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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29회 열린시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_ 김하경 시인 박선영 시인 김월수 시인
마지기 추천 0 조회 427 13.10.26 13: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당선작 _ 김하경

 

 

나무 배꼽 외 3편

 

 

복숭아나무 한 그루 옹이가 둥글다

 

해거름이면 마당가 복숭아나무에 물을 주고도

거뭇거뭇 검버섯 돋은 할머니 푸짐한 밥상 차려준다

 

갈래꽃도 새로운 별빛에 흠뻑 배였는지

갓 핀 꽃잎은 붉은 마음이 터졌다

 

포목점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졸고 있는 나를 눕히며

나무 밑에 드므는 언제나 간절하다

 

어두운 밤 오줌발 소리가

지붕을 빠져나가 너울거리는 별빛을 불러 모으는 봄

 

드므는 무엇을 채우려는가

 

젖은 땅은 할머니 물찬 관절처럼 질퍽일수록

흰 수건을 머리에 감고 살았던 하늘은 맑고 복숭아는 달았다

 

늙은 복숭아나무 배꼽은 할머니 탯줄을 잇는 유적

도닥거리며 조심스런 잠을 재우던 날 정신은 뚜렷했는데

별빛은 무엇을 적시고 있는지

 

매운 맛처럼 빨갛게 물든 오줌소태

찔끔찔끔 속옷 적시던 지린내가 진동하고

나무는 복사꽃 피우다가 제자리에 주저앉아 옹이로 늙었다

 

언제나 복숭아나무 밑 추억의 뿌리는

드므를 닮아 오래된 유적처럼 고요하다

 

*드므: 넓적하게 생긴 독. 건물 앞의 독처럼 생긴 것은 드므라고 하며 하늘의 화마(火魔)가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고 놀라 달아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합죽선

 

 

 

 

 

박물관 벽면에

대오리살 수액이 한지 위로 배어나올 것 같은 대나무가 빗금처럼 말라있다

 

먹물번진 햇살 아래로 한걸음 물러 앉힌 반야를 남겨둔 공민왕

아버지 따라 궁궐로 들어간 고려인의 모습이다

 

늑골에 대나무 겉대가 툭툭 불거졌다

 

시첩 뒤를 살금살금 밟던 공민왕 숨소리

고려인 울음소리가 대통 속에서 들리고 쭉쭉 결을 편 합죽선이 둥글다

 

오므렸다 펼쳐진 합죽선, 빗금이 짙다

내 손바닥에도 빗금이 짙다

 

주먹 쥐었다 편 사이에 등줄기 따라 서늘함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리고

고개를 숙여야만 보이는 가슴은 아리다

 

나는 남의 손바닥에 얼마나 많은 빗금을 쳐야 했던가

 

부채를 만든 문화생의 땀 젖은 손가락 끝을 보면

빗금 같은 지문에 굳은살이 동글동글하다

 

마름질 하다가 멈춘 한지가 바람 따라 대오리살을 휘익 감아올리고

어제와 오늘을 나눠놓은 이곳에 공민왕은 먼 우주에서 부채질할지 모르는 일

 

반야의 속치마 자락이 구름처럼 펄럭이고

합죽선 이야기로 접혔다 폈다 마무리 된 박물관은 고려의 하늘이다

 

고려인 얼굴들이 벽면에서 빗살무늬 그늘을 치고 있다

 

 

 

 

 

도마 속의 삼족오(三足烏)

 

 

 

 

 

꿩을 다루는 주인 창을 던지듯 칼을 흔든다

 

고구려 왕릉에서 발굴 된 예맥 족들이

쌩쌩 불어오는 바람과 맞서 벽화 속에서 말 타기 즐겼다

 

우거진 숲 속 분주하게 달렸던 광개토대왕

달아나는 새의 날갯짓 힘보다

앞을 겨눈 시간들 창은 적들의 전략 앞에 빠르게 꽂힌다

 

사라진 고구려의 삶

짐승을 쫓는 눈빛이 햇살아래 반짝인다

 

엉덩이를 들고 말을 달리던 왕

흙속에 묻힌 지금

힘껏 던진 창살 여전히 심장에 번쩍거리고

꿩을 적중한 도마 위는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다

 

