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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한 자연과 농촌 현실의 투시 - 김진수의 작품 세계
원동석(미술평론)
1995, 수묵화 개인전 / 서울 덕원미술관, 광주 인재미술관
십년만에 2회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 김진수의 그간 작품과 이번 발표작들을 일별하면서 내가 우선 느낀 소감은 그의 작가적 개별성보다도 그가 공유한 근대형식의 정체부터 문제제기를 삼고 싶은 것이다.
들꽃처럼 / 140 * 140
상대적으로 전통화가가 빈약한 지역풍토에서 김진수는 그럼에도 주목할만한 유망작가들 중의 한사람이다. 원래 그의 전공이 서양화이었고 초기활동에 선보인 작업들이 유채화인데 수묵채색으로 전환한지 십년만에 이처럼 발빠른 재능을 보여주는 작가도 흔치않다. 아마도 그의 튼튼한 데생실력 덕분이라고 보는데 처음부터 수묵화로 덤벼든 작가들에게 흔히 보는 누습이 없어서 신선해 보인다.
아마 그의 스승은 현대중국화나 현대조선화로부터 전범을 찾으면서 홀로 학습했으리라 생각된다. 그 탓인지 영향의 잔재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소화력이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85년 '한국미술 20대 힘전' 때와 개인전을 가진 전시장에서의 대면이었는데 그무렵 그는 여천에서 미술교사직을 맡고 있었다. 이른바 민중미술 탄압의 시발점이 된 '힘전 사건'으로 온통 신문들이 조롱하고 비판하는 기사로 여론을 유도하는 판세 속에서 그는 자신의 참여가 직장의 불이익을 가져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면서 잠재된 사회의식을 깨우는 미술운동의 선두에 섰다는 긍지도 보이었다.
그 당시 출품작에서 느낀 인상이 치열하고 고발적인 사실성의 반영이라기 보다는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기법이었으며 젊은이의 혈기답게 관념적 상승이 엿보이는 점이 아쉬웠지만 자기신분의 표적을 꺼리는 조심성이 그림에 깔려있었다. 한편 판화작업도 선보이어 기억에 남을 작품을 내놓은 것으로 안다. 아무튼 그는 미술운동에 표내지 않으면서 열심히 참여하였다. 그리고 사상 유례없는 교원노조 대량 해직 파동 때 그는 학교에서 해직되었으며 다시 복직할 때까지 교육개혁운동에 뛰어들면서 한편으로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의 결성에 한몫하였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눈길 / 140 * 70
이 시기에 그의 그림은 주제의 상징성보다도 사실성에 치중하는 자기 전환을 보여주며 일상현실의 묘사와 더불어 자연풍경을 열심히 그리어 대중관객에게 친화력을 보여준다. 자기그림의 터잡기와 뿌리심기로 나아간다 할까?
여기서 그가 관심을 가지고 묘사의 대상으로 삼은 인간상은 도시변두리 서민층과 농촌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민중작가들의 취향과 다를 바 없다. 작가 자신의 계급적 성분이 무엇이든 그가 지향하고 적극적으로 친애감정을 쏟으려는 묘사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민중성과 반민중성으로 나누는 것이 사회주의 미학의 도식이지만,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작가들은 심성적으로 민중성이 강하다는 경향을 지적할 수 있다.
노화도의 가을 / 140 * 70
아무리 산업사회가 발달하고 도시계급의 갈등이 심화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자연과 농촌을 그리려 하고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어린 표현은 작가 자신의 고향본능, 자기존재의 뿌리에 대한 회귀본능 같은 것이라고 본다. 그 자신은 도시삶을 살지만, 예술의 마음은 항상 존재의 고향을 찾아헤매는 것이며 또한 그것이 예술가의 진정성이다.
김진수의 작품도 그의 표제에서 우선 읽듯이 여기저기 시골을 돌아다니며 스케치하면서 얻어낸 산물이다. 거기서 그는 평범하고 소박한 삶들의 표정과 일하는 모습을 살펴보면서 화폭에 옮긴다. 어떻게 옮기는가의 여부는 작가 자신의 대상에 대한 감정개입인데, 그는 맑고 투명한 모습으로 붙잡는다.
