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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탄을 발사하는 미공군 F-84 썬더제트 전투기의 위용, 한국전쟁 중에
미공군의 F-80과 F-84를 우리 국민들은 "쌕쌕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로 F-35가 최종 결정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습니다. 문득 제트기 역사에 대한 글을 진작에 시작했으면 지금쯤 차세대 전투기로 결정된 F-35는 물론이고 후보에 올랐던 유로파이터와 F-15까지 소개가 끝나고 카페 회원 여러분들과 좀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후회가 생깁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애초 계획했듯이 1세대 제트기부터 차근 차근 소개해나가자는 기본 페이스를 유지하기로 하겠습니다. 어쨌든 어영부영 1세대 제트기들 중에서 최고의 성공작이라 할 수 있는 F-86 세이버의 소개도 멀지 않았네요. F-86에 앞서서 또 하나의 미공군 제트 전투기로써 한국 전쟁 중에 한반도 상공에서 공중전을 벌였던 F-84 썬더제트 전투기가 오늘 소개해드릴 기종입니다. 초기 모델들은 F-80 슈팅스타와 마찬가지로 1자형 주익을 갖고 탄생한 탓에 F-86 세이버가 V자형 주익을 가짐으로 인해서 가능했던 스피드를 결국은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썬더제트와 후기 V자형 주익 적용 기종인 썬더스트릭은 나름 미국 제트 전투기 역사에 의미있는 디딤돌을 만들어줬던 기종입니다.
(1세대 제트 전투기들 중에서 최고의 성공작은 역시 미공군 F-86 세이버였습니다. 소련의
미그-15와 비교해서 일부 성능에서 열세였던 점도 없지 않으나 결론적으로 세이버는
미그-15보다 뛰어난 전투기였다는 점이 객관적인 평가입니다.)
보통 "리퍼블릭 F-84 썬더제트"라고 불리는 썬더제트는 미공군이 출범(1947년)하기 전인 1944년 미육군 항공대에 의해 주간 전투기("Day Fighter")로써 개발 제안이 되었습니다. 2차대전에는 특히 "야간 출격" 전문으로 개발되어 사용된 전폭기들이 있는데 특히 야간비행시 절대적으로 중요한 레이다 기능을 강화한 반면 그러다보니 주간 전투기에 비해서 디자인적으로 제약이 생기게 되어 주간과 야간 전용 전투기를 굳이 나누어 운용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현대로 오면서 이런 분리는 별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2차대전에 미육군 항공대가 운용했던 야간 전문 전폭기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P-61 블랙위도우(검은 과부, 치명적인 독을 가진 거미의 이름)입니다.)
지난번 슈팅스타 전투기를 소개할 때 제작사인 록히드社가 2차대전 중에 생산한 걸작 전투기로써 P-38 라이트닝을 언급했었는데 이번에 소개하는 썬터제트에 제작회사인 리퍼블릭 에비에이션社(이후 줄여서 리퍼블릭社)는 2차대전 미국 전투기 중에서 무스탕과 라이트닝 못지않게 활약한 P-47 썬더볼트의 제작업체였습니다. 이 엄청난 맷집의 탱크같은 전투기에 대해서는 이차대전 게시판에서 언젠가 미국 전투기들에 대한 소개가 있을 때 심층적으로 흝어보겠지만 어쨌든 2차대전 중에 미국을 대표하는 3개 항공기 제조업체들(록히드, 노스 아메리칸, 리퍼블릭) 중에 한곳이었습니다. (참고로 F-4 팬텀을 제작한 맥도널 더글러스社는 1967년에 설립되고, B-29 폭격기로 유명한 보잉社는 주로 폭격기와 같은 대형기 생산에 치중)
(P-51 무스탕 전투기와 함께 유럽 상공에서 루프트바페와 나치 기갑부대에게
가장 두려운 위협이 되었던 리퍼블릭社에 P-47 썬더볼트 전투기)
이미 2차대전 후반에 유럽 상공에서 P-47 썬더볼트 프로펠러 전투기의 성공적인 임무 수행으로 명성을 쌓고있던 리퍼블릭社였지만 터보제트 엔진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전투기의 개발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2년이 지난 1947년에 정식으로 미공군에 배치되었지만 설계 구조적인 문제와 엔진 결함으로 인해서 불과 1년만에 미공군은 당시의 불안정한 성능과 안정성으로는 더이상 썬더제트를 어떠한 임무에도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이고 프로그램 자체를 완전히 취소해버리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혹평 속에서도 1949년까지 썬데제트 계획은 취소되지 않고 끊임없는 성능 안정성을 위한 설계 수정 작업이 진행됩니다.
