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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예방기간에도 개방하는 명산
문경 주흘산(1,106m)
유적지 답사 겸 온천 겸한 봄 산행적지
문경 주흘산은 봄꽃, 특히 북방계식물이 많기로 이름나 있는 산이다. 1979년 한국자연보전협의회의 식물조사에서 망개나무, 금강애기나리, 가는잎향유, 꼬리진달래 등이 발견되었고, 1988년 김융언씨(서울대 식물학)의 조사에서 만주바람꽃, 회리바람꽃, 홀아비바람꽃, 꿩의바람꽃, 나도바람꽃 등이 추가되었다. 이후에도 흰각시붓꽃, 미치광이풀, 어리병풍, 점현호색 등의 식물이 발견된 산이 주흘산이다.
이렇게 봄꽃이 많이 피는 주흘산은 문경의 진산으로 받들어져 온 명산이기도 하다. 남한땅 백두대간 중 5분의 1에 해당하는 긴 산줄기를 비롯해 수많은 산봉이 솟아 있는 곳이 문경이건만 등산인들은 문경 하면 주흘산만 떠올린다. 이는 문경읍을 마주한 동사면이 철옹성과 같은 산세로 솟구치고 산릉은 부봉(935m)에서 백두대간과 합쳐지면서 더욱 장대한 산세를 일으키고 있는 데다 육산과 골산의 아름다움을 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게다.
주흘산은 문경새재 덕분에 유명세가 한층 높아진 산이기도 하다.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에 뻗어 있는 골짜기는 영남대로 또는 문경새재라 하여 옛날 영남 사람들이 한양을 오갈 때 많이 이용하던 길이다. 황톳길 그대로 남아 있는 새재길은 왜적을 막기 위해 세운 성 등 옛모습을 간직한 유적들이 곳곳에 보존되어 있다.
주흘산은 황톳길 새재 고갯길을 중심으로 문경새재도립공원이 조성되고, 은척면소재지에 석탄박물관이 들어서는가 하면 97년 읍내에 온천이 개발된 이후 유적답사 겸 온천산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5월 말까지 곡충골~주봉~조곡골 코스만 가능
주흘산은 지곡리 월복산계곡~전좌문 코스, 남릉, 주봉~정상~부봉, 주봉~부봉~마패봉 코스 등 다양한 코스가 있으나 산불예방기간이 끝나는 5월 말까지는 주코스인 곡충골 코스와 조곡골 2개 코스에 한해 산행이 허용된다. 산행기점은 제1관문과 제2관문으로, 대개 제1관문에서 곡충골을 타고 여궁폭포~혜국사를 거쳐 영봉인 1075m봉을 경유해 정상에 오른 다음 북서쪽 꽃밭서들이 있는 조곡골을 거쳐 제2관문으로 내려서거나 역코스를 따른다. 지곡리 월복사 계곡을 거슬러 전좌문과 1075m봉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도 있다.
곡충골을 오르노라면 여궁폭포는 스쳐 지나가게 된다. 여심폭포라고도 불리는 이 폭포는 등산로에서 계곡으로 내려서야만 보인다. 골짜기를 벗어나 사면길로 들어서기 전 위쪽 사면에 자리잡은 혜국사는 고려 공민왕이 난을 피해 머물렀던 고찰로 전해지고 있다.
혜국사 갈림목에서 오른쪽 길을 따르노라면 아름드리 소나무숲을 지나 가파른 사면길로 접어든다. 영봉 동릉 상의 안부에 오르기 전 샘터 일원은 대궐터라 불리는 곳으로, 이곳에서 식수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대궐터를 지나 더욱 가팔라진 사면을 거슬러 오르면 동릉 안부에 이르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다 보면 영봉에 닿기 전 협곡 사이로 문경시 일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면서 가슴 서늘하게 하는 전좌문에 이른다. 전좌문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던 길에 동화원 부근 어류동에 머물면서 매일 올라 북쪽 계립령로(현 하늘재)를 바라보며 좋은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다렸다고 하는 곳이다. 제1관문에서 전좌문까지는 약 2시간 걸린다.
