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청산은 언제가나
청보리 피려면 멀었는가
산그늘 담은 물 그림자
은 비늘 흩뿌린
바람에 멀어지고
언약 없는 봄날은
제비꽃 언덕에 서 있는데
가슴에 품은 별
꽃 되어 떨어지면
나도 그만 청산으로 가려네
2.싸리꽃
싸리꽃 지던 밤
꽃잎에 묻어 날리는 달빛처럼
리(이)제껏 품었던 그리움도
환하게 부서진다면
꽃이 되고 말까 부다
미련없이 속절없이 질까 부다
지울 수 없어 품었던 그 사랑이
가시 되어 돋는 밤
던져버린 빈 가슴속
울려주는 바람아
밤하늘 흩어지는 싸리꽃
내 맘이다 안고 가거라
3.꽃이 질 때
꽃이 지는 날에는
떠나지 말라
이미 마른 꽃
바람끝에 매달려
떨고 있는 한낮
질끈 감은 눈 뜨면
그대 꽃처럼 떠날까
때로는 그 자리
초록으로 가려도
바람불면 섧다
4.아쉬움
아파하지 마라
세월은 아직 너희 편이다
쉬운 이별은
이 세상에 없다는데
움트는 아쉬움
그것도 훗날엔 사랑이더라
5.새우잠
새겨놓은 그대 정
행여 사라질까
빈 가슴만 안아봅니다
우리라는 말은
참으로 예쁘고 정답지만
그대 없이는 쓸데없는 말
잠을 설치는 새벽
웅크린 어깨 위를
사연 아는 달빛이 다독입니다.
6.꽃잔치
꽃이여
머물러라
잔술 한 잔에도
취해버린 한낮
치뜨는 내 눈앞에
너만이 웃고 있다
7.손각시
손톱 끝
봉숭아 빛 바래어도
님이 오실지 몰라
각시꽃 피는 밤
달도 뜨기 전
홀로이 나선 길
시린 눈 들면
하늘 끝 아득한데
멀리 닭 우는 소리
8.질경이
질척이던 그리움 짓밟혀도
해마다 꽃무리로 오르더니
경골까지 시려운 이 겨울
칼바람엔 죽은 듯이 누웠네
이리도 미련한 집착
그만둘 날이 오늘이었나
9.낙서금지
낙엽이 쌓이고 또 쌓이고
하얀 눈이 내리고 또 내리고
서둘러 지나는 겨울이
모든 걸 지웠습니다
금세 도화지처럼
깨끗해진 세상 앞에서
지나온 발길조차 낙서 같아서
마냥 멈추어 섰습니다
10.먼 산 보기
먼지처럼 내려앉는
상념들 털어내면
산산이 부서진 햇살
곱게 반짝이는 저 먼 산
보고 싶다고 밉다고
뒤섞여 몸살 하는 그리움을
기어코 견딜 수 없는 한낮
겨울빛 시린 눈에 저 먼 산
11.서쪽 하늘
서러워 서러워서
해지면 울고 가는 굴뚝새
쪽구름 붉게 타는 산능선엔
그리움에 일어서는 나무들
하릴없는 바람 소리 낙엽소리에
어스름 끌고 내려오면
늘썽한 대숲 그림자 엮어줄
달빛 하나 먼 하늘 건너오네
12.숨바꼭질
숨어든 그대를
가만히 품었습니다.
바람이 술래인 양
흘기고 지나갑니다
꼭 닫은 문처럼
마음을 여몄습니다
질끈 감은 눈
두근두근 가슴이 뜁니다
13.시치미 떼지마
시린 눈으로
하늘 보며
치솟는 눈물
말리고
미적미적
떠나던 그 모습
떼까치 우는 소리
나만 남았네
지는 꽃 따라
갈 뿐이라고
마루 끝에 햇살 하나
남기고 떠난 님
14.장미의 계절
장식처럼 넝쿨은
가시마다 꽃을 달고
미열에 들떠가는
마지막 봄볕 아래
의지하며 기대선
낮은 담을 탓하며
계관(鷄冠)을 붉게 세운
수탉처럼 꼿꼿이
절대 시들지 않을
오만함으로 이 오월을
15.한낮의 신록
한 점 구름 없이
말간 하늘 아래
낮은 산 일어서는
오월의 열기 속
의연히 피어나는
여린 잎의 아우성
신명 난 바람이
쓸어내는 햇살 자리
녹아내린 초록이
드러눕는 오후 한 시
16.곰보배추
곰보처럼 얽은 잎은
한 겨울 모래바람 탓이려니
보삭대는 마른 잎에 숨어서
엿보는 어린잎은 어찌 봄을 알았을꼬
배시시 웃는 모습에
봄볕이 되려 무안한듯
추녀허리 돌아서는 해그림자
바삐도 넘어간다
17.저기뭐꼬
저기 햇살따라 오시는
봄님 머문 자리
기신대는 눈앞에
쏫아나는 저기 뭐꼬
뭐랄까 어렴풋이 잊혀진
유년의 꿈속같이
꼬물꼬물 피어나네
초록빛 꿈에 취한 아지랑이
18.가문비 나무
가을에 남겼던 이야기
오늘 바람에게 들었네
문드러져 채곡히 쌓인
낙엽 같은 이야기
비에 젖은 가문비
내 눈은 회한에 젖네
나이테로 남겨지듯
희미한 기억들은
무채색 하늘빛에
자국 없는 그리움을 그리네
19.달빛 지우기
달막이는 바람도