(F-84G의 드로잉, F-84 시리즈의 1자형 주익 적용 마지막 기종입니다. 이버전까지만 썬더제트라는 별칭을 씁니다.)
(V자형 주익을 적용한 F-84F, 이때부터는 썬더스트릭이라는 별칭을 사용합니다. 위와 비교해서
완전히 다른 기종처럼 느껴집니다. )
(투입 초기에 그리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던 F-84 썬더제트의 후기 모델인 V자형의 F-84F)
1950년 덜컥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자 그때까지 살아남아있던 썬더제트는 미공군의 지상 타격용 전투기로써 한반도로 투입되게 됩니다. 미그-15와 같은 벅찬 상대는 F-86 세이버의 몫이었지만 한국전쟁 중 무려 86,408회 출격 임무를 수행하면서 지상 폭격 임무의 60%를 수행한 썬더제트는 심지어 공중전에서 미그-15 9대를 격추시키는 전공도 세웁니다. (세이버에 비해서는 떨어지는 성능으로 미그기를 격추시킨 것은 조종사의 뛰어난 실력이거나 엄청난 운이었겠지만....) 어찌 되었든 한국전쟁 중에 썬더제트가 수행한 지상 타격 임무에 대한 평가는 인정해줘야 하겠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활약한 지상 타격 전문의 F-84E 썬더제트 전투기들의 다양한 도장)
총 생산댓수 7,524대 중에 절반이 넘는 숫자의 썬더제트는 유럽 나토 국가들에 공급되어 냉전 시대에 중요 역활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결국 리퍼블릭社는 지속적으로 설계 수정을 거듭하였는데 심지어 1954년에는 1자형 주익을 V자형 주익으로 바꾸면서 사실상 전혀 다른 기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F-84G 썬더스트릭까지 진화를 하게 됩니다. 또한 미공군 최초의 비행 시범팀 썬더버즈가 사용한 최초의 전투기로 기록되기도 합니다. 냉전시대때 대륙간 핵공격을 책임지는 미국 전략 공군 사령부도 1948년부터 1957년까지 썬더제트 전투기를 운용하였습니다.
F-84는 또 하나의 이색적인 기록을 소유한 기종입니다. 바로 비행 중에 공중 급유를 성공한 최초의 기종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최초로 핵무기 탑재가 가능하도록 개발된 전투기였다는 것도 썬데제트가 세운 기록입니다.
(현대 첨단 전투기들도 공중 급유는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만 냉전 시대 핵무기를 장착
하고 대륙간 횡단을 해야 하는 전투기에게 공중 급유는 반드시 필요한 요구사항이었습니다.
사진은 F-15 이들의 공중 급유)
(F-84 후기 모델들의 개조형은 대형 폭격기와 도킹하여 비행하는 모선과 자선 개념의
실험 비행에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프로젝트명 FICON(Fighter Conveyor)라 불린 이런 실험은
대형 폭격기 B-36에 썬더제트를 도킹하여 운반하는 시도였습니다.)
첫 설계와 실험 진행
2차대전이 끝나가던 1944년 리퍼블릭社에 수석 엔지니어 알렉산더 카르트벨리는 P-47 썬더볼트 프로펠러 전투기에 터보제트 엔진을 적용하는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제트 엔진을 사용할 수 있도록 P-47의 재설계를 하려던 시도는 초기 터보제트 엔진의 원심 콤프레서의 단면이 너무 넓어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을 맺게 됩니다. 대신 카르트벨리와 그의 팀은 유선형 동체에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하고 연료는 약간 두꺼운 1자형 주익에 저장하는 방식의 설계하는 전혀 새로운 제트 전투기를 탄생시킵니다.
(P-47 썬더볼트 기체에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하겠다는 발상은
제트 전투기 초기에 항공기를 개발하는 엔지니어들조차 제트
전투기에 대한 개념 정립이 제대로 되어있지 못했음을 입증해준
사례입니다.)
