에 따라 수시로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어서 우리 입장에선 여간 고충이 많은게 아냐. 계보에 의한 체계적인 관리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몇 년간 현장에서 떠나 있어도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니까. 따라서 조직폭력 수사만큼은 전담 검사에 의한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추적 관찰이 꼭 필요한 분야라는데 제군들도 동의할거야.
씬 30 염전창고 안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버티던 창식패들. 엄청난 무게로 문을 부수고 들이닥치는 상엽패들.
기겁한 창식패들 쌓여있던 화물들을 내던지며 저항하다가 구석으로 몰린다.
재식과 그의 휘하들은 거침없이 그들의 공격을 간단히 피하며 차츰 조여간다. 공포에 질린 창식패들.
완전히 한켠에 몰아넣고 나자 상엽, 나타난다. 다짜고짜 앞에 서있는 자의 턱을 발길로 후려갈기는 상엽.
암말없이 다시 한번 발길 날리는데서. 위의 화면 위에 얹히는 기성재의 이어지는 강의.
기성재 (E) 이렇듯 이합집산이 심한 국내 폭력계보 중에도 좀 특이한 케이스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국내 최대의 조직을 형성하고 있는 '신세기파'야.
씬 31 슬라이드 화면
1) 장도수(장명석의 부친)가 50년대 건달들과 함께 '알 카포네식' 복장으로 함께 어울려 폼 잡고 찍은 흑백사진.
2) 장도수가 5.16때 체포되어 목에 <나는 깡패>라는 패찰을 걸고 시가를 행진하는 흑백사진.
3) 장명석이 나이트클럽에서 새로운 보스의 탄생을 의미하는 분위기의 연설, 내지는 휘하들을 도열시켜놓고 조직 재정비하는 모습. 그 한켠에 귀공자풍의 장상엽이 야심만만한 얼굴로 서 있는 것 보이고.
4) 장명석이 체포되어 플래쉬를 받으며 재판정에 들어서면서 기자들에게 카메라를 쳐내며 악의에 찬 논평을 해대는 모습. 마차 자신은 마녀사냥에 걸려든 불행한 희생자라는 뉘앙스의.
5) 골프장. 가족 골프 시합 중인 장씨 3대의 골프복 차림의 자연스런 스냅. 어느 귀족 일가의 일상을 엿보는 느낌의 사진.
6) 화려한 의자에 앉은 장도수를 중심으로 검은 정장을 한 채 양 옆에 서서 조끼 주머니에 손가락을 찌르고 귀족처럼 찍은 장씨 3대의 사진. 이런 사진들이 슬라이드로 한컷씩 영사되면서 그 위로 얹히는.
기성재 (E) 1950년대에 이미 종로통을 석권했던 장도수로부터 시작된 신세기파는 장씨일가에 의해 주도되면서 특이하게도 현재까지 패밀리 형태를 고수해 오고 있다. 특기할 점은 1대인 장도수가 소위 건달세계의 룰을 철저히 지키면서 나름대로 신사적인 운영을 해온데 비해서.. 그의 아들인 2대 장명석은 조직확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함과 집요함을 보여 덕분에 현재 국내 최대의 조직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점인데...
씬 32 대학 내 대학식당 (미촬영)
자연스런 평소의 학생식당 풍경을 돌아 한쪽으로 가면 앞에서 강의 듣던 학생들의 1/3쯤이 기성재를 가운데 두고 점심을 먹고 있다.
기성재 역시 학생들과 똑같이 식판으로 밥을 먹는 소탈함을 보여준다. 그들 속에 승준도 있다.
학생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호기심이 엿보이는 분위기로.
법학도2 검사님, 그 장명석한테 아들이 있습니까?
기성재 (먹다가 문득 보고) 어, 운좋게도 꼭 빼닮은 아들을 하나 낳았지. 국가의 장래를 봐서는 딸을 낳았어야 되는데 말야. 핫하...
모두 웃고.
법학도2 그럼 그친구가 3대째 보스가 되겠군요?
기성재 글쎄, 3대에까지 조직이양이 순조롭게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지. 나로서도 관심거리야. 현재 우리 검찰 전담 수사반이 주시하고 있으니까 뭐..더 지켜봐야겠지.
