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출제도 허점 이용해 젊은 피해자 유인
빌라왕 사건 피해자 중에는 애초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면 전세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피해임차인들의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유지온 씨(30세)가 그런 경우다.
유 씨는 "건축주와 대출 브로커, 중개인 등이 짜고 친 판에 껴 사회초년생들만 매일 밤 피눈물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유 씨는 근린생활시설을 주택으로 속여 전세 사기를 당했다.
건축주가 불법 증축한 건물을 공인중개사가 문제 없는 주택으로 유 씨에게 소개했고,
그 공인중개사가 연결해준 대출 상담사는 근린생활시설을 주택으로 위장해 허위 서류를 작성했고
유 씨는 이 허위 서류로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냈다.
하지만 이후 유 씨는 계약 만료 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고,
해당 건물이 불법 주택으로 확인되면서 전세대출 연장도 할 수 없게 됐다.
또 앞으로 경매 절차에 들어가도 보증금을 다 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법 증축에 대한 벌금까지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진 출처,NEWS1
사진 설명,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모 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27일 오전 세종시 한 공유오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 피해 내용을 설명하고 정부의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도심 지역 고가의 아파트와는 달리 빌라나 오피스텔은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게 형성돼 유 씨처럼 대출을 통해 전세계약을 하는 청년이 많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행 대출제도가 한도를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는 반면 위험부담에 대한 안전장치는 미비하다고 지적한다.
전세 사기 피해자 양산의 문제를 방치한다는 것이다.
'안심전세대출 과연 안전한가?'
현재 시중은행이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안심전세대출을 이용하면 전세보증금의 80%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또 특정 기준을 충족한 신혼부부나 청년가구의 경우 보증금의 90%까지도 대출 받을 수 있다.
특히 시세산정이 어려운 신축빌라의 경우 전세금이 공시가격의 최대 1.5배에 달해도 HUG의 전세금반환보증 가입이 허용됐다. '빌라왕'을 비롯한 전세사기 집단은 이런 허점을 노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이른바 '깡통전세' 원인으로 '공시가 150% 보증' 문제가 지적되자 최근 이 기준을 140%로 낮췄다.
연세대 금융부동산학과 한문도 교수는 "사람들이 높은한도의 대출을 무리하게 받으면서도
정부가 만들어 둔 '전세보증보험' 제도를 보고
'전세난으로 전세가가 높아지니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거나
'정부가 보장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애초 이 보장한도를 공시가격의 백 퍼센트로만 설정해도 문제가 크게 날 수가 없다"며
"작전세력이 단기간 동안 전세 가격을 부풀렸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과거의 기간을 기준으로 정해진 공시가에 따라 전세대출금 보장한도를 설정하면
사람들이 무리해서 대출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전세사기 사례들의 경우, 애초 '전세난'이라 불리는 전세가격 고공행진현상 자체가
작전세력들에 의해 조작된 것인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예를 들어 실제 시세 2억 원의 빌라가 있다고 하면 작전세력이 이를 2억 4000~5000만 원 정도로 부풀려서
여러건의 위장용 거래를 진행한다"며 "공인중개사라고 하더라도 해당지역에서 오래 일했던 사람인지 확인하는 것이
사기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주의한다고 피하기 어려워.. 제도적 개선 이뤄져야'
한 교수는 "전세 사기세력은 애초 젊은층을 타겟으로 한다"며
"기성세대의 경우 전세나 월세경험이 있어 부동산 거래 위험도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인지하고 더 꼼꼼히 따지는 경향이 있지만 20대나 30대의 경우 부동산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생각보다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동산에 대한 막막함을 가진 청년들이 공인중개사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며
"작전세력이 작정하고 속이려고 한다면 단순히 주의한다거나 정보를 수집하는 정도로 사기를 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정보 비대칭도 '전세사기'의 주요원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관련법 개정을 통해 내년부터 세입자가 집주인 동의없이 집주인의 국세 체납액을 열람할 수 있게 했다.
단,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소액이하 보증금을 가진 전세계약은 미납 국세 열람에서 제외된다.
사진 출처,NEWS1
전문가들은 또 청년층이 전세사기 세력이 내세우는 '바지사장'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12일 숨진 송모(27) 씨는 등록임대사업자로 오피스텔 수십채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임대사업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임대보증금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한 교수는 송씨의 사례에 대해 "스스로 대규모의 전세사기를 기획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며
"사기세력에 의해 바지사장으로 타게팅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최근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간담회 등을 통해 만남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들이 전세금을 돌려받을 뾰족한 방법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의 관련법 개정에 따르면 내년부터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상태에서 임차한 집이 경매 등으로 넘어갈 경우
임차인들이 체납세액 변제보다 앞서서 보증금을 먼저 변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빌라왕 사태의 경우,
임대업자 김모씨가 지난 10월 사망함에 따라 피해자들이 임대차 계약해지를 집주인에게 통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