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활(廣闊)한 대륙의 나라 미국(USA)
Ⅱ. 끝없는 대평원(大平原)의 미국 남부(南部)<3>
10. 그림 같은 도시 샌안토니오(San Antnio)
샌안토니오의 자랑 리버워크 / 미국의 자존심 알라모 요새(집사람과 손녀)
샌안토니오는 영화로도 잘 알려진 「알라모 요새」가 있는 텍사스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로 2010년에는 혼자, 2018년에는 딸 가족과 함께 두 번 다녀왔다. 이곳은 원래 멕시코 땅이었던 까닭인지 건물들이나 도시 모습 전체가 미국이라기보다는 멕시코에 가깝다고 하겠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유명한 리버웍(River Walk)인데 도심 한가운데로 흐르는 강은 도시 지표면보다 5~6m낮아서 계단을 통하여 강변까지 내려가야 한다.
강변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들어차 있고 수많은 아름다운 다리는 물론 카페와 식당들이 강변을 따라 빼곡히 들어차 있으며 큰 빌딩 밑으로 크루즈가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한다.
폭이 5~6m 정도로 꼬불꼬불한 운하는 양쪽으로 산책로도 잘 꾸며져 있고, 작은 관광 크루즈가 쉴 사이 없이 다닌다. 크루즈는 넘쳐나는 관광객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줄 뒤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8달러 50센트를 받는 관광크루즈는 45분 정도 도심 가운데를 흐르는 강(운하)을 도는데 저녁이 되면 운하 양쪽에 들어서 있는 수많은 카페와 노천 음식점들은 오색 불빛을 밝혀 휘황찬란하다.
식당마다 손님들로 넘치는데 4~5명으로 구성된 마리아치(솜브레로를 쓰고 멕시코 전통 복장을 입은 악단)들이 식당을 돌며 기타와 아코디언 반주에 맞추어 경쾌한 멕시코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다음 날은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던 비극의 현장 알라모 요새를 둘러보았다.
18세기 초,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전도소로 지어졌던 알라모(Alamo)는 수도회에서 이 지역의 전도를 포기하고 떠나자 멕시코 정규군이 점령하여 요새로 사용했는데 이곳 주변에 미루나무가 많아 미루나무라는 의미의 알라모(Alamo:스페인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1835년 12월 텍사스 의용군 부대는 멕시코 군대를 몰아내고 알라모를 되찾는데 멕시코군이 다시 쳐들어오자 샘 휴스턴을 비롯한 미국의 텍사스 지도층은 이곳을 포기하고 철수 하지만 의용군들은 철수를 거부하고 끝까지 사수하기로 결정한다.
1836년 2월 23일, 멕시코의 ‘산타안나 장군’이 이끄는 멕시코 정규군 4.000여 명의 대 공세가 시작되자 의용군을 이끌던 ‘제임스 보이 대령’과 ‘윌리엄 트래비스 대령’은 186명의 의용군을 지휘하여 14일간이나 저항하다가 전원이 전사하는데 멕시코군도 1.000~1.600명의 전사자를 냈다고 한다.
이들이 14일간 버티어 준 덕분으로 샘 휴스턴 장군이 이끄는 미국 정규군은 지금의 휴스턴 부근에서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어 결국 멕시코군을 격파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이 전쟁 결과로 멕시코 땅이었던 텍사스주, 뉴멕시코주와 애리조나주 일부의 엄청난 땅이 미국 영토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알라모는 텍사스 인들의 자랑이자 영웅적 저항의 상징이 되었으며 전사자들 전원이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이것이 멕시코전쟁 중 알라모 전투로 후일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매월 첫 토요일은 알라모 전투를 기념하여 각종 전시회가 열리고 의용군 복장을 한 자원봉사자들이 당시 사용하였던 각종 무기와 복장을 갖추고 행진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내가 갔던 날이 마침 2월 첫 토요일이라 운 좋게도 관광객들과 함께 이 행사를 볼 수 있었다.
