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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사론 제2권
3) 삼유루처(三有漏處)
세 가지 유루라는 것은 욕유루(欲有漏)와 에유루(恚有漏)와 치유루(癡有漏)이다.
[문] 누(漏)에 어떤 성질이 있는가?
[답] 욕유루의 성질은 마흔한 가지이니, 애(愛)가 다섯 가지, 에(恚)가 다섯 가지, 만(慢)이 다섯 가지, 의(疑)가 네 가지, 견(見)이 열두 가지, 그리고 열 가지의 전(纏)이다.
이 네 가지가 욕유루의 성질이다.
[문] 신악행(身惡行)과 구악행(口惡行)은 번뇌의 성질인가, 번뇌의 성질이 아닌가?
만일 번뇌의 성질이라면, 이것을 욕유루 중에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았는가?
만일 번뇌의 성질이 아니라면, 시설하여 말한 것과 어떻게 통하는가?
[답] 그 가운데서는 말하기를, 신악행과 구악행은 결(結)도 아니고, 박(縛)도 아니고, 사(使)도 아니니, 번뇌요 전이 아니라고 하였다.
마땅히 버려져서 없어지니, 괴로움 내는 것을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논을 짓고 나서 말하기를, 번뇌의 성질과 같다고 하였다.
[문] 만일 그렇다면, 이 욕유루 중에서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았는가?
[답] 마땅히 이 신악행과 구악행을 말하여 욕유루 중에 세워야 하며, 마땅히 마흔세 가지 욕유루의 성질을 지어야 한다.
만일 말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생략하여 말한 것이나. 다시 어떤 이는 번뇌의 성질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문] 이 때문에 욕유루 중에서는 말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 시설한 것과 어떻게 통하는가?
[답] 여기서 시설하여 말한 것도 마땅히 그러하니,
신악행과 구악행은 결(結)도 아니고, 박(縛)도 아니고, 사(使)도 아니고, 번뇌도 아니고, 전(纏)도 아니다.
마땅히 버려져 없어지니, 괴로움을 내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에 마땅히 그러하다.
[문]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떤 뜻인가?
[답] 그것이 비록 번뇌의 성질은 아니나, 번뇌에 의하여 어지럽혀진다. 이 때문에 번뇌라고 말한 것이다.
[문] 그것이 결(結)의 성진은 아니지만 견에 의해 묶이는데, 어째서 결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박(縛)의 성질은 아니지만 박(縛)에 의해 묶이는데, 어째서 박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사(使)의 성질은 아니지만 사에 의해 부려지는데, 어째서 사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전(纏)의 성질은 아니지만 전에 의해 얽매이는데, 어째서 전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답] 마땅히 그렇게 말해야 하나니, 만일 말하지 않았다면 말하는 것을 생략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문(二門)과 이략(二略)과 이도(二度)와 이거(二炬)와 이명(二明)과 이광(二光)과 이수(二數)를 나타낸 것이다.
비록 그것이 번뇌의 성질은 아니지만 번뇌에 의해 번거롭게 어지럽혀지니, 이 때문에 번뇌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그것이 결의 성질은 아니지만 결에 의해 묶이면 마땅히 결이라고 말해야 하며,
박의 성질은 아니지만 박에 의해 묶이면 마땅히 박이라고 말해야 하며,
사의 성질은 아니지만 사에 의해 부려지면 마땅히 사라고 말해야 하며,
전의 성질은 아니지만 전에 의해 얽매이면 마땅히 전이라고 말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결의 성질은 아니지만 결에 의해 묶였는데도 결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박의 성질은 아니지만 박에 의해 묶였는데도 박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사의 성질은 아니지만 사의 의해 부려지는데도 사라고 말하지 않으며,
전의 성질은 아니지만 전에 의해 얽매이는데도 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이 그것도 번뇌의 성질은 아니지만 번뇌에 의해 어지럽혀지는데도 마땅히 번뇌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문 내지 이수를 나타낸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유유루성(有有漏性)에 쉰두 가지가 있다수(睡)와 조(調)를 더하면 쉰네 가지가 될 것이다.
애(愛)가 열 가지니 색계의 다섯 가지와 무색계의 다섯 가지이고,
만(慢)이 열 가지니 색계의 다섯 가지와 무색계의 다섯 가지이고,
의(疑)가 여덟 가지니 색계의 네 가지와 무색계의 네 가지이고,
견(見)이 스물네 가지니 색계의 열두 가지와 무색계의 열두 가지다.
이 쉰두 가지가 유유루성이다.
무명유루성(無明有漏性)은 열다섯 가지니 욕계의 다섯 가지와 색계의 다섯 가지와 무색계의 다섯 가지이다. 이 열다섯 가지가 무명유루성이다.
