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개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전국 650개 서원 중 철폐 되지 않은 서원이다.
47개 소는 서원명칭을 가진 것이 27개 소, 사(祠)가 20개 소이다.
[표 2]에 의하면 서원은 전 시기에 걸쳐 8도에 417개 소가 있었으며, 사우는 492개 소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후기, 특히 숙종 때 서원이 남설되면서부터 서원·사우의 구별이 모호해졌으므로, 사우까지도 서원과 비슷한 성격으로 파악하여 양자를 합하면 모두 909개 소에 이른다.
1741년(영조 17) 서원철폐론의 당시 서원·사우 등 여러 명칭을 모두 헤아린 숫자가 1,000여개 소에 가깝다고 말한 것이 통계로 뒷받침되고 있다.
흥선대원군은 1864년(고종 1)에 이미 민폐문제를 구실로 사원에 대한 조사와 그 존폐여부의 처리를 묘당에 맡겼으며, 1868년과 1870년에 미사액서원과 사액서원으로 제향자의 후손에 의하여 주도되면서 민폐를 끼치는 서원에 대한 훼철을 명령하였다.
이어 1871년에 학문과 충절이 뛰어난 인물에 대하여 1인 1원(一人一院) 이외의 모든 첩설서원을 일시에 훼철하여 전국에 47개 소의 사원만 남겨놓게 된 것이다. 이때 존치된 47개 소는 서원명칭을 가진 것이 27개 소, 사(祠)가 20개 소이다. 그 명단은 [표 3]과 같다.
도학서원[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