서망에서 / 140 * 110
현재의 농촌현실이 피폐하고 몰락하고 있는 실정일지라도 그의 그림에는 어둡고 그늘진 구석이 없다. 때로는 귀로의 쓸쓸함과 항변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여유와 삶의 당당함이 있음을 보여준다.
황토바람 2 / 140 * 70
그것은 소를 몰고 볏단을 나르는 모습에서나 담배를 꼬나물고 휴식을 취하는 노파의 모습에서 미소처럼 찾아진다. 농촌현실이 어둡고 음울하다고 하여 그 사실성에 충실하다고 하여 화면 자체를 어둡고 칙칙하게 그리며 비판성을 강조하는 그림보다도 가을하늘의 청명함처럼 낙관성을 잃지 않는 그의 자세가 좋다.
소 / 140 * 110
삶의 자세는 어둠과 밝음의 양면성이 있다. 그러나 비록 병들어 있지만 사는 날까지 당당함을 보여주는 그런 자세의 삶에 나는 찬사를 보낸다. 작가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황소가 넓은 대지에서 오줌을 싸는 모습의 익살스러움에서 나는 자연과 일치하여 살아가는 삶의 이미지를 넉넉히 읽는다. 보기드문 그의 걸작이다.
구진포 66 * 89
황토현 140 * 70
대체로 그의 자연풍경은 산위에서 아래를 멀리 조망해 보는 심원시법의 구성인데 근거리를 생략하는 점에서 고전적 조선화의 방식의 구석이 보인다. 그리고 풍경을 여백으로 둘러침으로써 무한의 깊이를 주고 자연을 감싸안는 따뜻함과 청하한 대기의 표현이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그역시 남도적 자연정서를 체감하고 있는것이다. 바다를 끼고 사는 남도지역의 정서는 무한과의 교감이며 체득이라는 사실을 나는 요근래 깨달았다.
먹빛으로 일군 삶과 예술의 꿈 곽재구(시인)
...80년대는 이런 의미에서 모든 예술가들에게 그 존재의 치욕과 희열을 한꺼번에 맛보게 한 연민의 시기이기도 했다. 특히나 자신의 예술의 궁극적 지향을 현실참여를 통한 세계의 진보에 둔 이들에게 이 양면성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몸은 군사독재의 쇠사슬에 얽매인 한없이 불행한 상태이면서도 그 예술혼만은 인간의 자유와 아름다움과 진보라는 끝없는 화두에 몰입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김진수 회화의 첫 출발이 있다.
현실은 모든 예술가들에게 늘 살아 있는 스승이 된다. 모범적인 전교조 활동을 했던 그는 결국 해직이 되고 해직이 된 이후 그는 본격적인 자신의 그림들에 대한 새로운 화두에 몰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그려왔던 표현주의적인 화풍을 정리하게 되는데 그즈음 그가 몰입했던 화두 중의 하나는 예술성이라는 말과 겹쳐 표현하기도 했는데, 미술운동이 진정한 대중성을 얻기 위해서는 주제의 건강성과 함께 충분한 - 대중이 교감할 수 있는 - 예술성을 확보해야하지 않겠느냐는 그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를 했었다.
옥주벌의 가을1 (벼베기) / 110 * 140
부언하자면 그 무렵은 80년대가 끝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피차에 백수인 관계로 우리들은 아무런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구시청 네거리 주변의 술집 '이곳 저곳 그리고 모든곳'에 들러 그집 주인의 기타반주에 맞춰 오월의 노래를 부르거나 아니면 문학이며 그림이며 영화며 하는 세상살이와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 이야기들로 시간을 죽이다가 다시 호남동의 술집 '풀잎'으로 자리를 옮겨 또 같은 주제를 반복하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면 또 임철우나 황지우 김경주나 박호재 박인홍들과 같은 건달들과 얼굴을 마주치기 십상이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친구들, 경제적 현실과 뜨거운 씨름을 해야하는 마누라와 새끼들 얼굴을 떠올리면 조금 민망한 구석이 없지 않으나 한없이 각박한 현실 속에서의 그 시간들이 우리에게 조그만 숨구멍을 마련해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컨데 김진수는 이러한 시간들 속에서 자신의 예술의 본질에 대한 의문들을 떠올리고 궁극적으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어떤 방향들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을 얻게도 되었던 것이다.
