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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심범천소문경 제2권
5. 난문품(難問品)
그때 명망(明網)보살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지심 범천(持心梵天)은 여래에게서 이 큰 자비에 관하여 분별된 법을 듣고서도 희열하지도 않고 울적해 하지도 않습니다.”
지심이 답하였다.
“만일 족성자(族姓子)여, 두 가지로 행을 닦고 안다면 그 사람에게는 환희하는 것이나 울적해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하고 실제인 것의 거처에는 영원히 두 가지 일이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환희하는 것도 없고 울적해 하는 것도 없습니다.
비유하면 환술사(幻術師)가 환상으로 기이한 술법을 부리면, 그 화작(化作)된 사람은 행동은 하지만 환희할 것도 없고 울적해 할 것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족성자는 이미 제법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들어가 노닐고 있으니,
자연히 여래께서 드러내신 변화를 보고서도 환희하지도 않고 울적해 하지도 않는 것이며,
여래의 교화와 여래께서 설하신 변재(辯才)를 듣고서도 환희하지도 울적해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이 제법을 분별한다면 일체는 환영(幻影)과 같아 동등하니, 차별이나 특이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여래에 대해서도 은근히 희열하는 일이 없고 중생에 대해서도 하천하고 비열하다는 뜻을 지니지 않습니다.”
명망이 또 말하였다.
“그대는 이미 제법이 환영의 모습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까?”
답하였다.
“족성자여, 만일 제법에 행할 만한 장소가 있으면 능히 그것을 질문해도 좋습니다.”
또 질문하였다.
“범천이여, 그대는 어느 곳에서 행하고 있습니까?”
답하였다.
“일체의 어리석은 범부가 준수하여 행하는 곳이 있으니, 내가 시설한 것은 그곳에서 행합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어리석은 범부는 음욕(婬欲)과 분노와 우치(愚癡)를 행하고 지나치게 의심하고 외적인 몸에 집착하나니,
‘이것은 나의 몸이다. 이것은 나의 소유이다’라고 하며,
삿된 견해에서 머물고 행합니다. 어떻습니까? 그대도 그곳에서 행합니까?”
“그대는 범부인 사람으로 하여금 범부가 없는 법을 성취하게 하고자 합니까?”
명망이 말하였다.
“나는 범부의 일조차 즐기려 하지 않는데 마땅히 편안하게 제법의 성취에 뜻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비유하면 족성자여, 일체의 제법은 성취하는 바가 없으니, 법에는 머무는 바도 없고 모으고 쌓는 장소도 없습니다.
원한을 맺는 일도 없고 잊어버리는 바도 없습니다. 또한 부서지는 일도 없고 상응하는 과보가 오는 일도 없습니다.”
답하였다.
“족성자여,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떠나고 제법을 행하지 않는 것이 말하자면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범부가 저 현자와 성인의 행을 한다고 하면 그렇게 행하는 자는 곧 두 가지 일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또한 족성자여, 일체의 행한 바는 행한 바가 없는 것이 되고, 일체의 가르친 바는 가르친 바가 없는 것이 됩니다. 일체의 거처에는 거처가 없는 것이 되고 일체의 거취에는 거취가 없는 것이 됩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범천이여, 무엇을 일컬어 일체의 행한 바는 행한 바가 없는 것이 된다고 합니까?”
답하였다.
“가령 억백천해(億百千垓)의 여러 겁 동안 가르침을 준수하고 수행한다 하더라도 법의 성품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이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체의 행한 바는 행한 바가 없는 것이 됩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범천이여, 무엇을 일컬어 일체의 가르친 바는 가르친 바가 없는 것이 된다고 하며,
일체의 거처는 거처가 없는 것이 된다고 합니까?”
“일체의 제법이 여래께서 가르치신 바이고 여래의 거처입니다.
그런 까닭에 일체의 가르친 바는 가르친 바가 없는 것이 되고,
일체의 거처는 거처가 없는 것이 됩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무엇을 일컬어 일체의 거취는 거취가 없는 것이 된다고 합니까?”
“헤아려 보건대 어떤 사람이 어딘가로 나아가 생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체의 거취는 거취가 없는 것이 된다고 합니다.”
그때 세존께서 지심을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설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이와 같이 강설해야 한다.”
이에 명망보살이 지심에게 질문하였다.
“그대가, 일체의 어리석은 범부가 행하는 것에 대해서 설하신 바대로 향합니다. 나는 그곳에서 수행한 바가 있습니다.
