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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말>
이번에 다룰 교회시대는 "필라델피아"와 "라오디케아"인데 가장 대조적인 두 교회입니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책망받지 않은 유일한 교회인데 A.D.1500-1900년 경의 시대에 해당하며, 이 기간 동안 엄청난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종교 개혁", "르네상스", "과학혁명",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특히 복음주의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었기 때문에 후천년주의자들은 이때 "천국이 확장되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끝 무렵에 배교와 부패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는데, 신비주의(오컬트, 마술, 은사주의, 뉴에이지즘), 성경 개역(웨스트콧, 홀트), 그리고 "진화론"이 이 때 생겨났습니다. 이 세 가지는 다음 시대인 라오디케아 교회시대를 주도하는 현상이며 교회들을 진리의 말씀에서 이탈시키는 마귀의 도구들입니다.
<요한계시록 3:7-22>
7 필라델피아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거룩하신 분, 진실하신 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열면 아무도 닫을 수 없고 또 닫으면 아무도 열 수 없는 분께서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8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노라. 이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9 보라,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아니요, 오히려 거짓말하는 자들을 내가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로 만들리니, 보라, 내가 그들을 오게 하여 너의 발 앞에 경배하게 하여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기 때문에 나도 시험의 때에 너를 지키리니, 이는 온 세상에 임하여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때라.
1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들어서 아무도 너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으로 삼으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또 내가 그 사람 위에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성, 즉 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하고, 또 나의 새 이름도 그 사람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14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시며,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그처럼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노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너는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에게 권고하노니 내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요하게 되고, 흰 옷을 사서 입음으로 너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않게 하며, 또 안약을 네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내가 사랑하는 자마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21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을 자격을 주리니, 이는 내가 이겨서 내 아버지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으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7 필라델피아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거룩하신 분, 진실하신 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열면 아무도 닫을 수 없고 또 닫으면 아무도 열 수 없는 분께서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8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노라. 이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필라델피아"는 "형제 사랑"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 두가지의 결합어입니다. 이 기간은 1500년에서 1900년까지의 교회 기간인데, 교회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들이 이 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에 "필라델피아 시대의 부흥"들은 전무후무한 부흥들로 남아 있습니다. 라오디케아 시대의 많은 교회들은 필라델피아 시대를 회고하며 그때 부흥의 분위기를 다시 일으켜 보려고 애쓰지만 몇 가지 이유로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지금 시대에는 "종교개혁 성경"(KJV)을 던져 버리고 학자들이 변개한 성경을 위주로 쓰고 있습니다. "교리"가 불분명한 성경으로는 부흥을 이룰 수 없습니다. 둘쨰, 라오디케아 시대의 대부분 크리스챤들은 복음 전파를 원하지 않고 교회 건물 안에서 친목회 분위기를 즐기는 사교 회원들로 변질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열린 문"을 가졌는데 라오디케아 시대의 "닫힌 문"(계 3:20)과 대조적입니다. 그랬던 이유는 이 교회가 "말씀을 지켰기 때문"인데 그들에게는 한 가지 성경 즉 1611년 Authorized Version만 있었습니다. 1904년 영국 해외 선교 협회가 KJV를 버리고 개역성서(RV)를 사용하기로 결정하면서 필라델피아 시대는 끝나게 됩니다. 구한말에 한국에 들어온 성서는 유감되게도 KJV에서 번역된 바른 성경이 아닌, 그때 막 등장한 변개된 개역 성서(RV)였습니다. 그래서 한국 개신교는 그 교회사의 시작과 함께 라오디케아 시대 풍조에 편입되는 불운을 맞았습니다.
9 보라,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아니요, 오히려 거짓말하는 자들을 내가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로 만들리니, 보라, 내가 그들을 오게 하여 너의 발 앞에 경배하게 하여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기 때문에 나도 시험의 때에 너를 지키리니, 이는 온 세상에 임하여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때라.
스머나 기간에 활동하던 "자칭 유대인들"(계 2:9)이 재등장하는데, 스머나 때의 그 거짓말쟁이들은 일종의 "후천년주의자"였고 계 3:9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로마 카톨릭의 뿌리가 되는 후천년 거짓말쟁이들은 종교개혁 기간을 거쳐 지금까지도 오래된 미신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 미신은, 카톨릭 교회가 구약 이스라엘을 대신한 하나님의 신정 통치 국가이며 그 막강한 권세는 사도 베드로 계승자인 로마 교황에게 있다는 내용입니다.
