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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자량론 제2권
[반야바라밀]
【문】
선나바라밀을 해석하는 것을 대략 설명하여 이미 마쳤다.
이제는 마땅히 다음 차례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설명해야 한다.
【답】
반야바라밀이란 앞에서 해석한 바와 같이 첫 자량으로 삼는다고 이미 설명하였다.
나는 이제 다시 그 모습을 해석하겠다.
먼저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
이 다섯 가지 이외의
저 모든 바라밀은
지도(智度; 반야바라밀)에 포섭되는 바이다.
이밖에 네 가지의 바라밀이 있으니,
선교방편바라밀[巧方便波羅蜜]ㆍ원바라밀(願波羅蜜)ㆍ역바라밀(力波羅蜜)ㆍ지바라밀(智波羅蜜)을 말한다.
이 네 바라밀은 모두 반야바라밀에 포섭된다.
반야바라밀이란, 부처님ㆍ세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일념으로 상응한 지혜이니, 모든 법을 깨달아 요달한 것이 반야바라밀이다.
또 이것은 장애가 없는 모습이니, 몸이 없기 때문이다.
한계가 없는 모습이니, 허공과 동등하기 때문이다.
견줄 바가 없는 모습이니, 모든 법은 얻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멀리 여읜 모습이니, 필경 공하기 때문이다.
항복시킬 수 없는 모습이니,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구절이 없는 모습이니, 이름과 몸이 없기 때문이다.
취합(聚合)이 없는 모습이니, 가고 옴을 여의기 때문이다.
원인이 없는 모습이니, 조작하는 자를 여의기 때문이다.
생함이 없는 모습이니, 생겨남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서 도달함이 없는 모습이니, 유전(流轉)을 여의기 때문이다.
흩어져 파괴됨이 없는 모습이니, 전제와 후제[前後際]를 여의기 때문이다.
오염이 없는 모습이니,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희론(戱論)이 없는 모습이니, 모든 희론을 여의기 때문이다.
요동함이 없는 모습이니, 법계(法界) 자체이기 때문이다.
일어남이 없는 모습이니,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량이 없는 모습이니, 분량을 여의기 때문이다.
의지함이 없는 모습이니, 의지함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러움이 없는 모습이니, 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측량할 수 없는 모습이니,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런 모습이니, 모든 법의 자성을 알기 때문이다.
또 반야바라밀은 문혜(聞慧)의 모습과 바르게 사유하여 들어감[正思入]이다.
저 문혜의 모습에는 여든 가지가 있으니, 낙욕(樂欲) 등을 말한다.
바르게 생각하여 들어가는 것에는 서른두 가지가 있으니, 사마타(奢摩他)에 안주하는 것 등을 말한다.
또 반야바라밀은 열여섯 가지 숙주(宿住) 등의 무명(無明)과 함께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것 등의 반야바라밀의 모습은 헤아림에 따라 이미 설명하였다.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한량이 없다.
[선교방편바라밀]
이 반야바라밀에 포섭되는 방편선교바라밀(方便善巧波羅蜜)에는 여덟 가지의 선교(善巧)가 있다.
이른바 중선교(衆善巧)ㆍ계선교(界善巧)ㆍ입선교(入善巧)ㆍ제선교(諦善巧)ㆍ연생선교(緣生善巧)ㆍ삼세선교(三世善巧)ㆍ제승선교(諸乘善巧)ㆍ제법선교(諸法善巧)이다.
이 선교바라밀은 한계가 있지 않다.
또 다시 어떠한 생취(生趣)와 어떠한 행상(行相)에 따르더라도 보리를 위하기 때문에 스스로 선근을 증장시키고 또 중생을 조복(調伏)시키게 된다.
저 각각의 생취와 각각의 행상 가운데 이 일체의 처소에서 무릇 마땅히 지어야 할 갖가지 방편은 모든 대인(大人)들이 분별하여 말씀한 바이다.
나는 이제 그 경전 중에서 미미한 물방울 정도의 분량을 설명하겠다.