전좌문에서 100여m 떨어진 영봉은 날렵하면서도 기운찬 남동릉과 더불어 조령산에서 백화산으로 뻗는 백두대간과 운달산~오정산 능선 등 문경시 일원의 산봉과 들녘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정상은 영봉에서 북릉을 따라 30분 정도 가야 한다. 영봉에 비해 정상의 조망이 좋지 않아 대개 주봉을 거치지 않고 곧장 조곡골을 따라 꽃밭서들을 거쳐 제2관문(조곡관)으로 내려선다(1시간30분 소요). 조곡관에서 제1관문으로 내려서는 사이 산불됴심비, 교귀정, 조령원터, 촬영장 등 볼거리가 많이 있다(1시간 소요).
문경새재 도립공원은 촬영장 입장료만 받는다.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 주차료는 대형 4,000원, 승용차 2,000원. 새재도립공원 관리사무소 부근에 위치한 박물관은 9월 말까지 리모델링 공사 중이라 관람이 불가하다. 전화 054-571-0709. http://saejae.mg21.go.kr
*교통
문경읍까지는 서울 동서울종합터미널(02-446-8000 ARS), 대구 북부시외버스정류장(053-557-1851) 등지에서 노선버스가 다닌다. 부산에서는 동부시외버스터미널(051-508-9966 ARS)에서 충주행 직행버스를 이용하고 충주에서 갈아탄다.
충주에서 문경행은 공용정류장(043-845-0001 ARS)에서 20분 간격 운행하고, 문경읍에서 새재도립공원행은 시외버스정류장(054-571-0343)에서 완행이나 시내버스가 약 1시간 간격으로 다닌다(완행 1,000원, 직행 1,500원). 제3관문행 노선버스는 충주시외버스정류장 부근 시내버스정류소에서 06:45, 13:40, 16:05 또는 국민은행 버스정류소에서 09:05 출발하는 시내버스 이용. 요금 2,900원. 문의 삼화버스공사 043-844-4112.
*숙식
도립공원 입구에는 토속음식점과 민박집이 많이 있다. 새재할매집(054-571-5600)은 한우, 염소불고기와 버섯전골이 푸짐하면서도 맛깔스런 음식으로 이름나 있다.
제3관문 일원에는 고사리 마을 부근에도 민박집이 여럿 있다. 고사리마을과 제3관문 사이의 조령산자연휴양림(043-833-7994)가 인기있는 휴양림이다. 문경새재 도립공원 내 문경관광호텔(054-571-8001)은 1급 호텔로 한식당과 연회석을 갖추고 있다. 문경읍내의 문경종합온천(054-571-2002)은 이름난 대형 온천이다.
*문경관광호텔~남서릉~꼬깔봉~전좌문~정상~대궐터~혜국사~여궁폭포~제1관문
참조:명산 명품 산행로 1관문~여궁폭포~주봉~영봉~부봉~5봉~2관문~1관문 16.5km
참고:월간<산> 200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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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부봉 잇는 환상의 회귀산행코스
3월부터 5월 중순까지 국내 대부분의 산에는 계엄령과 다름없는 입산통제가 내려진다. 산불경방, 산불나기 쉬운 때이니 등산인을 입장시키지 않으면 불이 나지 않으리라는 편한 발상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입산금지 유무를 확인하지 않고 원행에 나섰다간 낭패보기 십상이다.
그러나 빨간 모자에 완장 두른 이들과 옥신각신 하지 않고 오히려 어서오십시오 인사를 받을 만큼 등산인을 환영하는 산도 있다. 그중 경북 문경에 가면 부분개방이 아닌 온 산의 등산로를 개방해 사시사철 등산인을 받아들이는 주흘산이 있다.