이 백여덟 가지의 3유루성에 각각 백여덟 가지의 번뇌가 있다.
이것을 3유루성의 자기 종자 모양의 몸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성질을 말하였으니, 행을 말하겠다.
[문] 무엇 때문에 유루라고 말하였으며, 유루는 어떤 뜻이 있는가?
[답] ‘머물러 있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며,
‘담근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며,
‘샌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며,
‘증상주(增上主)’의 뜻이 유루의 뜻이며,
‘지니고 있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며,
‘취한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다.
‘머문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라는 것은, 중생이 무엇 때문에 욕계에 머물러 있으며, 중생이 무엇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에 머물러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담근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라는 것은,
마치 종자를 물에 담가두어 싹을 틔우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중생도 결에 담겨져 유의 싹을 낸다.
‘샌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라는 것은,
마치 누각에서 물이 새는 것과 같으며, 유방에서 젖이 새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중생도 6입(入)의 문 중에서 항상 결[結:번뇌]이 샌다.
‘증상주’의 뜻이 유루의 뜻이라는 것은,
마치 사람이 증상주에 의하기 매문에 동서남북으로 자재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중생도 결이 증상주가 되기 때문에 계와 취를 뛰어넘어 생사를 굴릴 수 없다.
‘지닌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라는 것은,
마치 사람이 그릇된 사람에 의해 유지되어,
말해서는 안 되는데 말하며, 일러 주어서는 안 되는데 일러 주며,
취해서는 안 되는데 취하며, 훔쳐서는 안 되는데 훔치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중생도 결에 의해 유지되어 말해서는 안 되는데 말하며, 또한 훔쳐서는 안 되는데 훔친다.
‘취한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라는 것은,
마치 사람이 뿌리로 담근 술과 줄기로 담근 술과 잎으로 담근 술과 꽃으로 담근 술과 과일로 담근 술을 마시고 취하여 부끄러움을 잃어, 일과 일 아닌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이 중생이 결의 술에 취하여 부끄러움을 잃고 일과 일 아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머문다는 뜻과 담근다는 뜻과 샌다는 뜻과 증상주의 뜻과 지닌다는 뜻과 취한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라고 한 것이다.
[문] 만일 머문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라고 한다면, 행(行)도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 중에 머물러 있게 한다.
말한 바와 같이 이인(二因)과 이연(二緣)의 생사의 행과 결행(結行)의 결은 생사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은 것이며, 깨지지 않은 것이며, 제거되지 않은 것이며,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또한 만일 일곱 살ㆍ여덟 살에 아라한과를 얻으면 났다가 그가 백 세에 이르도록 생사 중에 머물면서 무량한 고통을 받을 것이니, 두통과 신열과 내지 사백네 가지의 병이다.
저 모든 결이 다하였으나, 다만 행에 기인하기 때문에 생사 중에 머문다.
만일 행에 기인하기 때문에 중생이 생사 중에 머문다고 한다면,
무엇 때문에 결은 유루 중에 세우고 행은 세우지 알았는가?
[답] 이 결은 행의 근본이니, 결을 끊지 않고서는 행을 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것이 결에 기인하기 때문에 행을 일으키니, 결이 과보를 받는 경우는 없다.
이는 마치 사람이 진흙 덩어리로 마른 벽을 쳐도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으니, 근본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것이 결을 인하기 때문에 행을 일으키니, 결이 과보를 받는 경우는 없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결이 다하여 반열반하는 것이니, 행이 다하여 아라한이 되는 것은 아니다.
행이 수미산처럼 머물러 있으나, 아라한은 음을 소멸하여 무여열반계(無餘涅槃界)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 행은 일정하지 않으니, 생사에 머물기도 하며 생사를 끊기도 한다.
이 결은 한결같이 생사 중에 머무니,
이 때문에 결을 유루 중에 세우고 행은 세우지 않은 것이니,
저 바수밀이 시설하여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문] 무엇을 욕유루(欲有漏)라고 하는가?
[답] 욕계의 무명을 제외한 모든 나머지 욕계의 결과 박과 사와 번뇌와 전이다.
[문] 무엇을 유루라고 하는가?
[답] 색계와 무색계의 무명을 제외한 모든 나머지 색계와 무색계의 결과 박과 사와 번뇌와 전이다.
[문] 무엇을 무명루(無明漏)라고 하는가?
[답] 삼계의 무지[三界無智]다. 여기서는 삼계의 무지라고 말하는 것이 좋으니,
만일 삼계의 부지[三界不智]라고 말한다면 삼계의 무지를 취하지 않는 것이니,
삼계의 무지라고 말하는 것이 잘 말한 것이다.