옥주벌의 가을2 (볏단쌓기) / 110 * 140
십년만의 두번째 전시회에서 김진수가 보여주는 작품들은 수묵화들이다. 덧붙이자면 색채가 곁들인 먹그림들이다. 십년 전의 작품들이 모두 유화였다면 십년 후의 작품들이 모두 수묵화라는 확연한 구분이 이번 작품전의 성격을 잘 대변해준다. 김진수가 그의 회화장르를 유화에서 수묵으로 바꾼 것은 그 동안의 세상살이의 변화에서 찾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교조 활동과 함께 80년대 미술운동의 모범을 보여준 광주전남미술인 공동체 내에서의 활동과 수련을 통해 그는 이 시대의 가장 민중적이고 또한 가장 한국적인 회화장르로 기꺼이 수묵을 선택한 것이다.
'쌀 파는 노인'은 이런 그의 관점이 그가 수묵 그림을 그린 이후 전형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최초의 작품이라 할 것이다. 92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농산물시장의 개방과 정부의 농촌 쇠멸화 작업 같은 흔적은 어디에건 보이지 않는다. 현실은 수매를 거부하는 농민들이 볏섬을 불태우고 UR로 인한 농촌공동체의 붕괴가 눈에 선한데도 이 할아버지의 허연 수염과 형형한 눈빛에는 도대체 그런 침잠의 그늘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할아버지의 앞에 수북히 쌓인 쌀과 강인한 얼굴빛은 그러한 사태들에 대하여 끝내 물러설 수 없다는 꿋꿋한 기상과 드넓게 세상을 포용하려는 어떤 깊은 품성이 느껴지는 것이다.
쌀 파는 노인 / 110 * 140
옥주벌의 가을 1,2,3은 연작으로 이루어진 그림이다. '벼베기'와 '볏단쌓기' '볏단나르기'로 구성된 이 그림들은 일련의 가을걷이의 작업을 통해 이 땅에 사는 민초들의 결코 꺾이지 않을 삶의 자긍심과 의지를 보여준다. 한껏 벼를 벤 뒤에 허리에 손을 턱 걸치고 볏단을 바라보는 농부의 눈길은 전쟁에 승리한 장수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러한 자긍심은 '볏단쌓기'의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볏단을 거꾸로 치켜든 농부의 팔뚝과 힘있게 걸음을 옮기는 다리의 큰 동선은 먹감빛의 농부의 상의와 썩 어울린다.
'볏단나르기'에 나타난 농부의 표정은 앞의 두 작업과는 조금 다르다. 수레 가득 볏단을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의 표정은 포근함과 여유로움에 넘친다. 아직 물기가 남은 논길을 맨발로 소와 함께 걸어나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제법 힘겨운 짐을 졌건만 소의 표정도 또한 평화롭기는 마찬가지다. 소는 이미 주인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임을 알아차리고 있으며 이러한 감정이입의 과정을 통해 이 소와 농부는 발이 빠지는 논길을 걸어 자신의 집까지 충분히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암시를 준다. '서망에서'와 '들꽃처럼'은 김진수가 수묵작업을 벌인 이래 남긴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로 남을 듯하다. 특히 그가 펼치고 있는 작업이 채색수묵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지나간 시간들의 흔적은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과 함께 모든 예술가들의 예술창조의 가장 기본적인 질료가 된다. 김진수가 살아낸 지난 십년의 세월은 결코 녹녹한 것이 아니며 그가 그의 작품들과 씨름한 난제들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전후세대로 태어나 가장 급박한 한국현대사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며 살아온 그의 삶과 예술이 나는 늘 뜻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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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또 10년 만에 낸 2004년 세번 째 개인전(아크맄그림)은 사진도 아예 남겨 놓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이 시점에 지면에 옮길 수 있는 그림들이 고작 저것들 아닌가! 