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과 돌봄, 그 돌덩이 같은 무거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도서출판 다른 | 하타사와 세이고․구도 치나쓰 글 | 추지나 옮김 | 156쪽
‘강도가 너무 세다’, ‘제목이 불편하다’, ‘계속 화가 났다’.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부모들이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읽고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학교에서 폭대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준말) 위원을 맡아 본 한 부모는, 학교에 불려 온 부모들의 첫 태도는 책에서처럼 ‘부정(否定)’이라고 했다. ‘가해자 아이와 피해자 아이는 백지 한 장 차이다. 피해자 엄마로 왔다가 가해자 엄마로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아이들의 문제 앞에서 ‘부모’ 얼굴을 보기를 원한다(책의 제목은 일본어 원제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저자의 말로는 일본에서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을 대할 때 관용처럼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어느 날, 여중생이 학교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고, 한 반인 다섯 아이의 부모들이 학교로 소집된다. 자살한 학생이 담임선생님께 보낸 편지에 다섯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 외에는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학교 측은 부모들을 불러 이름이 쓰인 연유, 즉 한 아이가 목숨을 끊은 이유를 알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독자들의 예상대로 자기 자녀에게 향하는 모든 의심을 철저하게 부정(더 나아가 공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녀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녀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만을 큰 소리로 이야기할 뿐. 정의의 편에서 죄인에게 죄를 물으려는 독자들의 추리는, 부모들의 독백을 좀처럼 당해내지 못한다.
학교폭력(왕따)을 소재로 한 책은 많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남다른 점은 가해자의 문제를, 아이들을 등장시키지 않고 다루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학교폭력이 만들어지는 구조에 훨씬 깊이 다가서고 있다. 점점 각박해져 가는 세상 속에서 ‘키움’과 ‘돌봄’, 그 돌덩이 같은 산의 무게를 느낀다면, 이 책을 한번쯤 읽어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