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은 시인은 제주도에서 출생했고, 2000년도에 《미네르바》로 등단했으며, 스스로 우는 꽃잎과 나는 구름에 걸려 넘어진다라는 시집을 출간한 바가 있다. 녹색비단구렁이는 그의 세 번째 시집이며, 매우 뛰어나고 아름다운 언어와 함께, 유성호 교수의 말대로, ‘미美’와 ‘추醜’의 속성을 한몸으로 결속하면서, 시인이 꿈꾸는 새로운 존재론적 욕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생각’과 ‘죽음’과 ‘슬픔’과 ‘덧칠된 희망’을 건너서 “깊이 모를 슬픔”을 지닌 생생한 ‘몸’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것이 그의 시적 욕망의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 내가 건너야 할 몸 밖의 세상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뿐이에요 눈부시게 빛나는 햇빛의 징검다리뿐이에요 내 몸에 똬리 튼 슬픔을 불러내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연두에서 암록까지 간극을 알 수 없는 초록에 눈이 부셔 밤이면 독니에 찔려 죽는 꿈들만 벌떡벌떡 일어나요// 어머니, 녹색비단구렁이새끼를 부화하는 세상이란 정말이지 음모일 뿐이에요 희망에 희망을 덧칠하는 초록의 음모에서 나를 구해주세요 제발 내 몸의 비단 옷을 벗겨주세요 꼬리에서 머리까지 훌러덩 벗어던지고 도도히 흐르는 검은 강, 깊이 모를 슬픔으로 꿈틀대는 한 줄기 물길이고 싶어요
―「녹색비단구렁이」 부분
피를 토하는 어느 명창의 넋이 들어 있는지/ 박연폭포 한 소절 폭포수로 쏟아내는데/ 목구멍에 걸린 울음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해// 매미 시편 붙들고 땀을 흘린다/ 짧고 굵은 생애의 절창을 위해 매미 중/ 북미의 어떤 것은 17년을 땅 속에 파묻혀/ 몸 속 가락을 고른다는데/내 목구멍은 자음과 모음의 엇박자로/ 울음소리를 흉내낼 뿐// 매미의 은신처가 되지 못한다// 무엇을 더 비워내야 동안거 하안거 다 지낸/ 저, 소리의 깊이에 닿을 것인가// 매미 빈 몸통에 남아 있는// 투명한 바람 소리, 매미 시편의 완결편을// 마음에 쓸어 담는다
―「매미 시편」 전문
자연과 인간의 원형질적인 교감이 너무 산뜻해서 강영은 시인의 『녹색비단구렁이』를 읽는 동안 꼭 그의 몸을 만지고 있다는 엉뚱한 착각까지 든다. 마술사가 맨 손바닥을 쫙 펴면 금세 하양 비둘기가 포르르 날아오르듯 오래된 상처를 기쁨으로 변용시키는 어렴성 없는 마력의 시적 곡예가 눈부시다.
―오탁번(고려대 교수, 한국시인협회 회장)
강영은 시인은 ‘녹색비단구렁이’라는 이색적 소재를 대상으로 하여 심미적 감각을 아름답게 표상하고 있다. ‘어머니’를 직접 청자로 설정하고는 있지만, 시의 화자는 스스로 ‘녹색비단구렁이’가 되어 “천둥번개 치고 비오는 날”에 몸 밖으로 범람하는 강물이 되고 싶다고 토로한다. ‘녹색비단구렁이’는 이처럼 ‘미美’와 ‘추醜’의 속성을 한몸으로 결속하면서, 시인이 꿈꾸는 새로운 존재론적 욕망의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과 ‘죽음’과 ‘슬픔’과 ‘덧칠된 희망’을 건너서 “깊이 모를 슬픔”을 지닌 생생한 ‘몸’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것이 그 욕망의 내용이다.
―유성호(한양대 교수, 문학평론가)
강영은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인 “녹색비단구렁이는 매우 뛰어나고 아름다운 절창으로 되어 있으며, 그의 주옥 같은 60여편의 시들은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될 것이다.시는 시인의 삶의 터전이며, 그의 비옥한 텃밭이다. 강영은 시인의 녹색비단구렁이에는 그의 언어(관능)의 싹이 트고, 그 언어의 꽃이 피고, 그 언어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목차
시인의 말 5
1부
매미 시편/ 벌레시인/ 허공 모텔/ 제논의 화살/ 투명 개구리/ 비누論/ 푸른 식탁/ 능소화
거꾸로 가는 문장/ 발칙한 속도/ 사막장미/ 장자 연못/ 물로 지은 옷/ 디오게네스의 낮잠
한 알의 사원/ 왜목마을을 지나며
2부
빗방울 마을/ 두 입술이 내는 소리/ 오래된 유적/ 문자의 세상/ 노약병잔잉전용석
설법 한 접시/ 우주선/ 벌레들의 지구/ 피그말리온의 이모티콘/ 아라크네의 식탁
클럽 아마존의 악어 사냥법/ 진흙 스프/ 감자의 9가지 변주/ 소나타, 비창
그가 나를 쏘았다/ 작시법作詩法
3부
녹색비단구렁이/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바늘들/ 건빵의 휴가/ 아버지 별/ 둥근 저녁
오래 남는 눈/ 바람의 입/ 먼나무/ 따뜻한 밥상/ 닻/ 호박/ 수선화/ 담쟁이/ 모자帽子
접시 위의 한 문장
4부
소비되는 봄/ 수세미 천궁도/ 게발선인장/ 오르간 연탄을 위한 프렐류드와 푸가 c장조
그림자연극/ 알밤장수 김 씨/ 연인산/ 첫눈/ 지렁이/ 나팔꽃, 이별을 연주하다
세입자들/ 버려진 휴대폰/ 소나무 자폐증/ 또 다른 계산기/ 별의 속도/ 연주암 오르는 길
양파론
해 설 ― ‘몸’에 깊이 새겨진 기억과 감각 137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