알라모요새 안은 가운데 메인 홀은 성당이고 둘레는 작은 방들이 있는데 당시 전투에서 어린아이와 여자들 15명 만이 살아남았다는 조그만 방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밖에 수많은 당시의 유물들을 전시한 몇 개의 방과 꽤 넓은 안마당, 총탄 자국이 선명한 외벽 등도 잘 보존되어 있다. 알라모 요새 앞의 거리는 관광객들로 넘치고, 길거리는 예쁘게 치장한 꽃마차 여러 대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있었고 수많은 기념품 가게들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또 이 근처 자그마한 공원에는 한국전쟁과 월남전 참전기념 조형물이 있었다.
한국전 참전기념 조형물은 겨울철인 듯 참호 속에 두꺼운 방한복(防寒服)을 입은 미군 두 명이 피로한 표정으로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이어서 가슴이 쓰리다. 그 둘레로는 전사자들의 명단이 빼곡하게 동판에 새겨져 있었는데 한국전쟁에서 미군 5만여 명이 전사하였다고 적혀 있었다.
매주 첫 토요일에 열리는 알라모 페어(Fair) /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
샌안토니오는 이국적인 멕시코풍의 도시 모습으로, 또 미국 자존심의 대명사인 알라모 전투의 현장인 알라모 요새로 미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관광지 중의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샌안토니오(San Antonio) 가톨릭 성지
<샌안토니오(San Antonio)의 자연환경과 역사>
샌안토니오(San Antonio)는 텍사스 남부의 대도시로, 주도(州都)인 오스틴(Austin) 및 휴스턴(Houston), 댈러스(Dallas)와 함께 텍사스 4대 도시 중 하나이다. 이곳은 멕시코 국경과 가깝고 날씨가 온화한데 옛날, 스페인이 통치하던 멕시코의 영향으로 거리나 건물들에서 멕시코풍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은 옛 스페인 정복자들이 가톨릭을 전파하기 위하여 세웠던 전도소(Mission)들이 있는데 미션국립 역사공원으로 지정되어 가톨릭 성지순례지(Mission Trail)로 유명하다.
2010년에는 혼자, 이번(2018년)에는 집사람과 딸 가족이 함께 다녀온 샌안토니오 여행이다.
【가톨릭 성지순례(Mission Trail)】
샌안토니오의 미션국립역사공원(Missions National Historical Park)은 17세기, 스페인이 멕시코를 식민통치할 때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이 지역에 전도소(Mission) 5곳을 세웠는데 그 중, 4곳이 이곳에 모여 있고 북아메리카에 세워진 전도(傳道) 건축물 중 그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전도소들은 콘셉시온(Mission Concepción), 산 호세(Mission San José), 산 후안(Mission San Juan), 에스파다(Mission Espada)로, 1975년 미국 정부에서 이 일대를 국립 유적지로 지정하면서 공원으로 꾸며 1978년 미국 미션국립 역사공원으로 지정하였으며 곧이어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되었다.
또 하나는 샌안토니오 도심의 알라모(Mission San Antonio de Valero: The Alamo)인데 역시 전도소로 지어졌으나 지금은 텍사스 독립의 역사자료를 전시한 박물관으로 쓰인다.
<1> 미션 콘셉시온(Mission Concepcion)
콘셉시온(Concepción/受胎告知) / 고색창연한 성당건물 / 손녀들과 힘께
1716년에 창설된 미션 콘셉시온(Nuestra Señora de la purism Concipción)은 원래 텍사스 동부에 있었으나 1731년 샌안토니오로 옮기면서 이 지역 원주민들을 교화하는데 힘썼다고 한다.
1835년 10월 28일 멕시코 군대와 제임스 보이(James Bowie)대령이 이끄는 텍사스 의용군이 이곳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는데 보이대령은 나중 알라모 전투에서 끝내 전사하고 만다.