3월 5일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날이다. 주흘산 매표소를 지나 길 옆을 장식한 단풍나무와 왕벗나무의 사열을 받으며 제1관문을 향해 갔다. 오른쪽 산비탈 과수원에선 가지치기 작업이 한창이다. 나무 타는 냄새가 훈풍을 타고 코를 자극한다.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흐르는 조령천은 한시도 입을 다물지 않는다. 마치 개학 첫날 초등학교 1학년 교실 같다.
관문 왼쪽 조령천너머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한눈에 봐도 천연요새다. 그럼에도 새재는 몽고와 왜적이 쳐들어 왔을 때 제대로 방어된 적이 없다. 임진왜란 세해 전 중봉 조헌이 왜적방비책으로 새재 경계강화를 상소했으나 묵살되고 말았다. 임진왜란 때 왜적은 부산상륙 후 보름도 되지 않아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이 이끈 조선군을 궤멸시켰다. 만일 신립이 새재에 배수진을 쳤다면 전란의 양상은 바뀌었을 것이라고 한다.
봄볕이 내리쬐는 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스무 남짓한 비석군이 눈에 들어왔다. 경상감사, 문경현감 등의 공적을 기린 공적비, 불망비가 비바람에 씻긴 채 옛일을 치묵으로 증언하는 듯하다. 특이하게 쇠로 된 것도 보인다. 그 앞 움푹 파인 구덩이에는 푯말과 토막낸 나무로 둘러져 있다.
수령 6백년된 전나무가 있던 자리였다. 새재를 오가던 길손들의 벗이 돼주던 이 나무는 78년 9월 수명을 다했다. 그해 11월 문경군수가 20년생 전나무를 심어 맥을 잇게 했다는 구덩이 둘레를 걸어 보았다. 12걸음이나 됐다. 앞으로 600년 후 웅장하게 자라 있을 전나무 앞에 선 나그네는 무슨 생각을 할 것일까.경상북도 개도 100주년기념 타임캡슐 매설예정지이기도 한 이곳을 떠나 혜국사로 향했다.
'부스럭'
길 옆 숲에서 소리가 났다. 나무를 흔들고 가는 바람소리와 달라 눈에 힘을 줘본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암꿩 두 마리가 꽁지 빠지도록 도망간다.
주흘산장 앞 철사다리를 올라 등산로를 따랐다. 알록달록한 리본이 여럿이다. 너덜지대 사이로 가며 건너편 산을 바라봤다. 울울창창한 나무에 비친 햇살이 잔잔히 부서지며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치솟은 절벽 아래로 난 여궁폭포 가는 길은 인디아나존스가 황금 찾아가는 길을 연상케 한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림에도 폭포는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빼꼼 내어봐도 마찬가지였다. 물을 건너 대여섯 발짝 올라가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20여m 높이에서 물을 쏟아내리는 폭포 생김새가 여인의 수줍은 속살을 연상케 한다.
선녀가 구름타고 내려와 목욕했다는 밋밋한 전설, 하염없이 물줄기를 쏟는 폭포는 나그네 마으을 위로하려는지 수면 바로 위에서 일곱 색깔 무지개를 연출해 준다. 흐르는 물길을 따라 눈길을 보낸다. 좁은 계곡 끝에는 온몸에 햇살을 받은 조령산이 하늘을 가르고 있다.
여궁폭포 위 전망 좋은 널찍한 터에서 숨을 골랐다. 한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주변을 장식한 소나무들은 걸출한 수묵화를 연상시키듯 풍광이 빼어났다.
혜국사 가는 길은 물소리에 묻혔던 새소리가 마음을 씻어주는 길, 왼쪽 깎아지른 절벽을 보며 작은 내를 건넜다. 산길 바위엔 아이젠 자국이 많아 지난 겨울 이 산을 찾았던 등산인이 많았음을 짐작케 한다. 두 물길이 합쳐지기 전 오른쪽 폭포는 층층계단처럼 생겼다. 완만한 경사를 타고 흐르는 것이 카메라 셔터를 느리게 하여 찍은 것 같다.