만약 이미 지었거나 지금 짓는 미미하게 적은 선(善)을 능히 많고 많게 하고 능히 한량없게 하는 것, 이것이 방편이다.
스스로 자기를 위하지 않고 오직 중생을 위하는 것, 이것이 방편이다.
오직 다나(陀那)로써 모든 바라밀을 만족시키는 것, 이것이 방편이다.
이와 같이 시라(尸羅)로써 모든 생겨나는 처소[生處]를 포섭하고,
찬제(羼提)로써 몸ㆍ입ㆍ마음을 장엄하여 보리를 삼고,
비리야(毘梨耶)로써 정진에 안주하고,
선나(禪那)로써 선을 퇴보시키지 않고,
반야(般若)로써 무위(無爲)를 버려 여의며,
자(慈)로써 의지하여 보호하는 것으로 삼고,
비(悲)로써 유전(流轉)을 저버리지 않고,
희(喜)로써 능히 기쁘고 즐겁지 않은 일을 인내하며,
사(捨)로써 모든 선(善)을 발기한다.
천안(天眼)으로써 불안(佛眼)을 거두어 지니고,
천이(天耳)로써 불이(佛耳)를 만족시키고,
타심지(他心智)로써 각각의 근기를 알고,
지난 세상의 생각[宿住念]으로써 삼세를 아는 데 장애가 없으며,
자재한 신통[自在通]으로써 여래의 자재한 신통을 얻는다.
중생의 마음에 들어가 모든 행상(行相)을 알고자 하기 때문에 이미 건넜어도[度] 되돌아 들어가고,
오염이 없으면서도 오염되고,
짊어진 것[擔]을 버렸으면서도 다시 짊어지고,
한량이 없으면서도 분량을 내보이고,
가장 수승하면서도 열등함을 나타내며,
방편 때문에 열반에 상응하면서도 유전에 떨어지고,
비록 열반을 행하더라도 필경 적멸하지 않고,
네 가지 마군[四魔]을 현행(現行)하면서도 모든 마군을 넘어선다.
사제의 지혜[四諦智]에 통달해서 급기야 생함이 없음[無生]을 관찰하면서도 정위(正位)에 들어가지 않으며,
비록 요란한 곳을 돌아다녀도 수면[眠]에 따르는 번뇌를 이행하지 않으며,
비록 멀리 여읨을 행하면서도 몸과 마음의 다함에 의지하지 않으며,
비록 삼계를 다녀도 그 세계 속에서 세제(世諦)를 행하지 않는다.
비록 공(空)을 행하여도 모든 때에 항상 불법(佛法)을 추구하고,
비록 무위(無爲)를 행하여도 무위에 대하여 입증하지 않는다.
비록 여섯 가지 신통을 행하면서도 누(漏)를 다하지 않으며,
비록 성문과 독각의 위의를 나타내어도 부처님 법을 좋아하고자 하는 것을 버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것들의 선교방편바라밀 중에서 모든 중생을 교화하는 방편이 있으며,
그러한 방편이 보살이 교화하는 선교방편이 머무는 곳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기에 수로가가 있다.
축생도(畜生道) 중에 모든 고뇌가 있으며
지옥과 아귀의 생애도 또한 그러하니,
유전 속에서 상응하여
중생의 갖가지 모든 과오를 감수한다.
이들의 괴로운 무리는 중생의 처소에서
애처로운 연민이 일어남을 막지 못하니,
모든 부처님은 문득 저 보살의
일체 세간의 걸림 없는 자비를 설한다.
논(論) 중에서 만약 잘 종합한[該綜] 것이 있다면
많은 별다른 사람이 짓는 업이니,
공교(工巧) 등의 지혜 및 그 밖의 일을
모두 애호하는 말로써 그것을 수여한다.
계율ㆍ재물ㆍ견문ㆍ수행ㆍ적정ㆍ조유[調] 등
이러한 공덕으로 타인을 거두어 교화하며
거두고 나서 다시 항상 상속시키는 것을
수승한 선인[勝仙]은 선한 길[善道]에 머문다고 말한다.
