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신앙과 결합하게 된 제주불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반 야 제
주 5일제가 되면서 주말마다 느껴지는 기대와 설렘이 있다. 하지만 매달 셋째 주 일요일을 맞는 설렘은 더하다. 덩달아 기대도 더 커진다.
매달 셋째 주 일요일은 ‘꼬라’ 행사가 있는 날이다. 그런데 오늘은 더욱 의미가 크다. 지난달에 ‘꼬라’ 2차를 회향하고 오늘은 3차 행사를 처음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설렘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커피도 준비하고, 뜨거운 물도 보온병에 넣고 과일도 챙겼다. 배낭을 메고 공설운동장에 도착하자 1․2차 때 함께 했던 도반들과 제하스님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인사를 나누고 모두들 차에 몸을 싣고 첫 출발지인 고관사로 향했다.
고관사에서 우리는 참가자들이 많아서 장소가 비좁은 관계로 지도법사이신 제량스님께 일 배의 예를 올리고 예불이 시작되었다. 제량스님께서 3차 순례길 참가자들에게 환영의 말씀이 있었다. 4년 전 출발한 ‘꼬라’ 순례길이 2차를 마치고 3차를 시작함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순례길은 올레길이나 숲길 걷기처럼 운동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마음으로 걸어야 한다는 깨우침의 말씀도 있었다. 그렇다. 순례자의 마음은 부처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 부처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제주섬과 한라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내 자신을 좀 더 아끼고 자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참 나를 찾아가는 기회가 되기를 스님께서는 바라신다며 또 짐을 지게 되었다는 말씀도 하셨다.
제량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2차 회향 때 스님께서 마치는 말씀을 하시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오는 눈물을 감추시며 말을 잇지 못하시던 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 1차․2차 행사 때는 아무런 부담 없이 그저 즐겁게만 참여하였었는데 스님께서는 ‘날이 나쁘지는 않을까,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마칠 수는 있을까’등 온갖 근심 걱정으로 모든 짐을 지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셨음을 느끼며 나의 눈시울도 붉어져 고개를 떨구었다.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그저 즐겁게 따라만 다녔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러웠었다. 그러시면서 또 다시 마다하시지 않으시고 짐을 짊어지시는 스님을 뵈며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어서 임원소개가 있었다. 쌀쌀한 것도 더운 것도 내 마음에 달려 있다며 이 순례가 주위와 나눌 수 있는 모태가 되길 바란다며 저금통을 마련하여 동전 모으기를 해 보자는 회장님의 말씀도 있었다. 모두가 부처와 같은 말씀이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선물이 한아름이다. 다보, 손수건 등 여러 가지 보시물들을 선물로 받고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1차․2차 때는 해안가 사찰 순례였는데, 3차 때는 중산간을 중심으로 53개 사찰을 순례할 예정이라며 귀한 사찰들에 소중한 인연을 심어서 오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평화통일불사리탑사로 향했다.
평화통일불사리탑사는 제주에 유배되어 입적한 조선시대 허응 보우스님과 환성 지안스님, 그리고 중국의 정법 대사 등의 순교비를 세워 전법 정신을 잇고, 일제강점기와 제주 4·3 사건 당시 억울하게 숨진 수많은 영령들을 위로하며 우리 민족의 숙원인 평화 통일을 이루어 내고자 하는 원력으로 창건된 절로서 1980년대 중반 고관사의 중창 불사 도중 아미타불 복장에서 진신 사리가 나오자 당시 주지였던 도림 스님이 원을 세워 1998년 8월 평화통일불사리탑사를 완공하였다고 한다. 평화통일불사리탑사에는 3층으로 된 불사리탑과 보우대사와 지안 스님의 기념비 등이 세워져 있었다.
평화불사리탑돌이를 하고 1시간쯤 걸어서 우리는 1만8천의 신들이 좌정한 제주신당 와흘 본향당에 도착했다. 출입할 수 있는 철문이 잠겨 있어서 우리 일행은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모습과 담 너머로 보이는 400년이 넘었다는 큰 팽나무만 보아도 신당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제주 곳곳의 본향당에는 송당 본향신의 자손들이 흩어져 있는데, 이곳은 송당 본향신의 11번째 아들인 백조도령을 모신 당이라 했다. 마음 속 염원을 가득 담은 소지를 걸어 놓고 빌었던 우리 조상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며 우리도 소원을 빌어 보았다.
본향당 옆에서 우리는 간단한 간식을 먹고 그 다음 코스인 화천사로 향했다. 화천사에 도착하니 12시가 되었다. 사찰 경내 뒤뜰에 모셔진 5기의 미륵 오 석불을 뵈었다. 5기 모두 다른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이형상 목사 재임당시 절 오백 당 오백을 불태워 버려 이석상만 남았다고 전하고 있었다. 세련미가 전혀 없고 투박스러웠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운 석상의 모습이 우리들에게 편안함을 안겨 준다. 이 사찰이 위치한 동회천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이 되면 이 5기 석불을 모시고 마을제를 지내는데 다른 마을제와는 달리 육류를 사용하지 않는 불교의식으로서 민간신앙이 불교신앙과 결합하여 마을 공동체 의식으로 발전한 독특한 양식으로 제주불교가 민중들과 어떻게 함께 존속되어 왔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다. 주지 스님이 안 계셔서 우리는 법당에 들어가 삼배의 예를 올리고 국청사로 향했다. 국청사로 향하는 길에 화천사 주지 스님께서 다른 행사관계로 우리를 맞이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뒤따라 생수를 보내주셨다. 이 생수 역시 주지 스님의 마음이 담긴 특별한 물이다.
한 시간쯤 걸어 국청사에 도착하니 오후 1시 30분이 되었다. 유치원이 있는 사찰이라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유치원 선생님들이 우리들을 맞이해 주셔서 한편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마음 감출 수가 없었다. 법당에 들어가 삼배의 예를 올리고 주지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우리를 환영해 주시는 말씀과 우리가 바라는 것은 행복한 삶인데, 행복은 내생이 아니라 금생에 머물러 있는 곳에서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과 더불어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꽃향기가 피어나듯이 내 몸에서 은은하게 피어나는 것이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또한 견딤을 잊어버릴 때 행복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참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감인대<堪忍待>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과 함께 야명조와 갈은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소유욕보다는 베푸는 마음으로 회향할 때는 찬 것, 더운 것 모두 아름다운 꽃향기로 피어나기를 바란다고 하시면서 탐욕, 성냄, 질투, 어리석음을 제도할 수 있는 수행이 되도록 하라는 말씀도 있으셨다. 그러시면서 소유욕심으로 받지 말고 베푼다는 마음으로 받아 가길 바란다면서 예쁜 주머니 선물도 주셨다.
우리는 예불을 마치고 1층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간단한 점심을 준비해 갔는데 탁자에 떡이랑 김치, 사발면을 마련해 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이 것 저 것 모두 폐를 끼치는 것 같아 감사하면서도 송구스러웠다.
돌아오는 길에 제주국립박물관에서 제주에서 만나는 ‘부처의 미소’ 전시회가 있어서 들렀다. 박물관 견학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보통은 그냥 한 번 쑤욱 둘러보고 마치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스님께서 시대별로 차이점이라든지 부처와 보살의 차이점 등을 하나 하나 설명을 해 주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관람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무엇보다도 부처와 함께 하고자 하는 같은 마음을 가진 순례 참가자들과 함께 관람할 수 있어서 더 뜻이 깊었으리라 생각된다.
오늘 3차 ‘꼬라’ 순례 첫날을 마무리 하면서 이번 순례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좀 더 행복한 삶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도록 노력해 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