누군가의 대문에서 묶이고, 어느 미술관 창고로 붙들려간 이상 너희들은 이미 오래 전에 갇힌 형무소들이다. 예술이 적이 비감하다. 한때는 혁명이던 것들이다. 내 서양화는 현대주의의 궤적이 몽롱한데다 전통미감의 체질 또한 성근 붓으로 감옥에서 서구 문명적 신화를 덧바르고 전통문화의 혼을 짓뭉게었다. 레니니즘은 안경 너머로 무섭고 나는 창살 아래 빈틈 없는 데생이었으니 저 그림들 어디에 여백과 여기와 여흥이 북치고 장고 치겠는가! 쯧, 지난 내 청춘도 짠하지. 그러면 이제 늙었으니 되었는가? 멋과 맛 과 끼가 콸 콸 넘치는 완숙한 장인의 손놀림이랄지 적어도 스타일리즘의 칵테일 로 내노라 뻐긴달지, 알 수도 없는 묘리의 道로 혼몽한 괴그림이라도 풀려나올까 ? 출감하면 무엇보다 나는 재기의 두부 한모부터 입가에 처넣을 것이다. 난 두부 를 천천히 먹을 것이다. 식도가 부풀어 순대속처럼 숨이 막혀서는 안된다. 언제 나 난 내 소매치기처럼 빠른 손모가지가 방정이었다. 도둑놈처럼 큰 발바닥도 말썽이었다. 배전판을 다루거나 연통을 타고 오르거나 밤이슬을 좋아하는 습 성이 늘 고통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 동지라는 호명으로 때론 자 아라는 선언으로 스스로에게 채운 차꼬와 오라와 족쇄를 질질 끌며 늘 취 해 있었다. 그러니까 옹성한 내 擬似화가범에 별이 하나 더 있었다. 주 정뱅이시인범... 최근에 한건 더 는 별은 돌팔이약사범까지! 살려달 라.. 이제 들어가면 진갑 전에는 못 나온다. 죽기 전에 저 못난 도둑놈의갈고리 같은 그림들을 일소하고 마침내 남길만 한 것들로만 용서해달라... 2009. 9. 26. 김 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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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둠을 걷어낸 듯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어둠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 것 같은 그림들,... 잘 감상했습니다!!...
수정씨. 에필로그 한마디도 침튀기 전에 일착으로 댓글을 달아주어 이 꼭두새벽에 고마워용~^^
소, 새벽닭, 노화도 가을, 구진포, 서망에서, 입춘, 황토현, 쌀파는 노인, 초혼.......붓끝이 살아서 렌즈가 된 걸까요? 저 작품들 중 하나라도....욕심 납니다^^
새로 낼 것들은 풀어지지 않은 사실주의를 헤쳐서 촉촉히 다루어야겠어...
선생님의 풀, 약, 시는 조금 알아가고 있는 중이지만 그림은 정말 감동 그 자체!!!! 아쉬워하시는 사모님이 마음을 쪼메는 알듯하네요. 그림 볼 줄 잘 모르지만 선생님의 그림에서는 미래가, 희망이 보이는 듯 해요. 인제 좀 살아났어요. 샘 덕분에요.
비판거리도 많겠지만 좋아해주는 것으로만 주셔서 윽, 행복해요.. 낫는 처방전처럼 모두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야해요.
가슴 깊은 아픔이 세상과 많이 중화된듯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선생님그림에서 다가온 푸근한 가을을 맞이합니다..^^
차오름의 마음이 더 푸근해. 항상 좋아해주는 덕에 내가 좋아서 막 배도 나오고 살도 찌니..ㅋ
타협 하지 않고도 현실이 선생님께 맞춰주는 세상이 되어 선생님께서 다루시는 그림이 촉촉하게 빛 나시길... ^^
'세상과 나' 라는 사이에 '과' 가 있어서 항상 사는 일이 둘로 나뉘게 되어있지. 하지만 '하늘과 땅'이든 '바다와 육지'든 실은 둘의 경계가 없음을 나중에 깨달았어. 하여 저항적, 민중적, 비타협적, 상대적 의미 또한 내 삶에서 저만치 물러났으니 이제 내 땅콩껍질속 예술의 세계도 데굴데굴 굴러 나와 둥글고 자유로워야겠지? 행복하고 고마와... 노랗게 차오른 이 보름...!!
