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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발지론 제1권
1.3. 보특가라(補特伽羅)납식
연기(緣起)와 연(緣)과 숨의 근거[息依]
마음의 근거[心依]와 무유애(無有愛)
마음의 해탈[心脫]과 의(依)와 계(界)와 상(想)
이 장(章)에서 모두 설명하겠다.
[문] 하나의 보특가라(補特伽羅 : pudgala)의 이러한 생의 12지(支) 연기(緣起)에 있어 몇 가지가 과거이고, 몇 가지가 미래이며, 몇 가지가 현재인가?
[답] 두 가지가 과거이니, 무명(無明)과 행(行)이다.
두 가지가 미래이니, 생(生)과 노사(老死)이다.
여덟 가지가 현재이니, 식(識)ㆍ명색(名色)ㆍ육처(六處)ㆍ촉(觸)ㆍ수(受)ㆍ애(愛)ㆍ취(取)ㆍ유(有)이다.
[문] 세존께서 “무명은 행의 연(緣)이 되고, 취는 유의 연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무명은 행의 연이 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며,
‘취는 유의 연이 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 무명이 행의 연이 된다고 하는 것은, 업(業)이 이전의 다른 생 중에서 조작(造作)하고 증장(增長)한 바가 있어 현재 존재[今有]의 이숙(異熟)과 이미 향수한 이숙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취가 유의 연이 된다고 하는 것은, 업이 현재의 생 중에서 조작하고 증장함이 있어 미래 존재[當有]의 이숙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문] ‘무명은 행의 연이 된다’고 하는 것과 ‘취는 유의 연이 된다’고 하는 것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 ‘무명이 행의 연이 된다’고 하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러한 업의 연으로서 세존께서는 하나의 번뇌를 말씀하시어 무명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취가 유의 연이 된다’고 함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러한 업의 연으로서 세존께서는 모든 번뇌를 말씀하시어 모든 취[諸取]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차별이라고 한다.
[문] 행으로서 무명을 연해도 명(明)을 연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
[답] 없다.
[문] 행으로서 명을 연해도 무명을 연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답] 없다.
[문] 행으로서 무명을 연하고, 명 역시 연하는 것이 있는가?
[답] 있다.
[문] 행으로서 무명을 연하지 않고, 명 역시 연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답] 없다.
[문] 이유가 무엇인가?
[답] 어떠한 유정도 오랜 옛날부터 성도(聖道)를 비방하여 비도(非道)라고 말하지 않은 이가 없는데,
이전에 도를 비방하고 난 후세에 그는 대지를 감응시키는 업을 조작하고 증장하고,
혹은 그 후세에 소왕(小王)을 감응시키는 업을 조작하고 증장하고,
혹은 그 후세에 대왕을 감응시키는 업을 조작하고 증작하고,
혹은 그 후세에 전륜왕(轉輪王)의 업을 조작하고 증장한다.
이러한 인(因)에 의해, 이러한 연(緣)에 의해, 그러한 성도(聖道)에 의해 전전(展轉)하여 대지와 그 나라에 존재하는 성과 도시ㆍ취락ㆍ사람ㆍ사람이 아닌 것[非人]ㆍ짐승ㆍ곡식ㆍ약초ㆍ수목ㆍ수풀[叢林]의 증장과 번창함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선행된 마음의 네 가지 연(緣)은 최후의 마음에 대해 다만 하나의 증상연(增上緣)이 되는 것이다.
[문] 다시 앞에서의 문제를 네 가지 연에 의해 설명해 볼 것 같으면, 행으로서 무명을 연해도 명(明)을 연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
[답] 있다. 무명이숙과 염오행(染汚行)이다.
[문] 행으로서 명을 연해도 무명을 연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답] 있다. 초명(初明 : 苦法智忍을 말함)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무루행이다.
[문] 행으로서 무명을 연하고, 명 역시 연하는 것이 있는가?
[답] 없다.
[문] 행으로서 무명을 연하지 않고, 명 역시 연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답] 있다. 무명이숙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무부무기행(無覆無記行)과 초명과 선한 유루행이다.
[문] 들숨[入息]과 날숨[出息]은 몸에 의거하여 전전(展轉)한다고 해야 하는가, 마음에 의거하여 전전한다고 해야 하는가?
[답] 몸에 의거하여 전전하기도 하며, 마음에 의거하여 전전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응하는 것에 따라 말해야 할 것이다.
만약 입ㆍ출식이 다만 몸에 의거하여 전전하고, 마음에 의거하여 전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무상정(無想定)과 멸진정(滅盡定)의 상태에서도 입ㆍ출식이 역시 전전할 것이다.