[문] 무엇 때문에 욕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 욕유루를 세웠으며,
색계와 무색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 유루를 세웠는가?
무엇 때문에 모든 삼계의 무명은 따로 무명유루(無明有漏)를 세우는가?
[답] 만일 욕계에 머문다면 저것은 모두 욕에 의지하기 때문이며,
욕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며, 욕을 구하기 때문이며, 욕을 즐기기 때문이며, 욕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욕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 욕유루를 세운 것이다.
만일 색계와 무색계에 머문다면 그것은 모두 유에 의지하기 때문이며, 유를 얻고자 하기 때문이며, 유를 구하기 때문이며, 유를 즐기기 때문이며, 유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 유유루(有有漏)를 세운 것이다.
그것이 욕계에 머물고 색계와 무색계에 머무는 것은 그것이 모두 무명을 말미암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모든 삼계의 무명은 따로 무명유루(無明有漏)를 세운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욕계의 결은 아(我)에 애착하고자 하며, 다르게 하고 해독을 끼치니,
이 때문에 욕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 욕유루를 세운 것이다.
색계와 무색계의 결은 아에 애착함이 없으며, 다르게 하지도 않고 해독을 끼치지도 않으니,
이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 유유루를 세운 것이다.
그 욕계에서 아에 애착하는 것과 색계와 무색계에서 아예 애착하는 것은 그것이 모두 무명을 말미암으니,
이 때문에 모든 삼계의 무명은 따로 삼계의 무명유루를 세운 것이다.
비유자의 말이다.”라고 하였다.
[문] 두 가지의 근본결(根本結)은 무명과 유(有)에 대한 애착이니, 무엇 때문인가?
[답] 그 두 가지 근본결 중에서 무명은 본래 연기(緣起)의 근본이고, 유에 대한 애착은 미래의 유다.
[문] 만일 그렇다면 그 세 가지 유루는 어떠한가?
[답] 저것은 애(愛)이기도 하고, 불선이기도 하고, 무기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혹은 과보가 있기도 하고, 혹은 과보가 없기도 하며,
혹은 두 가지 과보를 받기도 하고, 혹은 한 가지 과보를 받기도 하며,
혹은 무참ㆍ무괴와 상응하기도 하고, 혹은 무참ㆍ무괴와 상응하지 않기도 한다.
그것이 만일 불선이고, 과보가 있고, 두 가지 과보를 받고, 무참ㆍ무괴와 상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욕계의 애이다.
그것으로 인하기 때문에 나머지 모든 욕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서 욕유루라는 이름을 얻는다.
만일 무기이고, 과보가 없으며, 한 가지의 과보를 받고, 무참ㆍ무괴와 상응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것은 색계와 무색계의 애이다.
저것에 기인하기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서 유유루의 이름을 얻는다.
[문] 이 논 가운데 다시 어떤 논의가 생겨서,
무슨 까닭에 욕계의 애 때문에 욕계의 결이 무명을 제외하고서 욕유루의 이름을 얻으며,
무슨 까닭에 색계와 무색계의 애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의 결이 무명을 제외하고서 유유루의 이름을 얻는가?
[답] 애 때문에 경계[界]가 끊기고, 경지[地]가 끊기고, 종자[種]가 끊기니, 애 때문에 모든 많은 결에 애착한다.
이러므로 욕계의 애욕 때문에 욕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 욕유루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며,
이러므로 색계와 무색계의 애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서 유유루의 이름을 얻은 것이다
[문] 무엇 때문에 모든 삼계의 무명은 따로 무명루를 세우는가?
[답] 무명은 전무지(前無知)ㆍ후(後)무지ㆍ중(中)무지며,
내(內)무시ㆍ외(外)무지ㆍ내외(內外)무지며,
행(行)무지ㆍ보(報)무지ㆍ행보(行報)무지며,
각(覺)무지ㆍ법(法)무지ㆍ승(僧)무지며,
고(苦)무지ㆍ습진도(習盡道)무지며,
6도(道)에 다시 즐겨 들어가는 여진(如眞)무지이니, 견해와 어리석음(癡)의 어둠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종자가 중복되며, 행이 중복되기 때문이다.
종자가 중복된다는 것은 모든 결이 하나의 무명과 같은 것이고,
행이 중복된다는 것은 모든 결이 함께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시 따로 불공무명사(不共無明使)를 세운 것은 이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것은 나태함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말한 바와 같이 이 비구 중에 나태한 자가 무명이다.
물 가운데 어떤 곤충을 나태라고 하는데, 스스로 눈이 멀었으며 남으로 하여금 눈을 멀게 한다는 말이 있다.