북면 우주 꿩 요리 식당 주방

벽화 속 왕의 사냥터로 핏물이 흥건하다

 

날마다 하늘로 도망쳐야 할 꿩

지난 날 나의 힘이라면

앞만 겨눈 사냥의 힘

산속에 흩어진 삼족오 피가 칼도마 위에 벽화로 물들었다

 

다다다다 도마 위의 칼 소리 산등성이를 휘어잡고

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내가 식당을 나온다

 

 

 

 

 

 

 

 

밀서

 

 

 

 

 

삽짝 밖 탱자나무 울타리는

탱자 꽃이 온종일 지고

0다리 노인이 강아지를 끌고 뒤뚱뒤뚱 지나간다

눈물처럼 무릎에 물이 차오르나보다

시간이 익어 하얗게 늙어가는 동안

정수리에 핀 꽃은 제 빛깔이 아니다

초저녁 석양은 하루의 마무리다

밀서를 쥐고 길 떠나는 노인

시들시들한 부종은 무덤 같다

방울소리 딸랑거리는 강아지 한 마리

꼬리를 말아 올린 뒷다리가

말굽처럼 휘어졌다

노인의 무릎도 동그랗게 휘어져 있다

∩ 교집합 다리

목적지의 삶도 능선처럼 동그랗듯

시간의 흉터도 동그랗게 휜 다리를 끌고 잘름잘름 길을 간다.

퉁퉁 부은 무릎에 크락션 소리 들린다.

물찬 통증을 빼는 오늘

천자는 밀서를 뽑아 낸다

수액을 흔들어 시간을 빨아낸 통증

다리는 이미 무릎이 아니다.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강아지

어제 만든 죽음의 골대 앞에서

생을 앓은 코너킥에 맞서 하늘을 보고 짖는다

 

퇴화중인 무릎 사이

반달이 뜬다.

 

*천자: 퇴행성관절염 무릎에 관절 액을 주사기로 빼는 행위

 

*당선소감 _ 김하경

 

 

사철나무처럼 언제나 푸른 시를 쓰겠습니다

 

 

 

따뜻한 봄빛을 기다리는 저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봄바람과 함께 새싹이 곧 나올 것이라는 희망, 차디찬 땅속에서 영양분을 흡수해 땅밖으로 고개 내민 새싹들을 볼 때마다 저를 생각했습니다. 제 가슴의 씨앗 언제 꽃을 피울지……

해마다 돌 틈사이로 얇게 난 새싹을 보곤 하다가, 금년 봄엔 내 마음 곡 잠들었던 씨알 하나를 조심스레 싹틔워봅니다. 

당선소식을 받은 후, 시를 쓰기 시작한 첫날과 오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것이 변했더군요. 글을 쓰는 감정과 다짐은 낡아버렸고 제 피부 또한 잔주름이 늘어났습니다. 가끔은 라는 것에 물려 가 싫을 때도 있었지만 또 어느새 제 옆으로 줄서 있는 시집을 보면서 나는 라는 친구를 꽤 사랑했나 봅니다. 단 한편의 시라도 사철나무처럼 언제나 푸른 시를 쓰고 싶었고, 마르지 않은 열정을 갖고 싶었습니다.

와 권태기에 빠졌을 때 시인은 누구도 갈 수없는 곳, 보이지 않은 곳을 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진정한 사랑에 대해 일러주신 여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낌없는 조언과 응원을 보낸 가족과 제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앞으로도 시를 쓰면서 의 부족함을 메우고 더욱 사랑하며 매진 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제 꿈의 씨앗,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열린시학≫에 감사를 전합니다. 

 

 

 

1963년생 전북 익산출생. 신구대학교 졸업. 현 양산 성모병원 근무.