들풀 이름 몇개 외워보겠다고 카페를 가끔 들랑거리다가 진수샘의 진면목을 보는것 같습니다...그림은 문외한이라 어찌 말할수 없지만 늦게나마 10년만의 전시회를 경축하나이다~~~
멋쟁이선생님.. 엊그제 순천탐사에서 못 뵈어 아쉬웠습니다. 십오년 전 그림을 카페갤러리에 걸자니 남의 그림 볼 때완 다르군요. 이번 유춘오에서는 뵐 수 있을까요?^^
그림도 시도 마음도 어찌 그리 아름답습니까? 새삼스럽지만 항상 그러네요. 이내 마음 푸근해요.
세상에 나같은 '복쟁이'는 없을거요. 왜냐면 지난 모오든 無明과 허기와 모순과 오욕과 못됨과 못남이 싹 덮이고 카페에 늘 초록 싹잎만 연하게 보이니 이렇게 다 속지요오. 그린... 미국 콩나물은 꺼풀이 꽤 두껍나요?^^
큰코 닮아서 그런지 삶아도 삶아도 뻣뻣합디다. 우리 콩나물은 보드랍고 순수한디... 명절 잘 보내세요. 여긴 가을비가 잔디에 소리없이 내려요.
추석 밤입니다. 고향이 많이 그립지요? 추석 보름달 한 복판에 앉았지만 불을 끄고 창가에 누워봐야 한가윈줄 알겠어요. 되레 먼 이국 땅에서 망망히 바라보는 외달이 더 간절한 계수나무 옥토낄거예요... 본래 난 떡을 못 사귀어 송편은 있어도 주로 염소같은 아내의 입볼에서 놀아요. 추석날이 젤 심심해요. 전복에 홍어회가 있으면 뭘해요. 친구가 있어야제. 공부도 안되고 카페는 텅 비고 가게 문들은 난리났나 일제히 닫아버렸어요. ㅍ 나도 외로워요 그린...^^!
옥주벌의 가을, 남자표정이 죽입니다^^ 눈길은 이청준선생의 그 눈길??? 선생님 수묵은 '전남들꽃연구회'글씨보고 대충 상상은 해봤는데..ㅎㅎ 언제 그림들과 일별할 기회를 주시면 좋겠네요! - 처가에 와서 저녁밥상에 양주 몇잔 따라마시고 일찍 침대에 떨어졌는데, 술기운이 냉큼 사라지고 새벽까지 초롱초롱... 미리 담배라도 사두었으면 창문열고 피울텐데.. 아파트출입문 비밀번호도 모르니 나갈 수도 없고..ㅎㅎ 감옥이 따로없네요..
문득 담시의 새벽시간에 나도 돈과 땅과 집을 생각하면서 농장집을 한번 그려보는데 설계도는 자꾸 새 공간과 평수가 늘어나는데 그럴수록 땅과 돈은 푹푹 쫄아드니 엥, 그냥 손을 놓아버렸네. 나도 한개비 뿜고 싶구만... 쬐끄만 토굴을 생각할 땐 일단 만만해보이더니 전시 및 다차원공간을 노리니 돈이 비밀번호고 유치장이야^^
그림이 사람을 이렇게 심장속에서 울림을 일으켜낸다는 깊이를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그림이 세상과 이웃의 삶을 이렇게 아름답게 담아낸다는 사실을 님에게서 배웠습니다. 이제, 그림을 그림으로 보는 저의 좁은 눈을 다시 바라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즐감 했스무니당요.
저 대작들이 한 삼십점 되었는데 칭찬은 15년 뒤 박명섭께 듣구먼^^ 쑥스럽고 고마와... 노래 안 불러도 좋은깨 유춘오 가회에 '남도의 연꽃향기'로 날아오소. 한상준샘은 오기로 했지만 박종택샘은 어떠신지 의향도 보시곰... !
