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중군자강독회(회장 조원길, 교수
박희택) 회원 16명은 주자선생 유적을 답사하기 위해 2013년 12월 6일부터 10일까지 중국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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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문은 지난해 장계향의 학문적 원류인 공자의 본향인
중국 산동성, 제남, 곡부 등을 찾아 공자․맹자의 주요기관을 방문하여 이들이 주창한 군자사상과 조선 중기 그들의 유교사상의 주축을 이어받은
여중군자 장계향의 사상적 가치관을 비교연구한데 이은 것으로, 올해에는 주자묘가 있는 중국 복건성 건양시를 비롯하여 주자가 제자들을 양성한 서원
등 주자교육철학의 발자취를 찾았다. 이는 “동방의 주자”라 불리우며 고려말에 유입된 성리학의 토착화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신 퇴계선생께
이르기까지의 유교의 뿌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우리의 유교전통문화에 대한 고찰을 위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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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은 상해시 예원(豫園)을
방문하였다. 예원(豫園)은 상해시에 있는 중국 전통정원이다. 명나라 관료였던 반윤단이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1559년에 착공하여
18년만에 완공하였다. ‘豫’ 자에는 ‘미리’라는 뜻 외에 ‘기뻐하다’는 뜻이 있는데,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조성한 정원이란 의미에서
‘예원’이라 하였다. 북경의 이화원을 본떠지었으며, 황제만이 쓸 수 있었던 용상을 조성하면서 발가락수를 차이 나게 하여(예원 3개, 황제 5개)
역적으로 몰릴 화를 모면하였다고 전해진다. 입구에 있는 삼수당(三穗堂)은 ‘穗(이삭)’ 곧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하나의 벼에서 세
개의 이삭이 나오라는 기원이 담긴 것으로, 한나라 때 채무(蔡茂)의 고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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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은 주자묘-고정서원-주자고거-흥현서원-유씨사당을
방문했다. 주자묘는 복건성 건양시 황강(黃坑)에 있다. ‘坑’ 자가 ‘갱’으로 읽히면 ‘구덩이’란 뜻이지만, ‘강’으로 읽히면
‘산등성이’란 뜻이 있다. 완만한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주자묘는 부인 유씨와 합장되어 있으며(宋先賢 朱子/夫人 劉氏 墓), 강가의 조약돌로 온통
치장되어 있다. 진입하는 길 가로등에 “父之所貴者慈也, 子之所貴者孝也(아버지가 귀히 여길 바는 자애로움이고, 자식이 귀히 여길 바는
효도니라)”, “勿損人而利己, 勿妒賢而嫉能(다른 사람을 손해 입혀서 자신이 이롭게 되려 하지 말며, 현인을 시기하여 그의 능함을 질시하지
말지라)”과 같은 <주자가훈> 내용 중의 일부가 배너로 걸려 있는데, 파손된 것도 많은 채로 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
방치되어 있는 느낌이 들지만, 한국정주학회가 세운 주부자림비(朱夫子林碑)도 있고, 신안주씨 한국중앙종친회가 세운 사원정(思源亭)이 있어 주자의
학덕과 근원성을 기리고 있다. [‘源’은 옛 신안 중에서도 주자 윗대의 세거지인 ‘무원(婺源)’을 지칭할 수도 있겠다]. 이는 한국 성리학계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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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서원(考亭書院) 또한 복건성 건양시에 있는데,
‘은영(恩榮)’이라 하여 황제의 명으로 세워진 서원이다[* ‘어영(御榮)’은 황제의 하사금으로 지어졌음을 말한다. 은영에는 하사금은 없다].
주자와 인연 있는 송대 4대 서원(복건성 고정서원, 복건성 자양서원=무이서원=주문공사(朱文公祠), 강서성 백록동서원, 호남성 악록서원)의
하나였으나, 지금은 훼손되어 폐허가 되기 직전이다. 주자유적까지 간수하지 못하는 중국 내지 복건성 문화행정에 진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렇지만
건양시내에는 큰 길이 주자대도로 명명되어 있고, 주자공원이 있다. 공원 내 주자상에는 “以人爲本 爲民淸命(사람으로 근본을 삼고, 백성을 위하는
것이 맑은 사명이니라)”는 귀절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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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고거(朱子故居)는 복건성 오부진(五夫鎭)에 있는데,
주자는 이곳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며 연구하고 저술하며 제자를 양성하는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의 유명(遺命)에 따라 우계현에서 나와 이곳을
주거처로 삼았던 것이다. 벼슬하지 않을 때는 이곳에 있었다고 하겠다. 오부진은 주자의 세 스승(호적계, 유백수, 유병산)이 계셨던 곳으로,
학문이 높은 곳이었다. 주자가 16세 때 심은 향장나무가 장관이며, 주자고거 곳곳에 주자의 뜻 깊은 어록이 게시되어 있다. 그 중 한 귀만
소개한다. “讀書起家之本, 和順齊家之本, 順理保家之本, 勤儉治家之本(독서는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고, 화순은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근본이고,
순리는 집안을 보존하는 근본이고, 근검은 집안을 다스리는 근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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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현서원(興賢書院)은 오부진에 있는 서원으로, 주자가
제자를 양성한 곳이다. 남아있는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으나, 주자 교육철학을 일람할 수 있게 보존되어 있다. “讀聖賢書, 立修齊志(성현의 저작을
읽고, 자신을 닦고 세상을 가지런히 할 뜻을 세워라)”, “繼往開來(전대를 잇고 후대를 열라)” 같은 말씀이 게시되어
있다.