쉬이 들지 못하는 창호에
빛살 무딘 달님은
여릿한 그림자 드리우네
지새울 밤은 아직도
멀고 길기만 한데
우두커니 찾아온 너를
눈감고 외면하려네
기껍게 보듬던 그리움도
그지없이 부추긴 네 탓이려니
20.수선화
수북히 쌓인 눈 햇살에 녹고
선명한 초록잎 만나는 날
화사한 눈빛 내가 먼저 웃었네
수결하듯이 흙을 돋우고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화단옆에 앉으면 그윽해지는 눈길
수채화 물감처럼 노란잎 번져올라
선잠깨듯 피는 꽃
화들짝 꿈인양 내 가슴속에도
21.진눈깨비
진창길
굽어도는
어스름 산자락에
눈시린
바람안고
홀로이 걸어가면
깨어져
쏱아지는
상념의 파편인가
비워진
가슴속에
난무하는 아우성
22.그까이꺼
그녀가 떠나갔다네
사랑하기에 가야 한다네
까무러쳐 마음 아파도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네
이별이 별건가
잠시 가끔 마음만 아플 뿐이네
꺼떡없이 웃고 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네
23.섣달 그믐
섣달 차가운 밤에
아무개 아무개의 집
달빛조차 사라진 어둠속
낮아진 지붕아래
그 아무개들의 반가운 웃음이
불 밝힐적에
믐칫 멈칫 더디 오너라
밝아올 정월 새날이여
24.감기몸살
감출 수 없는 갈구는
기침처럼 들썩이고
기나긴 밤 열에 들떠
일어나 앉은 새벽
몸살 난 땀이 식어
혼미함이 달아날 때
살소매에 돋는 소름은
피지 못한 그리움의 열꽃
25.OTL
O로지 당신에게
모든걸 바쳤는데
T끌처럼 하찮게
버리려 하십니까
LG카드 결제일은
다가오는데
26.칫솔질
칫솔 너만은
솔직한 내 속 알지
질끈 눈감고 다 보여주마
27.불쏘시개
不必要한 종이조각
불필요한 아궁이에
쏘시개로 집어넣고
삭정이에 장작얹어
시뻘겋게 불붙이니
너는이미 재가돼도
개거품에 김이오른
떡시루속 백설기야
28.백작약
백지처럼 하얀잎에
단심을 품었으니
작열하는 붉은 태양
부러울게 뭐있냐만
약은 바람 한줄기는
마냥 참기 힘들어라
29.한없는 그리움
한겨울 바람소리 긴밤내 스쳐듣고
없는듯 숨은듯이 희미한 달을불러
는적한 이마음속에 연정하나 피우니
그치는 바람소리 내맘을 알았더냐
리밤이 길다마는 기어이 닭이울면
움트던 그리움하나 삭아질까 두렵네
30.섣달보름
섣불리 생각마라
네 그리움을 위해 뜬게 아니다
달아난 님이나
좋아보낸 님이나
보고프면 찾아가지
나만 잡고 하소연
름름한 내 모습도
내일이면 달아난다
31.떡실신
떡하니 누워서
세상일은 잊었소
실실 웃는 얼굴은
무슨 꿈 꾸시길래
신짝을 베게 삼아
저리 태평하실까
32.똥장군
똥그란 통속에도
꿈은 있나니
장다리밭에 뒹굴다
새싹 굳어 오르면
군락진 노란꽃 찿아오는
호랑나비 만날 꿈
33.그그그 (그리움)
그냥
그렇게
그리워하지
그깟
그리움
그럴 건 뭐 있나
그저
그러다
그리 갈 것을
34.고드름
고른 햇살
퍼지는 처마 끝
지난밤 바람에 자랐는가
드맑은 투명함이
미련한 심사를 후벼오니
부신 눈을 감을까
늠름한 해가 올라
꽃처럼 툭툭 떨어지면
덩달아 부서지는 마음 한쪽
35.수선화꽃
수줍은 노란 꽃
선뜻한 줄기 위로
화사한 봄기운이 내밀면
꽃잎 위에 떨리는 햇살같이
은연할 내 눈길
언 땅속에서 아직도 꿈꾸는 너
제풀에 지친 이 기다림도 함께 묻으리니
피어날 그날이면
나의 꿈도 함께 깨워다오
36.얼음꽃
얼핏 스쳐 간
눈부심은 햇살이었나
음울한 바람에
솟아오른 대지의 눈물
꽃이라 불러보면
가만히 부서지는 반짝임만
37.함박눈이 오면
함부로
창을 열지 마시게
박꽃 같은 하얀 눈은
깃털처럼 가벼워도
눈물 비운 그대에겐
천근만근 억장이 되리니
이렇게 눈 오는 날은
그냥 미닫이 하얀 문밖
오시는 눈 소리에 눈감고
그 소리 그칠 즈음에
면경 같은 달 뜨거든
식혀진 달빛이나 한가득 들이시게
38.겨울밤 꿈에
겨드랑이 에서
날개가 나온다면
정말 좋겠네
울근불근
심장에서
터져나온 핏줄로
밤꽃처럼 하얀
깃을 세워
