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정도론 1권
1.5. 네 가지 청정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
1.5.1. 계목의 단속은 믿음으로 성취되어야 한다
98.
① 이와 같이 이 네 가지 계 가운데 계목의 단속은 믿음(saddā)으로 성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학습계율을 제정하는 것은 제자들의 영역을 벗어난 [부처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것은 참으로 믿음으로 성취되어야 한다.
학습계율을 먼저 제정해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을 [부처님께서] 거절하신 것이 여기서 증거가 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대로 학습계율을 전부 믿음으로 받아지녀 목숨도 고려하지 않고 잘 성취해야 한다.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어치 새가 알을 보호하고 야크가 꼬리를 보호하듯
사랑하는 자식이나 하나뿐인 눈을 보호하듯
그와 같이 계를 잘 보호하는 신중한 자는
항상 계를 존중해야 한다.”
다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내가 제자들을 위해 학습계율을 제정할 때 나의 제자들은 목숨을 버릴지언정 그것을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A. iv. 201)”
99. 숲에서 도적들에게 묶였던 장로의 일화를 여기서 알아야 한다.
마하왓따니(Mahāvattani)숲에서 도적들이 장로를 검은 생 넝쿨로 묶은 뒤 누워있게 했다.
장로는 누운 채 칠일 동안 위빳사나를 증장하여 불환과를 증득한 뒤 그곳에서 입적하여 범천의 세계에 태어났다.
땀바빤니(Tambapaṇṇi) 섬에서는 [도둑들이] 다른 장로를 생 넝쿨로 묶은 뒤 누워있게 했다.
산불이 일어났을 때 넝쿨을 끊지 않고 오직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번뇌를 끊고 아라한이 됨과 동시에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samasīsi).
『장부』를 암송하던 아바야(Abhaya)장로가 오백 명의 비구들과 함께 지나가다가 그것을 보고 장로의 시신을 화장하여 탑을 만들게 했다.
그러므로 다른 신심있는 선남자도,
계목을 청정하게 유지하면서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세상의 주인이 제정하신 계의 단속을 피하지 말지어다.
1.5.2. 감각기능의 단속은 마음챙김으로 성취해야 한다
100.
② 계목의 단속을 믿음으로 성취하듯이, 감각기능의 단속은 마음챙김으로 성취해야 한다. 감각기능의 단속은 마음챙김으로 성취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마음챙김에 의해 감각기능들이 확고히 머물 때 탐욕 등의 침입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차라리 시뻘겋게 불타는 쇠막대기로 눈의 감가기능(眼根)을 파괴할지언정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형상들에서 표상(nimitta)을 취하지 말라(S. iv. 168)”라는 방법으로 설하신 불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형상 등의 대상에서 마음챙김을 놓아버리지 않고 표상 등을 취하는 것을 방어하여 이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성취해야 한다.
표상 등을 취하는 것은 형상 등을 대상으로 눈 등의 문에서 일어난 알음알이에게 탐욕 등이 침입하게 한다.
101. 이와 같이 감각기능의 단속을 성취하지 못하면 계목의 단속에 관한 계는 지탱되지도 오래 존속하지도 않는다.
나뭇가지로 울타리를 치지 않은 농작물처럼. 이것은 오염원이라는 도둑들에 의해 침입을 받는다.
마치 대문이 열려있는 마을이 도둑들의 침입을 받듯이. 탐욕이 그의 마음에 스며든다.
마치 지붕을 잘 이지 않은 집에 비가 새듯이. 이와 같이 설하셨다.
“형상과 소리와 맛과 냄새와
감촉에 대해 감각기능(根)을 보호하라.
이 문들이 열려있고 보호되지 않을 때
도둑들이 마음을 침범하듯 침입한다.”
“마치 지붕을 잘못 이은 집에 비가 새듯
닦지않은 마음에 탐욕이 침입한다. (Dhp. 13)”
102. 그러나 감각기능의 단속을 성취할 때 계목의 단속에 관한 계도 지탱되고 오래간다.
나뭇가지로 울타리를 잘 친 농작물처럼. 이것은 오염원이라는 도둑들에 의해 침입을 받지 않는다.