유씨사당(劉氏祠堂)은 우리가 방문한 날 마을사람들이 차잎을 다듬는 작업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주자의 세 스승 중 유백수,
유병산이 유씨이다. 주자의 부인이 유씨인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고 할 것이다. 말하자면 주자의 처가사당(妻家祠堂)인 셈이다. 유씨사당에는
선대의 현저한 인물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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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은 무이궁-희원-황산시를
방문했다 무이궁(武夷宮)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과 세계문화유산으로 복합지정되어 있는 무이산 자락에 위치한다(중국에서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산동성 태산, 복건성 무이산, 안휘성 황산, 강서성 노산, 사천성 아미산 등 5곳이라 한다). 무이궁은 원래 도교사원이었는데, 지금은
무이고대명인관으로 전환되어 있다. 마당에는 주자가 심었다는 송계(宋桂, 계수나무가 아닌 금목서)가 있고, 입구벽에는 주희강학도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인근에 가사로 유명한 유영(柳永)의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역시 무이산 자락에 있는 주자기념관은 이번에 시간을 할애하여 가보지
못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퇴계 존영도 걸려 있다고 한다. 무원(주자의 본관인 신안의 일부)에 금년 11월 말에 개관한 희원(熹園)을 보는 시간을
많이 갖기 위함이었지만,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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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熹園)은 민간에서 건립한 주자기념관이다. 올해 11월
29일 개관하였는데, 주자의 조상이 덕을 쌓으며 산 곳이다. 희원이 위치한 무원은 예전에는 신안의 일부였는데, 주자를 신안 주씨라 하는 것이
여기서 기인한다. 넓은 대지에 주자와 주자학을 함께 볼 수 있도록 공간구성이 되어 있다. 주자가 방문하여 심은 노거수도 여전히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廉洛同源(주렴계와 낙양의 정명도와 정이천은 같은 근원이다)’이란 글귀는 주자의 학문적 도통을 보여주고 있다. 주렴계와 이정(二程)을
이어 주자는 성리학을 확립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의 퇴계가 「성학십도」를 통해 제1도(태극도, 주렴계)로부터 제4도(대학도, 이정의 학설이
많음)와 제5도(백록동규도)를 거쳐 제10도(숙흥야매잠도, 퇴계)로 마무리 지은 것은 주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황산시(黃山市)는 예전에는 휘주(徽州)의 관할이었고, 지금은 안휘성에 속한다. 주자를 송휘국문공(宋徽國文公)이라 하는 것은
휘주에서 유래하였다고 하겠으며, 나라를 아름답게 한 문공이란 의미이다. 황산시에는 큰 길이 휘주대도로 명명되어 있다. 황산시내에서 우리나라
인사동거리에 해당되는 전통상가거리를 보는 재미도 컸다.
넷째날은 황산–신안강을 방문했다. 황산(黃山)은 금번 일정에 들어있는
무이산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세계자연유산 및 세계문화유산)이다. 이번 답사에는 세계복합유산이 두 곳이나 포함되어 있다. 우리 일행은
해발 1,840m인 광명정(光明頂)까지 등정하고, 황산의 최대 장관인 서해대협곡을 보았다. 광명정을 오르는 길목에 행지정(行知亭)이 있는데,
손문의 부인인 송경령이 안휘성 출신 저명한 교육자인 도행지(陶行知, 1891~1946)를 기려 세운 정자이다. 비각 옆에 존 듀이로부터 배운
도행지의 교육철학이 다음과 같이 새겨진 비가 있다. “行動是老子, 知識是兒子, 創造是孫子(행동은 노인의 완숙함으로, 지식은 아동의 호기심으로,
창조는 어린 아이의 헤맑음으로 하라).” 지(知)보다 행(行)을 앞세운 생활교육이 그의 교육철학의 핵심이다.
황산 자락 신안은
주자의 본향(본관)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신안군은 오나라 때 명명되었는데, 이후 행정구역 명칭변경에도 민간에서는 계속 신안으로 불리웠으며,
황산시 주변의 무원을 포함한 지역을 일컫는다. 그리고 황산시내를 흐르는 신안강을 본 것도 보람이었다. 현재의 지명은 황산시로 바뀌었지만,
강이름은 그대로 신안강으로 남아 있다.
마지막 날에는 항주시 서호(西湖)를 방문했다. 서호는 중국에서 가장 정갈하고 아름다운
도시라 할 수 있는 항주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호수이다. 주변의 나무숲과 숲길을 걷고, 넓은 호수를 배로 유람하는 정취는 어디에 비견할 수
없었다. 중국에 항주 같은 도시와 서호가 있는 것이 색다르다고 할 정도였다.
당초 중국방문 일정에 주자탄생지인 우계현과 무이산
주자기념관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도로공사와 일정상의 사정으로 답사하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번 중국방문의 주체자인
여중군자강독회는 400여년전 경북이 배출한 여중군자 장계향의 삶과 사상을 배우는 단체로 2012년 3월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씩
공부하고 있다. 현재 경상북도 여성단체 회원(경북회, 경상북도새살림봉사회, 경상북도적십자여성자문위원회 등), 교수, 예술인, 종부 등 26명이
수학하고 있다.
이번 주자유적 답사기간 동안에도 여중군자강독회는 매일 저녁 7시면 어김없이 개최되었는데, 참석한 16명 모두 4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그날 답사한 지역에 대한 각자의 느낌과 중국의 유교사상과 우리나라의 유교를 비교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년의 공자와 맹자에
이어진 동방의 주자 퇴계선생과 우리나라에선 독보적인 여성 유교사상가라 할 수 있는 장계향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조선을 넘나드는 토론은 참석자들의
서로의 이해의 깊이가 더하여 그 열띰은 빡빡한 일정의 피로함마저도 날려 보내기에 충분했다는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