설렌 맘 추스린 후
꿈틀대며
엎드린 몸뚱아리
구름 뚫고 올라가면
에이는 바람소리
비켜나는 하늘 끝
거침없을 영혼이여
39.무심한 반달
무작정 떠오르면
어찌하란 말이냐
심란한 마음속엔
새벽 대바람 소리
한지 바른 문풍지
달빛 감고 우는데
반쯤 가린 처마 턱
푸른빛 몰리기 전
달싹이는 이 맘부터
잠재우고 가거라
40.동치미
동지 긴 밤 시퍼런 성깔머리 자르고 누워
치댄 소금물에 정(淨)하게 몸닦고 삭히더니
미묘한 향불러 울화에 막힌 속 뚫어주네
41.싸리나무
싸리나무
꽃이 지고 잎이 지고
가을은 여름보다 길었네
리별이란
예감하는 날부터 시작되는
긴 그리움이려니
나직하게
늘어진 싸릿대
고운 줄기 골라베어
무심결에 오실님
고운 발길 쓸어줄
싸리비나 엮어볼까
42.구절초
구천을 돌아 나온
어느 님의 혼이려니
절규의 몸짓으로
부여잡은 바위틈
초혼의 골바람이
소리 내어 우는데
진 자리 마른 꽃
찬 서리에 스러지고
날쌍한 겨울빛에
속대마저 흩어져도
은연히 품은 향은
언 땅아래 스미리라
43.채송화
채송화 살찐 줄기
꽃 떨구고 마르는데
송곳 같은 가을빛이
문구멍 파고드니
화사하게 피어나네
바닥 가득 햇살꽃
44.아주까리
아직은 끝낼 수 없는
기다림이다
주홍빛 장미라도 품었다면
찢어진 잎쯤이야 상관없이
까만 밤에도 어슴한
그림자로 서 있을 텐데
리)이제는 그마저 바람에 지니
내 그리움을 먼저 떨구련다
45.달은 밝은데
달빛에 우는 바람
그 소리에 울 뻔하였네
은홍색 뒷산 잎
하마 반은 떨어졌으리
밝을녘 산새 소리
언뜻 잠 깨우면
은은한 달빛 바람에
맘졸인 갈잎 하나
데구루루 뒷마당엔
또 하나 남은 가을
46.가슴앓이
가랑잎 지는 소리를
괜시리 들었네
슴슴히 지나던 별빛
쫓아 보낸 첫닭 소리에
앓던 이빨처럼
지겨워진 불면의 밤아
이젠 그만 끝내야지
고단한 희열마저도 남김없이
47.그리움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었다 하겠지요
리(이)제는
그 시절을
잊었다 하겠지요
움트는
그리움만
가만히 안습니다
48.모래톱
모진 바람의
이야기가 스며서
강물이 울고 갔으리
래일이면
또 다른 사연으로
서걱이는 갈대밭에
톱날 같은
상처 보듬고
달빛도 소리 없이 우는 밤
49조각달
조롱박 여문 저녁
시린 바람 마른 넝쿨
각질처럼 떨어지는
그리움의 비늘인가
달아나는 초이렛달
뿌리고간 달빛인가
조바심에 들뜬 가슴
파고드는 망연함에
각혈하듯 애써뱉는
헛기침이 무안한데
달각이는 창호소리
내 마음을 아시는지
50.수채화
수국은 이미 졌는데
비 내리는 저 자리엔
수북이 쌓여있는
긴 여름의 잔해들
채 썰듯 흩어진 그리움이
바람 만나 돌아올 즈음
채 마르지 못한 눈물 자국
가슴속에 번져가면
화려한 단풍 안고 올
수줍은 구절초를
화병에 물 담고서
진작부터 기다려볼까
51.수세미 그늘
수세미 한 잎 지면
사라지는 여름 한켠
세모시 저고리
파고드는 소슬바람에
미적이던 여름해가
바삐가는데
그 뜨거운 햇살
가려주던 잎사이로
늘썽한 하늘빛
가을이란다
52.비 온 뒤 햇살
비파 잎 하얀 솜털
눈부신 오전
온다 간다 말없이
떠나버린 가을비
뒤척이던 지난밤엔
괜한 시비였나
햇살 아래서 나는
비에 젖은 그리움을 말린다
살랑대는 바람의 위안으로
53.미닫이 문
미미한 바람이라도
불지 마라
지붕 위 하얀 박꽃 흩어질라
닫은 문 창호에
달빛 안고 흔들리는 신우대
잠 못 든 내 맘을 아는지
이 밤은 너나 나나
잠들긴 틀렸으니
미닫이 하얀 창 사이 두고
문살에 새겨보는
긴 이야기 밤새도록
나눠보자
54.꽃담 그늘
꽃이야 지든 말든
무심히 걸어가면
담벼락엔 긴 햇살
눈부신 성화다
그윽한 추억자락
스치는 향기인가
늘어진 가지아래
멈춰보는 발걸음
55.담쟁이
담을 넘는 담쟁이
넝쿨따라 하늘을 보네
담 밖에는 가을인가
하늘은 코발트빛
쟁쟁하게 비추는 햇살
눈부시게 빛나
쟁그랑 하늘 깨어 진다면
내 맘에도 금이 가겠네
이 시간을 어찌할까
이미 온 가을은 어찌 할까
이리 저리 엉켜 넘는 담쟁이
나는 담을 넘지 못하네
56.닭의 장풀