마치 대문이 잘 닫혀있는 마을이 도둑들의 침입을 받지 않듯이. 탐욕이 그의 마음에 스며들지 않는다.
마치 지붕을 잘 이은 집에 비가 새지 않듯이,
이와 같이 설하셨다.
“형상과 소리와 맛과 냄새와
감촉에 대해 감각기능을 보호하라.
이 문들이 닫혀있 고잘 보호될 때
도둑들이 마을을 침범하지 못하듯 침입하지 못한다.
“마치 지붕을 잘 이은 집에 비가 새지 않듯
잘 닦은 마음에 탐욕이 침입하지 못한다. (Dhp. 14)”
103. 이것은 지극히 수승한 교법이다. 이 마음이란 것은 신속하게 변한다. 그러므로 부정(不淨)함을 마음에 잡도리하여 이미 일어난 탐욕을 제거하고 감각기능의 단속을 성취해야 한다.
갓 출가한 왕기사(Vaṅgīsa) 장로처럼. 장로는 갓 출가하여 탁발을 가다가 한 여인을 보고서는 탐욕이 일어났다.
그래서 아난다(Ānanda,아난) 장로께 말씀드렸다.
“저는 감각적 욕망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그 불은 제마음을 태웁니다.
고따마시여, 연민히 여기사
그것을 소멸하는 법을 설해 주십시오. (S. i. 188)”
아난다 장로는 설했다.
“인식의 전도가 당신의 마음을 태웁니다.
아름답다는 표상(淨相)을 버리십시오.
그것은 탐욕으로 인도 할 뿐입니다.
부정(不淨)함의 수행으로 마음을 닦고
[마음이] 하나 되어 잘 삼매에 들도록 하십시오.
상카라(行)들을 타인이라고
괴로움(苦)이라고, 무아라고 보십시오.
큰 애욕을 끄십시오.
거듭거듭 불타지 않도록 하십시오(S. i. 188)”
왕기사 장로는 애욕을 털어버리고 탁발을 다녔다.
104. 나이가 감각기능의 단속을 성취한 비구는 꾸란다까(Kuraṇ-ḍaka)의 큰 동굴에 머물던 찟따굿따(Cittgutta) 장로처럼, 쪼띾(Coraka)의 큰 절에 머물던 마하밋따(Mahā-Mitta) 장로처럼 해야 한다.
105. 꾸린다까의 큰 동굴에 일곱 분의 부처님의 출가에 관한 아름다운 벽화가 있었다고 한다.
많은 비구들이 거처를 둘러보면서 순례하다가 그림을 보고,
‘존자시여, 아주 멋진 그림입니다’라고 말했다.
장로가 대답했다.
‘60년을 넘게 이 동굴에서 살았지만 그림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눈을 가진 자들에 의해 알게 되었습니다.’
장로는 그만큼 그곳에서 오래 살았지만 일찍이 눈을 떠서 동굴을 위로 올려다본 적이 없었다.
동굴의 입구에 한 그루의 큰 나가 나무가 있었다. 장로는 그것도 일찍이 올려다본 적이 없었다.
장로는 해마다 땅에 떨어진 꽃술을 보고 나무에 꼿이 핀 것을 알았다.
106. 왕이 장로의 덕을 듣고 경의를 표하기를 원하여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어도 장로는 가지 않았다.
그러자 왕은 그 마을에 있는 어린 아이를 가진 여인들의 가슴을 묶은 뒤 봉인하게 하여,
‘장로께서 오시지 않는 한 어린 아이들은 젖을 먹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장로는 어린 아이들에 대한 연민으로 마하가마(Mahāgāma)에 갔다.
왕은 그[소식을] 듣고
‘가서 장로를 들어오시게 하라. 나는 계를 수지하리라.’
왕은 장로를 궐 안으로 모신 뒤 예배를 하고 공양을 올렸다.
‘존자시여, 오늘은 시간이 없습니다. 내일 계를 받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면서 장로의 발우를 받아들었다.
조금 배웅을 하고는 왕비와 함께 절을 올린 뒤 돌아갔다.
왕이 절을 올리든지 왕비가 올리든지 간에 장로는
‘대왕이여, 행복하소서’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칠일이 지나갔다.
107. 비구들이 말했다.