혹은 여인의 몸을 나타내 남자를 교화하여
그를 조복시켜 가르침을 받게 하고
혹은 남자의 몸을 나타내 여인을 교화하여
그를 조복시켜 가르침을 받게 하며
혹은 오염된 경계의 즐거움을 싫어하지 않고
그 도가 없음[無道]을 불쌍히 여겨 도(道)에 들게 하며
중생의 부류에 따라 갖가지로 교화하여
지극히 핍박하는 고뇌의 처소도 또한 버리지 않는다.
혹은 자아가 없음[無我]을 믿고 이해하며
또 모든 법이 자성을 여의었음을 알고 있어도
이 사람이 아직 세간법을 여의지 않으면
다만 이와 같이 관찰을 굴리고
업과 과보가 생김을 믿고 따라도
모든 괴로운 일은 한이 없으니
저 괴로운 과보를 받을 때에
온갖 괴로움에 핍박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성문으로 출가하는 자에 대해서는
문득 안온하고 적정한 처소에 두고
혹은 다시 연각도(緣覺道)에 두며
혹은 열 가지 미묘한 힘의 수레[妙力乘]에 두어
그로 하여금 마땅히 정각승(正覺乘)을 얻게 하거나
혹은 적정 및 하늘나라에 태어남을 얻게 하는데,
만약 현재 과보를 보는 것을 관찰해야 한다면
그 지은 바대로 올바르게 안치해야 한다.
이와 같이 처음부터 구경에 이르기까지
장부(丈夫)는 어려운 일을 모두 능히 해내어
그 갖가지 훌륭한 방편에 의하여
일체의 애욕과 애욕하지 않음을 버린다.
이 승(乘)은 모든 부처님께서 찬탄하시는 바로서
백천(百千)의 공덕으로 장엄하여
능히 세간의 지극히 청정한 믿음을 생하게 하니
수승하고 미묘한 선한 길을 말하기 때문이다.
연각승(緣覺乘)과 성문승(聲聞乘)
그리고 하늘 세상의 모든 승(乘) 가운데서는
모두 열 가지 선[十善]으로 성숙시키며
또한 인승(人乘)에서는 사람을 성숙시킨다.
이미 선교방편바라밀을 해설하였다.
[원바라밀]
나는 이제 마땅히 원바라밀(願波羅蜜)을 설명하겠다.
모든 보살에게는 최초의 열 가지 큰 서원이 있다.
이른바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급시하여 남음이 없는 것,
이것이 첫 번째 큰 서원이다.
저 부처님의 처소에서 크게 바른 법을 유지하고, 바른 깨달음을 거두어 지니며, 널리 바른 가르침을 수호하는 것,
이것이 두 번째 큰 서원이다.
모든 세계에서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시니, 처음 도솔궁(兜率宮)에 머무는 것에서부터 퇴전(退轉)하여 태(胎)에 들어가 머물고, 처음으로 탄생하고, 출가하고, 바른 깨달음을 증득하고, 간청 받아 법의 바퀴를 굴리고, 큰 열반에 들기까지 모두 그 처소에 가서 수행(受行)하고 공양함이 처음부터 여의지 않는 것,
이것이 세 번째 큰 서원이다.
모든 보살행이 광대하고 한량이 없어서 모든 바라밀에 포섭된 착하고 청정한 모든 지[諸地]를 여의지 않으며,
총분(摠分)ㆍ별분(別分)ㆍ동상(同相)ㆍ이상(異相)ㆍ공전(共轉)ㆍ불공전(不共轉) 등의 모든 보살행을 출생해서 여실하게 지도(地道)에서 말하는 것처럼,
바라밀을 닦아서 깨우치고 가르쳐 주며, 가르치고 나서 머물러 유지하는, 이와 같은 마음을 발기하고 출생하는 것,
이것이 네 번째의 큰 서원이다.