닭이 우는 이른 새벽
남색 하늘을 여는 꽃
의지하듯 기대선 개울가
물빛 적신 꽃잎에
장대비 거둬간 바람이
되돌아 일렁이면
풀잠자리 얇은 날개
하늘빛을 닮아간다
57.강변 살자
강물이 일으킨 바람은
갈대숲에 스미고
변방을 떠도는 별빛은
두 눈 속에 스며라
살처럼 지나는 세월은
따라가기 싫으니
자는 듯 고요한 갈대숲
별빛 안고 가볼까
58.달빛 스민 청산
달그림자
고요한 청산엔
빛 푸른 별들이
숨었는가
스미는 바람에
뒤척이는 짙푸름
민둥한 어둔 하늘
뭉개고 앉아
청솔가지 청대나무
사각이는 노루 발소리
산은 다만 품고만 있네
바라보는 이 마음마저
59.달맞이꽃
달빛 고와
그 빛에 몸 적시고
맞닿을 듯
달무리에 설레어라
이슬진 꽃잎에
햇살드는 아침이면
꽃등에 가는 허리
달빛 고리 걸어야지
60;능소화
능욕의 빛
칠월의 들뜬 열정
소리없이
넘어온 유혹의 자태
화끈 달아오른
그 속내를 내가 모를까
61.채송화
채울 수 없는
열망은 먼데
채이는 발걸음에
엎드린 아픔
송이마다 맺은
핏빛 열정은
송구하게 엎드린
줄기 위에 피어
화답 없는 먼 하늘
땡볕 아래
화르르 불타네
낮게 숙인 내 눈 속에서
62.꼬마별
꼬물꼬물 꼬마별
반딧불이 타고 갔나
마디마디 신우대
초록빛을 밟고 갔나
별똥별 지는 언덕
맞닿은 하늘 곱다
꼬박꼬박 꼬마별
반쯤 지난 새벽인데
마디마디 마디풀
하얀 꽃도 누웠는데
별똥별 지는 언덕
내려와 자려무나
63.물망초
물론 당신은
나를 잊었겠지요
망설이다가 나는
잊지 못했습니다
초여름 짧은 밤이
지나갑니다
64.아카시아
아른한 꽃송이 흔들리니
햇살이 뿌려놓는 추억의 향기
카라멜처럼 달콤히 떨어지는 꽃밥은
날려가는 유년의 기억
시간을 잉태한 나무의
거친 껍질에 기대선
아버지가 된 아이의 미소가
거친 주름 속에 스민다
65.개망초
개망초 환한 밤
부엉이 우는 소리
망연한 흔들림에
달빛도 흩어지니
초여름 짧은 밤
애태우는 꽃 그림자
66.소나기
소름 돋는 팔뚝은 젖었다
전율하는 초목 위의 천둥소리
나른한 노동과
부지런한 땅이 쉬는 시간
기포처럼 터지는 흙비린내만
마른 대지 위로 퍼져간다
67.나들이 길
나팔꽃 피려나
뜨거운 햇살 식히는
저녁바람
들창 열면
나뭇가지 사이로
어슴한 동구 길
이지러진 달빛에
낡은 그리움도
들뜨는 시간
길손의 먼 눈빛으로
어슷대며 떠나보는
내 마음의 나들이 길
68.소주한병
소리나지 않는
투명한 그리움
주체할 수 없는
불현듯 그리움
한 잔 한 잔
채워가는 그리움
병 속에는 다만
남아있는 그리움
69.참새떼
참새야 날아라
참싸리 덤불 밖으로
새벽 푸른빛 밀치는
새빨간 해가 나왔다
떼쓰듯 지저귀는 소리에
떼밀려 하루가 시작된다
70.무지개
무 배추 장다리
연보라에 노란 꽃
무당벌레 등허리
붉은빛을 빌리고
지는 별 꼬리 끝
푸른빛을 잘라다가
지근지근 눌러 섞어
여우비 맑은 비에 헹구면
개여울 부신 빛
머금고 번져가네
개망초 종일 서서
흔들리는 언덕 위로
71.낮달
낮달아 하늘빛 엷게
적시고 어디 가나
달롱개 속뿌리 살찌는
들판 지나 저 멀리
고샅길 언뜻 보이는
당산나무 손짓 따라
운명처럼 선을 긋고
앉아있는 저 산 너머 너머
날빛 피해 숨을 곳
찾아가느냐
72.꽃다지
꽃지는
소리 들려
봄날이 서두른다
다독여
눈물 하나
약속으로 묻으려니
지는 날
설워마라
꽃으로 다시 오마
73.꽃이 피면 생각나리
꽃피던 날 서둘러
이 세상에 손 흔들고
피안의 길 찾아가셨네
면전의 울음소리 높여봐도
생전에는 못 뵈오리
각기 다른 생사의 갈림길에서
나를 두고 차마 어찌 가셨나
리본 날려 꽃다발 흩어지던 날
(아버님 영전에 바치는 글)
74.냉이꽃
냉랭한 찬바람 속
환하게 웃더니만
이 봄은 아직 먼데
너는 흩어진다
꽃지는 사월
나는 어찌하라고
75.초생달
초저녁 별빛 베고
길게 누운 저 달님
생각에 잠겨서는
일어날 줄 모르니
달각달각 저 소리
별 부딪는 새벽일세
76.어머니
어릴 적 엄마 손잡고
시장 따라 다녔지
머리가 세어버린 어머니
이젠 내 팔 잡고 나들이
니도 생각해봐라
세월 참 많이 흘렀지?