또한 만약 입ㆍ출식이 단지 마음에 의거하여 전전하고, 몸에 의거하여서는 전전하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 무색계 유정의 입ㆍ출식 역시 전전할 것이다.
만약 입ㆍ출식이 다만 몸과 마음에 의거하여서만 전전하고, 그것이 응하는 것 같은 모공이나 풍도(風道) 등 여타의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 알[卵]이나 곡식, 모태 중의 갈라람(羯邏藍 : kalalam)ㆍ알부담(頞部曇 : arbudam)ㆍ폐시(閉尸, peśī)ㆍ건남(鍵南 : ghanam) 등 여러 기관[諸根]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거나 아직 성숙하지 않은 것, 그리고 제4정려에 있는 자에게도 역시 입ㆍ출식이 전전해야 하는 것이다.
입ㆍ출식은 몸에 의거하여 전전하며, 역시 마음에 의거하여 전전하며, 아울러 그것이 응하는 것에 의거함으로써 전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로는 무간지옥으로부터 위로는 변정천(遍淨天)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의 유정으로서 여러 기관이 모두 갖추어지고 성숙한 이에게는 입식과 출식이 몸과 마음에 의거하여 전전하는 것이다.
[문] 만약 유색(有色) 유정의 심상속(心相續)이 몸에 의거하여 전전한다면 무색계 유정의 심상속은 무엇에 의거하여 전전하는가?
[답] 명근(命根)과 중동분(衆同分)과 그 밖의 이와 같은 종류의 심불상응행이다.
[문] 무유애(無有愛)는 견소단(見所斷)이라고 해야 하는가, 수소단(修所斷)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 수소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分別論者]는 주장하기를,
“무유애는 혹은 견소단이고, 혹은 수소단이다.
무엇이 견소단인가?
견소단법인 무유(無有)에 대해 탐(貪)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수소단인가?
수소단인 무유의 법에 대해 탐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부종의에 따르면 무유애는 다만 수소단일 뿐이라고 해야 한다.
[문] 그렇다면 그대는 ‘무유애는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預流者)는 아직 이 애(愛)를 끊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는가?(분별론자의 물음)
[답] 그렇다.(應理論者, 즉 論主 가다연니자의 대답)
[문] 그대는 무엇을 바라는가?
모든 예류자가,
‘만약 내가 죽은 후 단괴(斷壞)하여 존재하지 않으면[無有] 어찌 안락하지 않겠는가’와 같은 마음을 일으킨다고 말하기를 바라는가?
[답] 그렇지 않다. 내가 설명하는 것을 들어라.
만약 ‘무유애는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 애를 끊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모든 예류자는 ‘만약 내가 죽은 후 단괴하여 존재하지 않으면 어찌 안락하지 않겠는가’와 같은 마음을 일으킨다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만약 예류자가 ‘만약 내가 죽은 후 단괴하여 존재하지 않으면 어찌 안락하지 않겠는가’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면,
‘무유애는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 애(愛)를 끊지 못하였다’고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설명한다면 양자 모두 이치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문] 그대들 역시 ‘지옥ㆍ방생(傍生)ㆍ아귀의 이숙애(異熟愛)는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이 애를 아직 끊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는가?(응리론자의 물음)
[답] 그렇다.(분별론자의 대답)
[문] 그대는 무엇을 바라는가?
모든 예류자가 ‘나는 마땅히 애라벌나(哀羅筏拏 : airāvana)용왕ㆍ선주(善住)용왕ㆍ염마귀왕(魔鬼王 : amarāja)이 되어 귀계(鬼界)의 모든 유정을 통섭(統攝)하리라’와 같은 마음을 일으킨다고 말하기를 바라는가?
[답] 그렇지 않다. 내가 설명하는 것을 들어라.
만약 ‘지옥ㆍ방생ㆍ아귀의 이숙애는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이 애를 아직 끊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예류자는 ‘나는 애라벌나용왕으로부터 나아가 모든 유정까지를 통섭하리라’와 같은 마음을 일으킨다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만약 예류자가 ‘나는 애라벌나용왕으로부터 나아가 모든 유정까지를 통섭하리라’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지옥ㆍ방생ㆍ아귀의 이숙애는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이 애를 아직 끊지 못하였다’고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설명한다면 양자 모두 이치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문] 그대들은 또한 ‘모든 전(纏)이 얽혀졌기 때문에 부모의 생명을 해치니, 이러한 전은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러한 전을 끊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는가?(응리론자의 물음)
[답] 그렇다.(분별론자의 답)
[문] 그대는 무엇을 바라는가?
‘모든 예류자는 이와 같은 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부모의 생명을 해친다’고 말하기를 바라는가?
[답] 그렇지 않다. 내가 설명하는 것을 들어라.