승준 (OL) 너무 소극적이라고 생각 안 하십니까?
기성재와 학생들의 시선 일시에 소리나는 쪽으로 쏠린다. 승준이다. 기성재, 흥미있게 지켜본다.
승준 주시하고 있다, 지켜봐야 겠다.. 항상 뒷북만 치고마는 여느 형사문제와 대를 잇는 조폭문제는 그 접근방식에서부터 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기성재 (팽팽하게) 어떻게 말인가? 적법성의 테두리안에서 말해보게.
승준 (역시 팽팽하게) 시한폭탄인줄 뻔히 알면서 터지기만을 기다립니까? 치료 이전에 예방, 이건 상상식입니다.
기성재 (OL) 조직범죄수사에서 검찰이 항상 강자인 것것은 아니야.
승준 (OL) 증거의 적법성이라는 틀이 발목을 붙든다는 말씀을 하시는가 본데 저쪽이 가능한 모든 수수단을 쓴다면 이쪽도 그렇게 해야죠. 사람들은 공공공선을 위해서 검찰의 불패기록 하나쯤 가지고 싶싶어할 겁니다.
기성재 자네들한테 (둘러보며) 그 영광의 기회를 돌리지. (건배를 청하듯 물컵을 들어올리며 미소)
(E)학생들의 박수 소리
씬 33 법과대학 앞
학장 바쁜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성재 아뇨, 재밌었습니다. 종종 불러주십시오.
계단에서 법대학장과 악수 나누고 계단을 내려오는 기기성재, 학장 들어가고. 그 앞으로 와서 서는 기성재의 검은승용차.
운전석에서 내리는 승준.
승준 바로 청으로 가실거예요 아버지?
기성재 그래야지, 넌? (운전석 쪽으로 가며)
승준 전 강의가 남았어요.
기성재 너무 무리하는거 아니냐? 24학점까지 풀로 듣는다면서?
승준 (자신있게) 빨리 학점의 굴레에서 벗어아냐 고시에만 열중하죠.
기성재 (썩 탐탁치는 않다)...넌 여자친구도 없니?
승준 여자가 없는게 아니라 마음이 없어요.
기성재 난 니가 고시건 연애건 한두번쯤 실패도 해보고 그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버지하고 소주도 한잔 하고 할거 아니냐. 넌 아들로서 너무 매력이 없어. 그거 아냐?
승준 (씩 웃고)
기성재 (E)(운전석에 오르고) 가마.
승준 집에서 뵈요.
손 들어보이고 이내 출발하는 기성재. 승승준 차 멀어지는 것 보다가 냉큼 손목시계 보고는 황망히 건건물로 뛰어 들어간다.
씬 34 염전창고 전경(근경, 해질녁)
저만치 붉게 물든 낙조가 아름답기까지 한데, 그 위로.
(E) 찢어지는 사내의 비명
씬 35 염전창고 안 (해질녁)
장상엽, 칼잡이 하나를 린치하고 있다. 그의 뒤에 재식이 믿음직하게 버티고 섰다. 이미 심하게 맞아 형상이 말이 아닌 창식패의 칼잡이2.
상엽 느이같은 피래미가 감히 우리아버지한테 칼을 줄 생각을 했어? (갑자기 버럭) 대! 어디야, 창식이 잠수탄 데!
칼잡이2 (외면하고 버틴다)...
상엽 (버럭) 말 안해?
칼잡이2 (끈질기게)...
상엽 (쭉 노려보다가 홱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지목한다) 너!
한켠에 꿇고 있던 칼잡이1이다. 일순 긴장하고 보는 칼잡이1.
상엽 어디 솜씨 좀 보자.
하더니 발밑에 밟고 있던 칼잡이들의 재크나이프(당연히 이미 날이 펴져 있다)를 발로 차 준다. 칼잡이1 앞에 와서 멎는 재크나이프.
상엽 자신의 코트주머니에서 예의 빨간 사과를 꺼내 손에 들고 얼굴 옆으로 들어올리며.
상엽 맞춰 봐.
재식 (놀라) 사장님! (앞으로 나서려는데)
상엽 (O.L 손으로 제지하며) 가만있어.