이와 같이 무명은 이미 스스로 눈이 멀었고, 모든 행위자도 눈이 멀게 하니,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아홉 가지는 한 가지 연(緣) 중의 치(癡)이기 때문이다.
아홉 가지라는 것은 증상으로부터 연연(軟軟)까지고, 한 가지 연 중의 치라는 것은 저 유상무상연연(有想無想軟軟)의 일종이다.”라고 하였다.
[문] 이 사가 모든 비기계변사(非己界遍使)이다.
삿된 견해에 있는 아홉 가지는 한 가지의 연 중에 방언(謗言 )과 무견(無見)이고,
도(盜)의 아홉 가지는 한 가지의 연 중에 수(受)이고,
제일계(第一戒)의 아홉 가지도 한 가지의 연 중에 수정(受淨)이고,
의(疑)의 아홉 가시도 한 가지의 중에 유예(猶豫)다.
이와 같이 사는 모든 비기계변사인데, 저것은 어째서 불공사(不共事)로서 오직 무명만을 말하였는가?
[답] 아니다.
[문] 만일 그렇다면 이는 어째서인가?
[답] 이 욕계의 치(癡)는 아홉 가지를 일으키며, 한 가지도 아홉 가지를 일으킨다.
한 가지가 아홉 가지를 일으키는 것과 같이 이와 길이 아홉 가지도 아홉 가지를 일으킨다.
욕계에서 아홉 가지를 일으키는 것과 같이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이르기까지 아홉 가지의 아홉 가지를 일으킨다.
모든 비기계변사(非己界遍使)는 이 작용이 없다.
그것이 심는 바대로 제도하는 바대로, 이제 중생이 생사에서 어리석게 되었으니,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것이 일시에 머무는 중에 다섯 가지의 인과 연과 사에 의하여 부려지니, 이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앞에 멀리 두루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문] 앞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답] 사성제(四聖諦)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무명의 얽매임[纏]이기 때문이다.
고(苦)는 고를 원하지 않고 견디지 않는 것이고,
습(習)은 습, 진(盡)은 진, 도(道)는 도를 원하지 않고 견디지 않는 것이니,
마치 굶주린 사람이 처음에 나쁜 음식을 배불리 먹고서, 나중에 매우 맛있는 음식을 얻고서도 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 치(癡)는 나쁜 음식과 같으니, 무명의 얽매임 때문에 나중에 감로(甘露)와도 같은 사제(四諦)를 원하지 않는다.
원하지 않기 때문에 고는 고를 원하지 않고 견디지 않으며, 습은 습, 진은 진, 도는 도를 원하지 않고 견디지 않는 것이다.
원하지 않기 때문에 머뭇거리면서,
“고가 있는 것인가, 고가 없는 것인가? 습과 진과 도가 있는 것인가, 습과 진과 도가 없는 것인가?”라고 한다.
이와 같이 의심하여 무명 중에서 점점 의심을 내니, 모든 머뭇거림이 그것으로 하여금 고정되게 하기 때문이다.
만일 바른 가르침을 얻으면 곧 바른 선정으로부터 고ㆍ습ㆍ진ㆍ도가 있다고 여겨 이것이 바로 바른 견해가 되며,
만일 삿된 견해를 얻으면 곧 삿된 선정으로부터 고ㆍ습ㆍ진ㆍ도가 없다고 여겨 이것이 바로 삿된 견해가 된다.
이와 같이 저 의심 중에서 점점 삿된 견해를 낸다.
만일 고ㆍ습ㆍ진ㆍ도가 없다고 여기게 되면 아가 있다고 여기게 되니, 이것이 신견(身見)이다.
이와 같이 저 삿된 견해 중에서 점점 신견을 내게 된다.
만일 아가 있다고 여기게 되면 곧 ‘이것이 항상하는 것인가, 단멸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만일 차제의 서로 비슷함을 본다면 항상함이 있다고 하게 되니, 이것은 상견(常見)이라고 헤아리는 것이고,
만일 무너지는 것을 본다면 곧 단멸(斷滅)된다고 생각하니, 이것은 단견(斷見)이다.
이와 같이 그 신견 중에서 점점 변견(邊見)을 함께 낸다.
이 중에서 한 변(邊)의 청정함을 취하여 이로써 청정함을 삼고, 해탈의 출요(出要)를 삼는다.
이것이 계도(戒盜)니, 이와 같이 그 변견 중에서 점차 계도(戒盜)를 낸다.
만일 이것이 청정ㆍ해탈의 출요라면 제일의 최상의 모함이 되니, 이것이 견도(見盜)다.