만일 그와 같이 한다면 그 행한 것에 얻는 바가 있겠습니까?”
답하였다.
“어찌 가히 생한 바에서 노닐며 행한 바에 이르겠습니까?”
다시 질문하였다.
“범천이여, 그대가 만일 생하여 노닐지 않는다면 어떻게 중생을 교화하겠습니까?”
답하였다.
“여래께서 변화로 생하시는 일과 같습니다. 나도 그와 같이 생합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여래께서 변화하시는 일을 두고 어찌 생하는 일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정녕 변화가 있어야 할 때 마땅히 드러낼 바를 드러낸 것입니까?
부처님의 경계를 누가 일으키겠습니까?”
그 답에 대하여 말하였다.
“드러내는 것도 있고 드러낸 바도 있고 경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드러낸 바가 있다 하더라도 드러낸 바가 없는 것이 됩니다.”
답하였다.
“내가 생한 바는 마땅히 그렇게 관찰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한 자는 인연으로 경계를 세운 것입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그대는 어찌 생사의 행에 인연합니까?”
답하였다.
“나는 생사의 행에 인연한 것이 없습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그렇다면 어디에 인연한 것이기에 경계를 연하여 두려워하는 바가 있습니까?”
답하였다.
“여(如)에 인연한 것과 같습니다. 경계에 인연한 두려움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본래부터 없었음을 헤아리는 자에게 퇴전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때 장로 사리불이 앞으로 나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만일 누군가가 이들 여러 천신 및 용 등과 함께 그러한 언사에 들어간다면 한량없는 복덕을 획득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세존께서 들으셨던 것과 같이 이 여러 바른 장부의 명호만 들어도 매우 유쾌합니다. 하물며 법을 강설하는 것을 만나는 것이겠습니까?
비유하면 나무가 땅에서 생겨났지만 허공에 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를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위대한 성인이시여, 이 여러 바른 장부가 행하는 모습, 곧 제법에 머물면서 생겨나는 것과 끝과 시작과 존재하고 사라지는 것과 윤회하는 것과 가고 오는 것을 드러내고, 여러 부처님 국토를 드러내며, 그리고 높고 미묘하고 그와 같이 비유되는 지혜로써 걸림 없는 변재를 얻어 이미 자유자재로 노니는 것, 이러한 것을 마땅히 관찰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지혜와 변화를 보고 나면 어떤 족성자와 족성녀가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를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그때 모임 가운데 한 보살이 있었는데 이름이 보화(普華)였다.
그가 장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지금 장로께서 어찌 이 법의 성품에 들어가지 않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장로를 두고 지혜가 가장 높은 자라고 설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이와 같이 변화를 느끼고 움직이는 일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십니까?”
답하였다.
“세존께서는 성문에 대해 그 경계를 제가 잘 안다고 설하셨습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대중들은 경계를 이해하여 법을 설합니까?”
답하였다.
“아닙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어떻습니까? 장로여, 그 경계에 따라 강설하는 바가 있습니까?”
답하였다.
“들어가는 바에 따라 설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장로여, 법의 성품으로 하여금 끝이 없도록 하십니까?
그리고 그것을 증득하십니까?”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무엇을 일컬어 들어가는 바에 따라 설하는 바도 역시 그와 같다고 합니까?
사리불이여, 그 들어가는 바의 절도와 한계에 따라 강설하는 바의 절도와 한계가 있는 것도 역시 그러합니다.
그리하여 한계와 절도는 스스로 법의 성품을 묶습니다.
그렇지만 그 법의 성품이란 끝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보화여, 그 법의 성품이란 들어가는 모습이 없습니까?”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사리불이여, 만일 법의 성품이 들어가는 모습이 없는 것이고, 법의 성품이 모습에 들어간 바도 없는 것이라면,
그대는 어느 것에 말미암아 열심히 법의 성품에 입각하여 해탈에 뜻을 둔다는 것을 설정할 수 있습니까?”
답하였다.
“없습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들어가는 바에 따라 평등하게 순응한다면 법의 성품도 역시 그러합니다.”
답하였다.
“보화여, 나는 보고자 하고, 또한 그것을 듣고자 합니다.”
답하였다.
“사리불이여, 어떻습니까? 법성(法性)에 생각하는 바가 있습니까? 일체의 제법에 설한 바도 있고, 듣는 바도 있습니까?”
사리불이 답하였다.
“아닙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만일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나는 보는 바가 있고 듣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합니까?”
답하였다.
