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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엘세바를 떠나 차는 쉐펠라를 향해 갑니다.
쉐펠라.
지리적으로 유대 중앙 산악지대와 해안 평야 사이의 중간 지대를 부르는 용어입니다.
[사진: 두란노 성서지도에서 인용했습니다]
쉐펠라라는 명칭은 ‘낮은 지대’라는 의미인데,
이는 성경을 기록한 주역인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이 사는 산간지역보다 낮은 지역이기 때문에 부른 용어이지, 쉐펠라 자체가 사해나 갈릴리처럼 해발 고도가 대단히 낮은 지역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쉐펠라 지역을 한글 개역성경과 개정 개역 성경, 새번역 성경은 ‘평지’라고 번역하고 있고, 공동번역 성경은 ‘야산 지대’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저지대’라고 번역하는 성경도 있고, 영어성경 중에 NIV는 ‘foothills'로, KJV는 ‘low country'로 번역하고 있군요. 대체로 야트막한 야산지대이며 상대적으로 낮은 지대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개역성경의 ’평지‘라는 번역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번역이라고 보여집니다.
쉐펠라에 대해 공부하자면 한이 없을 듯 합니다.
욕심을 자제하며, 성경적으로 가지는 중요한 의미를 간략히 정리해 봅니다.
쉐펠라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배분할 때 유다부족에게 할당된 지역입니다.
그러나 모든 가나안 땅이 다 그렇듯이 이 지역에도 원래 자리 잡고 있는 원주민이 있었습니다.
오리지널 원주민은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보다 조금 먼저 들어온 민족이었습니다.
블렛셋이었습니다.
블레셋 민족은, 원래는 에게해 주변의 해양민족이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해양민족으로 살아가던 그들이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땅을 찾아나선 그들은 지중해 남쪽과 동쪽, 그러니까 아프리카 북부 나일강 하류 유역과 가나안 서쪽 해안을 탐색하다가 가나안 서쪽 바닷가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은 통일된 왕국이라기 보다는, 가사, 가드, 에글론, 아스글론, 아스돗등 다섯 개의 도시를 중심으로 느슨한 연맹국가를 이루고 살았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유다부족은 쉐펠라 지역을 할당받고 이 지역의 이방 족속을 다 몰아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해변의 블레셋은 강력한 민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이스라엘과 숙적이 되어 오랜 세월을 다투며 살아야 하는 존재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유다부족이 살고 있는 산간지역과 블레셋이 살고 있는 해안평야지대의 사이가 쉐펠라인데,
해안에 살고 있는 블레셋의 숙원은 중앙 산간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일 것이고,
유다부족의 숙원 사업은 자신들에게 할당된 해안평야를 정복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두 나라가 늘 다툴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쉐펠라는 이런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히는 군사적 완충지대이면서 동시에 많은 전투가 벌어진 현장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얼른 떠오르는 전투, 갈등의 이야기만 생각해 보아도, 삼손, 사울과 블레셋, 다윗과 골리앗, 다윗과 블레셋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보통 쉐펠라 지역을 답사하려면 다섯 개의 골짜기를 염두에 두고 답사하게 됩니다.
다섯 개의 골짜기는 남쪽부터 라기스 골짜기, 벧 구브린 골짜기, 엘라 골짜기, 소렉 골짜기, 아얄론 골짜기입니다.
골짜기들은 블레셋의 입장에서는 중앙 산간지대로 진입할 수 있는 주요한 통로였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블레셋의 진입을 막아야 하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습니다.
쉐펠라의 이 골짜기들 요소 요소마다 이스라엘의 요새들이 세워진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겠지요.
중앙 산악지대를 넘어 사해, 에돔, 요단 넘어까지 진출하려는 야심을 가진 블레셋.
그 블레셋을 막아내야 할 뿐 아니라 곡창지대인 해안평야를 접수하고, 나아가 해변길을 소유하려는 이스라엘.
쉐펠라에는 요새들이 세워질 수 밖에 없고, 쉐펠라는 이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힌 치열한 대립의 현장이었던 셈입니다.
쉐펠라 이야기 대략 이 정도 해 둡니다.
우리 일행은 텔 브엘세바를 나와 쉐펠라의 가장 남쪽 골짜기인 라기스 골짜기의 텔 라기스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점심 스케줄이 잘 어레인지가 안 되어 맥도날드로 때우고 가기로 결정.
그런데 햄버거가..... 크더군요.
[사진: 맥도날드]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하고, 텔 라기스에 도착했습니다.