칼잡이1 (긴장한다)
상엽 맞춰 봐, 만약 못 맞추면 니들 여기가 무덤이 될 줄 알어.
칼잡이들 긴장한다.
상엽 대신, (사이) 맞추면 목숨만은 살려준다.
칼잡이1 쪽에 사과가 잘 보이도록 쥐고 고쳐선다.
상엽 어디, 살려 줄 가치가 있는 놈들인가 보자. ...자,던져!
잠시 침묵이 흐르고.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칼잡이1, 마침내 재크나이프를 집어든다. 그리고 주위의 분위기를 살피다가 가만히 일어선다.
재크나이프를 쥔 손이 몹시 떨린다. 칼잡이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있다. 태연을 가장하고 있지만 상엽 역시 긴장하고 있다.
칼날, 칼잡이1의 시선으로. 상엽의 목. 그 옆에 사과. 다시 상엽의 목줄기로 초점이 맞춰진다.
칼잡이1 선뜻 결심이 안서는 눈치다. 호흡이 가빠지는 상엽.
드디어 칼잡이1, 던지는 자세로 재크나이프를 제대로 고쳐잡아 쥔다. 던질 위치로 올리고.
긴장해서 보던 재식, 자신의 주머니 속 재크나이프를 조심스레 꺼내 바지재봉선 위치에 세워 둔다. 여차하면 던질 참이다.
마른 침을 삼키던 칼잡이1, 그러다가 마침내 힘껏 칼을 날린다. 아직 칼이 도착하기 전의 상엽의 사과에서.
씬 36 장명석의 저택거실 (밤)
재크나이프가 정확히 꽂힌 사과, 티테이블 위에 놓였다. 일순 철썩 뺨 때리는 소리가 지나간다.
장명석 안에서 밖으로 모멸감으로 주려는 듯 때린 손 그대로 들고 있다.
위력을 말해주듯 잔뜩 돌아가 있는 상엽의 얼굴. 장명석과 상엽, 단 두사람만 있다.
장명석 (씹어뱉듯이) 미련한 놈!(손 거둔다)
상엽 (이 앙다문다)...
장명석 누가 너더러 직접 나서랬어? (버럭) 니가 누구야.
상엽 (볼은 만지지 말고, 의외의 반응에) 아버지...?
장명석 (큰소리) 넌 보스가 될 몸이야? 보스가 한낱 꼬붕들이나 할 짓을 하고 다녀?
상엽 (변명하듯 빠르게) 아버지, 전 어차피 아버지가 하실 일이니까(하는데)
장명석 (O.L)잘들어! 아랫놈들이야 한 두번 빵에 들어 갔다 나오는 게 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너나 나는 아냐. 우리 처신에 따라 조직이 살고 죽어! 알아 들어? (상엽의 멱살을 모아쥐고 흔들며) 40년이야. 40년을 키워온 게 무너지기로 치면 하루아침이란 말이다!
상엽 (멱살 잡힌 채로 고개 꺽고)...
(E) 노크
장명석 (얼른 멱살 놓고 자세 고쳐잡고는 버럭) 누구야?
재식이 들어와 절도있게 깊은 절하고.
재식 창식이란 놈 잠수탄 위치 확인 했습니다. 고흥 날치한테 독립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했답니다.
장명석 (괘씸한) 독립자금? 버르장머리 없는 놈.
재식 잡으면 어떻게 할까요.
장명석 몰라서 묻나?
재식 (잠시 그대로 있다가) 알겠습니다.
재식 절도있게 절하고 돌아서 나간다.
장명석 봤냐? 손을 봐야 될 놈이 있으면 이렇게 하는 거다. 니 손이 아니라, 니 입으로가 아니라!(사이) 알아듣겠냐?
상엽 ...(불만스럽지만) 예, 아버지.
장명석 아무도 믿지 마. 더군다나 꼬투리 잡힐 짓은 절대로 하지 마! 그리고 이따위 장난도! (재크 나이프가 꽂힌 사과 저만큼 집어던진다)
상엽 ...(섭섭한)
장명석 (혼잣말처럼) 경솔한 놈. 내게 아들이 하나만 더 있어도... (하다가 그만둔다)
씬 37 하교길(늦은오후or 저녁무렵)
일단의 여학생 무리, 교복 차림으로 왁자하게 하교 중이다. 한창 재미난 얘기들 하던 중인 수아, 문득 저만치에 시선이 닿는다.
