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어대듯, 도자기는 티없는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십, 수백개의 예비작품이 무참히 깨진다.
혼자 도자기를 빚고 또 깨뜨리는 외로운 싸움 속에서도 흙을 고르는 일부터 가마에 불을 때는 작업까지 8대째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전승자기(傳承瓷器)의 맥을 잇는 가문이 있다. 경북 문경에서 8대를 이어 가마를 지켜 온 김영식씨(41·문경읍 관음리)가 그 주인공.
김씨가 청화백자·철화백자·다기·식기 등 다양한 도자기를 빚은 지도 올해로 꼭 20년째다. 1989년 아버지 김천만씨가 작고한 뒤 가업을 이어받은 그는 “10년만 고생하면 밥은 먹고 살지 않겠냐는 각오로 도자기를 빚는 동안 강산이 벌써 두번이나 변했다”며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김씨가 도자기를 만드는 방식은 옛것 그대로다. 먼저 경남 산청에서 ‘산청토’를 공수해 와 집에서 톳물을 받는다. 물에 잘게 빻은 흙을 넣고 저어서 침전된 고운 입자만 사용하는 작업이다. 다음으로 반죽된 흙을 물레에 놓고 성형하는 것부터 바닥 지지대를 만드는 굽 깎기, 물칠, 초벌구이, 문양 넣기, 유약 바르기, 재벌구이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단계는 없다.
땔감 역시 옛 방식대로 소나무만 사용하고 있다. 나무 자체가 연하고 송진도 있어 불 온도가 빠르게 오를 뿐만 아니라 재는 빨리 가라앉아 가마 내부에 산소 공급이 잘 되기 때문이다.
문양 하나도 그냥 넣는 법이 없다. 그의 작품 곳곳에 들어가 있는 나비 문양은 이 지역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것이다. 자신이 계승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라는 책임감에, 그는 조상들의 작품을 재현하는 것으로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씨가 지키는 것은 유형의 문화만이 아니다. ‘톳물 받기(수비작업)’ ‘땅두멍(우묵한 구덩이)’ ‘끌목(초벌구이)’ 등 선조들의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
“이런 표현은 제가 얘기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말이잖아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러한 용어까지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김씨 가문이 단양·상주를 거쳐 경북 문경 지금의 터에 자리 잡은 것은 1886년, 6대조 김영수씨 때의 일이다. 그가 지키고 있는 ‘망댕이가마’도 6대조가 만든 것.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시대 가마로, 전통 사기 가마로는 가장 오래돼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5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 가마는 10여년 전인 2000년부터 ‘잠정휴업’ 상태다. 지금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자꾸 쓰다 보면 보수가 잦아져 원형을 잃을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때문에 현재는 이 망댕이가마를 똑같이 재현해 만든 가마에서 도자기를 굽고 있다.
이렇게 공들여 도자기를 빚는 그가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일까. 찻사발에 관심이 많은 손님이 찾아와 “작품이 좋아졌다”는 평과 함께 구입해 갈 때란다. 금액을 떠나서 찻사발은 그만큼 만들기도, 인정받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 가치를 알아 주면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 받는 기분이 들면서 전율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김씨의 눈이 빛났다.
올가을, 그의 집에는 특별한 건물이 생긴다. 문경 도자기와 김씨 집안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과 전시장을 짓고 있는 것. 이 박물관에는 조상들이 만든 작품과 사용하던 도구, 그가 소장한 조선시대 백자들도 함께 전시할 예정이다.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만큼 각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일본어와 영어로도 번역해 둘 계획이다.
9대째 후계자에 대한 고민은 일찌감치 접어뒀다.
초등학생인 두 아들이 서로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겠다고 나서고 있어서다. 큰아들 동연군(12)은 ‘도자기 만드는 초등학생’으로 방송에도 출연해 ‘될 성 부른 떡잎’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고.
문경=김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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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카사모 원문보기 글쓴이: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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