77.안개비
안녕이라네 비가 오는데
개달개비 자주꽃잎
비명처럼 흔들리는데
안녕이라네 젖은 눈길로
개개비 울던 갈대밭
비칠대며 누워있는데
안녕이라네 비가 그치면
개인 하늘 부신 햇살
비수처럼 후벼올텐데
78.그리움
그대 머리칼에
빛나던 햇살 한 줌
리라꽃 피던 날
스치던 향기 한 줌
움질대는 이 맘속에
반짝이며 지나간다
79.봄맞이
봄볕이 하도 좋아
처마길이 내려온
툇마루에 앉았네
맞보이는 돌담은
뜰 안의 넓이만큼
햇살 가둬 버티니
이 내 들뜬 맘속에도
저만큼의 자리 비워
봄볕 가득 들여볼까
80.꽃 망 울
꽃이 되려는 너보다
꽃을 기다리는 내가
망설이는 너보다도
망망함이 가득한데
울걱대는 초조한 속을
울리고 가는 바람소리
81.병아리
햇병아리
여린 부리에
맺힌 물방울
살짝 어린
세상풍경에
햇살이 반짝
가만가만
딛는 걸음
따라가는 봄바람
운모 비늘
금모래알
뒹구는 앞마당
데려가는
어미 닭 날갯짓에
봄볕이 늘어진다.
82.쥐불놀이
쥐어짜는 징소리에
들썩이는 불꽃춤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 타는 기원의 쪽지들
놀지는 저 하늘에
불붙어 비킨 구름
이 한 세월 부대끼는
고운님들 타는 눈빛
83.해빙기
해를 따라서
빙글 도는 바람
기다리는 봄을 깨우면
해를 향해
빙긋 웃으며
기지개 켜는 아지랑이
해찬 들판에
빙 둘러선 새싹들
기운이 넘치겠지.
84.겨울 아침
겨릅대 쌓아둔
울 섶에는 참새떼
아궁이 굴뚝에는
침착한 아침연기
겨우 솟은 아침 해
울긋하게 퍼지니
아련한 햇살 자리
침묵에서 깨어나고
겨자색 흙담에는
울금향 스미는 듯
아롱아롱 비치어
침잠하는 아침풍경
85.겨울 나그네
겨우 발길 피한
나생이 엎드린
밭고랑 양지녁
울부짖는 바람에
언 발로 디딘 땅
하얀 꿈이 고개 든다
나목이 둘러선
먼발치엔 아침 해에
물러서는 서릿발
그리움은 내색 없이
다만 가만히
품고만 있으라고
네 낮은 음성을
가던 발길 멈추고
위로인 양 듣는다
86.북두칠성
북풍에 쓸려가는
밤하늘 푸른 별빛
두 팔을 벌려보면
품 안에 쏱아질 듯
칠보(七寶)의 눈물방울
차갑게 흩뿌리며
성에 낀 듯 희뿌연
은하수 밀고 간다
87.겨울나무 길목에서
겨우내 얼어붙은
응달진 소릿길에
울음 긴 갈까마귀
해 그림자 업고 가네
나이 든 고욤나무
뒤틀어진 가지 끝에
무심코 매달려서
숨죽이는 마른 열매
길어진 저녁해에
새 봄을 꿈꾸는가
목놓은 바람 소리
일어나는 마른풀들
에이는 시린 뿌리
억장의 대지 위로
서산위 타는 해가
벌겋게 번져간다
88.새벽달
새근새근
아기는
잠이들고
벽을 등진
엄마의
따신 가슴
달빛거둘
새벽아
오지마라
89.산비둘기
산 넘어 첩첩산
노을빛 쌓이는 곳
산 그림자 스미어
긴 정적에 묻히면
비탈 긴 마루턱
홀로 섰을 소나무
적적해서 늘어진
아무런 가지 위에
둘 곳 없는 눈빛을
날개 속에 가두니
어둠이 서툴러
어둠에 감춘 날개
기척 없는 햇살이
솔잎에 흔들리면
비로소 깨었는가
빛을 나눌 날갯짓
90.탱자나무
탱자열매
떨어진 자리
자라나는
덜 여문 가시
나이 어려
얕보지 마라
무턱대고
만지면 아파
91.탱자 가시
탱자 꽃 피던 사월
그 하얀 꽃밥
둘러선 가시들은
자욱한 아침 안개
채 걷히기 전
뚫고선 내 맘 같아
가실 님 저 먼발치
긴 모퉁이길
아련한 햇살 들면
시허연 그리움 빛
먼 시간 속에
지쳐갈 기다림아
92.새벽달
새긴 정 어디 갔나
달빛에 섞여가는
새벽빛 푸르르다
벽지 위 낙서처럼
나눠 쥔 언약들은
먼지만 쌓여가고
달군 쇠 식었어도
불기운 품었으니
달 같은 멍울 하나
93.겨울비
겨울의 길목
바람도 없이
조용히 적시는 비는
울먹이는 그대
어깨를 닮았기에
가만히 바라만 보네
비워진 대지에
위안의 말씀으로
내리는 비
겨이삭 드러누워
미끄러진 토장길
어둔 비에 젖어들면