여분 없는 중생계(衆生界)에서는 유색(有色)ㆍ무색(無色)ㆍ유상(有想)ㆍ무상(無想)의 난생(卵生)ㆍ태생(胎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이 삼계(三界)에 동일하게 들어가고 6취(趣)에 함께 머물면서 온갖 생겨남이 수순하여 가고 명색(名色)에 포섭되니,
이처럼 여분 없는 중생계를 다 성숙시켜 불법에 들어가게 하고 모든 갈래[趣]를 단절하여 일체지의 지혜에 안립시키는 것,
이것이 다섯 번째 큰 서원이다.
여분 없는 모든 세계는 광대하고 한량없어서, 혹은 미세하고 혹은 거칠고 혹은 횡적이고 혹은 거꾸로이고 혹은 평평하게 머무는 등 동일하게 들어가고 함께 기거하면서 수순하여 가는 것이니,
시방의 부분 부분이 마치 제석천의 그물과 같지만 그 부분 부분에 들어가 지혜로써 수순하여 행하는 것,
이것이 여섯 번째 큰 서원이다.
일체의 국토가 곧 하나의 국토이고, 하나의 국토가 곧 일체의 국토로서 평등하고 청정하며,
한량없는 국토를 두루 모두 장엄하여 모든 번뇌를 여의고,
도(道)를 청정하게 하여 한량없는 지혜의 모습을 구족하고,
중생이 충만하여 부처님의 매우 미묘한 경계에 들어가고,
중생의 마음에 따라서 시현해서 그들을 환희하게 하는 것,
이것이 일곱 번째 큰 서원이다.
모든 보살과 더불어 동일한 마음이 되기 위함이며,
함께하지 않는 선근을 모아 들이기 위함이며,
모든 보살과 동일하게 반연하여 항상 보살의 평등을 여의지 않기 위함이며,
자기의 마음을 발기하여 여래의 위신력에 들어가기 위함이며,
퇴전하지 않음을 얻어서 신통을 행하기 위함이며,
모든 세계를 유행하기 위함이며,
모든 대중의 논의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기 위함이며,
자신이 모든 생겨나는 처소에 수순하여 들어가기 위함이며,
부사의한 대승을 구족하기 위함이며,
보살행을 행하기 위함이니,
이것이 여덟 번째 큰 서원이다.
불퇴전에 올라 보살행을 행하려고 하는 것이며,
몸ㆍ입ㆍ마음의 업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며,
보는 때에 즉(卽)해서 부처님 법을 결정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한 음성을 내는 때에 즉해서 지혜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며,
믿는 때에 즉해서 번뇌를 유전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큰 약왕[大藥王]과 같은 몸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며,
모든 보살행을 행하려고 하는 것,
이것이 아홉 번째 큰 서원이다.
모든 세계 속에서 바르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달으려고 하는 것이며,
하나의 모도(毛道) 속과 그 밖의 모든 모도(毛道) 속에서 출생, 도량에 앉음, 법륜을 굴림, 대반열반(大般涅槃)을 현시하려고 하는 것이며,
지혜로써 부처님의 큰 경계의 위신력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며,
일체중생의 세계에서 그 깊은 마음대로 부처님이 마땅히 출현할 때에 깨달음을 열어서 적정(寂靜)을 얻어 시현하려고 하는 것이며,
한 가지 법과 일체의 법이 전부 열반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으려는 것이며,
한 음성을 내어서 모든 중생을 마음으로 환희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하나의 큰 열반을 시현하면서도 실행하는 힘을 단절하지 않으려는 것이며,
큰 지혜의 지위를 현시하여 모든 법을 안립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부처님 경계의 법과 지혜와 신통으로써 모든 세계에 두루 미치려고 하는 것,
이것이 열 번째 큰 서원이다.
이와 같은 열 가지 큰 서원을 크게 욕망하고 크게 출생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으며, 이 열 가지 큰 서원을 만족하고 나서 보살의 아승기 백천여 가지 서원을 건립하면 보살은 환희지(歡喜地)에 머물게 되는데,
이것을 원바라밀(願波羅蜜)이라고 이름한다.
