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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그리스도의 몸인 형제사랑의집 원문보기 글쓴이: 형제사랑
원수로 낙담케 하라!- 김용의 선교사 |
성 역사가 52일 만에 엘룰월 25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 하여 스스로 낙담 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느6:15,16) [예루살렘 성벽재건] 예루살렘 성벽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전과 더불어 민족의 상징이요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또한 외부의 적을 막아주는 담이었으며 공동체의 강성함과 평화로움의 상징이었고 존재의 영광이었다. 그 성이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남은 유다백성들은 대적들로 인해 큰 환란과 능욕을 피할 길이 없었다. 바벨론 포로에서 기적적인 귀환을 했던 소수의 남은 자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은 수많은 역경 가운데서 간신히 성전을 다시 세웠으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새롭게 살아가야할 그들의 삶은 무너진 성벽으로 인해 원수들의 공격으로 능욕과 큰 고통을 당하고 위기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본국의 형제들로부터 이러한 비보를 접하게 된 페르시아 황실의 고위관리였던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 그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과 선한 손의 도우심을 받아(예루살렘 성벽재건)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이 주어졌다. 예상을 넘어선 원수들의 갖가지 조롱과 방해공작. 느헤미야에 대한 집요한 공격 - 회유, 설득, 공갈, 협박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들 - 총독, 주변지역 방백, 타락한 선지자와 제사장들, 유다의 귀족과 방백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 - 화해하자, 의논하자, 모함, 거짓 예언, 함정, 내부첩자, 군사력... 유다 내부의 문제와 연약함들 - 사기 저하, 두려움, 재정, 과중한 노역과 경계임무, 가진 자의 이기주의, 타락한 종교지도자들, 유약한 백성들... 실로 총력적이고 총체적인 공격과 방해였다. 역사는 크고 그 일을 감당해야 하는 유다 민족은 엉성하기만 했다. 이때 느헤미야의 믿음은 이렇게 소리쳤다.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느 4:14) 그에게 물러설 여지는 없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의 결론이었다. 가라면 가고, 세우라면 세우는 것이다. 타협이나 주저함은 있을 수 없다. 결론이 난 사람의 태도는 단호하다. 복음이 결론이 되게 하라! 밤낮으로 공격하면 밤낮으로 방어했다. 7번 넘어지면 8번 일어났다. 위협하면 단호히 물리쳤다. 타협코자 하면 주저없이 거절했다. 아무리 흔들고 찌르고 주저앉히려고 해도 그를 막을 자는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없었다. 달리 될 수 없는 사실을 진리라 한다. 그 진리를 최후 결론으로 택하고 다른 여지를 남기지 않은 사람을 믿음의 사람이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어떤 잡스러운 것도 허용해서는 안된다. 오직 주님께서 일하시도록 단 마음으로 믿음의 순종이 있을 뿐이다. 성벽재건의 나팔소리는 결국 승리의 환호로 이어졌고, 모든 대적과 원수들이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할렐루야! 원수로 두려워 낙담케 하는 자 [복음의 내면 성벽재건] 이제 우리에게 하나님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명령하신다. (엡 4:24) 견고한 진리의 성벽으로 무장된 새사람은 적의 공격에서 자유롭고 하나님의 영광과 평화로 가득하다. 불의와 죄악으로 철저히 허물어졌던 내면의 성벽 원수들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어 능욕과 고통을 당하고 매일 위기의 순간을 살아야 하는 황폐한 예루살렘 성 같은, 무너진 인격, 육적 소욕에 길들여진 정신적 육체적 영적 습관들... 이제 폐허의 잔재들을 치워내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복음에 합당한 내면의 성벽을 견고히 세워야 한다. 이 일에는 원수가 우는 사자처럼 덤벼든다. 할 수 있는 모든 자와 모든 방법들을 동원하고 밤낮으로 집요하게 방해하고 두려움으로 위협한다. 익숙한 내면의 적들이 내통하며 괴롭힌다. 성벽재건은 불가능해 보이고 이런 핑계, 저런 이유로 주저앉고 돌아서려는 유혹이 끊임없이 흔들어 댄다. 적당한 선에서 중단해 버린 성벽들, 원수의 손에 여전히 맡긴 채 성문은 적의 수중에 있다. 성전은 간신히 건축했는데, 성벽이 무너져 있어 삶의 현장은 원수의 짓밟힘 아래 여전히 허덕이는 예루살렘 성은 없는가? 이런 사람에게 복음은 허망한 구호요, 유산된 꿈이며 추억이 된 열정 취급을 당한다. 복음이 삶이 되지 못하면 들에서 곰과 사자를 피한 후에 집에 들어와 뱀에게 물려죽은 자의 운명과 같다. (암 5:19)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무너진 성벽을 철저히 쌓으라! 복음의 진리로 삶의 구석구석 옛사람의 잔재들을 미련 두지 말고 쓸어버리고 견고한 복음의 의와 진리로 세우라. 느헤미야 같은 복음진리가 결론이 되어버린 믿음으로 취하라. <여기라! 드리라! 신뢰하라!> 원수를 두려워말고 십자가로 승리하신 부활의 주를 기억하고 싸우라! 싸우라! 태도를 분명히 하라. 복음의 내면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방해하는 자는 그가 누구든 물리치라. 완성하기까지! 결론이 난 사람의 태도는 단호하다. 복음이 결론이 되게 하라. 이 믿음의 순종을 사용하여 일하시는 분은 영광의 주님이시다. 원수가 더 이상의 기대를 갖지 못하도록 끝을 내라.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알고 원수들이 두려워 낙담하도록! 마라나타!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