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221년 진시황에 의해 중국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진시황이 순행 중 사망하자 그가 죽은 후 중국 한나라 예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천비(AD186년)의 탁본이다. 이로써 한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비석의 탁본들 석문송(148), 을영비(153), 예기비(156), 조전비(185), 장천비(186)의 탁본을 소장하게 되어 한나라 예서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갖추게 되어 법첩에서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것은 때때로 한 번씩 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 후한 영제 증평 3년(AD186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한나라 예서의 대미를 장식하는 중요한 비석이며, 가로 1.07미터, 세로 3.17미터의 크기에 한 행 42자의 글자가 15행에 새겨져 있다. 전문은 566자, 뒷부분은 이 비를 세우는데 공헌한 41명의 관직과 성명, 성금 액수를 기록 하였다. 주로 방필을 많이 사용하였고, 필획은 단정하면서도 결체는 평정하고 곧으면서도 굳센 맛에 신령스러움이 있고 변화가 많은 편이다. 옛사람이 생각하길 한비의 묘함은 바로 “각 비가 한결같이 기이함을 갖추어 나왔으나 같음이 없다(每碑備出一奇, 莫有同者).”라는 데에 있다. 이른바 당해(唐楷)의 서풍은 거의 모두가 한비에서 그들 각자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석문송>?<예기비>?<조전비>?<장천비>가 가장 전형을 이루고 있다. <장천비>의 전체 이름은 <한고곡성장탕음현령장천표(漢故穀城長蕩陰縣令張遷表)>긴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보통 장천표송, 또는 장천비라고 부른다. 동한시기 중평(中平) 3년(186)에 새겼으며, 명나라 초에 출토되었다. 16행에 행마다 42자씩 씌어졌고, 비음은 3열인데 위 두열은 19행이다. 산동성 동평현(東平縣)에서 출토되었으며 명탁본이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이 비는 지금 태안의 대묘(岱廟) 안에 옮겨졌으며 한비 중에서 가장 기이한 글씨라 불린다. 이 비는 한비 중에서 가장 고졸방정(古拙方正)하다. 용필은 방필을 위주로 하여 능각(?角)이 삼엄하여 정으로 철을 자르듯 날카롭고 통쾌하며 심후하다. 사전(使轉)은 방절(方折)과 원전(圓轉)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처음 볼 때 이 비의 용필은 매우 딱딱한 것 같으나 자세히 감상하면 고졸하고 영일(靈逸)한 기가 얼굴에 스친다. 필력의 웅강함과 고고한 풍격은 결코 다른 한비가 필적할 바가 아니다. 특히 비음 부분은 고졸함이 넘치고 신채가 완전하며 소박하고 무성한 기가 필묵에 넘친다. 이러한 도량과 신력(神力)을 두고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 하는가 보다. 완숙함이 지극하면 오히려 생삽(生澁)한 필치가 나오게 되는데 이는 서예에서 제일의 경지이다. 곽상선(郭尙先)은 《방견관제발(芳堅館題跋)》에서 “한비에서 엄중하고 평평하며 굳센 것은 비의 으뜸이 된다(漢碑嚴重平硬, 是碑爲冠).”라고 하였다. 견실(堅實)?박무(朴茂)?치졸(稚拙)?굴강(?强)은 이미 이 비의 언어 특징이며 동시에 독특한 풍격의 표현 형식이다. 이 비의 결구를 보면 가로가 평평하고 세로가 곧아 방종하고 표일한 필치가 매우 적다. 서체는 방정하여 기울고 쏠린 것으로 형세를 삼지 않았으며, 안은 성글고 밖은 조밀하여 점잖으면서 관박 하다. 대부분의 글자는 상반부를 넓게 펼쳤기 때문에 머리는 크고 다리는 작게 결체 감각을 주면서 일종의 탄실한 체적감(體積感)을 암시했다. 그러나 이 비의 공간 분할은 매우 미묘하다. 때때로 균등하게 배열하지 않고 좌우와 위아래에 조금의 차이를 두어 매우 교묘하게 묘한 정취가 나오도록 했다. 예를 들면 ‘遷’자의 위아래 7개 공간, ‘留’자 아래에 좌우의 2개 공간, ‘君’자의 위아래 4개 공간, ‘自’자 중간의 위아래 3개 공간 등은 모두 고르게 배분하지 않음으로써 평정한 가운데 기이함이 나오도록 했다. 결구의 또 다른 특징은 금석기가 매우 강하고, 한인(漢印)의 특징이 매우 농후하다는 점이다. 각 글자는 모두 마치 한인의 격식을 갖추고 있는 듯 네 글자가 함께 있으며 그 가운데서 미묘한 맛이 더욱 나타나니 이것도 다른 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묘한 특징이다. 이 비가 출토되었을 당시 서단 특히 청나라 서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대서예가인 하소기(何紹基)는 만년에 한비에서 득력했는데, 특히 이 비를 좋아하여 100번 이상을 임서했다. 이병수(伊秉綏)는 이 비를 배워 청나라에서 예서의 대가로 우뚝 솟았다.
