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9:32-43
내가듣고 싶은 한 마디 말, “다비다여 일어나라”
그러나 주님은 이미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지역을 두루 다니던 베드로는 8년동안 중풍으로 누워있는 애니아를 고쳐서 일어나게 합니다. 욥바에서 베드로는 죽은 다비다에게 “다비다여, 일어나라”는 말로 죽은 다비다를 살립니다. 이 두 사건으로 룻다와 욥바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욥바에서 가죽제품업자 시몬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중풍에 걸려 누워 있다는 것은 몸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신마비가 와서 누워있어야만 하는 경우가 애니아에게 일어난 사건입니다. 다비다는 병들어 죽었습니다. 이제 곧 시신은 부패되어 냄새가 날 것입니다. 죽음은 육신의 종말입니다. 어둠입니다. 남은 자들의 아픔이고 슬픔입니다. 이때 베드로를 통하여 성령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그러자 중풍병이 나았고 죽음을 벗어나 생명을 다시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중풍병이 나았고 죽음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납니다.
나의 삶에서 중풍병이 걸린 영역이 무엇인지 내면을 성찰합니다. 오랜시간 마음에 하나님이 없어 허전해서 사람들의 인정에 목말랐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이 아닌 중요하지 않은 것에 목숨을 걸었던 수많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삶은 메말랐고 생명력을 잃어 갔습니다.
본문을 읽으며 “다비다여 일어나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계속 묵상하는 가운데 왜 이 말을 듣고 싶은가? 잠잠히 생각해보니 삶의 영역 가운데 변화되고 해결되고 싶은 영역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권능으로 해결 받고 싶어서 바라는 마음이 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다메섹 도상의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소중한 동역자들인 아나니아가 있는 것처럼, 주님은 ”다비다여 일어나라”는 말씀을 이미 하셨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미 내려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말씀과 환경과 자연을 통하여 알려주신 주님의 음성을 육화하여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차고 넘치는 은혜를 이미 주셨습니다.
이 아침에
단순하게 기쁨을 누리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24시간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습니다.
“주님 한 분이면 족하나이다” 고백을 하면서...
이미 “다비다여 일어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