“보화(普華)여,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두 사람이 얻는 복덕은 한량없다. 한 사람은 오로지 정성들여 법을 설하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한마음으로 청취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대는 법을 강설하고 나는 마땅히 그것을 듣는 것입니다.”
범천이 또 질문하였다.
“장로여, 능히 사유와 생각을 멸하고 난 사유정(思惟定)에서 어찌 법을 청취하겠습니까?”
답하였다.
“족성자여, 그 멸진정에는 두 가지 일이 없으니, 그것이 법을 청취하는 이치입니다.”
그 답에 대하여 말하였다.
“장로 사리불이여, 몸은 편안하고 뜻은 즐겁습니까? 본래부터 고요하고 청정한 것이 제법입니까?”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족성자여. 일체의 제법은 본래 청정하고 고요하고 멸한 것입니다.”
그 답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런 까닭에 장로 사리불이여, 항상 정(定) 속에서 법을 듣는다는 것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제법은 본래 빠짐없이 적정(寂靜)하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질문하였다.
“그대 족성자여, 정녕 정(定)에서 일어나지 않고도 법을 강설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러합니다. 사리불이여, 제법을 성찰하면 어찌 제법을 획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대는 정에서 일어나지 않고 능히 법을 설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범천이 다시 말하였다.
“그런 까닭에 그대여, 일체의 범부인 어리석은 무리들은 항상 정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장로가 다시 말하였다.
“범부인 어리석은 무리들은 어떤 정의 마음으로 삼매에 드는 것입니까?”
“일체의 제법에는 거취가 없습니다. 그것을 항상된 정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그와 같다면 범부인 어리석은 무리가 현자 및 성인과 동등하게 수습하여 차별이 없는 것입니까?”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사리불이여, 이야기한 것과 정확히 같습니다.
내가 살펴볼 때 범부인 어리석은 무리와 현자 및 성인들 사이에 약간의 차이라도 있다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현자 및 성인의 법에는 멸진되거나 제거되는 것이 없으며,
어리석은 무리의 법에도 일으키는 바가 없습니다.
법계와 동등한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제도되는 자도 없는 것입니다.”
이에 다시 질문하였다.
“족성자여, 제법에는 본성이 없는데 무엇을 일컫습니까?”
답하였다.
“장로가 몸소 분별하고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그대가 현자와 성인의 법을 어찌 다시 일으키겠습니까?”
답하였다.
“일으키지 않습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그대는 범부의 법을 소멸하거나 제거합니까?”
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그러면 어찌 다시 현자와 성인의 법을 체득하겠습니까?”
답하였다.
“체득하지 못합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정녕 다시 범부의 법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답하였다.
“없습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어찌 장로는 때를 분별하고 압니까?”
답하였다.
“들은 바대로 법이란 범부를 떠나서는 본성이 없는 것입니다.
평등한 것이 역시 그러하니, 해탈도 없습니다.
멸도도 역시 그러하고, 본성이 없는 것도 역시 그러합니다.”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사리불이여. 그 본성이 없는 것은 차별이 없으니, 약간의 차별도 없습니다.
그 본성이 없는 것은 돌아갈 거취가 없으므로 본성이 없다고 이르는 것입니다.
그 본성이 없는 것과 같이 일체의 제법은 빠짐없이 본성이 없는 것에 들어갑니다.”
그때 장로 사리불이 앞에 나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비유하면 큰 불이 치성하고 혁혁하게 불타올라 태우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족성자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여러 설해진 법을 모두 분별하고 요지합니다.
그리하여 일체의 법의 성품은 모두 멸진해 버리는 곳에 처해 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사리불아, 여러 족성자들이 강설하는 법의 성품은 네가 말한 것과 같다.”
그때 명망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대가 지혜로운 자들 가운데서 높다고 찬탄하셨는데, 어떤 지혜로써 장로를 찬탄하셨습니까?”
답하였다.
“명망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 성문들 중에서는 음성에 입각하여 단지 스스로 몸을 비추어 해탈을 얻는데 그 가운데서 나를 높다고 한 것일 뿐입니다.
보살 가운데서 지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사리불이여, 지혜를 관찰해 보면 말의 모습만이 있는 것입니까?”
답하였다.
“아닙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그 지혜는 행하되 두루 하며 또한 평등하지 않습니까?”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말한 그대로입니다. 지혜는 평등합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어떤 이유로 제법은 두루 하고 평등하며, 나아가 지혜도 그러한데 반대로 지혜에 한계가 있다고 강설합니까?”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족성자여, 지혜의 법성에는 끝도 없고 한계도 없습니다.