9절을 보면 사탄의 회당(로마 카톨릭)이 필라델피아 기간(1500-1900)에 점차 힘을 잃고 코너에 몰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시대에 교황들은 암흑 시대에 누렸던 절대 권력을 거의 상실해 버렸고 로욜라의 예수회를 창설해서 권력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비밀 공작을 준비했습니다. 교황들은 예수회를 통해서 성경 개정 음모를 준비했고 영국에서 그 작업이 수행되어서 웨스트콧과 홀트는 카톨릭 헬라어 원문을 다시 세상에 펴냈습니다.
10절을 "환란전 휴거"로 적용하는 세대주의자들이 있는데 다소 부주의한 해석입니다. 여기에 "끌려 올라가는" 존재는 나오지 않고, "이리 올라오라"는 말도 없습니다. 단지 시험의 때에 너를 지키리니라는 약속만 있습니다. 교리적으로는 신실한 대환란 성도가 환란 끝까지 지켜진다는 약속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물론 "시험의 때"(약 1:12)는 대환란의 때이며 대환란 때의 일곱 교회 중 필라델피아 교회 유형의 교회는 시험을 통과하리라는 그 말씀입니다. 이 구절에서 환란전 휴거의 이미지를 끌어 내려고 노력하면 더욱 이상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인내의 말을 지키다"(행위!!)는 조건이 그리스도인이 환란전 휴거를 받는 조건입니까? 그렇다면 믿음이 아닌 행위 구원이 됩니다.
1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들어서 아무도 너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으로 삼으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또 내가 그 사람 위에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성, 즉 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하고, 또 나의 새 이름도 그 사람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그리스도인도 구원은 잃지 않지만 면류관은 빼앗길 수 있습니다(요이 1:8).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후에 실족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건강"(고전 11:29-30)을 잃을 수 있고 상급(고전 3:15), 천년왕국의 유업(골 3:24-25), 기쁨(시 51:12), "구원의 확신"(요일 3:20-22), "(육신의) 생명"(고전 10:10-11)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일곱 교회들은 2,3장에서 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2장에서 4개, 3장에서 3개가 나뉘고 있는데, 2장에서는 부흥하는 교회(에베소, 스머나)로 시작해서 몰락한 교회(퍼가모, 두아티라)로 끝맺고, 3장에서는 "열정이 있는" 교회(필라델피아)로 시작해서 미지근하고 세속화된 교회(라오디케아)로 끝맺습니다. 인간이 역사에서 배우는 유일한 사실은 인간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역사가 "하강의 법칙"을 밟아 왔듯이 교회사도 하강의 법칙대로 움직입니다.
12절의 단어들을 세부적으로 해석하기란 다소 난해합니다. 이 구절들의 언급이 대환란 시대에 교리적으로 적용되는 말씀임은 분명합니다. 그들 위에 "새 예루살렘"이 기록되는 이유는 아마도 영원시대의 구원받은 민족들이 생명나무들로 접근하기 위해 새 예루살렘 도성에 출입할 권리를 갖는 것(계 22:14)과 상관이 있는 것 같고,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진 "하늘 시민권"(빌 3:20)과 직접 관련은 없어 보입니다.
14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시며,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그처럼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노라.
라오디케아는 "사람들의 권리(혹은 정의)"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시민의 권리"를 의미하는데, A.D.1900년대 이후의 분위기와 일치합니다(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 확산). 문제는 이 시대 분위기가 교회 안으로 스며 들어와서 하나님의 교회까지 "민주화"를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적 남녀평등을 교회에 접목해서 여자 재직들을 임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자 목사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은사주의에서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모든 교단들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카톨릭이 여자 사제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은 "바알 제사장 전통"을 따르기 때문이고 바알의 제사장들은 모두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가 여자 목사를 선임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과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신약 성경의 헌법대로 시행해야 하고(딤전 3:2), 세상 풍조를 따라서는 안됩니다.
라오디케아 시대에는 더이상 "하나님의 권리"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리는 교회 안에 남아있지 않고 인간들의 권리 요구만 난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하신 분"(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of God)은 전치사 of가 the beginning(시작하신 분)을 목적어가 아닌 주어로 받고 있는 형태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 구절을 보면 the beginning을 목적어로 낼름 해석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된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역개정은 "피조된 하나님 교리"를 지지하는 성서임을 보여주려는지 이 구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첫번째 피조물"로 만들었습니다.