울렁이는 기다림에
지친 이들 들뜬 눈빛
떨리는 저녁
비파나무 잎이 시리도록
그 잎에 내 눈도 시리도록
그렇게 내리네
94.겨 울 빛
겨자색 들판에
서릿발 걷어내는
초겨울 해가 번지니
울타리 둘러선
골담초 들쑤시는
참새떼 어수선한데
빛좋은 돌담옆
기대어 바라보는
눈부신 햇살 따습다
95.마삭줄
마당옆
양지쪽에
돌쌓아 탑만들어
마삭줄
올린 후에
한 여름 그 긴 해를
삭혀진
정을 모아
님인듯 바라보니
삭정이
마른가슴
보듬듯 감싸올라
줄기찬
바람에도
놓칠까 껴안더니
줄줄이
내민 잎이
붉은 빛 연정일세
96.비오고 낙엽지고
비탈길
숨어드는
산자락 대숲에는
오전에
내린 빗물
떨치는 부산함에
고염나무 잎이 지고
떡갈나무 잎이 지고
낙낙한
마음 한 쪽
아껴둔 그리움은
엽차향
낙엽 한 장
들쑤셔 다시 접고
지칫거린 갈바람을
돌려세운 돌더미
고이 감싼 마삭줄에
내 마음을 숨겨보네
97.아궁이
아른대는 불꽃의 절규는
식어진 재가 되어
궁극에는 한숨같은 연기로
어둠속 헤메는데
이글대던 내 눈 속 불꽃은
가슴속에 다시 타네
98.헤어짐
그냥 잊읍시다
녀(여)지없는 시간을 이제는 버립시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대로 살다보면
처음처럼 될 것이니
음표중 되돌이표를 기억할 것.
울음은 단 한번 적당한 슬픔으로
던져버린 미련은 돌아보지 않기
날려보는 웃음으로 지웁시다.
99.어깨동무친구
어릴적 우린
해맑은
웃음 하나로
깨금발 뛰며
골목을
누벼다녔지
동구밖 멀리
어스름
달이 나오면
무서움 설핏
깃들인
싸리 울타리
친한손 잡고
무작정
내친 달음질
구만리 여기
세월을
쫒아 왔구나
100.이 별
동그란
얼굴
수줍던 미소
그렁한
눈물
떨구던 고개
라르고
느린
이별의 노래
미안해
이젠
못볼것 같아
101.탱자나무
탱기분천 하였는지
가시를 들었구나
자리한 곳 담장이라
그 누굴 못오시려
나른한 한낮에도
키를 세워 막아서니
무안해서 돌아가는
내 뒷모습 보이는가
102.억 새 풀
억지로 핀것이 아니다
지난 가을 누군가의 열망이
새록새록 살아나와
하얀꿈으로 피어나서
풀썩이는 고개짓에
하염없이 불러볼 뿐
103.꽃 그림자
꽃자리 밝은 햇살
꽃물이 번진듯이
그 자리 남기었던
그 언약 흔적인가
임오실 그 날이면
임 반길 눈물 자리
자오록히 내 맘 깔아
자개빛깔 아른아른
104.꽃이 진다
꽃 그림자 사라질까
꽃이 먼저 지려한다
이릉대던 네 눈물이 떨어질까
이제 그만 지려한다
진작 질 걸 그랬지
진물나던 가슴이나 마르게
다소곳이 앉은 자리
다짐이나 묻어둘걸
105.상사화
상처난 바위옆에
잎도 없이 덩그러니
사연은 모르지만
여린잎은 울고 갔지
화사한 꽃 대궁속엔
눈물닮은 햇살 가득
106.창열어 별들이고
창여니 저 먼 별빛
차갑게 빛나는데
열병난 가슴속은
아린듯 저며오니
어울진 갈비 한 쪽
밀듯이 비집어서
별 하나 빛도 고이
다독여 심어놓고
들판위 주인없어
헤메는 바람 한 줌
이슬로 고이 씻어
날리듯 뿌려주면
고운님 미소닮은
씨알이 아니될까
107.메밀꽃 핀 밤
메아리 들려오나
달빛아래 하얀물결
밀어를 나누는듯
바람결에 웅성이니
꽃무리 빛난 강이
산아래로 흘러간다
필 꽃은 그만피거라
이만해도 내맘같다
무턱대고 피고지면
내 눈물이 강이될라
렵서 한 장 가슴 한 뼘
그 사연만 적어두마
108.겨울나무
나직히 불던바람
무섭게 몰아쳐서
야멸찬 겨울이 오면
나목의 시린몸으로
무작정 서있으리니
야윈가지 꼭대기
겨우살이 끌어안으면
울고 가는 바람소리
나즈막한 언덕위
무채색 하늘만 바라봐도
야속하다 않으리
108.삼천포 앞바다
삼삼한
눈을 뜨고
바다를 바라보니
천진한
갈매기는
석양에 바삐날고
포만에
들뜬 배는
갈매기 뒤로하네
앞지른
방파제엔
수평선 넘어올듯
바래는
저문 빛엔
쏱아지는 낙조반짝
다비운
가슴속엔