 

 

 

 

 

 

 

 

 

 

 

■ 당선작 _ 박선영

 

 

백합을 구우며 외 3편

 

 

새만금 방조제가 들어 선 심포항

보랏빛 무늬가 자리한 허름한 포장마차 안

눈발이 사선으로 나뒹군 길들이 하얗다

희미한 전등이 입속 가득히 군침을 모으고

화덕 주위로 빙 둘러 앉은 사람들 어둠에 물든다

쿨럭이는 기침 소리의 입자가 체온 속으로 사라지고

고장 난 목젖이 시계추처럼 딸각 거린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연탄불 위에 그득한 백합

개펄에서 끌고 온 까무잡잡한 삶이 깊은지

선한 꿈 부둥켜안고 바다의 비린내를 비벼댄다

허연 촉수를 안테나처럼 세워 밖을 살피다가

능숙한 손가락으로 툭 툭 건드려보면

수줍은 열아홉 처녀의 가슴처럼 소스라쳐

딱딱한 껍질을 안으로 걸어 잠군다

화덕에 구워질 저 고장 난 몸짓을 보라

악마의 혀처럼 날름거리는 구공탄 불꽃 위

짠물속의 두꺼운 살 냄새가 너무 진하다

내게도 살 냄새가 진하게 달궈질 때가 있었지

바닷바람에 씻긴 흔적 켜켜이 치켜들고

데워지면서 떼로는 속을 뒤집어 보인 적 있었지

생의 속 깊은 내력이 국물 속에 출렁이며

빈 껍질만을 남긴 채 생을 마감한 미물 앞에서

백합을 굽던 내 가슴이 소리없이 벌어진다

 

 

 

 

 

 

 

외달도에서 사랑을 묻다

 

 

 

 

 

배낭 하나 메고 다가선 목포항 터미널

사방에서 짝을 지어 꽃망울 펑펑 터트린다

이번 봄에는 아무래도 배를 탈 것 같은

그래서 홀로선 섬에 다다를 것 같은 꿈꾸었다

섬으로 떠나는 걸음들이 분주한 선창가

지나던 달빛이 주위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터미널이 떠나갈 듯 출항을 돋우는 검표원의

쉰 언어들이 잔잔한 가슴을 뜨개질 한다

끝없이 파도 사이로 솟구치는 내 생의 골격들

동그랗게 움켜쥔 시간 속에서 포말을 일으킨다

스크류가 항구를 밀어낸 만큼의 거리에서

바닷가 물큰한 비린내가 푸른 파도를 부른다

멀리 파도소리 속으로 들어가는 외달도 불빛

피아노 선율에 맞추어 춤추듯 출렁이고

바라다볼수록 마음속의 지문처럼 어둠속에 찍혀있다

무언가 간절히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얼굴 붉히는

그런 목포앞 바다에 떠있는 외달도를 愛자로

바꾸어 부르는 이유를 이젠 알 것만 같다

어둠속에 연인의 모습같이 흐릿하게 보이는 섬

가슴 한 자락 비집어들어 손에 잡힐 듯한 모습

외달도, 애달도, 애달도라 부르면 애달아지는

가슴에 매듭하나 짓는 간절한 물음 하나

   

 

 

 

느린 걸음으로

 

 

 

 

 

자유시라 해서

내 멋대로 꾸며내는 줄 알았다

허술한 정서 보퉁이 울러 메고

길 떠나면 목적지에 깃발 꽂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라고 빈둥거렸다 

첫 발을 내디뎠을 때의

설레던 그 다짐들 모두 잊은 채

빈 낚싯대만 들고 세월을 갉아 먹고 있었다

시 쓰는 길 떠나온 지 벌써 오년

문득 앞을 바라보니 거대한 산봉우리는

안개 속에 가려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더 이상 지체 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길 저 길 뻔질나게 기웃거리며

시인이라는 길로 빨리 접어들 지름길을 찾았다

도둑고양이처럼 남의 담장을 넘기도 했으며

입만 벌리고 있으면 배고픈 배가 불러오리라

착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나 

시는 알고 있었다 마른 길만 택한 얄팍한

나의 술수를 한눈에 꿰뚫고 있다는 것을

자벌레처럼 한 발 한 발 느린 걸음으로

어머니의 하얀 옥양목에 수놓아진 꽃처럼

한 땀 한 땀 꿰매야 한다는 걸

 

 

 

 

 

 

 

찌그러진 운동화

 

 

 

 

 

산들바람 군데군데 스치는 텅 빈 고향집

먼지 수북이 쌓인 회색빛 마루 밑에

뒤축 접힌 운동화 한 짝 나란히 놓여있다

양 방향 끝이 먼 길을 돌아 멈춰 서 있다.