그 시선 끝에, 기타를 끼고 요석이 철로에 망연히 앉아 있는 것 보인다.
수아 ...
씬 38 그 철로변(늦은오후or저녁무렵)
나란히, 그러나 조금 떨어져 앉은 요석과 수아. 끝없이 멀리 이어질 것만 같은 철길을 바라보고 있다.각자 나름대로 심각한 두 사람.
수아 모의고사 점수 되게 잘 나왔다며? 좋겠다...
요석 ...
수아 난 취직이나 해야 할까 봐.(짧게 한숨)
요석 (문득 보고)
수아 (돌아보고) 너, 나 대학 안나왔다고 나중에 무시하는 거 아니지?
요석 (픽 웃고는 외면한다)
수아 왜 그렇게 웃어? 너...나 안보고 살 거니?
요석 (불쑥) ...나한테...잘해주지마.
수아 (철렁하는 기분으로) ?
요석 나, 여기 뜰거야.
수아 (!) 무슨 소리야?
요석 한 번 가면...안 와. (결심하듯) 다시는...
수아 고향인데? (동그랗게 보다가 설마하듯 픽 웃고는) 고향에 다시 안 온다는 소리, 그거 3대 거짓말 중에 하나라더라, 뭐뭐냐 하면 (하는데)
요석 (OL) 나한테, 고향 같은 건 없어.
수아 ...!
요석, 기타를 메고 혼자 일어서서 간다. 철길을 따라 멀어지는 요석을 아프게 보는 수아.
그 멀리 철로를 따라 아득히 멀어져 있는 요석. 그대로 앉은 채인 수아. 그들 사이의 멀고 먼 거리. 그 위에 선행되는--
굵은 베이스 기타의 솔로 전주.
그렇게 걸어가는 그들의 원경 위에, 마치 깊은 동굴 속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굵은 베이스 기타의 솔로 전주가 들려오다가--
쾅! 터지듯이 일제히 본연주가 시작되면서.
씬 39 신촌 라이브 카페
열정적으로 격렬한 락음악을 연주하는 무명의 헤비메탈 그룹. 좁고 낡은 실내를 꽉 채운 채 캔맥주 하나 씩을 손에 들고 열광하는 팬들.
뽀얀 담배 연기 속에 확확 달아오르는 듯한 열기가 느껴진다.
그런 손님들 속에 섞인 채 같이 머리를 흔들며 연주에 몰입해 있는 혜준이.
그런 혜준을 보며 왠지 불안한 듯한 기색으로 두리번거리는 인서. 연주 격렬하게 고조되어 가는데--
그때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이닥치는 합동 단속반. 연주 중단되고 웅성이는데.
단속반 음악꺼! 모두 21세면 앉고 주민등록증 꺼내. 미성년자 전부 일어 서! 빨리!
씬 40 경찰서 현관 앞
입구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노심초사하고 있는 인서. 답답한지 주머니에서 담배 꺼내 물려다가 얼른 다시 집어넣고는 꾸벅 인사한다.
막 자신의 차에서 내린 기성재. 인서의 어깨를 장난스레 한번 툭 쳐주고는 들어간다. 인서, 더욱 좌불안석이 된다.
씬 41 경찰서 복도
빠르게 걸어가는 기성재. <사실>로 들어간다.
씬 42 경찰서 조사실
기성재, 막 들어서는데 마침 나오던 서장과 마주친다.서장, 기성재를 먼저 알아보고,
서장 (화들짝 놀라) 아이구, 이거 부장님 아니십니까?
기성 (윗사람다운 아량있는) 수고 많으시죠?
서장 (너무나 뜻밖이라는) 연락도 없이 여긴 어쩐 일로?
기성재 아, 예...(하는데)
그때 우르르 굴비 꿰듯 한줄로 몰려가는 예의 락카페 젊은이들.