하늘바다 들여놓네
109.높이 선 소나무야
높이 선 소나무야
이 세상 굽어보니 어떠하냐
선채로 긴 세월 벌린 팔로
소소한 세상사를 다 들었으니
나중에 네가 죽고 장작되어
무쇠솥 데울적에
야심한 밤 길다말고 마디마디 풀어보렴
110.달맞이꽃
달랑 꽃잎 넉장 펼쳐든
은밀한 네 심사를
아주까리 넓은 잎에 숨기고선
니그로 설운 살갗 닮은 어둠속에 묵묵히 서있구나
뜨내기 바람이 네 발아래 머물다 일어설때
고쳐앉는 니 품새가
그지없이 연정품은 여인네가
리본매고 단장하는 모양새라
움트는 네 그리움은 숨기지 못하리라
만삭의 둥근달은 오늘 아니 뜬다
뜨물같이 희뿌연 밤하늘엔
누비던 별조차도 뜸해지고
나즈막한 풀넝쿨만 네 발아래 기어든다
112.백일홍이 지면 내 지친 열정도 진다
백날 만날 피렸더냐
일곱 달 더한 두 달 품었던 화냥기로
홍계닭 벼슬마냥 백일을 불질러 놓고서는
이제는 갈바람에 지는구나
지난한 장맛비엔
면면히 나만을 흘기더니
내치듯이 서둘러 가는구나
지천으로 널렸던 여름풀도
친절을 베풀듯이 스러지고
열사의 사막같던 저 긴 밭엔
정적마냥 고요히 서리가 올라치면
도리없이 땀 흘리던 내 노동도 식어가리
진정 함께 한여름을 불태우던 너
다 지니고 가거라 내 지친 열정까지
111.애기똥풀
애썼다 긴 밤 홀로이 지샜느냐
기다란 줄기위 남은 달빛 비스듬히
똥그란 이슬이 널 보듬다
풀여치 날개짓에 또르르 떨어진다
112.옥수수
옥죄는 그리움을 님모르게 쌓았더니
수수잎 바람으로 나모르게 키워서는
수많은 알갱이로 채곡채곡 숨겼구나.
113.병나발
병이여
나를 위해
발바닥을 보여다오
114.개나발
개나리 진달래 환하게 피는 날
나들이 가자고 진작부터 날 잡더니
발라당 누워서 일어날 줄 모르는 님
115.생채기
생각나면 가려운게
어쩌면 잊었던 추억같애
채워진 새살처럼
시간이야 흘렀지만
기억의 한 편에
덧날지도 모를 상처로
116.수숫대
수수잎 서걱이는 밤이 오면
숫돌처럼 닳아버린 상현달
대책없는 맘속에 괜한 부아질
117.페가수스
페달을 젓듯 힘찬 날개짓에
가차없이 화살맞은 키메라
수많은 별마다 가득한 전설
스치는 바람이 밤마다 들려준다
118.색종이
색색의 빛깔곱게
문지르고 접어서
종이학을 접을까
백합꽃을 접을까
이리저리 생각하다
내 마음만 꼬깃꼬깃
119.여울목
여우비 그친뒤 눈부신 물그림은
울엄마 가슴팍 빛나던 브로치네
목빼고 앉으니 내눈도 반짝반짝
120.초사흘달
초저녁
사방을
흘기니
달뜬다
121.그대 눈빛
당신의 눈빛이
내 이마에 멈추면
신열처럼 들뜬 전율
발끝까지 퍼지고
참기도 벅찬
행복이 고개들면
멋적게 웃어주던
그 미소에 어린 햇살
쟁그랑 소리치며
투명하게 빛을 낸다
이 아름다운 사랑
당신의 눈빛속에 영원히
122.겨울비
가파른 저 먼 언덕
겨울비에 아른하다
족히 내린 비에
마당에 고인 빗물
은은하게 비추인
처마자락 아른거리니
나부대던 바람도
슬며시 돌아간다
의중없이 바라보는 눈길
둘데없이 비에 묻혀
꽃피던 담벼락
빈자리만 바라본다
123.가을 그리움
떨고 있나 구절초
어린 꽃이 안쓰러워
지는 해가
는질는질 더디진다
낙조의 붉은 빛에
엽차향 진해지고
에이는 찬기운에 마음까지 여몄으면
도랑처럼 패인 마음 골엔
네모진 엽서같은 그리움
생각난듯 붙여놓고
각혈하듯 떨어지는 붉은잎 빈 가지만
뿐질러보는 애맨 심정
124.갈색추억단상
갈바람
서걱서걱
억새밭에 숨었나
색바랜
가을풍경
멈춘듯이 고요해
추려본
사념속에
어렴풋한 시간들
억장에
숨어들어
긴 세월을 녹였네
단 한 번
긴 바람에
부서져서 날릴까
상실의
길섶에서
안쓰러운 조바심
125.가을꽃 구절초
가랑비 스며든
마른풀은 바래어 젖었다
을러대는 바람에
버티어선 산자락도 누웠다
꽃이어서 좋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구름이 몰려가는 하늘