<2> 미션 산호세(Mission San Jose)
산호세(San José) / 아름다운 문양의 창문 / 종루(鍾樓)
1720년 프레이 안토니오 마질 헤수스(Fray Antonio Margil Jesús)가 건립하였다는 선교원(宣敎院)으로 텍사스 미션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곳이었다는데 그 규모 면에서 ‘미션의 여왕(Queen of Missions)’으로 불리며, 한때 미션(傳道) 조직과 종교공동체의 모범으로 꼽혔다고 한다. 독특한 교회건축은 물론, 드넓은 목초지(Pastures)가 특징으로 가톨릭 수사, 수녀, 군인들과 원주민들이 자급자족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3> 미션 산후안(Mission San Juan)
산 후안(San Juan) 성당 / 당시의 돌벽 / 하얀 건물(3개의 종)
하얀색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인 이 전도소는 1731년 이곳에 들어섰는데 비옥한 넓은 농장에서 각종 곡식과 야채, 과일과 가축들을 길러서 인근의 주민들에게 공급하였다고 한다.
<4> 미션 에스파다(Mission Espada)
에스파다 성당(Espada) 성당입구 / 세 개의 종 / 경건하고 검소한 제대
1690년 텍사스 동부에 세워졌던 전도소를 1731년 이곳으로 옮겨와 에스파다(San Francisco de la Espada)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는데 건물은 스페인풍이다.
여러 전도소들 중에서 유일하게 벽돌로 지은 것이 특징인 이 전도소는 사람들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옷감 짜기, 대장간, 농기구 고치기, 목공기술, 집짓기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5> 알라모 요새(The Alamo/Mission San Antonio de Valero)
알라모 전투 /전사한 186명 민병대 추모비 / 알라모 대성당 내부
알라모는 샌안토니오데발레로(Mission San Antonio de Valero)라는 이름으로 1718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건립하였으니 샌안토니오 전도소 중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프란치스코회 수도회에서 1793년 전도소의 문을 닫자 멕시코가 기병대가 요새로 사용했는데 부근에 미루나무가 많아 스페인어로 미루나무라는 뜻의 알라모(Alamo)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미국과 멕시코(스페인)의 분쟁의 중심이 되어 서로 뺏고 빼앗으며 요새로 사용되었다.
1835년 제임스 보위 대령이 이끄는 텍사스 민병대 186명은 멕시코의 산타안나(Santa Anna) 장군이 이끄는 멕시코 정규군 4,000명과 용감히 맞서다가 이 알라모 요새에서 민병대 전원이 전사한다.
그러나 이들이 알라모에서 14일간이나 버티어 준 덕분으로 전열을 정비한 미국의 휴스턴(SamHouston) 장군이 반격을 가하여 미국-멕시코전쟁은 결국 미국이 승리하고 그 대가로 멕시코는 텍사스, 애리조나, 뉴멕시코 등의 광대한 영토를 미국에 빼앗기고 만다.
이 알라모 전투는 영화화되어 더욱 유명해졌는데 전사한 186명의 민병대원은 미국의 자존심이자 영원한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샌안토니오 도심 강변에 있는 알라모는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는데 아직도 건물과 담장 벽에는 총탄자국이 남아있고 당시의 전투상황과 유품들이 잘 보존되어있는 전쟁박물관이다.
*여행 팁(Tour Tip)*
알라모 요새 앞 광장에는 성당순례 2층 관광버스가 수시로 출발하는데 이 다섯 개의 성당(전도소들)과 유럽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컬렉션으로 유명한 맥나이 미술관(MacNay Art Museum)을 수시로 순회한다. 또 자전거 순례길(Bike Trail)도 있어 어느 곳에서나 자전거를 빌려 각 성당들을 둘러볼 수도 있는데 거리가 다소 멀고 차도와 겹쳐서 손녀들과 함께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승용차로 돌아보았다.
♣ 샌안토니오(San Antonio)의 숨은 보석 맥나이(McNay) 미술관
샌안토니오의 성당순례를 마치고 딸 가족이 맥나이 미술관을 가자고 한다. 가자는 이유가 미술품 감상이 아니라 맥나이 미술관의 정원이 너무나 아름다워 신혼 웨딩사진 촬영장소로 유명하여 꼭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쩝쩝, 손녀들도 가고싶어하는 눈치기에 썩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덜렁덜렁 따라갔다가 내부 전시물을 둘러보는 순간 놀라 기절할 뻔했다.