‘존자시여, 왜 존자께선 왕이 절을 올리거나 왕비가 절을 올리거나 간에 한결같이 ‘대왕이시여, 행복하소서’라고 말씀하십니까?’
장로는 ‘여보시게들, 나는 왕인지 왕비인지 분별이 없다네’라고 대답했다.
7일이 지난 뒤 왕은
‘장로께서 여기 머무시는 것이 고통이로구나’라고 알고서는 장로를 되돌아가시게 했다.
장로는 까룬다까의 큰 절 동굴에 돌아가서 밤에 경행대에 올랐다. 나가 나무에 살던 목신이 횃불을 들고 서있었다. 그때 그의 명상주제가 아주 청정했고 분명했다.
장로는 ‘참으로 오늘 내 명상주제가 아주 선명하다’고 기뻐했고,
이경이 지났을 때 온 산을 진동시키면서 아라한이 되었다.
108. 그러므로 자신의 이로움을 구하는 다른 선남자도,
작은 숲속의 원숭이 처럼
밀림의 길들지 않은 사슴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어린 아기처럼
눈을 두리번 거리지 말지어다.
두눈을 내리 뜨고, 멍에의 길이만큼
시선을 두는 자가 될지어다.
두리번 거리는 숲속의 원숭이 같은
마음의 노예가 되지 말지어다.
109. 마하밋따(Mahā-Mitta) 장로의 어머니는 악성 종양으로 병이 들었다.
그녀의 딸도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어머니는 그 딸에게 말했다.
‘스님, 오라버니한테 가서 나의 아픈 상태를 말씀드리고 약을 좀 얻어오세요.’
그녀는 가서 말씀드렸다.
장로는 대답했다.
‘나는 어떠한 약 뿌리 등을 모아 어떻게 약을 제조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네게 약을 말해주겠다. 내가 출가한 이후 아직 탐욕과 함께한 마음으로 이성의 형상을 보아 감각기능들의 [단속에 관한 계를] 깨뜨린 적이 없다.
이 진실한 말로 나의 어머니가 쾌차하시길! 가서 이렇게 말씀드리고 청신녀인 어머니의 몸을 만져드려라.’
그녀는 가서 이 소식을 전하고 그와 같이 했다. 그 순간에 청신녀의 종양이 포말 처럼 줄어 들면서 사라 졌다.
그녀는 일어나서
‘만약 부처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어찌 내 아들과 같은 비구의 머리에 그물의 장식을 가진 당신의 손으로 쓰다 듬어 주시지 않았겠는가!’라고 기쁨의 말을 외쳤다.
110. 그러므로,
밋따 장로처럼 다른 선남자들도 교단에 출가하여서는
귀중한 감각기능의 단속에 머물러야 한다.
1.5.3. 생계의 청정은 정진으로 성취해야 한다
111.
③ 감각기능의 단속을 마음챙김으로 성취하듯이, 정진(Vviroya)으로 생계의 청정을 성취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르게 정진하는 자가 삿된 생계를 버릴 수 있기 대문에 이것은 참으로 정진으로 성취된다.
그러므로 부적당하고 삿된 구함을 버리고 정진으로 탁발을 행함 등을 통해서 바른 구함으로 이것을 성취해야 한다.
청정한 필수품만을 수용하여 청정하지 못한 필수품은 독사처럼 피해야 한다.
112. 두타행을 받아지니지 않은 자의 경우 승가로부터, 비구들의 모임으로부터, 설법 등의 덕에 확신을 가진 신도들로부터 얻은 필수품은 청정한 것이다.
탁발을 행하는 것 등을 통해서 얻은 것은 아주 청정한 것이다.
두타행을 받아지닌 자의 경우 탁발을 행하는 것 등으로부터 그리고 자기의 두타의 덕에 확신을 가진 신도들로부터 두타행의 규칙에 맞게 얻은 필수품은 청정한 것이다.
만약 어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썩은 오배자와 네 가지 단 것을 얻었을 때 네 가지 단 것은 다른 동료 수행자들이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썩은 오배자의 조각만 수용할 때 그것은 두타행을 받아지닌 자에게 어울리는 것이다.
그는 실로 성인들의 계보에 든 최상의 비구라고 불린다.