서장 (기성재를 밀치고 지나가는 그들에게 버럭) 거 한쪽으로 몰아!(하고는 면구한 듯) 아이구 이거 정수리 피도 안마른 것들이 대낮부터 락카펜지 뭔지 새까맣게 몰려가지고는. 도대체 부모가 누군지 얼굴 한번 봤으면 좋겠다니까요?
기성재 (멋적게 웃고는) 앞에 있잖습니까.
서장 ...예엣?
기성재 (줄의 맨끝에서 빤히 이쪽을 보고 있는 혜준을 보며) 내 딸입니다.
서장 (멍하니 혜준을 본다) !!!
그들의 뒤로 막 연락받고 달려온 듯 여러 부류의 q들 놀란 얼굴로 우르르 들어온다.
기막혀하며 자기 자식들을 찾아가는 모습들 자연스레 배경으로.
씬 43 달리는 기성재의 차 안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기성재와 혜준
혜준 (눈치 살피며) 화나셨어요?
기성재 (짐짓) 그럼, 딸 찾으러 경찰서 드나들면서 행복하겠냐?
혜준 인서한테 뭐라 그러지 마세요. 제가 얘 졸랐어요.
조수석의 인서, 냉큼 돌아보고,
인서 아녜요, 아버님. 제 잘못입니다. 제가 생각없이...
기성재 (OL 짐짓 무겁게) 박인서, 자넨 빠져. 이건 기씨 가문의 문제야.
인서, 쑥 들어가 룸미러 보고 긴장한다.
기성재 (혜준을 가만 본다) ...
혜준 (설마 싶으면서도 조금 긴장한다) ...
기성재 (휴대폰 주며) 담임 선생님께 전화드려.
혜준 (덜컥 놀란다) 아빠?
기성재 어서. 전화번호 몰라?
혜준 (설마하듯) 아빠아...
기성재 특별전형에 추천해 주셔서 감사하다그래.
인서 (화들짝) 아니 그럼?...합격...한거군요?
혜준 (기성재 본다) ...?
기성재 (그제야 빙그레 웃는)
인서 얏호! 혜준아! (호들갑인데)
혜준, 대수롭잖다. 오히려 제쪽에서 더 좋아라는 인서를 이상하다는 듯 본다.
인서, 그런 시선에 머쓱해진다. 기성재, 그런 둘을 재밌다는 듯 슬쩍 본다.
씬 44 전철역 앞 거리
기성재의 차 전철역사 계단입구에 와서 선다. 조수석의 문 열리고 인서 내린다.
인서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성재 (내다보고) 박인서, 앞으로 보디가드 노릇 제대로 해? 또 그런 데 데려갈거면 걸리지를 말게 하든지. (장난스런)
인서 (꾸벅하고) 명심하겠습니다! (하고는 안쪽의 혜준에게) 전화할게.
혜준 (얄밉게) 공부나 해.
인서 (섭섭한) ...
기성재의 차 이내 출발한다. 인서, 눈으로 바래준다. 아쉽다.
씬 45 기성재의 집 외경(저녁)
높다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잘 지어진 집.
승준 (E) 너 제정신이야?
씬 46 동 혜준의 방(저녁)
여학생의 방답게 예쁘게 꾸며진 욕실이 딸린 방. 이젤이며 화구들이 잘 갖춰져 있다.
승준, 막 학교에서 돌아온 외출복 차림 그대로 문께에서 회난듯 왔다갔다 하며 휴대폰 들고 통화 중이다.
승준 (통화, 속사포처럼) 가고싶단다고 아무데나 데려가? 마! 니 동생이라도 너 그렇게 했겠어? (사이) 얘, 아직 고등학생이야. (사이) 글쎄, 남들이야 어쩌든, 얜 안돼.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너 몰라? (사이) 아, 글쎄 왜 우리 혜준이가 불법 영업소 같은델 드나들어!
혜준 (E,버럭) 그만 좀 해!
승준 (놀라 본다)!
혜준, 샤워가운 입고 감은 머리 말리며 욕실서 나오다가 신경질낸다.
혜준 왜 엉뚱한데다 시비야?
승준 (화났다, 전화 뚝 끊어버리고)너?
