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반야바라밀경론 상권
2. 세 가지 질문, 대승의 서원을 일으키되 모양[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經】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은 대승 가운데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내며, 마땅히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수행해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합니까?”
그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수보리야, 네가 말한 것과 같이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호하고 염려하시며, 모든 보살들을 잘 부촉하시느니라.
너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법하리라.
만약 보살이 대승 가운데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하며,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하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럴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기꺼이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들은 이와 같은 마음을 내야 하리니,
‘존재하는 일체 중생, 즉 중생에 포함되어 있는 난생(卵生)이거나 태생(胎生)이거나 습생(濕生)이거나 화생(化生)이거나, 색이 있는[有色] 것이거나 색이 없는[無色] 것이거나, 생각이 있는[有想] 것이거나 생각이 없는[無想] 것이거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非有想非無想] 것이거나 간에,
나는 중생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중생에 포함된 모든 것들을 다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여 멸도(滅度)의 경지에 이르게 하리라’라고 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한량없고 끝이 없는 중생들을 멸도의 경지에 이르게 하지만 실제로 어떤 중생도 멸도의 경지를 증득한 이는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중생이라는 모습에 집착하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왜 보살이 아닌가?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중생이라는 모습[衆生相], 남이라는 모습[人相], 오래 산다는 모습[壽者相]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보살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니라.”
【論】
어떻게 보살이 대승 가운데에 머물러야 하는가에 대하여 문답으로 이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리라.
광대(廣大)함ㆍ제일(第一)ㆍ항상함이며
그 마음이 뒤바뀌지 아니함이니
중생을 이롭게 하리라는 심오한 마음에 머무는 것이
이 승(乘)의 원만한 공덕이다.
이 게송에서는 어떤 종류의 뜻을 말한 것인가?
만약 보살이 네 가지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어야겠다는 보리의 마음이 있으면, 이 보살은 대승의 처소에 머문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심오한 마음에서 원만한 공덕을 얻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네 가지 심오한 이익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중생을 거두어들이려는 마음이 생겨나서 대승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네 가지 마음인가?
첫째는 광대한 것이요,
둘째는 제일인 것이며,
셋째는 항상한 것이요,
넷째는 뒤바뀌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광대한 마음으로 이익을 주는 것인가?
경에서
“모든 보살들은 이와 같은 마음을 내야 하리니,
‘존재하는 일체 중생, 즉 중생에 포함되어 있는 중생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중생에 포함된 것들’”이라고 한 데까지와 같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제일가는 마음으로 이익을 주는 것인가?
경에서
“내가 그들로 하여금 모두 무여열반에 들게 하고 멸도의 경지에 이르게 하리라”라고 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항상한 마음으로 이익을 주는 것인가?
경에서
“이와 같이 한량없고 끝이 없는 중생들을 멸도의 경지에 이르게 하지만 실제로 어떤 중생도 멸도의 경지를 증득한 이는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중생이라는 모습에 집착하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라고 한 것과 같다.
이 뜻은 무엇인가?
보살은 일체 중생들을 제 몸처럼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보살 자신이 멸도(滅度)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 중생들이 멸도의 경지를 증득한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보살이 중생에 대하여는 중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마땅히 보살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중생들을 거두어들이되 제 몸같이 여겨 항상 버리거나 여의지 않으면 이것을 일컬어 항상한 마음으로 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전도(顚倒)되지 않는 마음으로 이익을 주는 것인가?
경에서
“왜 보살이 아닌가?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중생이라는 모습, 남이라는 모습, 오래 산다는 모습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보살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니라”라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신견(身見)과 중생 따위 모습에 의지하는 것에서 벗어남을 나타내 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論】
여기서부터 아래까지는 보살이 대승 가운데 머무르며 이 일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설명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