1944년 9월 육군 항공대는 최고 스피드 시속 966km의 주간 제트 전투기의 요구 사양을 발표합니다. 군의 요구에는 전투 반경이 1,135km로써 6~4정의 15.2mm 기관총으로 무장해야 했습니다. 또한 제너럴 일렉트릭社(GE)가 생산하는 Allison J35 터보제트 엔진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1944년 11월 리퍼블릭社는 3대의 프로토타입 제작 주문을 받게되고 이것이 훗날 F-84라 불리는 신형 제트 전투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시험용 기체의 모델명은 XP-84로 불렸는데 리퍼블릭社는 자신들의 신형기가 이미 생산 단계에 있던 미국 최초의 제트 전투기 록히드 P-80 슈팅스타의 성능보다 우세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당시 리퍼블릭社는 1인승 전투기 개발과 생산에 있어서는 노스 아메리칸社(무스탕 제작업체)와 함께 명성을 얻고 있던 탓에 별 경쟁 없이 계약 수주에 성공합니다.
(노스아메리칸社는 2차대전 최고 걸작 전투기라 할 수 있는
P-51 무스탕의 제작사로도 유명하지만 한국전쟁 미그 킬러의
대명사 F-86 세이버의 제작사로 또 한번 명성을 날립니다.)
1945년 1월에 첫 시작기가 이륙도 해보기 전에 육군 항공대는 리퍼블릭사에 총 100대의 시작기 생산 주문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공중 비행 테스트에 앞서서 윈드 터널 실내 테스트를 진행하는 동안에 고속에서 이 신형기의 비행 밸런스가 불안하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초기의 불안정한 문제점들은 설계 수정을 거듭하면서 1946년 실제 비행 테스트 싯점까지 상당부분 개선되게 되는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F-84보다 조금 일찍 개발이 시작된 F-80에 비해서 F-84가 좀 더 날씬한 기체의 모습을 갖게 되었던 것은 바로 적용 엔진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GE의 J-35 엔진을 사용한 F-84는 F-80의 엔진보다 훨씬 작은 크기이면서도 더욱 강력한 파워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엔진에 맞춰서 적정한 기체 디자인이 이루어지는 탓에 F-80보다 훨씬 슬림한 몸매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F-84의 행운이었습니다. 엔진이 작고 강한 출력이 가능하였으므로 기체가 더 작아진 잇점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 F-84는 훗날 F-86이나 미그-15처럼 공기 흡입구를 기수 정면에 배치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조종선의 시야 확보를 위해서 "물방울" 캐노피를 설치하고 여압 시스템과 좌석 사출장치를 적용했습니다.
(F-84A 초기 시제기)
1946년에 실시된 최초의 공중 비행 테스트에서 시제기 XP-84는 해면 고도에서 시속 960km의 최고속도에 다다랐으며 12분만에 3만5천 피트까지 상승하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1947년 공식 출범 예정인 미공군은 이기종을 정식으로 선택하였고 리퍼블릭사는 자사의 최초 제트 전투기의 별칭을"썬더제트"라 명명하였습니다. 명명의 배경에는 2차대전 중에 프로펠러 전투기로써 성공을 거두었던 자사의 P-47 썬더볼트와 같이 "썬더"라는 단어를 공유하며 명성을 이어 가자는 의도였습니다.
미공군의 공식 선정 결정을 받은 리퍼블릭사는 드디어 본격적인 F-84의 양산을 시작하게 됩니다. 최초의 양산형은 1947년부터 생산된 F-84B형으로 J-35 엔진의 개선형인 J35-A-15C 엔진을 장착하였고 무려 6정의 12.7mm 기관총이 4정은 기수쪽에 나머지 2정은 주익 연결부에 장착된 형태였습니다. 이후 신형 전기 장치가 엔진에 추가된 J-35-A-13C로 교체한 F-84C형이 생산되었으나 얼마 안되서 곧바로 다시 한번 개선한 엔진이 J-35-A-13C를 적용한 F-84D형으로 생산 버전은 넘어가게 됩니다. 즉 첫 생산 버전인 F-84B형에서 F-84D형까지 짧게 짧게 생산 버전을 갈아 타면서 주로 바뀐 것이라고는 적용 엔진밖에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변화의 기간은 불과 1년이었습니다.
1948년 F-84D형은 다시 F-84E형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번에는 단순한 엔진 교체가 아니라 꽤 적지않은 신기술이 적용되는데 당시로써는 혁신적인 변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정확한 기관총 사격이 가능하도록 APG-30 레이더 조준기를 장착하게 되었고, 주익 끝단에 230갤론의 연료탱크를 고정 장비한 것도 변화였습니다. 동체의 길이를 12인치 늘려서 조종석의 공간을 좀 더 넉넉하게 확보한 것도 주목할만한 변화입니다. 또 한가지 동체 아래에 인입식 JATO(Jet Assisted Take Off) 연결 장치를 설치했는데 이 JATO를 이용하면 이륙시 최대 중량을 22,460파운드까지 늘릴 수 있었습니다.