이미 원바라밀을 해설하였다.
[역바라밀]
나는 이제 마땅히 역바라밀(力波羅蜜)을 설명하겠다.
이 중에서 대략 설명하건대, 모든 보살에게는 일곱 가지의 힘이 있다.
이른바 복보생력(福報生力)ㆍ신통력(神通力)ㆍ신력(信力)ㆍ정진력(精進力)ㆍ염력(念力)ㆍ삼마제력(三摩提力)ㆍ반야력(般若力)이다.
[복보생력]
복보생력이란,
열 마리의 작은 코끼리의 힘[小象力]은 한 마리의 용상(龍象)의 힘에 해당하고,
열 마리의 용상의 힘은 한 마리의 향상(香象)의 힘에 해당하고,
열 마리의 향상의 힘은 한 마리의 큰 향상[大香象]의 힘에 해당하고,
열 마리의 큰 향상의 힘은 한 명의 대역사(大力士)의 힘에 해당하고,
열 명의 대역사의 힘은 하나의 반 나라연(那羅延)의 힘에 해당하고,
열의 반 나라연의 힘은 하나의 나라연의 힘에 해당하고,
열의 나라연의 힘은 하나의 대나라연(大那羅延)의 힘에 해당하고,
열의 대나라연의 힘은 백 겁을 초과하는 한 보살의 힘에 해당하고,
백 겁을 초과하는 열 보살의 힘은 백천 겁을 초과하는 한 보살의 힘에 해당하고,
백천 겁을 초과하는 열 보살의 힘은 인(忍)을 얻은 한 보살의 힘에 해당하고,
인을 얻은 열 보살의 힘은 최후의 생애를 갖는 한 보살의 힘에 해당하는데,
이 힘에 안주하고 나서 보살은 곧 태어날 때 능히 일곱 걸음[七步]을 걷는다.
최후의 생애를 갖는 열 보살이 태어날 때의 힘은 바로 보살의 소년 시절의 힘에 해당한다.
보살은 이 힘에 안주하고 나서 보리도량에 나아가 평등하고 올바른 깨달음[等正覺]을 성취한다.
바른 깨달음을 얻고 나서 백천을 뛰어넘는 공덕의 힘으로써 여래ㆍ정변지(正遍知)의 한 가지인 처비처력(處非處力)을 성취한다.
이와 같은 등의 열 가지 힘을 성취하는 것을 모든 부처님과 보살 및 그 밖의 일부 중생의 복의 과보로 생기는 힘[福報生力]이라고 한다.
[신통력]
신통력이란 네 가지 신족(神足)을 잘 수행하여 많이 짓는 것인데, 이 희유한 신통력 때문에 모든 중생들을 조복하게 된다.
저 희유한 신통력은 혹은 색을, 혹은 힘을, 혹은 머물러 지님 등을 나타낸다.
만약 응당 이 색상(色像)으로 조복할 수 있는 중생들이라면, 곧 이 색상으로 저 각각의 중생 처소에서 부처님 색상이나 독각의 색상이나 성문의 색상, 혹은 제석천과 범천, 호세(護世), 전륜성왕의 색상, 혹은 다시 모든 그 밖의 색상 나아가 축생의 색상까지 시현하나니, 이는 중생을 조복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색상을 시현하는 것이다.
만약 세력이 크고, 교만하고, 진노하고, 흉악하고, 스스로 고귀한 척하는 중생을 마땅히 이 힘으로 조복시킬 수 있다면, 혹은 대역사(大力士)의 힘, 사분(四分)의 나라연의 힘, 혹은 반 나라연의 힘, 혹은 한 나라연의 힘을 나타낸다.
이러한 힘 때문에 수미산왕(須彌山王)의 높이가 16만 8천 유사나(踰闍那)에 이른다 해도 세 손가락으로 들어서 마치 암마륵과(菴摩勒果)를 들어 올려 다른 방향의 세계에 던져 놓는 것처럼 해도 사천왕천(四天王天) 및 삼십삼천(天) 등이 어지러이 번민하는 일이 없으니, 보살의 힘도 마찬가지로 감소하지 않는다.