라오디게아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개역개정 계 3:14)
라오디케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차지도 덥지도 아니하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라오디케아 분위기에 취한 목사들의 설교나 그들의 책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대신 신학자들의 철학에 의지해서 행동하고, 진리인지 비진리인지 노선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우물쭈물대면서 배교에 동참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차던지 덥던지 하라"고 선택을 요구하시는데, 주님은 항상 확실한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믿음과 철학을 절충해서 신학체계를 만든 배교한 학자들은 "차던지 덥던지" 할 수 없게 되었는데 그래서 주님께서는 "과학과 철학"(딤전 6:20, 골 2:8)을 경계하라 하셨습니다.
16절의 "토해 내겠노라"는 말씀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될 수 없는데 우리는 주님의 위장에 있는 음식물이 아니라 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2:27, 엡 5:30). 개별 그리스도인 지체는 주님으로부터 토해질 수 없지만 "지역 교회"는 토해버릴 수(버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개별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 시대 라오디케아 교회 전체에 이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교리적으로는 대환란에 처한 라오디케아 환란성도들 각 개인에게도 적용될 것입니다.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너는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7절, 라오디케아 교회는 실제로 부유하고 부족한 게 없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성전들을 가졌습니다. 성전은 그리스도인의 몸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들이 유대교를 흉내내고 있는 것(자칭 유대인)을 알 수 있습니다. 라오디케아 교인들은 탐욕스러운 유다 이스카리옷처럼 돈을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을 망각하고 "이웃 사랑"만 외칩니다(막 14:5). 라오디케아 교회는 수고하고 짐진 자처럼 돈을 짊어지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18 내가 너에게 권고하노니 내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요하게 되고, 흰 옷을 사서 입음으로 너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않게 하며, 또 안약을 네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불로 단련된 금(벧전 1:7)"은 역경을 이기고 승리한 믿음을 얻으라는 것인데 라오디케아 시대 분위기에 동참하지 않은 소수의 무리가 있고 그들의 믿음을 본보고 배우라는 말씀 같습니다. 라오디케아의 본받을 자들은 모렘이나 중국, 북한에 남아 있는 진실된 지하 성도들일 것입니다.
"흰 옷"은 성도의 의를 말하는데(계 16:15), 대환란 성도들은 자기 행위의 의가 없으면 라오디케아 교회처럼 벌거벗은 채로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즉 심판받고 멸망합니다.
"안약"은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특별한 방법(침을 뱉어 진흙으로)으로 치유하신 사건(요 9:6)과 연결되는데, 이스라엘의 회복(고후 3:13-16)과 관련이 있습니다. 교회시대의 대상에 적용한다면 복음이 가려진 사람들(고후 4:4)에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 내가 사랑하는 자마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21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을 자격을 주리니, 이는 내가 이겨서 내 아버지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으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20절은 "실제적인 건물 교회 문"을 언급하고 있어서 특이한데, 지역교회가 문자적 문을 가진 건물로 언급되는 곳은 성경에서 이 한 구절 뿐입니다. 왜냐하면 라오디케아 교회는 교회당 건축에 미쳐 있는 교회들이기 때문이고 건물들을 지은 다음 예수님을 내보내고 문을 닫아걸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이 부문의 선두주자로서 천 년 이상 화려한 건물 건축에 몰두해 왔습니다. 배교한 라오디케아 교회들은 로마 카톨릭을 그대로 본받아 행하고 있는 것이고 주님께서는 그 배교한 교회들 밖에서 쓸쓸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 교회에 있는 누구라도 문을 열면 주님은 들어가서 그와 더불어 교제하겠다고 하십니다. 함께 먹는 것은 영적 교제를 말합니다.
물론 복음전파자가 이 구절을 영적 의미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문"을 "마음문"이라 적용해서 불신자가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면 들어와서 교제하신다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문자적으로는 교회 건물을 의미합니다.
<마무리>
필라델피아 교회는 힘찬 복음 전파와 선교로 시작한 열린 문의 교회였고 흠잡을 데 없이 신실했습니다. 많은 라오디케아 교회들이 필라델피아 시대를 따라잡아 보려고 애쓰지만 바른 성경을 저버리고, 은사주의 편법을 사용해서 부흥을 흉내내기 때문에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시대는 밭(기독교계)에 알곡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고 독보리가 가득한(마 13:26) 씁쓸한 세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직 라오디케아 시대에서 주님과 교제할 성도들을 찾고 계시기 때문에 이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배교하고 완전히 주님을 내쫓고 봉쇄해 버리는 세태가 온다면 그때 주님께서는 더이상 밖에 서 계시지 않고 거듭난 자녀들을 세상에서 분리시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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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