다섯개의 통나무를 굵은 철사로 얼기설기 엮은 나무다리를 건너자 계곡이 갑자기 넓게 펼쳐졌다. 계곡 끝에 잔돌로 축대 쌓은 혜국사가 보인다. 응달진 곳에는 녹지않은 고드름들이 봄바람 이겨내기가 힘에 겨운 듯 가까스로 바위에 매달려 있다. 화무는 십일홍이고 달도 차면 기울듯 계절은 그렇게 가고 오는가 보다.
혜국사는 비구니 사찰이다. 신라 46대 문성왕 때(847년)에 보조국사가 세운 곳으로 원래 이름은 법흥사였다고 한다. 고려 말 공민왕이 거란의 침입을 피해 이곳에서 쉬어 국은을 입었다 하여 혜국사로 불려지게 됐다. 우리 역사에 전쟁나면 나랏님들은 백성이야 어찌됐든 옥체를 보존하기 위해 그 먼길 마다하지 않고 피란했나 보다.
다시 걸음품을 팔았다. 송진냄새가 상큼하다. 낙락장송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짙푸른 솔잎이 공해에 찌들어 제빛 잃은 도시 근교의 소나무와 달랐다. 혜국사가 발아래에 보인다. '딱 딱 딱' 바람을 가르며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 소리가 들렸다. 머리 위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거무튀튀한 바위에 붉은 글씨로 이정이 쓰여 있다. 상봉 2.7km, 우측 출입금지. 오르는 길은 고행의 연속이다. 차라리 날씨가 추웠으면 하고 푸념하지만 나그네의 바람일 뿐이었다. 언 땅이 녹아 흙이 등산화에 엉겨 붙었다.내딛는 발걸음마다 힘의 분배가 적절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미끄러졌다.
악전고투 끝에 해발 850m인 대궐터에 이르렀다. 여궁폭포 위에서 1시간 이상이 걸렸다. 누군가 조성한 샘터에선 파이프관을 타고 물이 흐른다. 물받이 돌이 아담한 샘에는 '주흘산 벡 번 오르니 이 아니 즐거우랴'란 글이 써져 있다. 아름다운 이 사람은 누구일까. 그럼에도 물 한모금 마시기가 왠지 꺼림칙했다. 샘터 위에 타다만 쓰레기가 거슬렸다. 이젠 제발 남에 대한 배려 좀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산에서만큼은 말이다.
조령산을 바라보기 좋은 대궐터는 공민왕 때 행궁을 세우려 닦여진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샘터 옆에 집터로 보이는 흔적이 남아 있지만 잡목이 우거져 있고 그렇게 넓어 보이지 않는다. 혜국사 2km, 주흘산 1.5km 50분이라고 써진 이정표를 뒤로하고 끊임없는 인내를 요구하는 급경사를 올랐다.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이르니 큰 나무가 누워 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나무에 걸터앉았다. 동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바위를 머리에 인 봉우리가 고만고만한 높이로 나란하다. 이곳에서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서는 야호소리가 들려왔다. 정상 가는 길 북사면은 발목이 잠길 정도로 눈이 쌓여 있다. 지난 겨울에 내린 눈의 양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정상에 이르자 충주에서 왔다는 중년의 사내들은 족발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들이 외친 야호소리가 골짜기를 타고 메아리를 울린다.
"여기가 주흘한 정상이여"
"에헤 주흘산 정상은 따로 있어"
그들이 맞다, 아니다 옥신각신하는 까닭은 이곳에 1,075m 주흘산 정상이라는 표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은 북쪽으로 40여분 가면 닿는 1,106m의 영봉(또는 상봉)이 정상이다. 그러나 문경 사람들에게 정상은 높이가 아닌 우러름과 마주보의 정상, 즉 문경을 굽어보는 1,075봉을 예로부터 주봉으로, 진산으로 벋아들여 왔다.