혜준 인서한테 화난거 아니잖아 지금?
승준 너 지금 그렇게 당당해도 돼?
혜준 그냥 폼으로 맥주 한병 마시구 음악 들은게 다야. 그게 무슨 죽을 죄라도 돼?
승준 (기막히다)너 오늘 무슨 짓 했는지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 오늘 너 아버지 경찰서에 너 데리러 가시게 했어.
혜준 그래서?
승준 (버럭) 그래서? (사이) 아버지 입장이 뭐가 돼?
혜준 다른 부모들도 다 왔었어. 아빠만 왔어? 아빠두 암말 안하시는데 왜 오빠가 야단이야? 오빠가 뭔데?
승준 (가라앉히고) 난 널 보호해야 돼. 아버지 역시.
혜준 (코웃음) 누가 원하기나 한대?
승준 기혜준!
혜준 난 오빠 보호도 필요없고, 오빠 충고도 필요없어. 알겠어? 내가 무서운게 뭔 줄 알아?
승준 ?
혜준 (경멸을 담은)오빠같은 사람이 세상에 나가서 리더가 되는 거야.
승준 (어떤 충격으로)!
혜준 난 할 수 있다면 뭐든 다 하고, 볼 수 있는건 뭐든 다 보고, 들을 수 있는건 다 듣고 그러구 살거야.
승준 (OL)해, 누가 뭐래? 근데 왜 하필 날라리들처럼 그런 (하는데)
혜준 (OL)그만 나가 줘. (침대에 털썩 앉는다)
승준 (뭔가 더 말하려다 그만두고)... 우리학교에 들어오게 된거 축하해.
혜준 (못마땅한)...
거울 속에 승준이 나가는것 보이면 거울을 향해 수건 휙 집어던진다. 달력.
씬 47 요석의 고등학교 교실
창밖에 흩날리기 시작하고 있는 눈발에서부터. 텅 빈 교실 뒷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요석.
눈발 흩날리는 교정을 그저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들려오는
메주 (E)어따, 날씨 한 번 지랄같고만.
보면, 교실 문가에 기대 서 있는 메주와 개코.
메주 옆구리에 끼고 다닐 지지배도 없고, 난 이런 날은 그냥 신경질이 빡빡 뻗쳐야!
요석 (긴장) ---.
메주 어이, 아가, 형님이 쪼까 보잔다.
씬 48 창천시 길거리
여고생 고적대가 신나는 행진곡을 연주하며 행진하고 있다.
초미니의 제복을 멋지게 입은 수아가 전면에서 봉을 휘두르며 지휘를 하고 있다.
그 뒤를 “창천시 유흥업 중앙회”라는 플래카드를 든 덩어리들이 따라오고 있다.
가슴엔 표어 등을 적은 띠를 하나씩 두르고 있다. "건전 사회 기풍 쇄신 총궐기 대회”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있다.
스피커를 매달은 지프차에서는 “건전 사회 이룩하여 국가 발전 앞당깁시다!”-- 어쩌고 하는 방송을 하고 있다.
씬 49 강수의 사무실(또는 당구장)
태극기, 도지사 쯤 돼 보이는 이와 악수를 하고 있는 강수의 사진이 걸려 있는 무슨 일을 하는지 파악하기 힘든 사무실.
벽에는 “일심동체”, “오직 충성” 등의 구호를 붓글씨로 써서 걸어 놓고 있고, 그 위로 고적대의 행진곡 소리가 멀리서부터 차츰 다가오고 있다.
강수와 메주, 개코 등 건달들도 오늘은 전부 양복차림이다. 가슴엔 건전표어들이 적힌 띠들도 하나씩.강수, 창가에 서서
행진해 오는 고적대를 내려다보며 여유있는 미소를 짓고 있다.
띠를 두르고 행렬 속으로 합류하러 달려가던 어깨 하나 창가에 선 강수를 올려다보고 어서 내려오라고 손짓한다.
강수 (손 들어 답하고)시간이 없응게 짧게 하자잉. (돌아선다)이켠에 이미 요석이 불려와 책상 어디쯤 걸터앉아 있다.
강수 나가 널 부른 거는 쪼까 부탁이 있어서여.
