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 (예레 1,7)
광주 신학교에 합격하던 날. 고등학교 때의 한 친구가 “이제 너는 앞길이 훤한 고속도로를 탔다”며 축하해 줬습니다.
그렇게 10여년을 달려 사제가 되던 1998년 1월, 그 고속도로는 IMF 한파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IMF라는 말이 너무 각인됐던 때였기에 1998년 서품자들의 별명은 자연히 ‘IMF 신부’가 돼버렸습니다.
IMF시기의 경제 한파로 가정이 붕괴된 채 가장은 실직하고 가족들은 집을 잃고 청소년은 탈선하고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취업을 걱정하고 부부들은 싸움과 이혼이 빗발치는 등 그야말로 책임과 진리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 시기였습니다. 제 서품성구 또한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시켜 남부 유다의 멸망신탁을 내린 하느님의 부르심과 맞아떨어지던 때였습니다.
며칠 전 교구 사목연수 때 포클라레 영성을 사는 새가정운동 부부로부터 강의를 들으며 혼인한 부부가 성과 출산, 자녀 양육과 교육, 경제적 어려움, 시댁·친정 가족까지의 부양과 책임으로 처절하게 살아간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비록 부부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로웠지만 저에게는 하느님께서 어디를 보내든 가야하고 무엇을 시키든 해야 하는 예언자적 소명이 있습니다. 매일같이 “너는 백성들의 애환을 마음으로 느끼고 사회의 어려움을 직시하며 나의 진리를 선포하는 참사제이냐?”하는 물음에 거룩한 두려움이 들기도 합니다.
남부유다가 멸망의 기로에서 하느님 말씀을 무시했던 때와 같이 지금도 국민들은 주리고, 윤리를 챙길 틈도 없이 방향을 잃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많은 위정자들은 진리를 외면하고 여론은 무지갯빛 낙관론만 펴고 있는 듯 합니다. 하느님 백성인 교회도 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르친 하느님 말씀에 온전히 의탁하고, 서로 친교를 이루며 초대교회로 돌아가려는 회개와 쇄신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바로잡습니다
12월 6일자 23면 ‘나의 사목모토’ 중 성경구절 마르 10,49은 예레 1,7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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