산의 고장답게 온 사방이 첩첩산중이다. 희양산과 백화산, 대미산 등 병풍을 친 듯한 산들이 하늘을 가르고 있다. 영봉 가는 길은 다져진 눈이 빙판이다. 낙엽이 덮여 있어 섣불리 발걸음을 내딛기 어려웠다. 영봉에 올라서자 막혔던 북쪽 하늘이 열리며 부봉 너머로 마폐봉, 북바위산, 포암산, 만수산 등 월악산 줄기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1,075m봉을 바라보니 깎아지른 벼랑은 간 곳 없고 영락없는 고릴라 뒤통수를 연상케 한다.
봄기운 가득 실은 바람에 길을 재촉했다. 꽃밭서들로 내려가는 갈림길과 만났다. 부봉을 바라보며 서쪽으로 난 길을 부봉으로 향했다. 오르내림의 반복 끝에 백두대간 주능선에 닿았다. '선문대산악부 50일간 백두종주'처럼 대간을 종주한 팀들의 리본도 간간이 눈에 띈다. 오른편 북동쪽 길은 월항삼봉을 거쳐 포함산으로 북상하는백두대간이다.
왼쪽 능선을 따라 부지런히 걸음을 놀렸다. 부봉이 한층 가까워 보인다. 위험한 곳은 아니지만 작은 암릉에선 조심조심이다. 30여분 걸음품을 팔며 가파른 오름길에 도착했다. 주흘산과 마폐봉이 각각 3.5km라는 푯말이 적막한 산중에 홀로 서 있다. 이곳에서 오른쪽 보이는 성터를 따라가면 3관문 위 마폐봉에 이르게 된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가파른 길, 오뉴월 햇살에 혀를 길게 내놓은 견공처럼 헉헉대며 올랐다. 문경군청산악회에서 세운 부봉 정상의 나무푯말에는 백두대간임이 깊게 새겨져 있다.
시멘트로 꾸민 헬기장과 2봉을 지나 3봉 앞에 섰다. 7~8m 가량이 급경사인 3봉 마당바위 오른는 길, 다행히 굵은 밧줄이 내려져 있어 어렵지 않게 올랐다.
사십여평은 족히 될 만큼 반석같은 마당바위는 사방팔방 어느 곳에 눈길을 보내도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문경에서 바라보면 치솟는 바위산으로 보이던 주흘산도 부드러운 자태로 다소곳하다. 전설에 의하면 자신의 발아래 도읍지 정할 요량으로 솟아보니 이미 한양에 삼각산이 있어 아예 등을 돌렸다고 한다. 백화산에서 조령산을 거쳐 마폐봉, 포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에 눈을 씻고 갈 길을 서둘렀다.
해와 조령 줄기 사이가 점점 가까워 졌다. 부봉에서 가장 전망 좋은 6봉을 포기하고 하산했다. 길은 6봉 오르는 쇠사다리에서 왼쪽으로 나 있다. 조금 가파른 경사지만 하산의 묘미를 맛보며 15분 정도 내려오자 갑자기 시야가 트였다. 능선과 계곡을 구분하기 어려운 훍길을 따라 새재로 내려섰다.
새재길은 텅 비어 있다. 1920년대 이화령이 닦여지기 전까지 영남과 한양을 잇던 주도로로 영화를 누렸던 새재, 과거길과 장사길에 나섰던 선조들의 애환이 바람결에 전해지는 듯하다.
2관문을 지나 1관문으로 향했다. 3관문 너머 시멘트로 포장한 충북쪽 새재와는 달리, 전선들을 땅 밑으로 묻어 예길을 보존하는 문경시의 혜안이 돋보인다. 고즈넉한 새재의 정취를 흠뻑 느끼며 산불됴심비에 도착했다.
나라안에 흔하디 흔한 것 중 하나가 비석이다. 그러나 산불조심하자고 세운 비석은 이것이 유일하다. 정조 때 막돌 한면을 다듬어 세운 것으로 백성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한글로 음각했다. 됴심은 조심의 옛말이다. 문경시장이 시장자리를 걸고 산불경방기간에도 개방하는 주흘산, 마음속으로 산불조심을 되내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신구 관찰사가 직인을 주고 받았다는 교구정터와 용추를 지나 주막에 들렀다. 청운과 거부의 꿈을 안고 새재를 오르내리던 선조들이 한잔 술로 여독을 풀었다는 이곳은 그러나 술 한잔 건넬 주모가 없었다. 관원과 길손들의 숙식, 기호와 영남의 교역장소였던 조령원터를 들른 후 걸음을 재촉했다.