텔 라기스의 위치를 지도로 한 번 볼까요?
[사진: 두란노 성서지도에서 인용]
아라드(아랏)에서 브엘세바를 지나 라기스로 간 경로가 보이시나요?
라기스가 성경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먼저 언급해 보면,
1) 유다지파에 분배된 성읍입니다.
수15장은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민족이 땅을 분배하는 중, 유다지파에게 주어진 땅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쉐펠라 지역은 소렉골짜기를 경계로 남쪽은 유다지파에게 북쪽은 단지파에게 분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라기스는 유다 부족에게 분배된 쉐펠라의 중요한 성읍이었습니다.
[수15:33-39]
평지에는 에스다올과 소라와 아스나와
사노아와 엔간님과 답부아와 에남과
야르뭇과 아둘람과 소고와 아세가와
사아라임과 아디다임과 그데라와 그데로다임이니 열네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스난과 하다사와 믹달갓과
딜르안과 미스베와 욕드엘과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갑본과 라맘과 기들리스와
그데롯과 벧다곤과 나아마와 막게다이니 열여섯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수19:40-48]
일곱째로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들의 기업의 지역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사알랍빈과 아얄론과 이들라와
엘론과 딤나와 에그론과
엘드게와 깁브돈과 바알랏과
여훗과 브네브락과 가드 림몬과
메얄곤과 락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라
그런데 단 자손의 경계는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셈과 싸워 그것을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하였음이라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셈을 단이라 하였더라
단 자손의 지파가 그에 딸린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들의 마을들이었더라
2) 예루살렘왕 아도니세덱과 동맹한 성읍이었습니다.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가나안을 정복해 나갈 때,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자 예루살렘왕은 주변 성읍들과 동맹을 맺어 이스라엘에 저항하게 됩니다.
이때 예루살렘왕 아도니세덱과 동맹을 맺은 다섯 성읍 중에 하나가 바로 라기스입니다.
[수10:1-5]
그 때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빼앗아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주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 중에 있다 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이는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
이 전투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정복함에 있어서 가장 긴박하게 벌어진 전투 중의 하나였습니다.
기브온의 왕은 이스라엘과 화친한 것으로 인해 주변 성읍국가로부터 공격을 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 여호수아에게 구원을 요청합니다.
기브온은 가나안 땅 중앙산간지역을 점령하기 위한 교두보가 될 수 있는 전략적 요지입니다.
이 기브온을 적군이 점령한다면 이스라엘의 입장은 매우 힘들어 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긴급한 연락을 받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군대를 독려하여 밤을 새워 기브온으로 진군해갔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너의 손에 넘겨주겠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수 없을 것이다.”
예루살렘왕을 중심으로 다섯 성읍이 동맹을 맺었지만 이스라엘을 당할 수 없었지요.
그 자세한 전투 이야기는 ‘아얄론 골짜기’ 이야기 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3) 르호보암이 요새를 건축한 성읍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하11:5-10]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살면서 유다 땅에 방비하는 성읍들을 건축하였으니
곧 베들레헴과 에담과 드고아와
벧술과 소고와 아둘람과
가드와 마레사와 십과
아도라임과 라기스와 아세가와
소라와 아얄론과 헤브론이니 다 유다와 베냐민 땅에 있어 견고한 성읍들이라
4) 아마샤가 살해당한 성읍
남왕국 유다 왕 아마샤가 쿠데타를 피해 피신했다가 살해 당한 성읍도 라기스입니다.
[왕하14:19; 대하25:27]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한 고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5) 히스기야 왕 때 산헤립의 공격으로 무너진 성읍
라기스가 성경을 읽는 성도들에게 가장 익숙하게 알려진 부분은 히스기야왕 십 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해 왔을 때의 일일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날로 거세어 지는 앗수르의 압력을 이겨내기 위해 바빌론의 므로닥 발라단 등 주변의 반 앗수르 세력과 손을 잡고 반 앗수르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강력한 제국 앗수르는 지체 없이 유대왕국으로 쳐들어 왔지요.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이끄는 군대는 바로 오늘의 현장 라기스에 사령부를 차렸습니다.
라기스는 견고한 요새였지만 산헤립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함락되었습니다.
라기스를 점령한 산헤립이 랍사게 등을 보내 히스기야와 유대 백성들을 조롱하며 위협할 때 히스기야는 예루살렘 성이 포위당할 경우에 물을 확보하기 위해 히스기야는 성밖 기혼샘의 물을 성내로 끌어들이는 공사를 하게 되지요. 그것이 유명한 히스기야 터널이고, 그 터널의 종점에는 실로암이 있습니다.
