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의 나라 인도네시아 이해하기
인구 90%가 무슬림, 기도 시간에 약속은 금기
김 영 수/한국-인도네시아친선협회 사무총장
우리는 이슬람 관련 사건사고 뉴스를 접할 때 중동이나 서남아 지역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그런 뉴스와 연관이 있는 사건들은 대부분 성전을 내세운 자살 폭탄 테러, 이슬람 여성들의 비인간적인 삶, 태형이 자행되는 엄혹한 종교법 등 이슬람의 극단적인 면이 부각된 내용들이다.
평등과 평화를 교리로 하는 이슬람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은 세계 최대 이슬람교도(Muslim)를 보유한 인도네시아 이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힌두교 국가에서 이슬람 국가로
적도를 중심으로 아시아-오세아니아와 태평양-인도양의 지리적 교량 역할을 하는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 인구 대국(2010년 인구 2억 4천여만 명)이자 세계 최다군도 국가(1만 8,108개 섬)이다. 그리고 인구의 90%에 가까운 국민이 이슬람을 신봉하고 있다. 13세기 초에 중동 및 인도 상인들이 동남아 말라카(Malacca)왕국을 중심으로 현재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자바 섬 해안지방을 따라 이슬람을 전파하면서, 이슬람은 서서히 동진(東進)하게 된다. 이 결과 당시 인도네시아에 퍼져 있던 힌두교 세력은 무력화되었다. 특히 자바 지역에 있던 힌두교 중심의 마자파힛(Majapahit)왕국은 이슬람 세력에 밀려 현재의 발리(Bali)섬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것이 전체 국토가 이슬람화된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발리가 힌두교를 지키게 된 이유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 세기에 걸쳐 힌두교, 불교, 이슬람으로 종교 변혁이 진행되는데, 그 과정은 점진적으로 그리고 평화적으로 이루어진다. 중동 지역의 이슬람화 과정이 코란과 칼을 앞세우고 투쟁적이고 격렬하게 진행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양한 종족과 관습 배경을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이 종교를 포함한 외래 문화와 문명을 긍정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1942년까지 약 340여 년간 인도네시아를 식민통치한 네덜란드인들은 기독교를 전파했다. 경제 수탈이 목적이었던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이슬람을 묵인하거나 관용하는 정책을 폈고, 그 결과 이슬람은 기독교와도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공존은 현대에 와서 동 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분리 독립을 주장한 배경이자, 최근에 이슬람과 기독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종족 간 분쟁의 불씨가 된다.
종교부 둘 정도로 종교 영향력 커
인도네시아에 소개, 전파된 이슬람은 최대 종파인 수니(Sunni)파에서 파생된 샤피이(Shafii) 분파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1920년대에 결성된 이슬람 양대 단체인 무함마디야(Muhammadiyah)와 나흐다툴 울라마(NahdatulUlama)가 현재 인도네시아 이슬람을 이끌고 있다. 헌법에서 종교 선택의 자유를 명시해 놓았지만, 이슬람은 인도네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체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정부조직에 종교 갈등과 화해 조정, 종교 정책을 관장하는 종교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종교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잘 말해준다. 인도네시아 이슬람도 다른 지역의 이슬람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무슬림으로 태어나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부모 손에 이끌려 이슬람 사원을 찾는다. 이슬람 사원은 대도시, 농촌, 오지 등 전국 어디서든 들어서 있으며, 다른 건축물보다 더 공들여 건축해 놓았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는 동남아 최대의 이슬람사원이 있다.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은 이슬람 교리를 삶의 좌표로 삼고 생활의 중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매주 금요일에는 사원에서 예배를 드리고 하루 다섯 번 메카(Mecca)를 향해 기도하고, 이슬람력에 따라 일 개월여 동안 금식을 한다.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한 번 이상 메카 성지를 순례하는 것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사망 후에는 머리를 메카로 향하고 매장되는 것을 무슬림의 최대 이상으로 생각한다. 