그러나 얽매어 한계가 있는 것은 그 경계를 따르기 때문이니, 본래의 지혜에 말미암아 행하여도 들어가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그대가 아는 바로는 그 무한한 것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답하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어떤 제한에 입각하여 스스로 묶이고 걸리어 설한 바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사리불이 침묵한 채 말하지 않았다.
이에 현자 대가섭(大迦葉)이 부처님의 성스러운 뜻을 받들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명망보살은 무엇 때문에 명망이라고 불립니까?”
이에 세존께서 장로 대가섭이 청하는 것을 보시고는 모여 있는 대중들로 하여금 덕의 근본을 구족하게 하고자 하셨다. 그리하여 명망에게 말씀하셨다.
“너 족성자야, 스스로 본래의 덕으로 지은 업에 의하여 성취한 청정한 빛을 드러내어라.
그리고 마땅히 천상(天上)과 세간(世間)의 인민을 위하여 그 휘황찬란함을 보여 주어라.
그리하여 지금껏 선(善)의 근본을 지니어 왔던 보살 대중의 의지가 완숙해지도록 하여라.
혹은 도에 마음을 일으킨 자로 하여금 정진력(精進力)을 얻도록 하여라.”
그러자 명망보살은 부처님께서 분부하시는 말씀을 받고서는 다시 가사를 추스르고 정돈하였다.
그런 뒤 오른손의 비단 그물 같은 무늬의 손가락과 손톱 사이로부터 광명을 내놓았다. 그 광명은 한량없이, 그리고 한계를 잴 수 없이 통과하고 꿰뚫었으니, 끝이 없는 시방의 여러 부처님 국토를 비추었다.
그리고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이 모여 있는 여러 부처님 세계를 빠짐없이 두루 돌았다.
그 가운데는 지옥도 있고 아귀도 있고 축생의 무리도 있었다.
또한 눈먼 자, 듣지 못하는 자, 말하지 못하는 자도 있었다.
또한 손발이 자유롭지 못한 자와 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자도 있었다.
또한 지극히 지혜가 없고 미쳐 날뛰는 어리석고 어두운 자도 있었고,
음욕을 지니고 진에를 지니고 우치를 지닌 자도 있었다.
또한 헐벗어 가리지 못하는 자와 배고파하는 자와 목말라 하는 자도 있었다.
또한 묶인 자와 매달려 있는 자도 있었고 빈궁하고 못생긴 자도 있었다.
늙어 다 죽게 되어도 인색하게 탐착하고 질투하는 자도 있고,
계율을 파괴하고 화내는 자도 있고,
게으르고 방자한 뜻을 지닌 자도 있었다.
또한 지혜는 좋지 못하고 믿음이 없는 데다 들은 것이 적은 자도 있었고,
부끄러움도 미안함도 알지 못하고 사악한 견해인 예순두 가지 의혹에 떨어진 자도 있었다.
또한 여덟 가지가 어려운 곳[八難]인 한가하지 못한 장소에 태어난 자도 있었다.
그러한 중생들로서 이 빛을 쪼인 자들은 이윽고 모두 안락함을 얻었다.
그리고 그때 그 중생들에게는 탐착과 음탕함이 없었고, 근심하지 않고 진에와 분노를 일으키지 않았다.
미혹하지 않고 우둔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으며 맺힌 원한이 없었다.
그리고 극심한 번뇌도 없었다.
바로 그때 세존 앞에 와 있던 여러 대중들의 모임에는 보살ㆍ성문ㆍ천신ㆍ용ㆍ귀신ㆍ잡신ㆍ건달바[犍沓和]ㆍ아수라[阿須倫]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眞陀羅]ㆍ마후라가[摩睺勒] 등이 있었고,
아울러 비구ㆍ비구니ㆍ청신사(淸信士)ㆍ청신녀(淸信女) 등의 대중이 있었다.
이들이 두루 한 가지 형상을 드러내니, 모두가 금색으로 일체가 평등하게 드러나 상호와 형상 및 용모가 모두 여래와 같았다.
두루 한 가지로 동등하게 드러나니, 특출하게 두드러진 모습을 따로 볼 수가 없었다.
몸은 금강과 같았고, 모두가 다 저절로 이루어진 연꽃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구슬과 교로(交露) 휘장과 온갖 보배로 된 덮개가 덮고 있었으니, 모두가 빠짐없이 동등하여 차별이 없었다.
또한 자연스러운 자태를 드러내니, 부처님과 같아서 차이가 없었다.