(JATO가 뭔지는 동영상 하나를 보여드리는 것이 장황한 설명보다 나을 것 같네요. 한번 보면
아하 이런 거~~~ 할 것입니다.)
한국전쟁 발발과 지상 공격 임무 전담
F-84E형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무렵에 미공군의 6개 비행단에서 사용 중이었으나 전쟁이 발발하자 미공군 사령부는 적을 과소평가하여 제5공군 비행단이 운용하고 있던 최초의 제트 전투기 F-80만으로 충분히 적을 제압할 것이라 오판을 하고 F-80에 비해서 우월한 성능을 가진 F-84는 미 본토에서만 운용하도록 합니다. 실제 개전 초기에 북한 공군의 프로펠러 야크 전투기들을 상대하는데는 월등한 스피드를 가진 F-80까지도 동원할 필요없이 프로펠러 전투기인 무스탕으로도 충분히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발발 6개월도 안되어 소련의 최고 걸작 제트 전투기 미그-15를 만나게 될줄은 당시는 상상도 못했던 것입니다.
(한국전쟁 중 소련공군 최고의 에이스
예브제니 페레로예프(1918년~2013년), 미그-15를
조종하여 제트 전투기 격추기록으로는 대단한 23대 기록)
전쟁 초기에 F-80은 적의 야크 전투기를 상대로 일방적인 우위를 유지했고 실제 지상에서는 북한군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던 대한민국 국군과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의 지상부대와 달리 한반도 상공에서는 미공군의 제트 전투기의 위력은 압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련의 미그-15가 등장하여 F-80이 성능의 열세가 입증되었고 급격히 제공권의 판도는 적에게 넘어가게 되자 미공군 사령부는 크게 당황하고 즉시 F-86 세이버와 함께 F-84E 썬더제트 부대를 한반도로 급파하게됩니다. 최초의 F-84E 부대는 제27 전투비행단으로써 기존에는 F-82G 트윈 무스탕을 운용하던 부대였습니다. 애초 이부대의 주요 임무는 B-29 폭격기의 호위였는데 이때까지만해도 미그-15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입수되지 못한 상황에서 F-84E를 공급받고 이정도 성능의 전투기라면 한국전쟁에 갑자기 등장한 소련의 제트 전투기 미그-15를 맞아 공중전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습니다.
1951년 1월 F-84E가 최초로 미그-15를 격추시키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지만 그보다 못한 F-80 역시 1950년 겨울에 미그-15를 격추시킨 기록이 더러 있기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F-80이나 F-84나 모두 1자 주익을 갖고 V자형 주익을 가진 미그-15의 놀라운 스피드에 대등한 공중전을 펼친다는 것은 불가항력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미그-15와 마주친 이 두 기종의 미공군 편대들은 엄청난 스피드에 압도되어 소련의 유능한 미그 에이스들에게 격추 기록만 올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B-29 편대 출격을 호위하던 F-84E들은 미그-15의 신속한 공격에 자신들이 호위하던 B-29들이 자신들의 눈 앞에서 파괴되어 지상으로 곤두박칠치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봐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F-82G 트윈 무스탕, 이런 희귀 기종도 언젠가는 소개해드릴 날이 오겠지요?)
결국 F-84E는 미그-15와의 공중전의 상대가 되지 못함이 입증되었고 한반도에 투입된 F-84는 지상 공격 임무로 돌려지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지상 공격 위주의 임무를 수행하더라도 미그-15와 마주치지 않을 수는 없었고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성능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는 F-84와 미그-15간의 의도되지 않은 만남으로 인한 공중전은 종종 벌어지게 됩니다. 그결과 전쟁 중에 9대의 미그-15가 F-84에 의해 격추당한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그 곱절인 18대의 F-84E가 미그-15에게 격추되었다는 치욕스런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미그-15에 격추되는 F-84)
미그-15와의 악연은 F-84의 패배로 결론지어졌지만 지상 공격 임무에 투입된 F-84의 경우 전쟁 기간 중에 고속 제트 전투기가 지상 공격에 있어서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입증해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1951년 7월부터 F-84E의 후속 버전으로 더욱 추진력이 강한 J-35-A-29 엔진을 장착한 F-84G가 전선에 투입되자 이미 배치된 F-84E와 함께 지상 공격에 있어서 엄청난 활약을 하게 됩니다.
