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말이네.
서양에서도 그러한 주류논리학의 한계를 깨닫고
운동과 변화를 이성적 사고를 통해 파악하려 하고 또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네.
형식논리학의 비조가 파르메니데스라면 변증법의 비조는 헤라클레이토스를 꼽지 않는가.
그리고 헤라클레이토스 뒤를 이은 일군의 비주류 철학자들을 일컬어 변증론자들이라고 하는데,
그 대표자가 바로 헤겔이라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을 거네.
그런데 헤겔이 자신의 논리학에서 제일 심혈을 기우려 비판하고 있는 핵심이
바로 형식논리학의 모순율이라네.
헤겔은 현실세계에 진상으로서 만연해 있는 변화를 사고를 통해 파악하려면
모순을 배제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모순을 인정하고
그 모순을 통해 우리의 사고를 전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
그러니 나교수가 변증법이 모순율에 근거해 있다고 말한 것을 헤겔이 들었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벼락같이 달겨들 일이 아니겠나.
물론 영국의 맥킨타이어 같은 학자는
헤겔의 변증법도 결국 모순율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네.
하나 그의 주장은 별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네.
무엇보다 헤겔 자신이 분명하게 모순율을 지켜 가지고는
세계의 변화발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나교수의 명제는 이렇게 수정하면 오해를 피할 수 있다고 나는보네.
즉 "서양의 전통적 사유방식인 형식논리학은 모순율에 근거하고 있으나
동양의 궁즉통의 논리는 변화율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물론 이 명제에서 변화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더 면밀히 규정해야 하겠지만 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