 

가족사를 끌고 온 저 깊은 무덤 근처

지울 수 없는 기억들 누렇게 퇴색되고 있다

지글거리며 픽픽 밥 익는 소리 내던 무쇠 솥

김을 금방이라도 무럭무럭 피워 올릴 것만 같다 

 

행여 누군가 훔쳐 갈까봐 조바심 나던 날

밤새 잠들지 못하고 온 밤을 파랗게 속삭이던

한때는 나의 재산 목록 1호쯤 되었던 길의 종착역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심지가 타들어가고 있다

 

긴 머리 소녀 하나 머리에 리본을 꽂고

분홍색 치마를 입고 골목길을 나선다

깔깔거리며 흰 운동화를 신고 깡총댄다

빈집의 적요를 안고 내 곁을 맴도는 운동화

 

 

 

당선소감 _ 박선영

 

 

산국 한 아름 안겨드리겠습니다

 

 

 

꿈 많았던 여고시절, 나는 광주 서석동 기찻길 옆에서 자취를 했었다. 가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다 옆방 언니에게 전달되는 조그마한 엽서에 깨알 같은 훔쳐보곤 했다. 아름다운 시어로 적힌 전언들이 대문 앞에 넣어지면 그걸 훔쳐보는 쏠쏠한 재미, 그때부터 막연히 글이 쓰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삶에 부대끼다보니 글을 써야겠다는 것은 마음뿐이었다. 중년되어서야 되서야 잃어버렸던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늦었지만 나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전남대 문예창작반의 문을 두드렸다.

글은 특별한 영감을 가진 사람만이 쓰는 줄 알았다. 그리고 국문학적 소양이 있는 사람만이 접할 수 있는 영역인줄 알았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 보자 다짐을 했다. 처음엔 정말 신이 났었다. 한 편 한편 써내려갈 때의 그 짜릿함이란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펜을 꺾고 싶었다. 일주일이면 시제가 몇 개씩 늘어나고, 글을 쓰는 자신감은 차츰 무디어졌다. 그러니 게으름을 피울 수밖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맛으로 그럭저럭 수업을 받으며 언제 그만둘까를 망설이고 있는 것을 보시고 이상호 교수님께서 김득신의 공부의 치를 말씀해주셨다. 다시 용기를 내었다. 그러기를 4년, 당선소감을 써 보내라는 전화 한 통이 나를 들뜨게 한다. 오늘같이 좋은 날,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묘지 앞에 산국 한 아름 놓아 드리고 싶고, 이상호 교수님께 감사의 문자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제 글에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전대 문예창작반의 문우님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전남 나주 출생. 광주선광학교 근무(현)

 

 

 

 

 

 

 

 

■ 당선작 _ 김월수

 

 

대추나무에서 책을 읽다 외 3편

 

 

대문 앞 대추나무에 올라가 주변을 읽는다

정자엔 어른들도 없고 마당에서 놀던 아이들도 없다

모두 영자네 잔치에 간 것이다

우리 엄마도 갔다 나도 잔칫집에 가고 싶지만 엄마와 마주치면 붙들려 집으로 돌아와야 하기에 오늘도 홀로 대추나무에 올라 책을 펼친다

떡 안치러 간 엄마는 떡에서 김이 나는 것을 확인하면 돌아올 것이다

 

책 속에서 잔치 음식이 와글거리는 마당을 읽고

음식 먹을 나의 차례도 읽고

아이들과 어울리며 잔치 냄새를 읽는데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내 몫이 차려진 상에서만 먹어야 된다는 엄마, 떡이라도 가져왔으면 하는 내 기대를 저버린 채 빈손으로 돌아온다

그 페이지가 읽기 싫어

고픈 배를 움켜쥐고 다음 쪽을 넘긴다

 

 

 

 

 

 

하이에나

 

 

 

 

 

사람들은 내가 사냥꾼인 줄 모른다

 

화상을 입은 나의 얼굴을 보며

썩은 고기와 시체를 치워주는 청소부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활활 타오르며 불이 번지는 숲속에서

화상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족을 데리고 나오는 가장이다

어떤 먹이도 부술 수 있는 튼튼한 턱을 가졌고

사자의 사냥감을 낚아채는 용기가 있다

 