F-80 슈팅스타에 비해서 빠른 속도와 기동성을 가진 F-84 썬더제트는 그만큼 적의 대공포화에 피탄될 확률이 적었고 무장 탑재력도 비교적 우수하였고 임무 수행 중에 불가피하게 맞닥뜨린 미그-15를 상대함에 있어서도 교전을 한다면 분명히 불리한 성능이었지만 도망을 가겠다고 한다면 F-80에 비해서는 더 빨리 도망칠 수 있었으므로 조종사들의 생존률도 그만큼 높았습니다.
게다가 F-84G형에 이르러서는 항속거리가 무려 3,000km를 넘게 되다보니 장시간 전장의 하늘에 머물러 있을 수 있어서 많은 조종사들의 호평을 받게 되었습니다. 2차대전 당시 무수한 지상에 독일 탱크들과 장갑차들을 산산조각내었던 P-47 썬더볼트의 명성이 되살아나는 듯하였습니다.
(제트 전투기 역사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고 할 수 있는 2차대전 중 루프트바페의
Me 262는 항속거리가 F-84G의 1/3도 안되는 845km였습니다. 즉 이륙하고나면
착륙할 걱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였지요.)
미그-15의 공중전 상대가 되지는 못하였지만 F-84의 지상 공격 임무의 성공이 거듭되자 한국전쟁에서 F-84의 평가는 높아졌습니다. 동시에 2차대전 말기에 유럽 상공에서 천하무적을 자랑했던 무스탕 전투기와 F-84에 불과 몇년 앞서서 개발되고 함께 한국전쟁에 배치되었던 F-80은 그들의 자리를 F-84에게 물려줘야 했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F-84는 총 86,400회의 출격을 하여 총 56,000톤의 폭탄을 적진에 투하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전쟁 중에 F-84의 손실도 적지 않았는데 총 122대가 한반도 상공에서 격추되었습니다. 이중에 미그-15에게 격추당한 18대를 제외한 대부분은 저공 폭격 중에 적의 대공포에 격추되었습니다.
리퍼블릭社의 F-84의 한국전쟁에서 활약이 노스아메리칸社의 2차대전의 영웅 F-51 무스탕을 한국전쟁에서는 밀어내는 주인공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노스아메리칸社의 명작 F-86 세이버가 사실상 한반도 상공에서 미그-15를 제압하고 최종 챔피언으로 등극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못되었습니다.
V자형 주익(후퇴익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요.)이 저속 비행시 기체의 불안정성을 일으키기 때문에 제트 전투기 초기에는 대부분의 항공기 제작사들이 선뜻 시도하는 것을 주저했지만 고속 제트 전투기의 시대에서 V자형 주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필수적인 요구 사항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리퍼블릭社의 F-84 개발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탓에 한국전쟁 시작 이전인 1949년부터 리퍼블릭은 F-84의 V자형 주익 적용 연구를 이미 시작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이듬해에 덜컥 터졌을 때는 미공군에서 이미 운용하고있던 F-84E가 먼저 투입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록히드 F-80 -> 리퍼블릭 F-84 -> 노스아메리칸 F-86 순서로 개발이 완료되고 미공군에 공급되었지만 V자형 주익은 가장 늦게 공급된 F-86뿐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누가 먼저 공급되었느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 당시에 미공군이 운용하던 3가지 제트 전투기로써 동등한 위치에서 한반도에 투입되었고 미그-15를 만나면서 F-86은 그당시 최고의 전투기로써 명실상부 왕좌에 오르는 황금같은 기회가 되었지만 나머지 두 전투기들에게는 자신들의 태생적인 한계인 1자형 주익이 V자형 주익의 적을 만나게 되면 얼마나 큰 열세에 놓이게 되는가 입증해주는 기회가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아카데미 F-84E/G 썬더제트 키트의 박스 아트, 이제 제글을 읽었으면
박스 아트만 보고도 한국전쟁 참전한 F-84 두 버전이란 것과 F-86 세이버의
그늘에 가려서 공중전에서는 힘을 못썼지만 박스 아트에 그려졌듯이
지상에 열차를 폭격하는 임무를 주로 했던 기종이구나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겠지요?)