또 이 삼천대천세계가 비록 넓고 광대하여도 수계(水界)부터 유정(有頂)까지 그것을 손바닥에 안치하여 겁을 지나도록 머무니, 모든 신통한 도에서는 이와 같은 힘을 구족하여 시현한다.
만약 교만하고 증상만(增上慢)이 있고 진노하고 흉악하고 스스로 고귀한 척하는 중생이 있으면 법을 설하여 조복해서 교만하고 증상만이 있고 진노하고 흉악한 것 등을 여의게 한다.
그가 이와 같이 신족에 주지하는 지혜[神足住持智]를 얻고 나서 이 주지하는 지혜[住持智]로 주지하는 모든 것은 뜻대로 모두 획득한다.
큰 바다를 소 발자국[牛迹]에 담고자 하면 곧 소 발자국으로 되고, 소 발자국의 물을 큰 바다로 만들고자 하면 곧 큰 바다로 된다.
만약 겁소(劫燒)를 물 덩어리[水聚]로 만들고자 하면 곧 물 덩어리로 되며, 물 덩어리를 불덩어리[火聚]로 만들고자 하면 곧 불덩어리로 된다.
불덩어리를 바람덩어리[風聚]로 만들고자 하면 곧 바람덩어리로 되며, 만약 바람덩어리를 불덩어리로 만들고자 하면 곧 불덩어리로 된다.
이와 같이 이 주지(住持)로써 주지한 바의 하ㆍ중ㆍ상의 법을 따라 이미 주지하고 나면, 어떤 사람도 능히 진동하거나 은밀히 사그라지게 하지 못한다.
이른바 제석천이나 범천이나 악마 및 그 밖의 세간의 동등한 법이지만 부처님ㆍ세존은 제외한다.
중생의 부류 중에서는 보살이 주지하는 법을 진동시키거나 은밀하게 사그라지게 하는 어떠한 중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지하는 힘[住持力] 때문에 저 갖가지 수승하게 기뻐 날뛰고 존경하는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 것이다.
저 신족력(神足力)은 우뚝 높고 자재해서 악마의 번뇌를 통과하여 부처님 경계에 들어가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며, 지난 세상의 선근(善根)의 자량을 결집하였으므로 악마와 악마의 몸을 한 하늘 등도 장애할 수 없다.
이것을 보살의 신통력이라고 한다.
[신력(信力)]
신력(信力)이란 부처님ㆍ법ㆍ승가 및 보살의 행 속에서 믿고 이해함이 한결같아서 저지하거나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악마가 부처님 몸으로 변하여 찾아와서 어떠한 법에 따라 그 믿음을 파괴하려고 하여도 보살의 믿고 이해하는 힘 때문에 그는 보살의 믿는 힘을 흔들 수 없다.
이것을 신력이라고 한다.
[정진력(精進力)]
정진력(精進力)이란 보살이 정진을 발기하여 저 각각의 선한 법과 상응할 때 저 각각의 처소에서 견고한 힘을 얻는 것이다.
받아들여 행하는[受行] 바에 따라 하늘이나 인간이 흔들어 파괴해서 중지시킬 수 없으니,
이것을 정진력이라고 한다.
[염력(念力)]
염력(念力)이란 저 각각의 법의 처소에 머물면서 그 마음이 안온함이니, 저 밖의 모든 번뇌가 능히 산란시키지 못한다.
염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모든 번뇌를 파괴하니, 저 모든 번뇌도 보살이 염(念)하는 바를 파괴시키지 못한다.
이것을 염력이라고 한다.
[삼마제력(三摩提力)]
삼마제력(三摩提力)이란 요란함 속에서 멀리 여의는 수행[遠離行]을 행하는 것이니, 모든 음성 및 말에서 나오는 것이 소리의 자극으로 초선(初禪)을 장애하지 못한다.