이와 같이 저 계도 궁에서 점차 견도를 낸다.
만일 그가 보고 나서 곧 애착하면 이것은 애사(愛使)고,
그가 보고서 곧 성내면 이것은 불가사(不可使)이며,
그가 보고서 자랑하면 이것은 만사(慢使)다.
이와 같이 그 견 중에서 점차 사를 내며, 사 중에서 점차 전(纏)을 낸다.
전이라는 것은 10전이니,
진전(瞋纏)과 불어전(不語纏)과 수전(睡纏)과 면전(眠纏)과 조전(調纏)과 회전(悔纏)과 무참전(無慙纏)과 무괴전(無愧纏)과 간전(慳纏)과 질전(嫉纏)이다.
그 가운데 진전과 질전은 불가사에 의지하고,
불어전은 애(愛)에 의지하기도 하며 무명에 의지하기도 한다.
애에 의지한다는 것은 애착 때문에 덮고 가리우는 것이며,
무명에 의지한다는 것은 지혜가 없기 때문에 덮고 가리는 것을 말한다.
수와 조와 간은 애에 의지하며, 면과 무참과 무괴와 회는 무명에 의지한다.
다시 어떤 설에서는 결구(結垢)는 결에 의지하니, 근본결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분(憤)은 첨(諂)과 광(誑)과 고(高)와 해(害)에 의지한다.
그 가운데 분과 해는 불가사에 의지하고 광에 의지하며, 고는 견도에 의지하며, 광은 오견에 의지한다.
이와 같이 무명 중에서 점차 모든 곁을 낸다. 이 때문에 ‘앞(前)’이라고 말하였다.
‘널리(普)’라는 것은 아비(阿鼻)로부터 제일유(第一有)에 이르기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이 때문에 ‘널리’라고 말한 것이다.
‘두루한다.’라는 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지 않고, 한때 중의 다섯 가지에 머물며 다섯 가지 연과 다섯 가지 소사(所使)를 인한다.
[문]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여기서는 무엇을 말한 것인가?
[답] 자계일체변사(自界一切遍使) 중에서도 또한 일체변사를 함께 하며,
비기계일체변사(非己界一切遍使) 중에서도 또한 일체변사를 함께 하며,
기지일체변사(己地一切遍使) 중에서도 또한 일체변사를 함께 하며,
비기지일체변사(非己地一切遍使) 중에서도 또한 일체변사를 함께 한다.
기계연사(己界緣使) 중에서도 연사를 함께 하며, 비기계연사 중에서도 연사를 함께 한다.
기지연사(己地緣使) 중에서도 연사를 함께 하며, 비기지연사 중에서도 연사를 함께 한다.
유루연사(有漏緣使) 중에서는 유루연사를 함께 하며, 무루연사 중에서는 무루연사를 함께 한다.
유위연사(有爲緣使) 중에서는 유위연사를 함께 하며, 무위연사 중에서는 무위연사를 함께 한다.
일체결(一切結)과 함께 하여 깨끗함을 버리고 안의 잡다함에 흩어져 들어간다.
이를 그러한 문(門)에서 제도할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 중에서 어리석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모든 삼계의 무명에는 따로 무명유루를 세운다.
이는 부처님의 계경에서,
“저 바르지 못한 사유가 아직 생기지 않아도 욕유루가 곧 생기니, 생기고 나서는 증장된다.”라고 한 것과 같다.
[문] 이와 같은 결은 일어난 것과 같이 소멸하고 머무는 것도 일시에 지나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아직 생기지 않았는데 욕유루가 곧 생기고, 생기고 나서는 증장된다고 하는가?
[답] 여기서 연(軟)ㆍ중(中)ㆍ상(上)을 말하였기 때문에 그 결은 연이 생긴다.
만일 바르지 않은 사유가 바른 일에 의지하지 않으면 곧 중을 내고, 중이 상을 증장한다.
이 때문에 존자 바수밀(婆須蜜)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만일 바르지 않은 사유가 생기지 않아도 욕유루가 곧 생기고, 생기고 나서는 증장된다.”라고 하였다.
[문] 어떻게 증장되는가?
[답] 증장하지는 않으나, 다만 생기고 다시 생기기 때문에 증장한다고 한 것이다.
그 결은 한 번 생길 뿐이다.
만일 바르지 않은 사유가 바른 일에 의지하지 아니하여 곧 생기기를 백천(百千)이면, 이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거듭 말하기를,
연ㆍ중ㆍ상이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다.
그 결의 연품이 생길 때 만일 바르지 않은 사유가 바른 일에 의지하지 않으면 곧 중품이 있게 되고, 중품은 상품을 증장하니 이 때문에 증장이라고 한다.