요석 (본다)?
강수의 옆에는 18세 정도로 보이는 날렵하고 잔인해 보이는 녀석이 껌을 씹으며 칼로 나무토막을 자르고 있다.
그저 손장난이 그정도다. 그는 요석과 같은 학교의 교복을 불량스럽게 입었다.
강수 (그 녀석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보다시피 여그 이 아우가 너하구 같은 나인디, 며칠 전에 나를 위해서 뭔 일을 쪼까 혔단 말이시. 허 근디, 언 놈이 칼침을 놓고 간게 고삘이라고 찔러 버렸단 말이다잉! 참말로 고연 놈이제.
요석 그런데?(요)
강수, 다시 창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만면에 미소를 머금는다.
씬 50 창천 시가지
건물 이층 창에서 복임에게 손을 흔드는 강수. 저만치서 고적대를 이끌고 오던 선두의 수아, 재수없다는 표정으로 쌀쌀맞게 외면해버린다.
씬 51 강수의 사무실
강수, 웃음기 싹 거두더니 돌아서며.
강수 그러니 으쩌냐. 날 위해 애써준 아우를 보낼 순 없고.(사이) 수고스럽겄지만 니가 좀 다녀와 줘야 쓰겄다.
요석 다녀오다니요?
강수 어이, 왜 이러냐? 머리 좋다고 소문난 놈이? 창천서에 가믄 강력계 방경장이라고 있을 것이다. 너야 이력도 깨깟하고 허니께 최고로 받어야 집행유예 1년 안짝이여.
요석 (픽 웃고) 내가 그런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합니까?
강수 당연하지. 나 고강수가 말이시 공중에 떠벌릴 말은 애시당초 꺼내질 않는 놈이거든.
요석 왜 내가 그래야 하지요?
강수 왜? 왜냐고잉? (뚫어지게 보면)
요석 (팽팽하게 본다)
수하들 재미있게 돌아간다는 듯 숨죽이고 지켜본다.
강수 (그 녀석 가리키며) 야가 말이다, 실수로 현장에다 뭘 하나 떨쿼놓고 왔다는데 말이다잉.. 고 것이 해필 니 이름표라는거 아니냐.
요석 (놀란다)
인터컷.
씬2에서 자신의 이름표가 떨어져 나간것을 발견하는 요석.
강수 무슨 말인지 인제야 말귀를 알아묵는 모양이다잉?
요석, 노기로 그 녀석을 노려본다. 그 녀석, 요석을 보고 히죽 웃는다.
강수 어차피 가만 있어도 방경장은 널 잡으러 가게 돼있어. 느그 학교에 가믄 널 못 잡어묵어 안달인 박선생이 너한테 유리하게 진술혀줄 것 같으냐? 거그다 너는 알리바이 대줄 친구도 읍어. 안그냐?
요석 (함정이다. 앙다무는) ......
강수 어차피 살게 될 너를 나헌티 봉사헐 기회를 주는 것것은 나가 앞전에도 말혔다시피 오로지 니가 마음에 듣다는거 고거 하나! 이유는 고거 하나다 이말여. 조용히 요번 일 지나가게 혀주믄 나가 가만 있을 사람이 아녀. 취부책에 딱 올려 놀랑게. 창천서 내 도움 안받고 사는 놈 읍다는거 알만헌 사람덜은 다 알제. 어떠냐? (기선을 이미 제압했다는 자신만만함으로 보는)
요석 .....
강수 (기다리는) ......
요석 ....좋아. (강수패들 반색하려는데) 그 전에.
강수 (기다리는) .....?
요석 나도 부탁이 한가지 있어.
강수 (기분좋다) 잉? 뭐여? 말혀.
요석 (잠시 생각하는 척 하다가) 주위를 좀 물려줬으면 좋겠는데..
강수 (?) 그려? 그려. (패들에게) 느덜 잠시 나가 있거라잉.
메주,개코 형님?
강수 (성마르게) 아, 싸게?
메주와 개코, 그녀석 등 주춤주춤 나간다. 문문 꼭 닫히는 것 확인한 요석.
강수 됐으니 인자 말 혀! 뭐여, 부탁이란게?
