ⵞ.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설날에 대한 사유
음력 1월 1일이 설날이다. 양력으로는 2월 초순이다. 금 년은 설날이 2월 10일 토요일이다. 나는 어릴 때 설날을 눈 내리는 날(雪날)로 알았다. 고향에 살 때는 설날을 전후하여 대개는 눈이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눈이 내린 설날은 당연한 일이었다. 눈이 내린 설날은 기쁨도 두 배, 세 배는 되었다.
남광우 박사의 [고어 사전]에는 설의 의미가, 해를 뜻하는 ‘살(歲)’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의미가 꽤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설날이면 세배를 다녔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첫날이기에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면 덕담을 해주셨다. 그러니 한 살 두 살 할 때의 ‘살’도 ‘해(年)’를 뜻한디고 보여졌다. 나이 한 살 더 먹으니 조상님과 어른들께 절을 하는 것은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다. 이런 우리의 문화가 전승된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서 지낼 어릴 때는 가장 기쁜 날이 설날이었다. 설날은 마치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모습으로 내 마음속에 머물러 있었다. 이날은 집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세뱃돈은 좀 잘 사는 집 아이들이 받았다. 어릴 때 나는 세뱃돈과 새 양말을 선물 받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설날 전날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세어진다고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였다. 인근에 사는 남녀 아이들 몇이 우리 집에 모여들었다. 깔깔대며 이야기를 하면서 날이 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자정이 넘어가기도 전에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방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곤 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새 양말을 선물로 주셨는데 나는 그 양말을 꼭 끌어안고 잠이 들었던 것이다. 새해 아침에 그 양말을 신고 세배도 하고 아이들과 놀기 위해 뛰어다녔다. 세배가 끝나면 선물로 받은 먹을 것을 가지고 친구의 집에 모여 윷놀이도 하였다.
설날 세배하는 날의 즐거움을 동시조로 쓴 글이 있다. 이 동시조 작품은 한국어 실험용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다.
다음의 작품 <설날>은 1989년 12월 10일, 2-2 한국어 실험용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다.
설 날
남진원
어머니 아버지
오래 오래 사세요
나이 한 살 더 먹고
父母님께 세배하면
오 – 냐 빙그레 웃으시는
우리 우리 父母님
일가 친척 다 모여
웃음이 쏟아진다
모여 개여 저마다
윷놀이 신이 나고
온종일 마음이 들 떠
먹지 않아도 배부른 날
금년도 설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문득 문득 설날이 다가오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쌓인다. 그래서 전에 쓴 시조들을 읽어보곤 한다.
설날 아침
남진원
1. 딸 아이
꽃신 신고 하늘로 간 어여쁜 딸 아이야
아빠는 설이 되어 나이만 또 먹는구나
사진 속 네 모습 보면 외로워도 행복하다
2. 아들
잘 계세요? 물어보던 설 전날 안부 전화
언제나 그랬었지 네가 있어 미더운 맘
바다 빛 굵은 목소리 듬직함의 이 무게
3. 아내
36년 그대와 삶 얼마나 소중했나
눈 감으니 긴 세월도 어제런듯 다가와서
한 편의 동영상으로 진한 속정 전하네
사진을 찍을 때면 내 곁에 다가서서
스스럼없이 팔 끼던 이, 아내밖에 더 있었나
조금은 쑥스러워서 웃을 듯 말 듯 하던 모습
설날 이 저녁에 고요히 앉았으니
아팠던 그날 일들 꿈결인 듯 아득하고
정겹게 지냈던 일만 적막속에 환하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설날이 찾아온다. 올해 설날은 人生七十古來稀 , 70년째 맞는 설날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님들 부모님들 외사촌 동생 남동생들 다 돌아가고 아내와 딸 아이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제 설날은 내게 설렘이 아니다. 참으로 고작한 삶속에 맞는 설날이 될 것이다. 그래도 설이 지나면 눈녹은 들판에선 새 움이 돋고 볕 드는 봄 밭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겠지.
다들 구름이 모였다가 사라지듯 그렇게 떠나간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들을 기억하고 있는 한에서는 나는 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이 설날이 행복하다. 뿐만아니라 생생하고 즐거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나를 보게 될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