물론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전체가 신실한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 교리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사람(Santri)과 그렇지 못한 사람(Abangan)이 구분되어 있으며, 신실하게 이슬람을 따르는 사람들, 특히 메카 성지 순례를 마친 사람들에게는 남자의 경우 하지(Haji), 여자의 경우에는 하자(Hajah)라는 호칭을 이름 앞에 붙인다. 주위 사람들도 이들을 각별하게 존경한다. 예를 들어 무슬림이면서 박사 학위를 받은 대학교수일 경우, 그 사람에 대한 공식 호칭은 하지 또는 하자, 교수, 박사 그리고 이름의 순이 된다. 하지일 경우 백색 원형의 모자를 착용하며, 하자는 질밥(Zilbab)이라는 백색 스카프를 머리에 착용하여 머리카락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게 한다. 중동이나 서남 아시아의 여성 무슬림처럼 천으로 얼굴까지 가리지 않지만,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단정하게 질밥을 두른 것에서 미를 표출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색상과 문양의 질밥이나 보기 좋은 금속 장식을 부착하거나 수를 넣은 히잡이 판매되고 있어, 하자가 아닌 여성들도 질밥을 하나의 패션으로 착용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무신론과 음주에 거부감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에게 이슬람은 믿음의 대상을 넘어 중요한 가치관으로 자리잡았다. 인도네시아 무슬림에게는‘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든지 종교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다. 상대방이 무신론자임을 알게 되면 상대방에게 거리감을 두려고 한다. 또 교리상 음주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는 음주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고, 일각에서는 음주 자체를 범죄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흔한 ‘음주 후 고성방가’와 ‘만취해서 흐트러진 모습’을 인도네시아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다. 특히 무슬림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금식월 기간에는 나라전체가 일출부터 일몰까지 음주가무를 자제한다. 이런 문화적 배경을 잘 이해해야만 인도네시아에서의 비즈니스도 순탄할 것이다. 특히 이슬람을 비하하는 발언을 무심결에 하거나, 무슬림의 기도 시간, 특히 저녁 6시경에 진행되는 기도(Magrib) 시간에 약속을 잡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 음주를 강요하는 것도 역효과를 낳는다. 또 하나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은 외부인과 만날 때 부부동반을 자연스러운 사회 예절로 간주하고 있으므로 이를 고려해야 한다. 이슬람 종교법에 따라 부동산을 포함한 재산은 남편뿐만 아니라 처와 자녀들까지 공동 소유로 되어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협력 성과 높이려면 문화 이해 필수
신라 승려 혜초가 인도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인도네시아를 거쳐 갔을 개연성이 높다는 주장이 있고,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징용, 징병으로인도네시아에 끌려 갔다. 또 1969년에 우리나라가 원목개발을 위해 처음으로 해외 투자를 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런 인연에도 인도네시아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매우 낮다.
그렇지만 풍요로운 천연자원과 풍부한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절대빈곤이 없는 인도네시아는 우리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국가임이 분명하다. 경제 교류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현재 노동집약형 기업 중심으로 1,500여 개 한국 기업들이 진출하여 60여만 명의 현지인을 고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이루어진 인도네시아 국영철강회사인 크라카타우 스틸(Krakatau Steel)과 포스코가 합작하여 착공한 찔레곤 일관제철소 건설 프로젝트는 양국 경제 협력의 시금석이다. 정부간 협력 관계도 점차 증진되고 있다. 지난 2006년 체결된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양국 협력을 심화시킬 초석이 될 것이다. 이런 협력 기류에 힘입어 양국이 더 많은 협력의 성과를 거두려면,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앞으로 인도네시아인들의 삶에 녹아 있는 이슬람의 실체를 이해하고 연구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CHINDIA JOURNAL/포스코경영연구소 발간, 2011년 2월호 Vol. 54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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