만약 ‘전(纏)이 얽혀졌기 때문에 부모의 생명을 해치니, 이러한 전은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러한 전을 끊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예류자는 이와 같은 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부모의 생명을 해친다’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만약 ‘예류자는 이와 같은 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부모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고 한다면,
‘전(纏)이 얽혀졌기 때문에 부모의 생명을 해치니, 이러한 전은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러한 전을 끊지 못하였다’고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설명한다면 양자 모두 이치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문] 그대들은 또한 ‘수소단법인 무유(無有)에 대해 탐하니, 이러한 탐은 오로지 수소단으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 탐을 끊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는가?(응리론자의 물음)
[답] 그렇다.(분별론자의 답)
[문] 그대는 무엇을 바라는가?
‘모든 예류자가 이를 소연으로 삼아 애(愛)를 일으킨다’고 말하기를 바라는가?
[답] 그렇지 않다. 내가 설명하는 것을 들어라.
만약 ‘수소단법인 무유(無有)에 대해 탐하니, 이러한 탐은 오로지 수소단으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 탐을 끊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모든 예류자가 이를 소연으로 삼아 애(愛)를 일으킨다’ 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예류자가 이를 소연으로 삼아 애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면, ‘수소단법인 무유에 대해 탐하니, 이러한 탐은 오로지 수소단으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 탐을 끊지 못하였다’고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설명한다면 양자 모두 이치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미 이치에 맞는다고 한다면, 이것 역시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 무유(無有)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법을 말하는가?
[답] 삼계(三界)의 무상이다.
[문] 세존께서는, “마음은 탐(貪)ㆍ진(瞋)ㆍ치(癡)로부터 해탈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떠한 마음이 해탈을 획득하는 것인가?
탐ㆍ진ㆍ치의 마음인가, 탐ㆍ진ㆍ치를 떠난 마음인가?
[답] 탐ㆍ진ㆍ치를 떠난 마음이 해탈을 획득한다.
그런데 어떤 이(분별론자)는 ‘탐ㆍ진ㆍ치와 상응하는 마음이 해탈을 획득한다’라고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이 주장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이 마음은 탐ㆍ진ㆍ치와 서로 합쳐지거나[相合], 서로 응하거나 잡스럽게 섞이지[相雜]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탐ㆍ진ㆍ치가 아직 끊어지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못하며, 탐ㆍ진ㆍ치가 끊어진 마음은 바로 해탈한다.
세존 역시 설명하시기를,
“비구들은 마땅히 알라! 이러한 일월(日月)의 수레바퀴가 오예(五翳)에 가리워지면 밝지 않고 빛나지 않으며, 광대하지 않고 청정하지 않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구름이며, 둘째는 연기이며, 셋째는 먼지, 넷째는 안개, 다섯째는 갈라호아소락(曷邏呼阿素洛 : rāhuasura)의 손이다”라고 하셨다.
이를테면 일월의 수레바퀴는 오예와 서로 합쳐지지도, 서로 응하거나 서로 잡스럽게 섞이지도 않지만 그 예를 버리지 않으면 이 일월의 수레바퀴는 밝지 않고 빛나지 않으며, 광대하지 않고 청정하지 않다.
그러나 만약 그 예가 떠난다면 이 일월의 수레바퀴는 밝고 빛나며, 광대하고 청정하다. 이처럼 이 마음은 탐ㆍ진ㆍ치와 서로 합쳐지거나 서로 응하거나 서로 잡스럽게 섞이지 않지만, 탐ㆍ진ㆍ치가 아직 끊어지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못하며, 탐ㆍ진ㆍ치가 끊어진 마음은 바로 해탈하는 것이다.
[문] 어떠한 마음이 해탈하는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현재인가?
[답] 미래 무학(無學)의 마음이 생겨날 때 모든 장애[障 : 번뇌의 획득을 말함]에서 해탈한다.
[문] 그러한 것은 어떠한 것인가?
[답] 무간도(無間道)의 금강유정(金剛喩定)이 멸하고 해탈도의 진지(盡智)가 생겨나는 것이니, 무간도의 금강유정이 올바로 멸하고 해탈도의 진지가 올바로 생하면 그때를,
‘미래 무학의 마음이 생겨나는 때로서 모든 장애로부터 해탈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문] 아직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 해탈한다고 해야 하는가, 이미 해탈한 마음이 해탈한다고 해야 하는가?
[답] 이미 해탈한 마음이 해탈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미 해탈했다면 해탈한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해탈한다고 하면 이미 해탈했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해탈한 마음이면서도 해탈한다고 말한다면 올바른 이치[正理]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응당 그것을 물어본다면, 세존께서 설명하신 것과 같다.(이하 論主의 반문)
만약 애(愛)를 끊어 남음이 없으면
물에 피어 있는 연 꽃의 모습과 같고,
비구가 잡다한 모든 번뇌를 버리는 것은
뱀이 허물을 벗는 것과 같다.