한국전쟁 중에 깃발을 휘날리는 F-86을 바라보면서 F-84 개발팀은 최초 개발시에 V자형 주익을 적용하지 못했던 것을 엄청나게 후회하고 땅을 쳤겠지만 그렇다고 1자형 주익으로 설계된 F-84에 V자형 주익으로 바뀌 끼운다고 해서 애초에 V자형 주익을 기본으로 설계를 시작했던 F-86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 V자형 주익을 적용한 최초의 F-84 시제기가 제작되어 F-84F로 명명되었는데 실제 미공군 "고객" 앞에서 시험 비행을 해보니 1자형의 F-84E보다는 뛰어난 스피드를 냈지만 라이벌인 F-86 세이버에는 못미치는 성능이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한국전쟁 중에 F-84E로 맨처음 배치되었다가 동일한 1자형 주익의 후속 버전은 F-84G로 엔진만 바꾼 개념이었다고 앞에서 얘기했는데???? 그러고 나서 F-84에 V자형 주익을 붙힌 버전은 F-84F라고 불린다고 했지요? 이상하지 않나요? 그 설명은 계속 글을 읽어보시면 알게 됩니다.
시험비행 후에 미공군은 F-84F에 대해서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F-84 V자형 주익 적용 프로젝트는 취소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리퍼블릭을 구원해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전쟁에서 미그-15에게 압도되어 F-86 세이버에게 주련 전투기 자리를 내주고 지상 폭격에 주력하게 된 F-84E가 비록 1자형 주익이지만 무척 안정적인 성능과 지상 공격에서는 꾸준히 우수한 전공을 세우는 모습을 지켜본 미공군이 F-84에 대해서 다시 한번 호감을 갖게 되었고 리퍼블릭에게 V자형 주익 적용 모델 개발을 다시 한번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애초에 1자형 주익을 기준해 설계된 F-84의 기체에 V자형을 갈아 끼운다는 발상은 뜻밖에 여러가지 기술적인 문제점들이 발견되어 개발이 지연되었고 F-84F에 장착할 예정이었던 J-65 새파이어 엔진의 생산이 지연되면서 개발이 함께 늦어져버렸습니다. 이런 차질이 빚어지자 미공군은 한국전쟁 중에 어쨌든 지상 공격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F-84E를 언제 생산이 가능할지도 모를 V자형 주익 적용 F-84F로 바꾸려고 생산될 날만 기다리다가 자칫 전선에 공급해야 F-84 생산의 공백이 생겨버리면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미공군은 F-84F는 건너 뛰고 F-84G라는 새로운 버전을 주문하는데 주익은 V자형이 아닌 1자형을 유지하되 엔진만 좀 더 강력해진 J-35-A-29 엔진으로 적용해서 전쟁터로 공급하게 됩니다. 이래서 F-84E와 F-84G는 동일하게 1자형 주익이고 F-84F는 V자형 주익인 것입니다.
(한국전쟁 중에 B-29 편대의 꽁무니를 쫓아가는 미그-15를 공격하러 접근하는 F-84)
결국 1자형 F-84 시리즈의 마지막 버전은 F-84G가 되었고 그동안 사용되어온 썬더제트라는 별칭은 F-84G까지만 사용하게 됩니다. V자형 주익을 적용한 F-84F의 생산이 시작될 때까지 임시로 생산하게 된 F-84G가 썬더제트의 마지막 버전이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V자형 주익을 장착한 F-84F)
하지만 V자형 적용의 F-84F 개발이 계속 지연되어 한국전쟁이 거의 끝난 1952년말이 되어서야 시험비행을 실시할 수 있었고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장에 투입이 못되는 신세가 됩니다. 엉뚱하게 F-84F 대신에 엔진 교체만으로 F-84E에 이어서 참전한 F-84G는 한국전쟁 기간 중에 지상 공격만 놓고 봤을 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공을 기록하면서 영웅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F-84G는 비록 1자형 주익이지만 시속 1,000km의 최대속도에 공중 급유 장치와 전술핵탄두 장비를 갖춘 공군 전력에서 없어서는 안될 주요 기종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특히 F-84G의 날렵한 기동성은 공중곡예에도 적합한 것으로 평가받아 1953년 발족한 미공군 곡예비행팀 '썬더버드'가 최초로 장비한 기종으로도 유명합니다.