각관(覺觀)을 잘 행하면 2선(禪)을 장애하지 않으며,
애호하여 기뻐함을 낳으면 3선(禪)을 장애하지 않는다.
중생을 성숙시키고 모든 법을 거두어들여서 버리거나 폐한 적이 없으면 4선(禪)을 장애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선(禪)에 유희할 때 모든 선을 나쁘게 상대하여도 파괴시키지 못하며, 비록 모든 선에 유희하지만 선을 따라 생겨나지는 않으니,
이것을 보살의 삼마제력이라고 한다.
[반야력(般若力)]
반야력(般若力)이란 세간이나 출세간의 법 중에서 파괴되지 않는 지혜로서 세세생생 속에 스승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는 것이다.
지은 바 모든 업의 공교(工巧)한 밝음의 처소에서부터 나아가 가장 수승하여 짓기 어렵고 인내하기 어려운 것에 이르기까지 보살은 모두 현전(現前)할 수 있다.
만약 출세간의 법으로 세상을 구제하려고 보살의 지혜가 수순하여 들어가고 나면, 저 하늘ㆍ인간ㆍ아수라의 무리도 파괴시키지 못한다.
이것을 반야력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보살의 일곱 가지 힘을 대략 해설하였다. 그러나 자세하게 연설하고자 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보살의 역바라밀(力波羅蜜)이라고 이름한다.
이미 역바라밀을 해설하였다.
[지바라밀(智波羅蜜)]
나는 이제 마땅히 지바라밀(智波羅蜜)을 설명하겠다.
이 중에서 혹은 세간에서 행해지는 서(書)ㆍ논(論)ㆍ인(印)ㆍ산수(算數) 등과 계론(界論)[중풍(風)ㆍ황달(黃)ㆍ가래끓음(痰)ㆍ가슴앓이[*] 등의 성질을 말한다.], 방론(方論)[의방론(醫方論)을 말한다.]으로 여러 마른 갈증ㆍ전도되어 미침ㆍ귀신들림 등의 병을 치료하고 온갖 벌레들의 독을 파괴한다.
또 유희하며 농담하는 데에 해당하는 문장과 이야기나 익살 등을 지어서 환희하게 하며,
촌락의 성[村城]ㆍ동산[園苑]ㆍ언덕과 호수ㆍ연못과 우물[池井]ㆍ꽃과 열매[華果]ㆍ약물(藥物) 및 총림[林叢] 등을 생겨나게 하고,
금은(金銀)ㆍ마니(摩尼)ㆍ유리(琉璃)ㆍ패옥(貝玉)[흰 돌(石白)로 조개와 같다.]ㆍ산호(珊瑚) 등 보배의 성품을 나타낸다.
해와 달의 부식(薄蝕)ㆍ성수(星宿)ㆍ대지의 진동ㆍ괴이한 꿈[夢怪] 등의 일에 들어가며,
모든 신체 부분의 사지와 관절[支節] 등의 모습을 건립한다.
금지된 계율의 소행처[行處]와 선나ㆍ신통이 한량없는 무색처(無色處) 및 그 밖의 바른 깨달음과 상응하는 중생들을 이롭고 즐겁게 하는 피안을 안다.
또다시 모든 세계가 성립되고 파괴되는 것을 안다.
세계가 성립되는데 따라서, 또 세계가 파괴되는데 따라서 모두 다 안다.
또 업(業)이 쌓이므로 세계가 성립되고 업이 소진되므로 세계가 파괴되는 것을 안다.
세계가 약간의 시기 동안 성립되어 유지되는 것을 알고, 세계가 약간의 시기 동안 파괴되어 유지되는 것을 안다.
모든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풍계(風界)ㆍ화계(火界)의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고 한량없기도 하는 등의 차별을 안다.
지극히 미세한 티끌[微塵]을 알고, 또한 모든 미진의 모임과 미진의 흩어짐을 안다.
