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사리문경 상권
5. 열반품(涅槃品)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열반은 성문ㆍ연각ㆍ범부로서 분별할 수 없으니, 여래ㆍ정변지(正遍知)께서만 설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열반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번뇌를 끊을 것이 없기 때문에 도달하는 곳이 없다. 도달함이란 얻는다는 뜻이다.
도달함이 없기 때문에 얻을 것도 없으니, 왜냐하면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기 때문이다. 아주 없어지거나 없어지지 않음도 없고, 항상 있거나 항상 있지 않음도 없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아주 없지 않으니 사라지지 않고
항상 있지 않으니 나지 않고
떨어뜨리지 않으니 떨어지지 않고
가지 않으니 머물지도 않노라.
“언제나 열반에 머물러 아주 없어지지도 않고 항상 있지도 않는 상(相)이니, 왜냐하면 생사가 없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나는 오히려 생사를 보지 않았는데 하물며 생사 과환(過患)을 보았겠으며,
문수사리여, 나는 오히려 열반을 보지 않았는데 하물며 열반의 공덕을 보았겠느냐?”
그리고는 부처님께서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만약 한 가지 법을 본다면
다른 법도 다 볼 수 있을 것이니
한 가지 법에 공하기 때문에
일체 법이 역시 공이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이 다 공한 줄을 알아야 하니,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면 곧 나지 않는 것이고,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곧 사라지지 않는 것이고,
항상 하지 않는 것이라면 곧 나지 않는 것이며,
번뇌를 끊을 것이 없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번뇌의 자리가 없기 때문에 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장애가 없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장애가 생김이 없으며,
선(善)함도 없고 선하지 않음도 없기 때문에 장애가 없으니,
문수사리여, 이것을 열반이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사라지지 않고 나지도 않고
아주 없어지지 않고 항상 있지도 않고
막히지 않고 거리끼지도 않는
이것을 열반이라고 말하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항상 머무는 열반에 해ㆍ달ㆍ별과 땅ㆍ물ㆍ불ㆍ바람도 없고, 낮밤과 수량도 없으며, 색(色)도 없고 형상도 없고, 늙음과 병듦과 죽음도 없고, 연세(年歲)도 없고 하는 일도 없어 항상 그대로 뭇 고업(苦業)을 여의니, 이러한 열반은 선한 사람이 말한 바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저것에는 해ㆍ달ㆍ
별과 4대(大)가 없고
낮밤 또는 수량과
형상ㆍ색(色) 및 허공도 없고
늙음도 병듦도 죽음도 없고
연세도 없고 하는 일도 없는지라
이미 생사의 근본을 끊어
항상 그 모양 그대로인
이러한 열반의 상(相)은
선한 사람이 말한 바이네.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러 외도들은 세간을 공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공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니, 이는 외도들이 삿된 뜻으로 분별하는 것이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이 외도들의 뜻은 진실한 관찰이 아니다.
만약 세간이 공하다면 생사가 없을 것이니, 왜냐하면 공하기 때문이다.
생사가 공하면 열반도 공하고, 열반이 없으면 신통도 없으며,
만약 세간이 공하지 않다 하더라도 생사가 역시 없을 것이니, 왜냐하면 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사가 공하지 않으면 열반도 없고 열반이 없으면 신통도 없다.
문수사리여, 만약 세간이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면 열반이 필요하겠는가?
만약 생사가 없어짐이 없다면 생사라 하지 않을 것이니, 왜냐하면 없어짐이 없기 때문이다. 생사가 없어짐이 없다면 곧 생사를 열반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문수사리여, 세간이 공하다거나 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으며, 세간을 끊어야 한다거나 끊지 않아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끊음이란 번뇌를 끊는 것이고 끊지 않음이란 번뇌를 끊지 않는 것이지만,
번뇌와 번뇌 아닌 것도 없고 나아가 해탈도 없으니, 만약 해탈이 없다면 열반도 없다.
문수사리여, 없어짐이라는 그것마저도 없으니, 왜냐하면 생사는 공하면서도 공하지 않기 때문에 없어질 것이 없다.
만약 생사가 이와 같다면 그 누가 열반하기를 좋아하랴.”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만약 세간이 공한다면
생사가 없을 것이니
생사가 없기 때문에
열반도 역시 없을 것이며
세간이 만약 공하지 않더라도
역시 생사가 없을 것이니
생사가 만약 없다면
열반도 역시 없을 것이라.
생사가 만약 이와 같다면
그 누가 열반하기를 좋아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