[문] 그대는 이러한 말씀을 바로 선설(善說)이라고 인정하는가?
[답] 그렇다.
[문] 그렇다면 그대는 무엇을 바라는가?
이미 버려진 것을 버린다고 해야 하는가, 아직 버려지지 않은 것을 버린다고 해야 하는가?
[답] 이미 버려진 것을 버린다고 해야 한다. 내가 설명하는 것을 잘 들어라.
만약 이미 버려졌다면 버린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버린다고 하면 이미 버려졌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버려진 것이면서도 버린다고 말한다면 올바른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만(慢)을 끊어 스스로 정(定)에 잘 들면
선한 마음은 모든 것에서 벗어난다.
따라서 고요함에 머물러 방일하지 않으므로
죽음을 넘어 피안에 이른다.
[문] 그대는 이러한 말씀을 바로 선설이라고 인정하는가?
[답] 그렇다.
[문] 그렇다면 그대는 무엇을 바라는가?
이미 이른 것을 이른다고 해야 하는가, 아직 이르지 않은 것을 이른다고 해야 하는가?
[답] 이미 이른 것을 이른다고 해야 한다. 내가 설명하는 것을 잘 들어라.
만약 이미 이르렀다면 이른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이른다고 하면 이미 이르렀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이르렀다고 하면서도 이른다고 말한다면 올바른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의 반론이 이미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이것 역시 응당 그러할 것이다.
계경에 뜻을 분별하여 놓았으니, 세존께서 설명하신 것과 같다.
짐승은 숲으로 돌아가고
새는 공중으로 돌아가며
성(聖)은 열반으로 돌아가고
법은 분별로 돌아간다.
세존께서는 설명하였다. “비구들이여, 잘 알아야 한다. 염(厭)에 의하여 염을 버리고[離染], 염을 버리는 것에 의해 해탈하고, 해탈에 의해 열반한다.”
[문] 여기서 무엇을 염이라고 하는가?
[답] 만약 모든 행에 대해 무학이 염오(厭惡)하고 위역(違逆)하면, 이것을 염이라고 한다.
[문] 염에 의하여 이염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 염이 무탐(無貪)과 무등탐(無等貪)ㆍ무진(無瞋)과 무등진(無等瞋)ㆍ무치(無癡)와 무등치(無等癡)의 선근과 상응하면, 이것을 염에 의해 염을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문] 염을 버리는 것에 의해 해탈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 만약 염을 버리는 것과 상응하는 마음이 이미 승해(勝解)하고 지금 승해하며, 미래에 승해한다면, 이것을 염을 버리는 것에 의해 해탈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문] 해탈에 의해 열반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 만약 탐을 영원히 끊고, 진을 영원히 끊고, 치를 영원히 끊으며,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으면, 이것을 해탈에 의한 열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문] 세존께서는 “삼계(三界)가 있으니, 단계(斷界)ㆍ이계(離界)ㆍ멸계(滅界)이다”라고 설명하셨다. 무엇을 단계라고 하는가?
[답] 애결(愛結)을 제외한 나머지 결의 단(斷)을 단계라고 한다.
[문] 무엇을 이계라고 하는가?
[답] 애결의 단을 이계라고 한다.
[문] 무엇을 멸계라고 하는가?
[답] 나머지 결에 따르는 모든 법의 단을 멸계라고 한다.
[문] 모든 단계는 바로 이계인가?
[답] 그렇다.
[문] 만약 이계라면 이것은 바로 단계인가?
[답] 그렇다.
[문] 모든 단계는 바로 멸계인가?
[답] 그렇다.
[문] 만약 멸계라면 이것은 바로 단계인가?
[답] 그렇다.
[문] 모든 이계는 바로 멸계인가?
[답] 그렇다.
[문] 만약 멸계라면 이것은 바로 이계인가?
[답] 그렇다.
[문] 세존께서는 “삼상(三想)이 있다. 단상(斷想)ㆍ이상(離想)ㆍ멸상(滅想)이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무엇을 단상이라고 하는가?
[답] 애결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 가지 결(瞋恚結ㆍ憍慢結ㆍ無明結ㆍ見結ㆍ失願結ㆍ疑結ㆍ慳結ㆍ嫉結)을 끊는 모든 상[諸想]의 해(解 : 자각적 지혜를 말함)를 단상이라 한다.
[문] 이상이란 무엇인가?
[답] 애결을 끊는 모든 상의 해를 이상이라 한다.
[문] 멸상이란 무엇인가?
[답] 나머지 결에 따르는 모든 법을 끊는 모든 상의 해를 멸상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