거듭 말하기를,
증장하지 않고 다만 생기고 다시 생기고 거듭 생기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 결의 연품이 생길 때,
만일 바르지 않은 사유가 바른 일에 의지하지 않으면 곧 중품이 있게 되고,
중품은 상품을 증장하고 상품이 증장하여 궁극적으로 상품이 증장하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거듭 말하기를,
증장하지 않고 다만 경계를 헤아리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한 경계가 생김으로 인하여 그 결이 생기고 머문 뒤 나머지 경계를 반연하며, 그것을 버리고 나서 다시 나머지 경계를 반연한다.
눈에 의하여 그 결을 내니,
만일 바르지 않은 사유가 바른 일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다시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이 생김으로 인하여 색을 반연하여 낸다.
만일 바르지 않은 사유가 바른 일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다시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과 법을 반연하여 낸다.
이 때문에 증장한다고 말한 것이다.
존자 담마다라(曇摩多羅)가 말하기를,
“모든 존자들은 당연히 증장하지 않으나,
다만 사람은 일유(一有) 가운데에서 전을 많이 행하기 때문에 증장한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문] 그는 무엇을 말한 것인가?
[답] 그 존자가 말한 것은 다음과 같다.
모든 중생의 결(結) 등은 악취(惡趣) 등에 나아가, 제일유(第一有)에 난다.
역시 중품과 같아서 혹은 결을 많이 행하고 흑은 그렇지 않다.
이 때문에 모든 존인(尊人)이 일유 중에서 전(纏)을 많이 행하기 때문에 중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의과(依果)와 보과(報果)를 받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결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는 의과와 보과를 받지 않으나, 일어나고 나서 곧 의과와 보과를 받는다.
그러므로 의과와 보과를 받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하였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과를 주고 과를 받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만일 결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는 과를 주지도 않고 과를 받지도 않으나, 생기고 나서는 과를 주고 과를 받는다.
그러므로 과를 주고 과를 받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연을 주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 결이 아직 일어나지 알았을 때에는 차제의 연을 주지 못하나, 만일 연이 일어나면 곧 차제의 연을 준다.
그러므로 연을 주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부처님의 계경에서,
“일곱 가지 유루가 근심과 슬픔의 번뇌를 많이 일으킬 수 있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문] 세 가지 유루라고 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일곱 가지 유루라고 하였는가?
[답] 이 가운데 유루라고 말한 것은 다 유루라고 하니,
마치 나머지는 모두 나머지로써 이름을 감으며,
아비담은 모두 아비담으로써 이름을 삼으며,
즐거움[樂]은 모두 즐거움으로써 이름을 삼는 것과 같다.
이는 다음의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음식을 즐겨 헤아리고
옷을 즐겨 지니며,
행보(行步)하기를 즐겨
산굴(山窟)의 사이에 의지한다.
더러움[垢]은 모두 더러움으로써 이름을 삼으니,
이는 다음의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다.
여자는 범행(梵行)을 더럽히며,
여자는 세간을 얽어맨다.
고행과 범행을
이에 씻으려 해도 물이 없다.
부림[使]은 모두 부림으로써 이름을 삼으니,
비구는 색(色)에 의하여 부림을 당하고 색에 애착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비구가 부림을 당하면 곧 거기에 애착하고, 애착하고 나서는 마구니에게 묶이게 된다.
욕(欲)은 모두 곡으로써 이름을 삼으니,
5욕의 공덕은 모두 세간의 애락(愛樂)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생각의 물러남은 모두 물러남으로써 이름을 삼으니,
다섯 가지 인과 다섯 가지 연 등을 뜻으로써 해탈한 아라한은 혹은 물러나기도 하고 혹은 잊기도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많이 외움이요,
둘째는 업(業)이요,
셋째는 화합의 논쟁이요,
넷째는 멀리 감이요,
다섯째는 오랜 병이다.
행은 모두 행으로써 이름을 삼으니,
이 여섯 가지가 다시 본래 지은 바와 본래 생각한 바와 본래 행한 바에 즐겨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과보는 모두 과보로써 이름을 삼으니,
“모든 현자여, 내가 이미 한 번 보시하였기 때문에 일곱 번 천강에 나서 천왕이 되었고, 일곱 번 인간에 나서 인간의 왕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유루는 모두 유루로써 이름을 삼는다.
존자 바사(婆奢)가 말하기를,
“저기서 말한 법신(法身)이 다하고, 다시 교화를 받은 사람이 온다.