(F-84G 공중 급유 클로즈업)
(이제는 타미야의 F-84G 썬더버즈 키트를 보면 아하! 1자형 F-84의 마지막 버전이고 한국전쟁에서 활약했었는데
최초로 썬더버즈 곡예비행팀이 선택한 전투기 기종이지! 하고 바로 나와야 하겠지요! 키트의 박스아트는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곡예비행팀이 썬더버드로 명명된 것은 F-84G의 별명인 썬더제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 뒤늦게 생산이 시작된 V자형 주익의 F-84F 썬더스트릭으로 명명되었는데 여전히 F-86 세이버의 성능에 접근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지상 공격용 임무에는 우수성을 인정받아서 2,000대 정도가 생산되었고 대부분의 물량들은 유럽 나토 회원국들과 그외의 미국 우방국들에게 수출되었습니다.
(F-84G 1자형 주익 기종에 이어서 F-84F V자형 주익 기종도 썬더버즈 곡예비행팀에 의해 선택됩니다.)
재미있는 일화는 썬터스트릭의 모양이 미그-15와 비슷하여서 많은 할리우드 공군 영화에서 미그-15 대역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전쟁 영화 한 장면에서 미그-15 "연기"를 하고 있는 F-84F, 멀리 보면 비슷합니다.)
F-84F의 특수 용도용 개조 버전으로 RF-84F 썬더플래시가 있습니다. 이 기종은 F-84F가 가진 고속 비행 성능을 활용하여 적진 상공에서 고속으로 비행하면서 사진을 촬영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위해 제작된 정찰기입니다. 기수에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하였고 따라서 공기 흡입구가 주익 연결 부위로 이동 배치되어 전혀 다른 전투기처럼 보이는 것이 특이합니다.
(RF-84F 공중 촬영 목적으로 개조된 F-84)
비록 F-86 세이버의 명성에 가려 썬더제트의 존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썬더제트가 한국전쟁에서 수행한 지상 공격 임무의 성공은 한국전쟁을 공산군의 승리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한 기종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선배격인 P-47 썬더볼트 전투기가 2차대전 중에 보여주었던 기체의 견고성(쉽게 말해서 "맷집")으로 적지않게 피탄되고도 추락하지 않고 조종사가 생환되게 한 것처럼 F-84도 한국전쟁 중에 다른 기종들에 비해서 기체의 견고성이 뛰어나서 많은 조종사들을 대공포화로 인한 기체 타격을 입고도 무사히 귀환하게 만들어준 기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런 리퍼블릭사의 명전투기의 계보는 베트남 전에서 활약한 F-105 썬더치프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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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는 쌕쌕이라고 하면 F-86세이버를 지칭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군요 세이버에 아성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것 뿐이네요. 오늘도 지식이 늘었습니다.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김작가님 화이팅!!!!
제작기 잘보고 있습니다. 붓터치가 포스 대단하세요. 파이팅!
재미있는 썬더 시리즈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마지막 사진의 정찰용 썬더제트는 완전히 다른비행기 같습니다. ^^
세이버 이야기를.하다보면 그 비슷한.이야기가.있습니다. 다음회는.드디어.세이버 이야기를.해볼 생각입니다.
@따블오남편(김준만) 다음회 기대 됩니다~! ^^
제가 에어로쪽에 유난히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썬더제트 날개 양쪽에 달려있는 것이 연료통이 맞겠죠?
어렸을 때 비행기 그림 그렸던 것 중에 양쪽에 이렇게 그렸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제게는 인상적으로 보였던 것 같아요.
이후의 전투기들을 보면 양진영의 비행기 디자인이 비슷하게 개발되는 것 같던데, 서로들 정보를 캐내다가 그렇게 된건지... 아무래도 양쪽 기술의 발전이 우연히 똑같이 진행 되었다는 것은 좀 믿기 힘든 것 같습니다. 저만의 생각인가요? ^^'
요새는 제가 게시판 글들을 많이 못챙겨보고 급하게 답글 다는 것들이 주로라서 그런지 형님께서 정성스럽게 올려주시는 글도 나중에 읽게 되네요. 재밌게 잘봤습니다^^
연료통 맞습니다. 나중에라도 재밌게 읽어주시면 고맙지요. 여러분들의 관심이 끊어지는 날이 이 게시판 문 닫는 날이거든요^^
우왕. 생긴 건 좀 이상해도 대단한 활약을 했군요! 흥미진진!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