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현재 남아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석각문자(石刻文字).석고문(石鼓文)
<석고문>
한문의 서체로 구분 할 때 갑골문 금문 석고문은 篆書(전서)체에 속한다.
옛날 사람들은 석고문 또는 <吉금문자> <이기문자彛器文字>라고도 부른다
은왕조에 사용되던 갑골문자는 청동기시대를 맞으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여 은왕조 말기부터 周왕조에 이르러 모필로 글씨를 쓴 다음 이 모양대로 새겨서 주조하거나 직접 청동그릇위에 새기기도 했다.
전서(篆書)는고문의 자체와 서풍이 정리된 것으로서 대전(大篆)·소전(小篆)의 2종이 있다.
대전은 주문(籒文)이라고도 불리고 주(周)의 사주(史籒)가 만들었다고도 전해진다.
소전은 대전의 체세(體勢)를 길게, 점획(点劃)를 방정하게 하여 서사(書寫)를 편리하게 한 것으로서 진시황제의 문자통일 때에 승상 이사(李斯)가 창시하였다고 한다.
대전은 소전 이전의 문자로 넓은 이미로는 <갑골문> < 鐘鼎文> <籒文 > <六國文字>등을 말하며 좁은 의미로는 주문(籒文)을 말 한다 .(주문: 영동, 영이, 사송돈, 산반, 모공정, 국자첨, 진공돈, 왕손유자종)과 < 석고문>< 진공궤>도 대전에 속 한다.
소전에는 역산각석, 태산각석, 낭야대각석, 지부각석, 갈석문각석, 회계각석등이 있다
당대(唐代:618~907) 초기에 섬서성[陝西省] 천흥현(天興縣:지금의 봉상현[鳳翔縣])에서 발견되었다.
석고는 당대(618~907) 초기에 산시 성[陝西省] 천흥현(天興縣)지금의 펑샹현[鳳翔縣])에서 발견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석각문으로 높이 약 90cm, 지름 약 60cm로 모양이 큰 북과 비슷하여 예부터 석고(石鼓)라고 하였고 10개가 1벌이었다.
각 돌마다 모두 4언시(四言詩) 1수 씩 새겨져 있었다.
10개의 석고에는 각각 오거(吾車)· 견면(汧沔)· 전거(田車)· 칙홀(勅來)· 영우(霝雨)· 작원(作原)·이사(而師)· 마천(馬薦)· 오수(吾水)· 오인(吳人)으로 나누어지며 이를 陳倉十碣(진창십갈)이라고도 부른다. 원래는 700자(字) 이상이었다고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272자뿐이며, 문자는 주문(籒文)이다. 연대에 관해서는 정설이 없으나 BC 481년경 동주시대(東周時代) 진나라의 것으로 추정된다.
舊說(구설)에는 모난 것을 碑라하고 둥근 것을 갈이라 했는데, 석고는 원형으로 되어 있고 새겨진 문사는 거의 사냥에 대한 일을 기술하였기 때문에 獵碣(엽갈)이라고 하며, 통칭 석고문이라 한다.
가운데 作原(작원)은 오대(五代:907~960) 시기의 난세에 없어졌다가 그 이후 송나라 때인 1052년(皇祐 4)에 민간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농부가 반 덩어리를 잘라간 뒤였고, 글자는 겨우 맨 아랫부분의 각 행마다 새겨져 있던 4자뿐이었다. 1931년에 馬衡[마형]이 〈石鼓爲秦刻石考, 석고위진각석고〉를 지은 후 비로소 秦(진)나라 때의 석각문자임이 공인되었다.
석고의 연대는 견해가 여러 가지 있으나, 진나라 <진공돈>의 발견으로 그 자체가 <석고문>과 비슷하고 <조초문>과도 비슷해 그 연대는 춘추 말기 秦나라의 것으로 본다.
<왕국유>는 전국시대는 진나라의 주문(籒文)을 사용하였고 육국은 고문을 사용했는데 넓은 의미의 주문(籒文)은 대전과 소전 고문을 포함하고, 좁은 의미로 말 한다면 단지<사주편>에 있는 문자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즉, 주나라 문자로 秦의 재상이던 李斯가 이를 근거로 하여 소전을 만들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주문>를 대전이라 한다.
<석고문>의 서법은 온화 하면서도 그윽하고, 필세는 웅장 하면서도 두텁고 소박하면서도 자연미가 있다. 결구는 네모진 형태를 띠면서도 단정하고 무겁게 응축 되어있다.
내용은 난해(難解)하지만 수렵에 관하여 노래한 운문(韻文)이다. 당나라 때에 공자묘(孔子廟)에 옮겨진 이후 오대(五代) 때에 뿔뿔이 흩어진 것을 송나라 때에 다시 모아 카이펑[開封]에 옮겼다.
금나라 이후 베이징[北京]으로 옮겨 공자묘의 대성문(大成文) 내에 진열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베이징 자금성(紫禁城) 내 고궁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석고문은 자수(字數)가 많고 시와 글이 모두 훌륭하여 예나 다름없이 서법사에서 "제일석각(第一石刻)"으로 불리운다.
서주금문(西周金文)의 전통을 계승하여 엄숙하고 단정하며 조금도 소홀함이 없다.
석고문은 用筆, 結構, 章法뿐만 아니라 書法史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처음 서예에 입문할 때 석고문을 통해 기본을 정확히 익힌다면 법도에 어긋남이 없을 것이라 하였다.
用筆法은 起筆에서 藏鋒逆入하여 中鋒으로 平出하되 澁行(折筆)하여 획이 가볍게 回鋒疾提해야한다. 轉折부위에서는 弧形으로 탄력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結構法은 方正하고 均整한 특징을 갖고 있다. 글자마다 正方形 또는 長方形을 갖추고 있으며 布白均稱하고 左右對稱을 유지하고 있다.
석고문의 결구법은 후대의 한예나 해서의 생성까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글씨를 배울때는 석고문으로 입수하는 것이 모든 서체의 기본 법도가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章法은 行列이 비교적 規整하고 글자와 行間의 거리가 모두 평형을 유지하며 공백의 안배를 고르게 되어 있가.
석고문의 장법은 이후 소전의 장법 형성에 모범이 되어 대전에서 소전으로 근접해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