張遷碑(장천비) 전문내용
君諱遷字公方. 陳留己吾人也. 君之先出自有周. 周宣王中興. 有張仲. 以孝友爲行. 披覽詩雅. 煥知其祖. 高帝龍興. 有張良. 善用籌策. 在帷幕之內. 決勝負千里之外. 析珪於留. 文景之間. 有張釋之. 建忠弼之謨. 帝遊上林. 問禽狩所有. 苑令不對. 更問嗇夫. 嗇夫事對. 於是進嗇夫爲令. 令退爲嗇夫. 釋之議爲不可. 苑令有公卿之才. 嗇夫疊疊小吏. 非社稷之重. 上從言. 孝武時. 有張騫. 廣通風俗. 開定畿寓. 南苞八蠻. 西羈六戎. 北震五狄. 東勤九夷. 荒遠旣殯各貢所有. 張是輔漢. 世載其德. 爰旣且於君. 盖其纏縺. 纘戎鴻緖. 牧守相係. 不殞高問. 孝弟於家. 中謇於朝. 治京氏易. 聰麗權略. 藝於從畋. 少爲郡吏. 隱練職位. 常在股肱. 數爲從事. 聲無細聞. 徵拜郞中. 除穀城長. 蠶月之務. 不閉四門. 臘正之제休囚歸賀. 八月筭民不煩於鄕. 隨就虛落. 存恤高年. 路無拾遺. 犂種宿野. 黃巾初起燒平城市. 斯縣獨全. 子賤孔蔑. 其道區別. 尙書五敎. 君崇其寬. 詩云愷悌. 君隆其恩. 東里潤色. 君垂其仁. 邵伯分陜. 君懿于棠. 晉陽珮瑋. 西門帶弦. 君之體素. 能雙其勛. 流化八基. 遷蕩陰令. 吏民頡頏. 隨送如雲. 周公東征. 西人怨思. 奚斯讚魯. 考父頌殷. 前喆遺芳. 有功不書. 後無述焉. 於是刊石豎表. 銘勒萬載. 三代以來. 雖遠猶近詩云舊國. 其命惟新. 於穆我君. 旣敦旣純. 雪白之性. 孝友之仁. 紀行來本. 蘭生有芬. 克岐有兆. 綏御有勛. 利器不覿 .魚不出淵. 國之良幹. 垂愛在民. 蔽沛棠樹. 溫溫恭人. 乾道不규. 唯淑是親. 旣多受祉. 永享南山. 干祿无疆. 子子孫孫. 자惟中平三年. 歲在攝提. 二月震節. 紀日上旬. 陽氣厥析. 感思舊君. 故吏韋萌等. 僉然同聲. 賃師孫興. 刊石立表. 以示後昆. 共享天祚. 億載萬年.