요석, 뒤로 손을 뻗어 안에서 문을 잠궈버린다.
강수 (그제야) 어라, 이새끼.. (주위에 있던 각목 집어드는데)
어느새 날아오는 요석의 다리. 강강수, 갑작스런 공격에 허를 찔리고 나가 떨어진다. 소란에 밖에서 들려오는
메주 (E) 형님?
그때부터 요석과 강수의 일전이 벌어진다.밖에서 마구 두드려 대는 문.
요석은 무기 없이, 강수는 가능한 모든 집기를 무기로 동원하는 격렬한 싸움이 진행된다.
코너에 몰린 강수, 발목에 심어뒀던 칼을 꺼낸다. 요석, 신중하게 견제한다. 강수, 마침내 칼을 휘두른다. 요석,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강수 으으으으!
강수의 짐승같은 비명. 휘두르던 칼에 자신의 허벅지를 찔린 것이다. 강수의 비명과 거의 동시에 문을 부수고 튀어드는 강수패들.
패들 (동시에) 형님!
요석, 순간 무리라고 판단. 그대로 창문을 타넘는다.
메주 저 새끼, 잡아!
강수패 하나는 강수에게로 가고 나머지는 모두 창으로 달려가는데, 간발차로 아래로 뛰어내리는 요석.
씬 52 강수 사무실 건물 밖
건물 아래 1층 방앗간. 말린 고추포대 위에 몸을 굴리는 요석.
강수패들 창문 너머로 고개 내밀고 '저 새끼 잡아, 저 새끼'등 소리치며 문쪽으로 또는 똑같이 고추 포대 위로 분산해서 튄다.
요석, 큰길을 따라 필사적으로 달려간다.
씬 53 창천 시가지
미친듯이 달려오는 요석. 고적대 사이를 뚫고 바람처럼 지나간다. 그바람에 행진곡 끊어지고 고적대의 비명소리.
아수라장이 되면서 고적대 열이 일시에 무너지고. 맨 앞의 수아, 행렬을 뚫고 가는 이가 요석임을 알아보고 멍하다.
(수아 야, 요석아...?)
고적대, 좀 진정되려는데 또다시 그들을 와락 밀쳐내고 달려가는 강수패들. 이번에는 아예 넘어지고 자빠져서 엉망이 되는 고적대.
수아, 달려가는 메주의 발을 슬쩍 걸어 넘어뜨린다. 코를 박고 넘어지는 메주.
수아 (고적대에게 다급하게) 얘들아, 붙들어!
고적대 여학생들 그 소리에 일제히 강수패들의 다리를 붙들고 늘어진다.영문은 모르지만 자신들을 넘어뜨린데 대한 복수다.
개코 (버럭) 이거 못 놔!
강수패들 여학생들에게 붙들려 낑낑대는 모습 희극적이다. 수아, 메주를 붙들고 절대 놔주지 않을 태세다.
강수패들 사람들 눈이 있어 차마 여고생들을 손대지는 못한다.
결국 여학생들 밀쳐내고 주먹다짐 한번 하고는 다시 뒤쫓는 강수패들.
수아, 맞을 뻔 했으면서도 요석만을 걱정하며 그들의 뒤를 지켜본다. 불길한 조짐이다.
씬 54 창천 기차역 앞
달려오는 요석. 기차는 이미 떠나고 있다. 요석, 역사 옆의 난간을 뛰어 넘어 플랫폼으로 달려 들어간다.
그리고 속력을 붙여가는기차를 따라 달린다. 힘겹게 기차 난간을 붙들고 올라탄다.
뒤따라 온 건달패들이 뒤에서 돌을 던지고 욕지거리를 해댄다. 기차 멀어져 간다.
씬 55 동. 기차 안
가쁜 호흡으로 기차 난간의 벽에 기대 선 요석. 멀어져 가는 창천시를 바라보며 아련한 시선이 된다.
씬 56 철길
요석을 태운채 아득히 멀어져 가는 기차.
씬 57 동. 기차 안
갑자기 밀어닥친 상황 앞에 그저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는 요석.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깊게 숨을 몰아쉰다. 빠르게 멀어져 가는 창천시를 바라보다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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