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천의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성주군 수륜면 수성리 일대 3만여평의 거대한 뜰은 밭미나리, 상추, 신선초, 배추, 케일, 쑥갓 등 10여종의 무공해 채소가 재배되는 비닐하우스 150여개로 흰물결을 이룬다.
이곳은 시중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늘푸른'' 유기농산 생산지다. 지하 150m에서 끌어올린 암반청정수와 토착미생물, 한방 영양제 등 유기농법을 이용한 ''환경 농산물''의 대표적 집산촌. 하지만 어느 하우스에서든 농약은 찾아볼 수 없다.
하우스 41개동(4만여평)의 농사를 짓고 있는 이영학(57)씨 미나리밭에서 인부들과 함께 미나리 수확 작업을 하며 하루 동안 비지땀을 흘렸다.
이씨는 장화를 건네주고 자상하게 작업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길이 100여m의 하우스 안에는 겨우내 성장한 새파란 미나리들이 향긋한 향을 뿜어내며 자태를 잔뜩 뽐내고 있다.
첫 작업은 동네에 살며 5년 남짓 이곳에서 날품을 팔고있는 60대 할머니 3명과 물에 흠뻑 젖어 질퍽질퍽한 하우스밭에서 미나리를 베는 것으로 시작했다.
낫으로 익숙한 손놀림을 하던 이춘예(64) 할머니는 일이 어눌하고 서툰 기자를 보자 안타까운 모습이다. "아이구 미나리 베려다 손 베겠다. 초보일꾼이구만. 클때 농촌에서 일도 안하고 뭐했노"라며 은근히 핀잔을 쏟아낸다.
"여기 미나리는 길이 30cm 내외로 잎사귀도 들쑥날쑥해 여태껏 봐온 길쭉길쭉하고 크기도 거의 비슷한 일반 미나리와 너무 다르다"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러자 바로 반응을 보인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여기 미나리는 짧고 크기도 제각각인 반면 농약을 쓰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이것보다 2배나 길고 모양도 똑같은 미나리가 나온다"며 ''미나리 지식''을 전파했다.
미나리가 플라스틱 상자에 가득 차면 하우스내에 설치된 자동운반기로 운반 트럭으로 옮긴다. 대량 생산을 위해 자동화시설을 갖춘 것이다. 운반 트럭을 몰고 나타난 사람은 농장 주인 이씨의 아들인 귀공자풍의 상근(32)씨. 다소 의외라서 말을 건넸다.
대구 모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대학 연구실에서 근무하던 상근씨는 가업을 잇고 친환경 영농이 사업성도 있다고 판단해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부친과 함께 현지에서 거주하는 ''귀농''이 아니라 부인, 딸과 함께 대구 성서에서 살며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고 있다.
그는 "대나무숲이나 낙엽 등 부엽토가 쌓여 있는 곳에 하얗게 서식하는 토착미생물을 채취해 2주일간 확대, 배양과정을 거쳐 소똥 등으로 만든 퇴비와 섞어 뿌려 이곳 토양 생태계를 살리고 복원한다"며 "1년 내내 재배가 가능하지만 보통 2개월의 재배와 수확기간이 끝나면 자연상태 그대로의 흙을 살리기 위해 2개월여의 휴식기를 가진다"고 말했다. 연중무휴로 재배하고 수확하면 당장은 소득이 높겠지만 토양이 몸살을 앓아 점차 채소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때마침 미나리 수확을 막 끝내고 토착미생물이 뿌려진 바로 옆 하우스 문을 열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상근씨는 "자연 흙에다 인삼, 생강, 당귀, 계피, 감초, 마늘 등을 막걸리와 소주로 발효.숙성시켜 생육초기에서 수확기까지 뿌려주면 식물의 혈액순환과 양분 흡수력을 높여주고 진딧물 등 병균을 쫓아내는 ''생물 농약''기능을 한다"면서 환경영농 비법을 귀띔했다. "화학농약은 한번 뿌리는데 3천원이 들어가는 반면 유기농은 그 10배(3만원)가 소요됩니다". 그는 "친환경.고품질 농산물이지만 미나리 값은 일반 미나리의 2배 정도에 불과하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수확한 미나리는 하우스 인근에 설치된 세척장으로 이동해 다듬고 전해수(전기분해 물)를 이용해 만들어진 강산성수로 행여 있을지도 모를 세균 멸균 작업을 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미나리를 한 움큼씩 잡고 일일이 물로 세척하고 다듬는 작업을 할머니 인부 6명과 쪼그려 앉은 채 하다보니 금세 어깨와 다리에 통증이 온다.
일이 힘들지않느냐는 질문에 이월순(65) 할머니는 "무슨 소리고? 집에서 할 일없이 있으면 뭐하노? 이곳 하우스는 한 철이 아니라 1년내내 일거리가 있기 때문에 정말 좋다"고 말한다. 1일 2만원 정도의 일당제로 고용되나 고향 사람이고 워낙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하다보니 작업장은 모두가 한 가족처럼 정겨운 분위기다.
이 과정을 거친 미나리는 항상 저온상태를 유지하는 50평 규모의 자체 예냉창고에 옮겨지고 저온 수송차가 동네 간이집하장으로 운반한다.
집하장에서도 역시 할머니들이 빠른 솜씨로 소포장 작업으로 완제품을 만들었다. 포장지에는 생산자 인적사항과 사진, 연락처, ''3년이상 농약.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농산물''이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품질인증 내용이 기재돼 환경 농산물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소비자가 구매후 제품에 이상이 있으면 즉시 ''리콜''이 가능하도록 서비스도 한다.
포장지가 수륜농협의 ''가야산 한방'' 브랜드와 ''늘푸른 유기농산'' 두 종류여서 의문을 표시하자 농장주 이영학씨는 "유통센터마다 브랜드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대구.동아백화점은 ''늘푸른''으로, 삼성홈플러스와 하나로마트, 달성유통센터 등에는 ''가야산 한방''마크로 납품한다"면서 동일 제품임을 강조했다.
이날 하루동안 수확한 미나리는 300kg 분량으로 녹즙용으로 240kg이 납품되고 60kg 정도가 대형 매장으로 들어간다. 동행한 수륜농협 한상철(47) 상무도 "시판 금액은 150g당 1천200원으로 일반 미나리 600원에 비해 2배나 비싸지만 소비자들에게 환경친화적인 고품질농산물이란 인식이 퍼져 인기를 끌고있다"고 자랑했다.
작업이 끝나자 농장 주인 이씨를 비롯한 ''늘푸른'' 생산자들은 "직접 맛을 봐야한다"며 미나리, 상추, 쑥갓, 신선초 등 각종 채소에다 삼겸살, 소주를 곁들인 ''풍성한'' 회식자리를 마련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