113. 옷 등 다른 필수품에 대해서 그의 생계를 청정하게 하는 비구는 옷과 탁발음식에 대해 암시, 표시, 넌지시 말함, 귀뜀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거처에 관해서는 두타행을 받아지니지 않은 자의 경우 암시, 표시, 넌지시 말함이 허용된다.
114. 이 가운데서 암시란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땅 등을 준비할 때,
‘존자시여, 무엇을 합니까? 누가 시주자입니까?’라고 재가자들이 물을 때,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혹은 이와 같은 다른 암시를 주는 것이다.
표시란,
‘청신사들이여, 당신들은 어디서 삽니까?’
‘존자시여, 저택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때,
‘청신사들이여, 비구들은 저택에 살아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혹은 이와 같은 다른 표시를 주는 것이다.
넌지시 말함이란,
‘비구승가의 거처가 좁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혹은 이와 같은 다른 것을 넌지시 말함이다.
115. 약품에 관해서는 [암시 등] 모든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이와 같이 얻은 약품을 병이 나은 후에도 사용할 수 있는가 아니면 사용해서는 안되는가?
여기서 율사(律師, Vinayadhra, 율을 호지하는 자)들은 세존께서 허락하셨기 대문에 사용해도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사(經師, Suttantika, 경을 수지하는 자)들은 비록 죄를 범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계가 청정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그것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116. 비록 세존께서 허락하셨지만 암시, 표시, 넌지시 말함, 귀띔을 하지도 않고, 소욕 등의 덕을 의지하여 목숨이 무너짐에 처하더라도 표시 등을 통해서 얻은 것을 제외한 그 이외의 필수품을 수용할 대 그는 [번뇌를] 말살하는 최고의 삶을 산다고 한다.
117. 예를 들면 사리뿟따(Sāriputta, 사리불) 장로와 같다.
어느 때 그는 한거를 연마하면서 마하목갈라나(Mahā-Moggallāna, 대목련) 장로와 KARP djEjs 숲 속에서 지냈다.
사리뿟따 존자는 어느 날 복통이 생겨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마하목갈라나 장로가 해거름에 사리뿟따 장로에게 문안을 갔다.
장로가 누워있는 것을 보고 무슨 이유인지를 물었다.
‘도반이여 그 전에는 무엇으로 병을 다스렸습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제가 출가하기 전 마을에 있을 때 저의 어머님이 버터기름과 꿀과 설탕 등을 섞어 순수한 우유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치유가 되었습니다.’
‘도반이여, 알겠습니다. 만약 저나 장로에게 덕이 있다면 적어도 내일까진 구할 것입니다.’
118. 경행대 끝에 있는 나무에 사는 목신이 이들의 대화를 듣고서는,
‘내일 아침에 장로를 위해 죽을 얻게 하리라’고 생각했다.
목신은 장로를 공양하던 단월의 집에 가서 맏아들의 몸속에 들어가서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때 목신은 아들의 치료를 위해 모여든 친척들에게 말했다.
‘만약 내일 아침에 장로를 위해 이러이러한 죽을 준비한다면 아들을 놓아주겠소.’
그들은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정기적으로 장로님께 공양을 올립니다.’라고 말한 뒤,
그 다음날 그와 같은 형태의 죽을 준비했다.
119. 아침에 마하목갈라나 장로가 와서,
‘도반이여, 탁발해서 돌아올 때까지 여기 계십시오’라고 말한 뒤 마을에 들어갔다.
그 신도들은 마중을 가서 장로의 발우를 받아들고 약속한 종류의 죽을 담아드렸다. 마하목갈라나 장로는 [죽을 얻었으므로] 떠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존자시여, 드십시오. 더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는,
장로가 다 드셨을 때 다시 발우 가득 죽을 드렸다.
장로는 돌아서,
‘도반 사리뿟따여, 드십시오’라고 가까이 가져갔다.
장로는 그것을 모고,
‘아주 맛있게 생긴 죽이구나. 어디서 구했을까’라고 생각했다.
장로는 그것을 얻은 동기를 보고서 말했다.