맥나이 미술관에서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Louvre)에서나 볼 수 있는 유럽 인상파 대가들의 작품을 여기서 말날 줄이야~~. 너무 놀라고 흥분되어 눈물을 찔끔 흘릴 뻔 했다. 맥나이 미술관과 유명 작품들을 잠시 소개해 본다.
맥나이 미술관(McNay Art Museum)
미국 오하이오(Ohio)주 출신의 맥나이(Marion Koogler McNay,1883~1950) 여사는 몇 번의 결혼에 실패한 후 1926년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 샌안토니오로 오는데 거부였던 다섯 번째 남편 앳킨슨(Donald Atkinson)을 만나 결혼한다. 화가이자 미술학교 교사였던 맥나이 여사는 이듬해 이곳에 중세 스페인 지중해풍의 대저택을 짓고 넓은 정원을 조성하는데 건물의 일부 타일(Tile) 작업과 천정 스텐실(Stencil) 작업을 손수 하였다고 하며 1927년 완공한다.
미술품 수집에 취미가 있던 맥나이 여사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비롯하여 20세기 유럽 거장들의 작품 및 남미 가톨릭 성화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 중세의 작가들,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은 물론 현대 미국 작가의 작품과 고서적까지 수집한다. 그녀는 말년이 되자 자신이 살던 집을 미술관으로 꾸미기로 하고 저택 일부를 개조하여 고서적 도서관, 갤러리, 미술사 관련참고 도서관, 대 전시관과 강당 등을 꾸며 개관하였다. 그녀 사후 프랑스의 저명한 현대 건축가 비귀에(Jean-Paul Viguier: 1946.3.~ )를 초빙하여 현대미술 컬렉션 전시관을 다시 증축하였다고 한다.
♠ 맥나이 미술관(McNay Art Museum) 소장품들
맥나이 미술관의 작품을 일일이 소개는 하지 않고 작가들만 간추려 소개해 보면,
멕시코의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는 스페인 식민통치 때 멕시코 최고의 예술가로, 특히 성당 벽화와 성화로 유명한데 그의 작품과 그 밖에 수많은 남미 성화(聖畵)들을 소장되어 있다.
스페인의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의 미술작품과 조각품(소품)들...
프랑스 작가로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 샤갈(Marc Chagall/1887~1985), 모네(Claude Monet/ 1840~1926), 르노아르(Pierre Auguste Renoir/1841~1919), 고갱(Paul Gauguin/1848~1903), 세잔느(Paul Cézanne/1839~1906), 로댕(Auguste Rodin/1840~1917)...
네덜란드 작가로는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 몬드리안(Piet Mondrian/1872~ 1944)
영국은 앙리무어(Henry Moore/1898~1986)와 스위스의 지아코메티(Alberto Giacometti/1901~1966),
이탈리아의 모딜리아니(Amadeo Modigliani/1884~1920)....
미국의 조라크(William Zorach/1887~1966), 세갈(George Segal/1924~2000), 카드무스(Paul Cadmus/ 1904~1999) 등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 밖에도 스페인 예술 전시관(Arte de España), 미국 현대미술 전시관 등등.... 모두 학교 미술 시간에 들어보았던 이름들인데 이들의 진품을 직접 보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 맥나이 미술관의 미술사적 대가들의 진품 감상합니다!!
피카소 작품들(인물화 1,2,3)/기타와 와인잔(1912)
벌판을 지나는 여인들(고흐)/푸른 눈의 소녀(모딜리아니)/패러트(Parrot)/샤갈
수련 연작 시리즈(모네)/건지섬(르노아르)/깃털장식 모자를 쓴 여인(피카소)
앙리 가스케(세잔느)/세레나데(르노아르)/우상과 함께 있는 화가(고갱)/나르시서스(까드무스)
기대고 있는 모형(무어)/탁자에 앉은 소녀(무어)/로댕의 작품들1,2,3
스페인 무희들/고서적 컬렉션/스페인 투우사 의상(우리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