요즘은 몹시 담담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선생님 그림 덕에 마음이 파도처럼 흔들립니다. 사진도 한잔 남겨두지 않았다는 세번째 전시회는 제 마음에 담겨져 있습니다. 제가 참으로 운이 좋은 뇬입니다. 그 전시회를 갔었다니^^ 박**피디님이 뽑아준 지난 겨울, 선생님과 찍은 사진을 사무실 책상에 붙여두고, 겨울이 오기전에 한번 더 선생님 뵈야겠다 싶어요. ㅎㅎ
그림을 화가보다 더 좋아하는 것같아요.. 내 이 민망한 화상이 감히 젊고 어여쁜 사막아가씨의 사무실 책상에 오르다니! 담시는 후배에게 너무 과격해~ 시간 내어 담시와 광양에 놀러와 영광 대마막걸리 한잔 하게...
오랫만에 형님 작품을 보네요 참 진실되보입니다 건강하세요 이철희
오랫만이야 페르소나 ... 진실? 꼬질꼬질하지... 가까우면 박주에 옛 꼬물꼬물하던 추억이나 더듬을텐디... 철희 보고싶다!
와 ~~
^^!
울 김선생님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부럽습니다...
홍선생님.. 다정하게 토닥여주어 고맙습니다. 다음 번엔 헤까닥 변해야겠지요?!^^
출감하면 무엇보다 나는 재기의 두부 한모부터 입가에 처넣을 것이다.
난 두부를 천천히 먹을 것이다. 식도가 부풀어 순대속처럼 숨이 막혀서는 안된다.
레니니즘이 뭔지, 묘리의 道가 뭔지 당최 모르겠습니다만,
흑ㅠ,.ㅠ;;;
존경해도 되죠?
^^ 행복하게 웃습니다. 변혁운동시절의 맑시즘을 한나씩 내다버리고 더러 고물상에 팔다보니, 여기에 채울 것은 道 밖엔 없었겠죠... 인자 또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찾아나설 진데, 물감 가지고 놀다보면 뭐든 나와도 나오겠지 했습니다. 허나 꽃을 보았다고 꽃을 그리고 도를 만났다고 또 도를 그리자면 너무 티나고 싱겁지 않겠어요? 이 '주제 선행론'도 마자 떠나 지금은 워쩐지 나만의 '냄새'를 피우는 뭐 이중섭적 '디자인'을 갖고 싶긴 해요... 전엔 이것들을 '매너리즘'이라 하여 골려먹었는디 이젠 아니되겠어요.^^!
저는 선생님이 그림이나 그리고, 풀꽃이나 좋아하고,
전원주택에서 노후나 생각하는 그런 양반으로 알았습니다.
그냥 세상 양순하게 사시는 착한 양반 정도로 생각했는데...
죄송합니다. 선입견이 많이 엇나갔구만요.
마음으로나마 실례가 컸습니다.
그런데 오해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게,
상대방 봐서 댓글을 달아주시겠지만,
저한테 하시는 말씀은 그냥 평범소탈깔끔하신데
다른 분들과 나누는 대화를 엿듣다보면
엄청 형이상학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뭔가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感을 못 잡지 않았었나 싶기도 하구요. 암튼^.~
'양순하고 착한' 사람이 되고픈 희망은 늘 있으나 그것은 노력의 한계를 알아야 하는 내 참담한 '태생적 조건'으로 아니 되겠고, 그림 풀꽃 시 전원주택은 제 꿈과 공부와 하늘 아래 종교이니 이를 따르는 것은 참으로 그지없고 마땅하옵니다. 글이야 생각하면서 고쳐가면서 적는 것이라 보들보들하지만 고삐 풀린 제 '거친 말'은 늘 해열진통 및 청열해독, 신경안정제 등을 골고루 맞아야 하는 고통의 나날입니다. 양순씨께서 '感'을 잘 잡았으니 담에 뵐 땐 어떤 기댈랑 싹 던져불고 오씨요. 그래야 제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