‘도반 목건련이여, 이 음식은 수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20. 마하목갈라나 장로도
‘나 같은 사람이 탁발해온 음식을 먹지 않다니’라는 생각 없이,
그 한 마디에 발우의 가장자리를 잡고 한 쪽에 쏟아버렸다.
죽을 땅에 버림과 동시에 사리뿟따 장로의 병도 사라졌다.
그때부터 45년 동안 다시 발병하지 않았다.
121. 그때 그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말했다.
’도반이여, 비록 창자가 밖으로 나와 [음식을 찾아] 땅을 돌아다니더라도 말의 암시로 인해 생긴 죽을 먹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후 이 감흥어를 읊었다.
“만약 내가 입의 암시로 인해 생긴 꿀과 죽을
먹었다면 나의 생계는 비난 받았을 것이다
비록 나의 창자가 밖으로 나와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목숨을 버릴지언정 생계를 얼룩지게 하지는 않으리
-Miln. 370.
“나는 내 마음을 제어 할 것이고, 삿된 구함을 삼가하여
부처님께서 비난하신 삿된 구함을 결코 행하지 않으리.”§
122. 찌라굼바(Ciragumba)에 머물던 망고를 먹고사는 마하띳사(Mahā-Tissa)장로의 일화를 여기서 이야기해야 한다(§133)이와 같이 모든 경우에,
믿음으로 출가한 지혜 있는 수행자는
삿되게 구하려는 마음조차 내지 말고
생계를 청정하게 해야 한다.
1.5.4. 필수품에 관한 계는 통찰지로 성취해야 한다
123.
④ 정진으로 생계의 청정을 성취하듯이, 통찰지로 필수품에 관한 계를 성취해야 한다.
왜냐하면 통찰지를 가진 자가 필수품에 대해 위험(ādīnava)과 이익(ānisaṁsa)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참으로 통찰지로 성취된다.
그러므로 필수품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법답게 바르게 구한 필수품에 대해 앞서 설한 방법대로 통찰지로 ① 반조한 뒤에 수용하여 그것을 성취해야 한다.
124. 여기서 반조는 두 가지이니 필수품을 얻을 때와 그것을 수용할 때이다.
얻을 때에 놓여진 옷 등을 요소(界, dbātu)라고 혹은 혐오스런 것이라고 반조한 뒤 그 다음에 그것을 수용하는 자의 수용은 허물이 없다.
수용할 때에도 그와 같은 반조하는 자에게는 허물이 없다.
[네 가지 수용]
125. 여기서 이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판결이다.
네 가지 수용(paribhoga)이 있다.
① 훔친 것의 수용(theyya-paribhoga)
② 빚낸 것의 수용(iṇa-paribhoga)
③ 상속자의 수용(dāyajja-paribhoga)
④ 주인의 수용(sāmi-paribhoga)이다.
(1) 계행이 나쁜 자가 승가 가운데 버젓이 앉아서 [필수품을] 수용할 때 그 수용을 훔친 것의 수용이라 한다.
(2) 계를 지니는 자가 반조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을 빚낸 것의 수용이라 한다.
그러므로 옷은 수용할 수 없는 자는 음식을 먹기 전에, 먹고 난 후, 초경에, 중경에, 후경에 반조해야 한다.
만약 그가 반조하지 않은 채 날이 새면 빚낸 것을 수용하는 자의 위치에 놓인다.
숙소는 수용할 때마다 반조해야 한다. 약품을 얻을 때와 수용할 때에도 마음챙김을 가져야 한다.
비록 이와 같더라도 얻을 때에는 마음챙기고 수용할 때에 마음을 챙기지 않는 자의 경우 범한 것(āpatti)이 된다.
그러나 얻을 때에 마음을 챙기지 않더라도 수용할 때에 마음을 챙기는 자의 경우 범한 것이 아니다.
[네 가지 청정]
126. 네 가지 청정이 있으니
① 참회를 통한 청정
② 단속에 의한 청정
③ 구함에 의한 청정
④ 반조에 의한 청정이다.
이 가운데서 계목의 단속에 관한 계는 참회를 통한 청정이라 불린다. 왜냐하면 그것은 참회를 통해 청정해지기 때문에 참회를 통한 청정이라 한다.
감각기관의 단속에 관한계는 단속에 의한 청정이라 불린다.