사람들은 내가 벌판에 피어 있는 꽃의 아름다움도 모르는 줄 안다

나는 빨강 꽃의 정열 노랑꽃의 질투 같은 꽃말까지 사랑한다

꽃을 감상하고 노래할 줄도 안다

꽃이 있는 그곳에 사냥감들이 새끼들과 끼니를 먹으러 오면

 

가족을 먹이고, 지키고, 키워야 할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나는

꽃을 쳐다볼 여유 같은 건 생각도 못 한 채

풀이 무성하고 꽃이 만발한 그곳을 못 본 척 뛰어 지나쳐야 하는 것이다

 

어슬렁어슬렁 들판을 거닐며 내일을 계획 할 수 없는

가장의 절박한 발걸음을 사람들은 알 턱이 없는 것이다

 

 

 

 

 

 

 

먼지의 방

 

 

 

 

 

먼지가 많을수록 나의 능력은 강해진다

여자의 매력이 넘치진 않지만 먼지만 다스리면

나에게 만족하는 남자가 많다

철없는 남자일수록 나를 더 좋아한다

남자에게 많은 먼지가 따라 다녀서 그런 것 같다

먼지는 나를 따라다니며 재롱을 부린다

밥을 할 때도 화장을 할 때도

 

나를 따라온 먼지를 크림을 바르듯 부드럽게 쓰다듬고

어루만져 주고

톡톡 건드려 주면

온 집안을 뛰놀다가도 얌전해진다

 

먼지가 조용해진 틈을 타 나는 책을 보고

티브이를 보고

전화를 들어 친구에게 모임을 알리고

자식들에게 안부를 묻거나

부드럽게 돌지 않는 보일러를 살펴달라고 보일러회사에 부탁을 한다

 

나는 먼지를 가지고 남자를 다스린다

 

 

 

 

 

 

 

경전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차곡차곡 정리된 명심보감, 천자문, 우리의 태실, 소학 등 그의 파편들이 어제 같은 몸짓으로 책장 안에서 쉬고 있다 귀퉁이의 공간도 포만감을 갖고 있다

 

당신에 산속 집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측량을 하고 나무를 세고 야단법석이다 어디로 갈 것인지 아직 정하지도 못했는데……

 

누구는 숲속으로 들어가라 하고 누구는 잘 정돈된 나무집으로 가라하고 이웃에서는 그가 가꾸던 산 속 집을 그대로 지키라한다

그의 손때 묻은 연장들과 냄새가 남아있는 옷들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듯 웅성거린다

 

그들도 차곡차곡 정리된 책장 속에서 잠을 자고 싶고 나무들하고 벗하고 싶고 새들의 소리도 듣고 싶은가보다

 

오늘은 명심보감 읽는 아버지의 소리를 듣고 싶은 밤이다

 

 

 

 

 

 

■ 당선소감 _ 김월수

 

 

가시밭길이라 해도 최선을 다해

 

 

 

지구라는 별에 기착한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꽃과 나비 그리고 새들은 내가 평소 꿈꾸던 것들이었다. 나는 무턱대고 꽃의 말과 새들의 말과 바람의 말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수은등이라고 달은 기록되었다. 이 기록들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발굴되어 읽혀지더라도 두렵거나 당황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나의 기록은 꽃의 말과 새들의 말과 바람의 말을 옮겨 적어놓은 것에 불과하므로. 나는 단지 기록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므로. 간혹 어눌하거나 억지스럽거나 말더듬이 같은 기록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또한 진눈개비의 말일 터. 나는 나의 이 외로운 기록을 그냥 즐기기로 했다. 그런 날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오늘 그 기록 위로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그 빛을 그냥 통과시키기로 한다. 빛은 자유로울 때 가장 따뜻하다는 걸 나는 안다. 앞으로 거센 폭풍우가 몰아칠 것도 알지만 나는 그 폭풍우도 그냥 통과시킬 것이다. 나는 단지 기록자에 불과할 뿐이므로. 눈보라를 물의 비행이라고 기록할 것이다. 날이 풀리면 부드러운 바람과 꽃이 몰려올 것이다. 분주하지 않으리라. 꽃의 눈물에 동요하지 않으리라. 나는 시간의 여행자이고 또한 나는 아직 젊으니까.

