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0310885051E63CB702)
오전에 장례미사가 있다는 걸 연락 받고 길을 나섰습니다.
며칠 주춤하던 비가 다시 쏟아지고 나서인지 성당 주변은 흠뻑 젖어 있었고,
주차장에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차들은 말 잘 듣는 아이들처럼 가지런했습니다.
진입로의 규모로 보아 그리 크지 않으리라 짐작했던 성당은
생각보다 훨씬 너른 땅에 자리하고 있었고, 드물게도 성모동산과 14처까지
마련되어 있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요즘 흔히 주차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많은 성당들과는 달리,
이만한 공간의 주차장이라면 하면서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야외 14처라니요? 언감생심 꿈도 못꾸는 성당들이 많을텐데
이만큼 준비되어 있는 성당의 교우들은 복이 많구나 싶었답니다.
미사 참례를 위해 성당안으로 들어가며
정갈한 내부 모습 곳곳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제대 위 십자가에는 벗겨진 채 버림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평소 옷차림의 예수님이 두 팔을 벌리고 맞이해주시는 듯한 모습이었고,
벽면의 채광을 위한 유리창은 격자 무늬의 한옥 창을 변형한 전통 가옥을
연상케하였습니다.
그렇게 둘러보며 잠시 기다리자 오늘의 장례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본당과 보좌 두 분 신부님께서 함께 미사를 집전하셨고,
강론은 보좌 신부님께서 진행하셨는데,
유가족에게는 서운하게 들릴지 모르나
돌아가신 할머니의 경우,
대세와 병자 성사, 장례미사까지 다 받고 가시게 되었으니
신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참으로 감사할 일이라고 위로해주셨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경우에도
가족이 신자가 아니거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이 모든 은총을 받지 못하고 부름받는 경우를 헤아려 주시며
마지막 순간에도 우리가 찾아내고 알아보아야 할 감사를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생명으로 불어넣어주셨던 숨을
마지막에는 내쉬며 하느님께로 돌아간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의 길은 마지막 순간 숨마저도 내려놓고 비우는 작업임을....
조용하고도 차분하게 정성을 다해 할머니를 보내드리는
신부님의 미사를 함께 하면서
함께 모인 신자들도 할머니를 마음으로 잘 보내드렸습니다.
미사 후 장지로 떠나는 차를 배웅하고
가는 동안 비가 많이 내리지 않기를 빌었습니다.
많던 차가 대부분 빠져나간 넓은 주차장을 가로지르며
맑은 날에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저도 제 자리로 향하는 시동을 걸었습니다.
주차장도 그렇게 차를 비워내며
다음 미사 때까지 빈 모습으로 남아 있으리라 생각하니
가득 채우며 비워내지 못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비워내야 다음 차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주차장처럼
저도 비워내야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032CA13551E64A5B2B)
<성모동산 입구의 야외 십자가>
첫댓글 비우지 못하고 채우려고만 하는 저를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아~ 티노님! 제 얘기라니까요....
채우고 난 뒤에 비우면 되져...ㅋ
채찍질만 넘흐들 옴팡지게 하시네요. 지금도 훌륭하시구만.....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그렇게 가지는 않았을거야.
사방이 온통 그에게 벽이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
혼자이지 않도록 그렇게 버려두지 않도록
고개들고 주위를 보도록 합시다.
오늘 저도 고인을 기리며 이자리에 함께했답니다 상주분이 저희직원이셨거든요 이렇게 글로나마 대신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아, 그랬나요? 함께셨다니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한 자매임을 이곳에서 확인하네요.^^
그 감사를 제가 받다니요....면목이 없습니다.
유가족이 사람이 많지 않아 허전해 보여서 마음이 쓰였어요.
상주분 돌아오시면 잘 챙겨드리세요.
비움의 미학이네요
비워야함을 알면서도
채움으로 일관하는 모습으로 사는 내가 찔리네요
부지런한 뚜아님의 성실함에
박수를~~
30살 젊은 시절에 뜨겁게 살았던 곳이지요.
여기 계셨었다구요? 아~ 신부님 나와바리셨구나^^ ㅋㅋ
청주 .... 마음에 조금씩 담기고 있습니다.
작가 최인호님은 항상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라고 표현하시던데...
아빠, 아빠, 아빠 보고시포요.
최인호의 행보를 늘 주시했답니다. 아주 오래 전~~~그가 서울주보에 매주 글 쓸 때.....
그가 만난 하느님은 그의 말처럼 정말 아빠같았기에......
세라 덕분에 기억이 되살아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