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 전라도 가시내
알록조개에 입 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 아닌 봄을 불러 줄께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 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1940, 시학>
이 시는 함경도 사내인 화자가 압록강 다리를 건너 북간도 술집에서 전라도에서 온 가시내를 만나 함께 자면서 위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경도 사내인 화자는 압록강 무쇠다리를 건너 와 북간도 술막에서 어두운 등불 아래서 시름 속에서 술을 마시면서 눈이 바다처럼 푸르고 까무스레한 얼골인 전라도 가시내를 대상으로 온갖 방자한 말을 한다. 술을 따르면서 너의 마음속에 있는 가난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전라도 가시내가 석 달 전에 단풍이 물든 가을에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에게 두어 마디 전라도 사투리로 때아닌 봄노래를 불러 줄 터이니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휘 날리며 잠깐만이라도 전라도로 돌아가라는 방장한 말을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아침이 되면 눈보라 휘감아치는 벌판으로 나갈 것이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목 ‘전라도 가시내’는 화자가 북간도 술집에서 만난 여자로 가난으로 인하여 한반도 끝인 전라도 바닷가에서 남의 땅인 북간도에 팔려와 술집종업원을 하는 존재로 일제강점기에 의해 조선백성이 타국에 몸을 팔 정도로 피폐하고 곤궁한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인물이다. 당시에 ‘전라도’ 바닷가는 조선 남쪽에서는 가장 오지(奧地)이다. 이러한 촌 중에서도 깡촌의 처녀가 함경도를 지나 북간도 술막까지 몸이 팔려 술집종업원이 된 것을 통하여 일제강점기의 조선 민중의 피폐함을 드러내고 있다.
‘알록조개에 입 맞추며 자랐나 /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골 / 가시내야 / 나는 발을 얼구며 /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는 전라도 가시내의 모습을 묘사하고 화자 자신이 두만강에 놓인 철교를 건너온 함경도 사나이라는 소개를 하고 있다. ‘알록조개에 입 맞추며 자랐나 /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골’은 전라도 가시내가 전라도 바닷가 출신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는 실제로 눈이 푸른 색이라는 것이 아니고 눈이 깊고 맑다라는 의미이다. ‘까무스레한 네 얼골’은 가시내가 햇빛에 탄 얼굴이라는 것이다.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는 불안해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호개’는 북간도 지방의 개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두운 등불’은 북간도 술막의 방에 불빛을 말하고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은 화자가 자신의 시름을 술로 잠깐 잊으려 하고 있음을 말한다. 술을 마시면서도 화자는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 두터운 벽도 이웃도’ 믿을 수 없는 불안한 상황 속에 화자가 있음을 알려준다.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 눈포래를 뚫고 왔다 / 가시내야 /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 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거다오’화자는 술집종업원인 전라도 가시내에게 ‘온갖 방자’한 말을 한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는 험난한 고생을 하면서 북간도 술막에 왔다는 것이다. ‘너의 가슴’은 가시내의 마음을 말한다.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은 가시내가 살아온 가난과 힘든 삶을 의미한다. ‘나는 헤매이자’는 가시내가 겪은 어려운 삶에 대하여 듣고 싶다는 것이다.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는 가시내가 행하는 것으로 가시내의 현재 신분이 술집종업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거다오’는 가난으로 인해서 먼 북간도까지 오게된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는 가시내의 이야기를 듣고 그 슬픈 마음을 질문의 형식으로 위로하고 있다. 가시내는 석 달 전에 단풍이 든 가을에 북간도에 기차를 타고 온 것이다.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는 조선의 온 나라가 단풍으로 아주 아름다웠을 터인데도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울면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왔냐고 하는 것이다.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에서 ‘불술기 구름’은 증기기관차의 증기를 말하는 것이고 ‘유리창이 흐리더냐’는 눈물이 앞을 가려 기차 밖에 아름다운 단풍을 보지 못했냐는 말이다.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없이 새기는 보조개 / 가시내야 /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 줄께 /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는 화자가 가시내에게 고향 생각에 잠기도록 해주겠다는 방자한 말을 하고 있다.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없이 새기는 보조개’는 화자가 가시내의 보조개를 보고서 추측하는 것이고 ‘싸늘한 웃음’은 가시내가 석 달 동안에 감정을 잃어버릴 정도로 힘든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 줄께’는 화자가 전라도 사투리로 가시내에게 고향의 즐거운 생각을 떠올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는 가시내가 손때가 묻도록 많이 울었음을 말한다.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는 잠깐이지만 고향의 즐거웠던 생각에 잠기라는 말이다.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는 화자가 날이 밝으면 가시내와 헤어져서 흔적도 없이 떠날 것이라는 말이다. ‘어름길’은 화자가 앞으로 살아야할 삶이 몹시 힘든 길임을 말하는 것이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는 가시내에게 불러준 ‘때아닌 봄’의 노래도 사라지고 발자욱도 없이 사라질 것이니 오늘 밤은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에서 조국을 떠나 이역에 온 같은 동포인 화자를 믿고 고향 생각에 잠기자는 말을 하는 것이다.
가난으로 인하여 이역까지 팔려온 전라도 처녀를 통하여 일제강점기에 가난하고 피폐한 처지에 놓인 조선 민중의 삶을 볼 수 있는 시이다.20120717화후0243전한성흐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