기록자의 책무로, 후들거리는 다리로 이 가시밭길을 성심껏, 묵묵히, 기꺼이, 최선을 다해 걸어가겠다. 항상 믿음을 주셨던 맹문재 선생님 감사드린다. 부족한 기록 힘겹게 읽어주셨을 심사위원님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더 당차고, 좋은 기록으로 보답하겠다. 가족들에게도 이 기쁨이 작으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5년 임화 문학상 수상. 시집 ?그와 나의 파도타기?가 있음.

 

 

 

 

 

 

 

 

 

■ 신인작품상 심사기

 

 

서정의 힘과 잔잔한 감동

 

 

 

 

 

2012년 임진년 벽두부터 ≪열린시학≫신인작품상의 열기가 뜨겁다. 많은 작품들에서 감지되는 훗훗한 열기가 역시 신인의 패기를 느끼게 한다. ?운주사?外의 작품에서는 시상의 빠른 전개가 돋보였으나 깊이가 부족하였으며, ?고래의 휴가?外의 작품에서는 의욕이 넘쳤지만 시상의 연결이 부드럽지 못했으며, ?순우리말 서정 1?外의 작품에서는 아직 정제되지 못한 거친 호흡이 결정을 망설이게 하였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숙의 끝에 다음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김하경의 ?나무 배꼽? 外의 작품에는 복숭아나무 한 그루 밑의 드므처럼 넓으면서도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다. 다소 전통적이지만 늙은 복숭아나무는 할머니의 객관적 상관물로 서정자아와의 간극을 이어주는 매개물로 살아 존재한다. 어두운 밤 오줌발 소리가/ 지붕을 빠져나가 너울거리는 별빛을 불러 모으는 봄처럼 시인의 서정을 길러온 힘은 잔잔한 감동을 불러 모은다. ?합죽선?에서는 박물관에 전시된 합죽선을 통해 고려인 울음소리를 들으며 남의 손바닥에 …많은 빗금을친 자아를 투시해보기도 한다.

 

박선영의 ?백합을 구우며? 外의 작품에는 삶의 이면에 놓인 복잡다단한 사유의 무늬가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어느 포장마차 안에서 조개를 굽는 단상을 그려내면서 시뻘겋게 타오르는 연탄불 위에서 개펄에서 끌고 온 까무잡잡한 삶의 깊이를 읽어낸다. 딱딱한 껍질을 안으로 걸어 잠그는 처녀의 가슴으로 치환되면서 바닷바람에 씻긴 흔적 켜켜이 치켜들고/ 데워지면서 떼로는 속을 뒤집어 보인시인의 삶으로 확대 변용 된다. ?느린 걸음으로?에는 허술한 정서 보퉁이 울러 메고 빈둥거리는 시인 일반에 대한 비난을 내포하고 있으면서 자벌레처럼 한 발 한 발 느린 걸음으로/ 어머니의 하얀 옥양목에 수놓아진 꽃처럼/ 한 땀 한 땀 꿰매며 걸으리란 다짐을 보여주고 있어 믿음직스럽다.

 

김월수의 ?대추나무에서 책을 읽다? 外의 작품에서는 사물을 투시하여 그 너머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지력이 주목된다. 관조하는 시인의 시각은 단정하고 차분하다. 언뜻 보기엔 밋밋해 보이지만 작품 뒤에 남는 이미지가 은근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대추나무에서 책을 읽다?에서 잔칫집에 간 엄마는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절대적 기준이 되는 잣대는 어린 시절만의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늘 혼자일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삶은 대추나무 위의 책읽기라 할 수 있다. 썩은 고기와 시체를 치워주는 청소부로만 생각하는 ?하이에나?에서는 화상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족을 데리고 나오는 가장의 오롯한 삶을 읽어낸다. 우리 살아가는 삶의 양태를 차분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세 분 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작품의 낙폭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완전무결한 작품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래도 시인은 모름지기 좋은 시 한 편에 자신의 예술혼을 다 불어넣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한다. 바른 정신으로 꾸준히 정진해주기 바란다.

 

― 심사위원: 이상국 ? 정일근 ? 이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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