그것은 ‘다시는 이와 같이 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속의 결의를 통한단속으로 청정해지기 때문에 단속에 의한 청정이라 한다.
생계의 청정에 관한계는구함에 의한 청정이라 불린다. 왜냐하면 삿된 구함을 버리고 법답고 바르게 필수품을 얻는자에게 구함이 청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구함에 의한 청정이라 한다.
필수품에 관한 계는 반조에 의한 청정이라 불린다. 왜냐하면 그것은 앞서 설한대로 반조를 통해 청정해지기 때문에 반조에 의한청정이라 한다.
그래서 ‘얻을때에 마음을 챙기지 않더라도 수용 할때에 마음을 챙기는 자의 경우 죄를 범함이 아니다. (§125)’라고 설하셨다.
127.
(3) 일곱 종류의 유학(有學, sekkha)들이 필수품을 수용하는 것을 상속자로서의 수용이라 한다. 그들은 세존의 아들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가 가진 필수품들의 상속자가 되어 그 필수품들을 수용한다.
그들은 세존의 필수품들을 수용하는 것인가?
아니면 재가자들의 필수품을 수용하는 것인가?
비록 재가자들이 주었지만 세존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세존의 소유물이다.
그러므로 세존의 필수품들을 수용한다고 알아야 한다.
「법상속자경」(法嗣輕, Dhamma-dāyāda Sutta. M3)이 여기서 그 증거가 된다.
(4) 번뇌 다한 자(khīṇāsava)들이 수용하는 것을 주인의 수용이라 한다. 그들은 갈애의 예속을 벗어났기 때문에 주인이 되어 이것들을 수용한다.
128. 이러한 수용 가운데서 주인의 수용과 상속자의 수용은 모두에게 적합하다.
빚낸 것의 수용은 적합하지 않다. 훔친 것의 수용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게를 지닌 자가 반조한 뒤 수용하는 것은 빚낸 것의 수용과 반대되기 때문에 빚내지 않은 수용이라 한다.
혹은 이것은 상속자의 수용에 포함된다. 왜냐하면 계를 지닌 자는 [계의] 학습을 갖추기 때문에 유학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129. 이런 수용 가운데서 주인의 수용이 최상이기 때문에 이것을 바라는 비구는 앞서 설한 반조하는 방법대로 반조한 뒤 수용하여 필수품에 관한 계를 성취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할 때 해야 할 바를 다 한 것이다.
다시 이와 같이 설하셨다.
“최상의 통찰지를 가진 제자는
선서께서 설하신 법을 듣고
탁발한 음식과 승원과 침상과 좌구와
가사를 빨기 위해 길어온 물을
헤아려 본 뒤 사용해야 한다(Sn. 391)”
“그러므로 탁발한 음식과 침상과 좌구와
가사를 빨기 위해 길어온 물
이것에 대해 비구는 갈애를 일으키지 않는다.
마치 연잎의 물방울 처럼. (Sn. 392)”
“남의 도음으로 적당한 때에 얻었나니
딱딱하고 부드러운 음식과 맛에 대해
그는 항상 마음챙기고 적당량을 알아야 한다
마치 상처에 연고를 바를때 처럼.”
“사막을건너기위해아들의고기를먹는것처럼
차축에 기름을 칠하는 것처럼
갈애를 일으키지 않고
단지 생명 을유지하기 위해 먹어야 한다.”
130. 이 필수품에 관한 계의 성취와 관련하여 [상카라키따 장로의] 조카인 상카락키따(Saṅgharakkhita) 사미의 일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는 바르게 반조한 뒤 수용하였다.
이처럼 설하였다.
“차가운 쌀밥을 먹고 있을때
은사스님께서 말슴하셨다.
사미여, 반조함이없이
너의 혀를데게 하지 말라.
은사스님의 말씀을 듣고 절박함이 일어 났으니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런 나는 사유가 원만함이 보름달과 같았다.
모든번뇌 다 했으니 이제 다시 태어남이란 없다.”
그러므로 괴로움을 종식시키기를 원하는 다른 자도
지혜롭게 반조하면서 필수품을 수용해야 한다.
이와 같이 계목의 단속에 관한 계 등으로 네 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