{원문과 주해}
君諱遷字公方. 陳留己吾人也. (군휘천자공방 진류기오인야 ) 군의 휘는 천이요 자는 공방이며, 진류 기오 사람이다. 君之先出自有周. (군지선출자유) 군의 선조는 주나라에서부터 나왔으며, 周宣王中興. 有張仲. 以孝友爲行. (주주선왕중흥 유장중 이효우위행) 주나라 선왕이 중흥 때에 장중이라는 사람이 있어 효도와 우애로 행하였다. 披覽詩雅. 煥知其祖. (피람시아 환지기조) 시경에 소아를 펼쳐보면, 그 조상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高帝龍興. 有張良. 善用籌策. (고제룡흥 유장량 선용주책) 고조께서 임금이 되어 일어나실 때 장량이란 사람은 계책에 능해 在帷幕之內. 決勝負千里之外. (재유막지 결승부천리지외) 군막 안에 있으면서 천리 밖의 승부를 결판내어 유 땅의 제후로 봉해졌다. 析珪於留. 文景之間. (석규어류 문경지간) 문제와 경제의 시기에 有張釋之. 建忠弼之謨 (유장석지 건충필지모) 장석지가 있었는데,충필의 계책을건의하였다. 帝遊上林. 問禽狩所有. 苑令不對. (제유상림 문금수소유 원령불대) 황제께서 상림원에서 노닐 때에 금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시니 원령이 대답하지 못하였다. 更問嗇夫 嗇夫事對. (경문색부 색부사대) 다시 색부에게 물어보니 색부가 사실대로 대답 하였다. 於是進嗇夫爲令. 令退爲嗇夫. (어시진색부위령 령퇴위색부) 이에 색부를 승진시켜 원령으로 삼고, 원령을 강등시켜 색부로 삼으니 釋之議爲不可. 苑令有公卿之才 (석지의위불가 원령유공경지재) 장석지가 건의하여 불가함을 말하면서 원령은 공경의 재능이 있고, 嗇夫疊疊小吏. 非社稷之重上從言. (색부첩첩소리 비사직지중 상중언) 색부는 말만 잘하는 작은 관리이며 사직을 맡을 중신은 아니라고 하니, 주상께서 이 말을 따르셨다. 孝武時. 有張騫. 廣通風俗開定畿寓. (효무시 유장건광통풍속 개정기우) 漢의 효무제 시절에 장건이란 사람은 널리 풍속을 통하고 국토를 개척하였으니, 南苞八蠻. 西羈六戎. (남포팔만 서기륙융) 남으로 여덟 만족을 포괄하고 서쪽으로 여섯 융을 예속시켰으며, 北震五狄. 東勤九夷. (북진오적동근구이) 북으로 다섯 적족을 진동시키고, 동으로 아홉 이족을 근신하게 하였다. 荒遠旣殯各貢所有.( 황원기빈각공소유) 황폐하고 먼 지방이 이미 복종하여 각기 특산으로 공물을 바쳤다. 張是輔漢. 世載其德. (장시보한 세재기덕) 장시들이 한나라를 보좌하였음은 대대로 그 덕이 기록되어 있다. 爰旣且於君 盖其纏縺. (원기차어군 개기전련) 이에 군에 이르러서는 매우 얽혀 있는 난세에 그 단서를 계속 이어서 纘戎鴻緖. 牧守相係.不殞高問. (찬융홍서 목수상계 불운고문) 왕업의 큰 실마리를 잇고, 지방 장관들이 잇따라 나와서 높은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孝弟於家. 中謇於朝. (효제어가 중건어조) 집안에서는 효도하고 공손하며, 나라에는 충성하고 충직하였다. 治京氏易. 聰麗權略. 藝於從畋. (치경씨역 총려권략 예어종전) 경씨의 역을 익혀서 권모와 지략에 총명하고 서려 깊어 정치에 능하였다. 少爲郡吏. 隱練職位. (소위군리 은련직위) 젊어서 군리가 되어 은연 중 직위를 단련했으며, 常在股肱. 數爲從事. 聲無細聞. (상재고굉 수위종사 성무세문) 언제나 중요한 자리에 있었으니 여러번 종사가 되었어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서 뒷소문이 없었다. 徵拜郞中. 除穀城長. (징배랑중 제곡성장) 등용되어 낭중이 되었고 곡성장에 제수되었다. 蠶月之務. 不閉四門. (잠월지무 불폐사문) 양잠하는 달이 되어 일이 바쁠 때는 사방의 문을 닫아걸지 않았으며, 臘正之제休囚歸賀. (랍정지제휴수귀하) 섣달과 정월의 제사 철이면 죄수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니 그들이 돌아와서 하례하였다. 八月筭民不煩於鄕. (팔월산민불번어향) 팔월 달 호구조사를 할 때에는 향민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고, 隨就虛落. 存恤高年. (수취허락 존휼고년) 가난한 동네로 다니며 늙은이를 구휼하였다. 路無拾遺. 犂種宿野. (로무습유 려종숙야) 길에는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이 없고, 밭 갈고 씨 뿌리는 농부들은 들에서 묵었다. 