세계 중에 모든 지계의 미진의 수효를 알고, 이와 같이 또한 수계[水]ㆍ화계[火]ㆍ풍계[風] 등의 미진의 수효를 안다.
모든 중생신(衆生身)에 있는 미진의 수효와 국토신(國土身)의 미진의 수효를 안다.
모든 중생의 거친 신체와 미세한 신체의 차별을 알고, 또한 미진이 합성된 지옥ㆍ축생ㆍ아귀ㆍ아수라ㆍ하늘ㆍ인간들의 몸을 안다.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성립과 파괴를 알고, 또 저 작고 크고 한량없는 것 등의 차별을 안다.
중생신(衆生身) 중의 업신(業身)ㆍ보신(報身)ㆍ색신(色身)을 알고, 국토신(國土身) 중의 크고 작음ㆍ오염되고 청정함 및 횡적으로 유지됨ㆍ전도되어 유지됨ㆍ평평하게 유지됨 등 방망(方網)의 차별을 안다.
업보신(業報身) 중에서 차별되는 명자신(名字身)을 알고, 성문신ㆍ독각신ㆍ보살신(菩薩身) 중에서 차별되는 명자신을 안다.
여래신(如來身) 중에서 정각신(正覺身)ㆍ원신(願身)ㆍ화신(化身)ㆍ주지신(住持身)ㆍ형색과 상호로 장엄한 신체[形色相好莊嚴身]ㆍ위엄 있는 광명의 신체[威光身]ㆍ마음으로 사념하는 신체[意念身]ㆍ복 있는 신체[福身], 법신(法身)을 알고,
지신(智身) 중에서 잘 분별하거나 혹은 이치답게 사유하거나, 혹은 과보에 상응하는 포섭하거나, 혹은 세간과 출세간이거나, 혹은 3승(三乘)을 안립하는 것이거나, 혹은 함께하는 법과 함께하지 못하는 법이거나, 혹은 출세간의 도와 출세간의 도가 아닌 것이거나, 혹은 학(學)과 무학(無學)을 안다.
법신(法身) 중에서 평등과 부동(不動), 세제(世諦)의 처소를 안립하는 명자(名字), 중생법(衆生法)과 중생법이 아님을 안립하는 법, 부처님 법을 안립하는 성스런 무리를 안다.
허공신(虛空身) 중에서 한량없는 신체[無量身]ㆍ일체의 처소에 들어가는 비신체[入一切處非身]ㆍ진실하여 한계가 없고 색상이 없는 신체[眞實無邊無色身]의 차별을 안다. 이와 같은 등의 신지(身智)를 낳을 수 있다.
또 생명의 자재[命自在]ㆍ마음의 자재[心自在]ㆍ뭇 도구의 자재[衆具自在]ㆍ업자재(業自在)ㆍ원자재(願自在)ㆍ신해자재(信解自在)ㆍ신통자재(神通自在)ㆍ지혜의 자재[智自在]ㆍ출생의 자재[生自在]ㆍ법의 자재[法自在]를 획득한다.
이와 같은 열 가지 자재를 획득하면 부사의한 지자[不思議智者]ㆍ한량없는 지자[無量智者]ㆍ퇴전함이 없는 지자[不退智者]가 된다.
이와 같은 지혜에 8만 4천 가지의 행상(行相)이 있다. 이상이 보살이 아는 지바라밀(智波羅蜜)이다.
이와 같이 분류에 따라 지바라밀을 해설하였다.
만약 자세하게 부연하고자 한다면 오직 부처님ㆍ세존만이 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여섯 바라밀은
총체적으로 보리의 자량이니
마치 허공 속에
모든 사물을 다 거두는 것과 같다.
해설한 대로 여섯 바라밀은 총체적으로 일체 보리의 자량을 포섭한다.
비유하면 허공에 가고 머무는 모든 사물이 식이 있든[有識] 식이 없든[無識] 전부 포섭되어 그 속에 머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밖에 문(聞) 자량 등 모든 자량은 여섯 바라밀 속에 포섭되어서 동일한 모습으로 다름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