[사진: 히스기야 터널을 지나오는 사진들]
[사진: 터널을 다 나오면 그 끝은 실로암]
히스기야는 확장되는 예루살렘성의 방어를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새로 예루살렘 서쪽 벽을 확장하여 쌓았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의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면서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쪽으로 많이 내려왔기 때문이라는군요.
[사진: 히스기야가 쌓은 성벽 유적이 발견된 현장.]
[사진: 성벽을 쌓다가 집과 만났나 봅니다. 그 집을 뚫고 성벽을 쌓은 모습이 특이하군요]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압력을 벗어나보려고 한 시도는 막대한 댓가를 치뤄야 했습니다.
유다가 앗수르에 사죄하며 내어 놓아야 했던 물품들은 막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개입으로 산헤립은 비참하게 물러가게 되지요.
[왕하19:32-37]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라기스를 점령했던 산헤립은 그 전투의 이야기를 자신의 궁정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기록을 통해 그날의 참혹한 현장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텔 라기스 이야기는 이만 해야겠군요.
아쉽게 텔 라기스는 우리가 도착했을 때 오르지 못하도록 입구가 폐쇄되어 있었습니다.
계속 폐쇄되는 것인지, 일시적으로 폐쇄한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진: 입구에서 본 텔 라기스]
[사진: 텔 라기스 입구 그늘에서 열공]
[사진: 텔에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 놓았더군요. 입구에서 오주엽목사님 기념 촬영.]
[사진: 인터넷에서 구해 본 라기스 복원 상상도]
[사진: 텔 라기스 항공사진. 역시 인터넷을 뒤져 구했습니다.]
[사진: 1994년 성지답사 때에 찍은 사진입니다. 당시는 이렇게 텔에 올라가 볼 수 있었는데...]
[사진: 2011년 답사 때 찍은 사진들. 처음 사진과 비슷한 곳에서 텔 라기스 입구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조금 다가가서]
[사진; 다른 방향에서]
[사진: 텔 라기스를 떠나며 차 안에서 보이는 텔 라기스를 찍은 사진입니다. 높이 솟은 모습을 찍고 싶었는데 차가 흔들려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습니다. 아쉬운대로 올려봅니다.]
라기스 역시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시련과 고난을 겪어야 했겠지요.
역사의 현장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 많은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들어야 할 사람들은 너무 무감각하게 듣지 않는가 싶습니다.
성경의 긴 역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인류의 비극이자,
바로 우리의 비극이지요.
라기스 이야기도 무거운 이야기로 마무리 하게 되는군요.
텔 라기스 이야기 이만 하고 다음에는 쉐펠라 엘라 골짜기 이야기를 올리겠습니다.
2013. 3. 19.
여러분의 목사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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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서의 배경과 역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데 이 보다 좋은 자료는 없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지난 번 북한 여행기의 사진은 교과서 편찬에 사용을 허락해 달라는 요청이 었었는데
이번 자료는 제가 출판하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출판비는 폴리사업이 잘 되면 그럭 저럭 마련할 수 있겠는데
원고료를 제대로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ㅎ
목사님, 이 귀한 자료를 일단 복사와 스크랩을 금지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ㅎ
장로님, 너무 칭찬을 해주시니 부끄럽군요.
복사, 스크랩 금지는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동안 올린 글들은 계속 보완해 나가도록 할 생각입니다.
정리하다보니 저도 공부가 되고 참 좋군요.
감사합니다.
목사님, 저는 있는 그대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수정을 누르시고 아랫 단에 나오는 설정정보에서 스크랩 허용과 복사 허용을 클릭하시고 금지를 누르시면 됩니다.
올리신 자료를 제가 파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아니라도 출판사가 분명히 나타날 것입니다.
서울의 큰 출판사에서 출판토록 해야 합니다.
귀한 자료 참으로 감사합니다.
멋진 작품촬영과 또한 성지 답사에 대한 훌륭한 해설을 잘 남겨 주셔서 여러 모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함께 가지 못한 아쉬움이 늘 남지만 현장의 생생한 모습들을 자세히 담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기도 제목마다 하나님깨 응답 받으시길! 가정에 하나님 사랑 축복 평화 건강이 일생동안 함께 하시길!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훌륭하십니다!
권사님, 저도 아쉬웠습니다. 같이 가셨으면 참 좋았을텐데, 가시기에 어려운 사정이 발생하셔서...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