스멀스멀 어둠이 밀려온다. 돌로 쌓은 축대만 남아 있는 조령원터 앞 계곡에는 봄을 알리는 버들강아지 천국이다. 1관문을 지나 산행을 시작한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주흘산과 새재 일대는 어느새 어둠 속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산행길잡이
연중 개방된 주흘산은 회귀산행지로서 최적의 대상지이다. 뻐근한 산행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건각이라면 6봉을 넘어 제3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동화원으로 하산, 새재를 따라 내려오는 코스를 권한다. 약 8시간 소요된다.
그러나 가족산행과 단체산헹이라면 주흘산 정상표석이 있는 1,075m봉을 거쳐 영봉에서 꽃밭서들로 하산, 새재 제2관문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적당하다. 대략 5시간 안팎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부봉을 넘어 5봉을 가기 전 왼쪽 계곡으로 색 바랜 표지기가 보이지만 경사가 급하고 돌틈 사이 낙엽이 많이 쌓여 하산길로는 적당하지 않다. 6봉 앞 쇠사다리 오르기 전 왼쪽 길로 하산하는 게 무난하다.
2관문에서 1관문 사이의 새재는 고즈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옛길로 산불됴심비, 용추, 교구정터, 주막 등 볼거리가 많다. 자녀들과 동행했다면 새재길 걷는 것으로도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귀로의 문경읍내의 문경온천(0581-572-3333)에 들러 산행 피로를 풀 수 있는 것도 주흘산이 지닌 장점이다.
*교통
수도권에서 차를 가져갈 경우 중부고속도로를 이용, 음성IC로 나와 518번 도로를 따라 금왕을 거쳐 3번 국도로 이화령을 넘어가야 한다. 문경읍 가기 전 검문소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동서울터미널에서 점촌행 버스를 타고 문경에서 내려 관문행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서울~문경06:30부터 18:30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3시간 소요. 서울행 막차 19:10.
점촌에서 문경간은 06:30~21:00까지 버스가 수시로 운행된다.
대구~문경은 대구북부시외터미널에서 06:48부터 18:21까지 23차례 운행된다. 2시간30분 소요. 대구행 막차는 19:30.
문경에서 새재간은 07:20~18:50까지 17차례 운행한다. 새재에서 점촌간은 07:30~19:05까지이다(문경 경유).
*숙박 및 먹거리
매표소앞 집단시설지구에 20여곳의 민박집이 있다. 사람 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방 하나에 20,000원 정도이다.
소문난식당(0581-571-5833), 관문가든(572-0994), 새재모텔(571-1818), 태화관(571-3044) 등이 있다. 문경읍 내에도 중앙장(571-0502)을 비롯 약수장(572-0555), 동화장(571-1654), 하얀장(571-9541), 주흘장(571-0241)이 있다. 제1관문 지나 혜국사 오르는 길에 있는 주흘산장(571-5846)에서는 단체 20명 기준 6만원이며 1인 기준 1만원이다.
집단시설지구 내에 소문난식당(571-5831)의 묵조밥이 별미이다. 주흘산에서 수확한 도토리를 갈아 만든 묵과 갖은 채소와 양념에다가 조를 섞어 지은 밥을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다.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 반찬도 입맛을 돋운다.1인분 5,000원. 새재휴게소(572-2323)의 산채정식도 먹을 만하다. 1인분 7천원.