일체가 색신에 있어서 빠짐없이 안온함을 얻었으니, 비유하면 보살이 ‘환희를 일으킴’이라는 이름의 삼매를 체득한 것과 같았다.
그때 모여 있던 대중들은 일찍이 없었던 괴이한 것을 만나 각각 서로를 보니, 빠짐없이 세존과 같이 차별이 없었고, 다시는 스스로도 작고 비루한 자신의 몸을 보지 못하였다.
또한 이 광명이 비추자 그때 아래 방향에 있던 네 명의 보살이 자연히 땅에서 솟아올라 합장한 채 섰다.
그리고 각자 생각하길,
‘지금 마땅히 어느 곳에 있는 여래에게 예를 올려야 하는가?’라 하자,
공중에서 소리가 나며 말하였다.
“이것은 명망보살의 수승(殊勝)하고 특별한 광명이다.
이로써 두루 모여 있는 대중들로 하여금 한 가지 색을 드러내게 하여 여래의 모습을 이루게 한 것이다.”
그때 네 보살은 일찍이 없었던 것을 얻고는 소리 높여 말하였다.
“만일 우리들이 지극한 정성을 지니고 있다면 지금 보고 있는 모습과 색이 한 종류로서 다를 바가 없고,
제법도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해도 허무하지 않은 진실한 진리[眞諦]를 간직하여,
우리는 마땅히 능인(能仁)부처님의 상서로운 신체를 친견하게 될 것이다.
만일 여래를 친견하게 된다면 마땅히 받들고 섬길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연꽃의 교로를 지닌 사자좌(師子座)를 띄워 땅에서 일곱 자[尺]를 올라갔다.
그러자 네 보살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함께 소리 내어 말하였다.
“일찍이 없었던 일에 이르렀습니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여래의 지혜는 그 끝을 다할 수 없습니다.
명망보살의 본성이 청정한 복덕과 서원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이러한 광명을 펼치셨으니,
여러 중생의 위용과 안색과 용모로 하여금 이와 같이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명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족성자야, 너는 크고 밝게 드러냈던 광명을 거두어들이도록 하라.
이미 그것으로 부처님의 일을 실천하며 건립한 바가 많았고, 한량없는 사람의 의지를 도에 세워 놓았다.”
그러자 명망보살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명령을 듣고서 광명을 거두어들였다. 그리하여 그때 모여 있던 대중들은 모두 예전과 같이 되었으니, 위의와 예의와 절도가 다시 전과 같이 드러났다. 그리고 여래는 홀로 사자좌에 거처하셨다.
장로 대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 네 보살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이 네 보살이 말하였다.
“저희는 아래 방향의 다른 부처님 세계로부터 왔습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그 세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답하였다.
“중보보현(衆寶普現:온갖 보배가 널리 나타남)입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여래ㆍ지진의 명호는 무엇이며, 지금 법을 설하고 계십니까?”
답하였다.
“명호는 일보개(一寶蓋)여래이시며, 그곳에서 법을 강설하고 계십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그 세계는 여기에서 멉니까, 가깝습니까?”
답하였다.
“세존께서 그것을 아십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그대들은 어떻게 여기에 왔습니까?”
답하였다.
“명망보살이 광명을 펼쳐 놓았을 때 우리는 본토에서 그 광명을 보았습니다.
아래 방향의 부처님 국토에서 능인(能仁)세존과 명망의 명호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국토에 와서 세존을 친견하고 머리를 조아려 받들고 섬기고자 하였으며, 바른 장부인 명망보살을 보고자 이곳에 온 것입니다.”
그때 대가섭이 앞으로 나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일보개부처님의 국토인 중보보현이라는 세계는 여기서 얼마만큼 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서 아래 방향으로 72항하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수의 부처님 국토를 지나면, 마침내 중보보현이라는 세계를 만나고, 일보개(一寶蓋)부처님의 처소에 이르게 된다. 이 네 보살은 그 세간으로부터 왔다.”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기에 도달하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번 뜻을 내는 사이에 여기에 이르렀다.”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어려운 일입니다. 위대한 성인이시여, 보살 대사가 방사한 광명과 성스러운 신족으로 도달하는 것이 그와 같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명망보살은 그 광명을 펼치어 끝없이 멀리까지 비춥니다.
또한 이 네 보살은 찾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누가 이 신족의 위엄과 변화에 능한 지혜로 이룬 바를 보아서 대승을 건립하는 것을 즐거이 원하지 않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말한 것처럼 여러 보살이 행하는 바는 결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성문이나 연각은 능히 미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