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판비량론에 대하여
신라의 승려 원효가 인명(因明)의 비량(比量:논리적 추론) 형식을 통하여 불교 교리의 근본문제들을 판석(判釋)한 책. 1권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 단편(斷片)으로 전한다. 최근까지 이 책은 발문(跋文)과 회향게(廻向偈)만이 전하고 있고 신라의 대현(大賢)과 일본 승려들의 저서 속에 단편적으로 인용된 문장을 통해 그 성격만 짐작되었다. 그러다가 1967년 일본의 불교학자인 간다[神田喜一郞]가 도쿄[東京]에서 그 책을 구입하여 그것이 원효의 〈판비량론〉임을 확인하고 후키하라[富貴原章信]의 설명을 덧붙여 출판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여러 문헌목록에 의하면 이 책은 원래 1권 25장으로 되어 있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앞부분이 상실된 채 발견된 19장 105행의 분량이다.〈판비량론〉은 각각의 주제별로 일련번호가 붙어 있는데, 현존하는 부분은 제7~14절이다. 제7절은 뒷부분만 남아 있어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정토(淨土)에 대한 교설(敎說)을 비유로 들어 언어로써 교체(敎體)가 지향하는 진리를 드러낼 수 있는지를 논하고 있다. 원효는 여기서 언어는 교설을 드러낼 수 있으나 그 본체를 드러낼 수 없다는 내용의 비량식을 제시하고 있다. 제8절은 유식학(唯識學)에서 인식의 구조를 논하는 심분설(心分說)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심분설은 상분(相分:인식 대상적 측면)·견분(見分:인식의 주관적 측면)·자증분(自證分:인식과정을 통괄하는 識의 자체적 작용)의 3가지 인식작용을 주장하는 삼분설(三分說)과 여기에 증자증분(證自證分:자증분의 활동을 재인식하는 작용)을 더한 사분설(四分說)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원효는 삼분설에 대한 주장과 반론의 2가지 비량식을 제시하여 양자 모두가 부정(不定)의 오류가 있다고 보고 제4분, 즉 증자증분은 말은 있으나 뜻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제9·10절은 심식(心識)을 8가지로 나누는 팔식설(八識說)에서 제8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중심으로 하여 심(心)·의(意)·식(識)의 관계에 대해 논하고 있다. 원효는 〈금강삼매경론 金剛三昧經論〉 등에서 8식 이외에 제9의 아마라식(阿摩羅識)을 주장했으나, 아뢰야식과 아라마식을 비롯한 모든 심식은 결국 일심(一心)으로 포섭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제11절은 존재의 영원성과 무상성(無常性)에 대해 소리[聲]를 예로 들어 인도의 육파철학(六派哲學) 중 성론학파(聲論學派 Mimamsa)와 승론학파(勝論學派 Veisesika)의 주장을 대립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불교적 관점에서 회통(會通)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제12절은 상위결정(相違決定:立論과 對論이 서로 모순적으로 대립하면서도 각자의 논법이 완전무결하여 상대방의 주장을 논파할 수 없는 것)의 논리적 형식에 대하여 고찰하고 있다. 특히 어떤 하나의 주장이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를 논하며, 이러한 한계들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불공부정인(不共不定因)의 비량을 제시하고 있다. 제13절의 주제는 성불(成佛)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즉 법상종(法相宗)에서는 성불할 수 없는 중생이 있다고 하고 〈열반경 涅槃經〉 등에서는 모든 중생이 결국에는 부처가 될 수 없다고 함에 따라 발생한 논란에 대하여, 원효는 각각의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제14절은 자아와 존재에 대한 논의로서 아(我)와 법(法)에 집착하는 실재론적 존재관을 유식사상에 근거하여 비판하고 있다. 현재 이 책은 〈원효대사전집〉에 영인본이 전하며, 〈한국불교전서〉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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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세기경부터 인도의 철학과 종교의 여러 학파에서는 자신의 주장이나 논쟁을 목적으로 논리학이 연구되어, 니아야(nyāya 正理)라는 논리학의 대강(大綱)이 성립되었다. 불교에서 논리학은 특히 유식사상 계통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인식논리학으로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한편 불교 자체 내에서도 고유한 논리학적 전통이 이어져왔는데, 그것은 대승불교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용수(龍樹 Nāgārjuna)의 〈방편심론 方便心論〉·〈중론 中論〉·〈회쟁론 廻諍論〉 등의 저작과 〈해심밀경 解深密經〉의 제8품인 〈여래성소작사품 如來成所作事品〉, 미륵(彌勒 Maitreyanātha)의 〈유가사지론 瑜伽師地論〉, 무착(無着 Asaṇga)의 대승아비달마집론 〈大乘阿毘達磨集論〉, 세친(世親 Vasubandhu)의 〈여실론 如實論〉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6세기경 활동했던 진나(陳那 Dignāga)는 이와 같은 전통을 계승하면서, 3지작법(三支作法), 인의 3상설(三相說), 구구인론(九句因論) 등의 이론을 확립하여 불교논리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일반적으로 진나를 기준으로 하여 그 이후의 인도논리학을 신인명(新因明), 그 이전을 고인명(古因明)으로 구분할 만큼 논리학의 발전에 대한 진나의 기여는 절대적이다. 그의 저술에는 〈집량론 集量論 Pramāṇasamuccaya〉·〈인명정리문론 因明正理門論〉 등이 있다. 진나 이후 그의 문하에서 나온 상갈라주(商羅主[또는 天主] Śaṇkarasvāṇmin)는 〈인명입정리론 因明入正理論〉을 저술했으며, 7세기 중반에 법칭(法稱 Dharmakῑrti)은 〈집량론〉의 해석서인 〈양평석 量評釋 Pramāṇavārttika〉과 〈정리적론 正理滴論 Nyāyabindu〉 등의 논리학서를 저술하여 진나의 논리학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8세기에 활동했던 적호(寂護 Śāntarakṣita)와 그의 제자 연화계(蓮華戒 Kamalaśῑla)는 〈섭진실론 攝眞實論 Tattvasaṃgraha〉과 그에 대한 주석서를 저술하여 불교인식논리학을 집대성했다. 중국에서는 당(唐)의 현장(玄奘)에 의해 인명이 소개되어 일시적으로 활발하게 번역·연구되었으나 법상종 이외의 다른 종파에서는 불교학의 중요한 분야로 인식되지는 못했다. 한국에서는 신라시대에 인명에 대한 활발한 연구 활동이 있었다. 대표적인 학승들로는 원측(圓測)·원효(元曉)·도증(道證)·승장(勝莊)·신방(神昉)·경흥(憬興)·대현(大賢)·도륜(道倫)·순경(順璟)·오진(悟眞)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학자들의 저서가 산실되었고 행적이 명확하지 않아 이들의 사상을 파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최근에 발견된 원효의 〈판비량론 判比量論〉은 인명의 비량 형식을 통하여 불교 교리의 근본 문제들을 판석(判釋)한 책으로 그가 인명에 정통해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