참고: 월간<사람과산> 97년4월호
영남 제1관문에 솟은 문경 진산
백두대간을 북에 두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솟아 오른 주흘산(1,106m)은 예부터 문경의 진산으로 받들어져온 산이다. 정상 남사면이 수백 길 높이의 절벽을 이루고 있어 문경읍에서 보면 철옹성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조선조 때는 조정에서 매년 주흘산을 진산으로 받드는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남한땅 백두대간 가운데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긴 능선이 문경땅을 거치면서 수많은 산봉을 일으켜 놓았는데 등산인들에게 문경하면 주흘산이 떠오르는 것은 육산과 바위산의 멋을 겸한 빼어난 산세와 함께 문경새재를 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영남 제1대로로 꼽혔던 새재길은 주흘산과 그 서쪽 조령산 사이의 골짜기를 따라 나 있는 옛길을 말한다. 조선 때는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큰 길로, 특히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보기 위해 넘던 유서 깊은 길이다. 경상북도는 외침에 대비해 골 안에 세운 세 개의 관문과 성벽,원터 등의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 1981년 새재길 일대를 도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주흘산 산행기점은 제1관문과 제2관문으로, 제1관문에서 곡충골을 타고 여궁폭포~혜국사~1,075m봉을 경유, 정상에 오른 다음 북서쪽 꽃밭서들이 있는 조곡골을 거쳐 제2관문으로 내려서거나 또는 역코스를 탄다. 지곡리 월복사 계곡을 타고 전좌문과 1,075m봉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도 종종 이용된다. 산행시간은 5시간 정도 소요.
여심폭포라고도 불리는 여궁폭포는 등산로애서 계곡으로 내려서야만 보인다. 혜국사는 신라 문성왕 8년(847년) 보조국사가 창건, 법흥사라 이름지었으나,고려 공민왕이 난을 피해 이곳에서 지냈을 때 은혜를 많이 입었다 하여 혜국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하는 사찰이다.
바위 두 개가 협곡을 이루고 있는 전좌문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복주(현 안동)에 피란했다가 1362년 피란지를 떠나는 길에 동화원 부근 어류동에 머물면서 매일 올라 북쪽 계립령로(현 하늘재)를 바라보며 좋은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다렸다는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호젓한 산행을 원하는 등산인은 평천리 개그늘 기점코스가 적당할 듯싶다. 개그늘은 문경읍에서 북동쪽 30리 거리. 주흘산 자락에 에워 싸인 첩첩산중 마을이다. 개그늘은 해질무렵이면 주능선 그림자가 마을을 몽땅 덮어버리기에 덮을 개(蓋), 그늘 음(陰) 자를 써서 개음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저녁 무렵 산꼭대기에 서면 주흘산 그림자가 마치 개 한 마리가 엎드려 있는 듯하여 개그늘이라 부른다고도 주민들은 말한다.
개그늘 기점 산행에 나설 때에는 버스종점 북서쪽 농가에서 서쪽 불당골을 타고 도토메기고개를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새재쪽으로 내려서는 것이 기본이다. 개그늘에 차를 세워 두었을 때에는 정상에서 남쪽 1,075m봉에서 동릉을 타다 공터에서 삼박골로 내려선 다음 개그늘로 내려서는 원점회귀형 코스를 따르는 것이 적합하다. 산행시간은 5시간 정도 걸린다.
*교통 및 숙박
문경까지는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오전 6시2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문경, 점촌, 상주행 직행버스 이용. 3시간 소요. 요금 10,700원. 동서울터미널 전화 02-446-8000(ARS).
문경시외버스터미널에서 새재도립공원까지는 1일 16회(07:10~18:50) 운행하는 직행 또는 완행버스 이용. 요금 직행버스 920원, 완행 600원. 개그늘까지는 1일 3회(09:25, 13:25, 18:45) 운행. 요금 1,000원. 문경터미널 전화 0581-571-0343.
제1관문 부근 상초리의 관문장여관(0581-571-7777), 새재여관(571-1818)이나, 문경읍의 동화장(571-1654), 주흘장(571-0241) 이용. 상초리 일원의 민박집은 대부분 식당을 겸하고 있다.
새재도립공원 입장료는 어른 1,900원(30명 이상 단체 1,500원), 청소년 1,100원(800원), 어린이 750원(600원).
문경새재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전화 0581-57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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