그가 이 뜻의 다른 구(句)와 다른 의미를 아니,
이 때문에 세존께서 이 뜻은 다른 구며 다른 의미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존자 구사(瞿沙)는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이 계경을 말씀하신 중에 두 가지 누(漏)가 있으니,
첫째는 견단(見斷)이고,
둘째는 사유단(思惟斷)이다.”
견단이라는 것은 자기 모습과 같은 것이고, 사유단이라는 것은 대치(對治)하기 때문이다.
사유단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수유치(須臾治)고,
둘째는 근본단(根本斷)이다.
5품 중에는 수유치를 나타내고, 최후품에서는 근본단을 나타낸다.
이는 부처님의 계경에서,
“그가 이와 같이 알며, 이와 같이 보아서 욕유루에서 마음이 해탈되었으며,
유유루(有有漏)와 무명루(無明漏)에서 마을이 해탈되었다고 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문] 만일 그가 욕계에서 욕심을 없앤 때에 욕유루에서 마음이 해탈되고,
유상무상처에서 욕심을 없앨 때에 유유루에서 마음이 해탈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유상무상처 중에서 욕유루에서 마음이 해탈되고 유유루와 무명루에서 마음이 해탈된다고 말하였는가?
[답] 본래 이미 해탈하였으므로 해탈이라고 한 것이니, 마치 이미 왔기 때문에 왔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는 “대왕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는가?
이러한 때를 맞아서 왔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이미 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미 증득을 취하였기 때문에 증득하였다고 하니,
이는 “보살은 바른 것 가운데 증득을 취할 때 등지(等智)를 얻고,
여래는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를 얻을 때 욕계에서 욕(欲)이 없어지고, 에(恚)가 없어지고, 치(癡)가 없어진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선의 근본이 이미 다하여 다하였다고 하니,
이는 “저 괴로움이 이미 다하고 즐거움이 이미 다하여, 근심과 기쁨의 근본이 이미 없어져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어서 생각의 청정함을 얻으니, 4선을 성취하여 노닐게 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미 정수(正受)한 것을 바르게 받았다고 하니, 말한 바와 같다.
[문] 어떻게 생각이 자(慈)에 들어가 정수(正受)하는가?
[답] 욕(欲)은 중생으로 하여금 즐겁게 하고 이미 고통스럽기 때문에 고통이라고 이름하니,
그것은 쾌락과 고통을 느낀 때에 쾌락과 고통을 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본래 이미 해탈하였기 때문에 해탈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두 가지가 모두 영구히 없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두 가지 모두라는 것은 욕유루ㆍ무명유루와 유유루(有有漏)ㆍ무명유루이다.
그 욕계에서 욕심을 없앨 때에 비록 차이가 있어 영구히 다하지는 않았으나,
그 유상무상처에서 욕심을 없앨 때에 영구히 없애어 두 가지 모두가 영구히 없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속박[縛]이 끊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본제(本際)는 알 수 없으니, 유유루와 무명유루가 그 욕계에서 유루가 끊어지고 나서, 끊어졌다가 다시 묶이는 것과 같다.
만일 유상무상처에서 욕심을 제거하고 나면 그 속박이 끝내 끊어짐에 다다르게 된다.
이 속박이 끊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연이 끊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본제는 알 수 없으니 유유루와 무명유루가 욕계에서 유루가 끊어지고 나서 세 가지 연인 차제연(次第緣)과 연연(緣緣)과 증상연(增上緣)을 끊는 것과 같다.
만일 유상무상처에서 욕심을 제거하고 나면 저 연이 모두 끊어지니,
이 연이 끊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꾸짖어 대치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수행인이 유상무상처에서 욕심을 제거하고 나서 욕유루와 유유루와 무명유루를 꾸짖고 자주 간(諫)하여 내가 욕유루와 유유루와 무명유루를 벗어났으니, 장차 내가 생사 중에서 기(欺)와 조(調)를 없앨 것이라고 말한다.
이 꾸짖어 대치함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문] 말한 바와 같이 그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욕유루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유유루와 무명유루에서 마음이 해탈하면, 모든 심수법(心數法) 같은 것도 해탈할텐데, 어째서 유독 마음이 해탈한다고 하였는가?
[답] 미묘하게 설명한 것이고 미묘한 뜻이기 때문이다.
저 모든 심(心)과 심수품(心數品) 중에서 무엇이 가장 미묘한 심인가?
말한 바와 같이 심왕과 권속의 행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심주(心主)를 설명한 것을 말한 것이니, 그것에 기인하기 때문에 심수법을 세운다.
심이라는 것은 대지(大地)를 말하니, 그것에 기인하기 때문에 10대지를 세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저 신통(神通)을 증득할 때에 무애도(無礙道)가 심을 반연한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멀리 감을 설명함을 이른 것이니, 게송에서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고 하였다.