黃巾初起燒平城市斯縣獨全. (황건초기 소평성시 사현독전) 황건적이 처음 일어나 성시를 불태우며 탕진할 때에도 이 고을만은 홀로 온전하였다. 子賤孔蔑. 其道區別. (자천공멸 기도구별) 자천이 다스리는 땅이 너무 작다고 공자가 탄식하신 것과는 그 도가 구별되는 것이다. 尙書五敎. 君崇其寬. (상서오교 군송기관) 서경의 <오교>처럼 군은 그 너그러움을 숭상하였고, 詩云愷悌. 君隆其恩. (시운개제 군융기은) 시경의 <개제>처럼 군은 그 은혜로움을 높였다. 東里潤色. 君垂其仁 .(동리윤색 군수기인) 동리의 자산이 윤색한 문장 가운데서 군은 인을 드리웠고, 邵伯分陜. 君懿于棠. (소백분협 군의우당) 소백이 협서의 땅을 나누어 선정을 베푼 것 같이 군은 아가위나무 아래서의 정사가 훌륭하였다. 晉陽珮瑋. 西門帶弦. (진양패위 서문대현) 진양에서 동안우는 부드러운 가죽을 차고 다니며 급한 성질을 죽였고, 서문표는 팽팽한 활시위를 차고 다니며 느긋한 성질을 긴장시켰는데, 君之體素. 能雙其勛 .流化八基. (군지체소 능쌍기훈 류화팔기) 군이 평소에 체득한 것은 그 둘의 장점을 합친 것이었다. 교화한 지 팔년에 遷蕩陰令. 吏民頡頏. 隨送如雲. (천탕음령 리민힐항 수송여운) 탕음령으로 옮겼는데 관리와 백성들이 목을 길게 뽑고 따르며 전송하는 무리가 구름 같으니 周公東征. 西人怨思. (주공동정 서인원사) 주공이 동쪽을 정벌하시매 서쪽 사람들이 빨리 오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것 같았다. 奚斯讚魯. 考父頌殷. (해사찬노 고부송은) 해사가 노송을 지어 노나라를 찬양하고, 정고부가 상송을 지어 은나라를 찬양하였으니, 前喆遺芳. 有功不書. 後無述焉. (전철유방 유공불서 후무술언) 선대의 현철이 아름다운 업적을 남겼는데 그 공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이 칭술할 것이 없지 않겠는가. 於是刊石豎表. 銘勒萬載 (어시간석수표 명록만재.) 이에 돌을 잘라서 표식을 세우고 명문을 새겨서 만세에 전한다. 三代以來. 雖遠猶近 詩云舊國. 其命惟新 (삼대이래 수원유근 시운구국 기명유신) 삼대이래로 비록 멀지만 기록이 있어서 오히려 가까우니 <시경>에서 이른바 나라는 오래 되어도 천명은 새롭다는 것이네. 於穆我君. 旣敦旣純. (어목아군 기돈기순) 아! 아름다운 우리 군은 도탑고도 순수하셨네. 雪白之性 孝友之仁. 紀行來本 (설백지성 효우지인 기행래본). 눈처럼 결백한 성품에 효우하는 어짐이라.행적을 기록하여 근본을 구하나니, 蘭生有芬. 克岐有兆. (난생유분 극기유조) 난초가 피어나면 향기가 있는 법. 어릴 때부터 징조가 있더니, 綏御有勛. 利器不覿 魚不出淵. (수어유훈 리기부적 어불출연 ) 관리가 되어서는 공적을 이루었고, 권세와 이익에는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고기가 연못에 잠겨있는 것과 같다네. 國之良幹. 垂愛在民. (국지량간 수애재민) 나라의 훌륭한기둥이요, 백성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니 백성들이 그의 선정을 사모하였다. 蔽沛棠樹 溫溫恭人. (폐패당수 온온공인 ) 자그마한 감당나무 아래에 온화하고 겸손한 사람이로다. 乾道不규. 唯淑是親. (건도불규 유숙시친) 하늘의 도리는 어긋나지 않으니 오직 착한 사람을 친애하는 법 旣多受祉. 永享南山. (기다수지 영향남산) 많은 복 이미 받았으니 남산과 같이 영원히 누리리라. 干祿无疆. 子子孫孫. (간록무강 자자손손) 복록이 무궁하사 자자손손 누리소서. 자惟中平三年. 歲在攝提. 二月震節. 紀日上旬. (자유중평삼년 세재섭제 이월진절 기일상순) 중평삼년(186년) 세재는 병인년 이월 진절(춘절)이고 기일은 상순이다. 陽氣厥析. 感思舊君. (양기궐석 감사구군) 기일은 상순에 양기는 흩어져 올라오는데 옛 군주가 생각나도다. 故吏韋萌等. 僉然同聲. (고리위맹등첨연동성) 옛 서리 위맹등 모두가 뜻을 같이하여. 賃師孫興. 刊石立表 .(임사손흥 간석립표) 석공인 손흥에게 일을 맡겨 돌을 잘라 높은뜻을 세우니, 以示後昆. 共享天祚. 億載萬年. (이시후곤공향천조 억재만년.) 이 이후에 자손들이 모두 억만년에 하늘의 복 함께 누리길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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