그 아래 오래도록 서서
절절한 노래 부르다가
어느 가을 저무는 날
초연한 아픔도 버리지 않고
가만히 안고 가련다
126.장독대위 홍시
장지문 열자마자
지나는 아침바람
독위를 쓸고가니
감잎이 우수수
대청마루 끝에서
가을이 갈 채비를 한다
위로의 말을 내가 꺼낼까
이별의 말을 네가 꺼낼까
홍자색 늙은 홍시하나
망설이다 떨어진다
시린 눈 둘데없어
바라본 하늘 햇살은 곱다
127.허수아비사랑
허적대며 내 옷깃을
뒤적이는 바람아
수월하게 지던 해가
오늘은 지리하다
아득하게 밀쳐버린
저 먼 산은
비어가는 들끝머리
또 한 걸음 달아났다
사붓이 뜨는 달에
내 그림자 흔들리면
낭인의 모습되어
달빛안고 서 있으리
129.조강지처
조각조각 맞춰기운 우리인연 조각보라
강산바뀐 긴세월을 잘도엮어 살아왔지
지친듯이 돌아숙인 그어깨에 사연많아
처음본듯 애써돌린 내눈길이 젖어가네
130.열병
혼을태운 염원인가 태양보다 환한달빛
정령들이 달려왔나 온누리가 눈부시다
신들린듯 홀린눈엔 들뜬마음 빠져나와
성큼자란 달빛속을 끝도없이 달려간다
131.사금파리
사루비아 단내에
허기지던 어린시절
금빛 은빛 사금파리
꽃밭가에 뒹굴어 부신 빛은
파상풍에 아려오듯 가슴속
날카로운 조각으로 박혔어도
리(이)제는 아련한 기억속
곱게 아문 내 맘의 흔적이네
132.매미 소리
매달리고 싶은
그 무엇이 있었으면 나도 좋겠다
미늘처럼 파고드는 저 소리
너는 붙잡고 울 곳이라도 있는데
소소한 바람과
그 바람에 흔들리는 잎 그림자만
리(이)별하는 여름 앞에서
별수 없는 내 앞에서 얼른거리고 있다
133.고추잠자리
고른 햇살 따갑게
꽁무니에 매달고
추켜세운 날개엔
투명한 바람의 해작질
잠방대는 하늘에
가을빛이 퍼지면
자투리 내 맘에도
물결이 일어
리(이)제는 고운빛
단풍도 들려나
134.바람에 꽃이 지네
바람이
종일 불던 날
남새밭에
키 큰 장다리
에워싼 돌담엔
긴 휘파람 소리
꽃은
바람 따라 왔다가
이제는
바람끝에서 우는데
지레 예감하는
이별 앞에서
네 떨리는 잎보다
먼저 떨군 내 눈길
135.흔 적
흔들지 마라 바람아
적적한 고요가 눈물된다
136.망초
망설이다 피었구나
초저녁 달빛품고
137.봄날은 간다
봄비에 꽃 한가득
안고 오더니
날름대는 바람에
흐트려 놓고선
은갈치 비늘마냥
눈부신 햇살속을
간들간들 웃으며
손흔들고 지나간다
다보록한 청보리
이삭패는 두렁길로
138.
다음에 또다른 生이 있어
음지의 땅아래서 잠든 후에
세밀한 바람이
대나무를 부대끼니 그 뿌리가
향내나던 관을 뚫고
기약없던 내 영혼을
딸랑대는 무당의 방울처럼
기별하듯 깨울적에
金 李 朴 鄭 흔한 姓도 필요없이
삼짓날 제비마냥
행복한 날개로 오르리라
내안의 모든것이
안식의 지하에서 망각되고
의복마냥 거추장스럽던 욕심묻은 애착마저
퍼런 영혼의 불빛으로 태우리니
즐거이 비 바람아 자유로운 나를 맞으라
공허함이 밀려와
주인없는 육신마저 썩을 즈음
씨를 품은
왕대나무 첫째마디
정한 뿌리위에 깃을 들여
경건함을
섭생하듯
스스로의
마음을
일러 다스리리라
성긴 별이 뜨는
야심한 밤이 와서
착찹한 고독이
한 시름을 더하면
여우의 긴 울음처럼
우울한 한숨도 쉬려니와
왕왕 우는 대나무가지
별빛을 차가이 쓸어모아
불같은 영혼의 노함도
휘감듯이 삭혀주리라
은밀하던 밤이 밝아
하늘가득
수없는 먼지들이 날아오르는 봄날
예언자의 번뜩이는
감성을 빌린후
대금같은 휘파람소리 길게 뽑아
감은 영혼의 눈을 떠고서는
말갈기를 세우듯이
인간세상 영원히 떠나리라
용렬했던 나의
生이여
즐겨먹던
탁주 한 잔
동치미 한그릇에
시름잊고
조기(弔旗)걸린
라마승의 염불처럼
가없는 저 곳으로
망자되어 가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