멀리 가는 데 홀로 가니,
몸이 없이 몸에 의지하고,
제어하기 어려운 것을 잘 제어하는 것을
세범지(世梵志)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앞서 감을 설명한 것이니, 게송에서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뜻과 법이 앞에 있어,
뜻이 묘하고 뜻이 빠르다.
뜻으로 악을 생각하여
말하거나 지으면
죄와 고통이 저절로 따르나니
수레 길에서 치어 죽는 것 같네.
뜻과 법이 앞에 있어
뜻이 묘하고 뜻이 빠르다.
뜻으로 선을 생각하여
말하거나 지으면
복락이 저절로 따르나니
그림자가 모양을 쫓는 것과 같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것은 왕과 같다고 말한 것을 이르니,
게송에서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제6 증상왕은
더러움으로써 그것을 물들이니,
물들이지 않으면 더러움이 없다.
더러움이라는 것은 어리석음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성주(城主)를 말한 것을 이른 것이니,
이는 비구의 성주는 식성음(識盛陰)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선과 불선의 계율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이른 것이다.
타바제(他婆提)의 불선계는 어디에서 일어난 것인가?
나는 일어난 곳이 마음속에서부터 일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타바제의 선계는 어디에서 일어난 것인가?
나는 일어난 곳이 마음속에서부터 일어난 것이라고 말한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동등하지 않은 자는 악도에 태어나고 동등한 자는 천상에 태어난다.
동등하지 않은 자가 악도에 태어난다는 것은 말한 바와 같으니,
이제 이때 앵무동자(鸚鵡童子)가 도타자(兜他子)가 되어 생명이 다하여 마치 팔을 펴고 지옥 가운데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무엇 때문인가?
만일 그가 나에 대해서 불선심을 일으키면 중생의 악심 때문에 몸이 사라지고 목숨이 다할 때 악취 중에 태어나는 것과 같다.
동등한 자는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말한 바와 같으니,
이제 이때 앵무동자가 도타자가 되어 만일 목숨이 다할 때 마치 팔을 펴고 천상에 태어나는 것과 같다.
무엇 때문인가?
만일 그가 나에 대해서 선심을 일으키면 중생의 선심 때문에 몸이 사라지고 목숨이 다할 때 천상에 태어나는 것과 같다.
이러므로 동등하지 않은 자는 악도에 태어나고 동둥한 자는 천상에 태어난다고 하였으니, 이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저 심(心)이 의지하거나 행하거나 반연하거나에 따라서 반복되니, 심수법(心數法)도 역시 그러하다.
만일 심이 눈에 의지하여 따라서 반복되면 심수법도 역시 그러하며,
만일 심이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에 의하여 따라서 반복되면 심수범도 역시 그러하다.
만일 심이 청행(靑行)에 의하여 따라서 반복되면 심수법도 역시 그러하며,
만일 심이 적행(赤行)ㆍ황행(黃行)ㆍ백행(白行)에 의하여 따라서 반복되면 심수법도 역시 그러하다.
만일 심이 색의 연에 의하여 따라서 반복되면 심수법도 역시 그러하며,
만일 심이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과 법의 연에 의하여 따라서 반복되면 심수법도 역시 그러하다.
마치 물고기가 곳에 따라 전전(展轉)하면 모든 새끼들도 역시 그러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심이 의지하거나 행하거나 반연하여 곳에 따라 반복되면 심수법도 역시 그러하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신행(身行)과 구행(口行)을 아직 조절하여 제어하지 않았고, 조절하여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이른 것이다.
이른바 조절하여 제어하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조절하여 제어하는 것이다.
조절하여 제어하지 못하면 심수법도 또한 제어하지 못하고, 조절하여 제어하면 심수법도 역시 제어한다는 것이다.
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정하지 않은 것이고,
정한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정하는 것이다.
바르지 않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바르게 하지 않은 것이고,
바르게 한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다.
부드럽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부드럽게 하지 않는 것이고,
부드럽게 한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이다.
지니지 않는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지니지 않는 것이고,
지닌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지닌다는 것이다.
만일 그 법의 두레박이 입구를 덮지 않으면 새고, 덮으면 새지 않으니,
이와 같이 심이 간직되지 않으면 심수법은 색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미세한 법 가운데서 새며,
심이 간직되면 심수법은 색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미세한 감촉과 범 가운데서 새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심을 지니지 않으면 심수법도 역시 간직되지 않으며,
심을 간직하면 심수법도 역시 간직된다고 말하였으니,
비유하자면 마치 법의 두레박과 같다.”고 하였다.
세 가지 유루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