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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권방편경 상권
3. 분위품(分衛品)
[걸식을 행하는 연유]
이때 현자 수보리가 그 여인에게 물었다.
“대승을 유쾌하게 찬탄하고 행업(行業)을 널리 펴서 본말을 잘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 여인이 대답했다.
“바로 내 몸으로 하여금 1겁이 지나도록 대승을 찬탄한다 해도 그 끝을 얻어서 다 말할 수가 없고 대승의 업도 한량이 없으며, 그 덕이 지순(至淳)하여 공훈(功勳)과 명칭(名稱)은 헤아려 얻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수보리가 그 여인에게 말했다.
“누이여, 나에게 ‘현자여, 무슨 까닭으로 걸식을 행합니까?’라고 물었는데,
여래ㆍ지진께서도 역시 걸식을 하셨습니다.
여래의 인연을 따르고 받드는 것은 가르침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여인이 대답했다.
“오직 수보리여, 모든 부처님의 선권방편(善權方便)을 아십니까?
중생을 교화[開化]시키고자 하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여인에게 물었다.
“여인은 역시 모든 부처님께서 때를 따라서 행한 뜻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나로서는 그 뜻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방편을 닦고 권하기 위해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까?”
여인이 다시 대답했다.
“현자여, 다시 들으십시오.
여래ㆍ지진께서는 스무 가지 일로써 법의(法儀)를 관찰하고 걸식을 행합니다.
무엇을 스무 가지라 하면,
첫 번째 몸을 나타내되 색신(色身)의 형상이 미묘하고 단정함이고,
두 번째 여래를 순종하며 걸식의 법을 배우기 때문이며,
세 번째 만약 중생이 있다면 위엄 있는 부처님의 32상(相)을 익히려 하기 때문이고,
네 번째 여래의 몸에 장엄이 구족되었음을 보기 때문이며,
다섯 번째 여법하게 신상(身相)에 80종호가 갖추어졌기 때문이고,
여섯 번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無上正眞道意]을 내게 하기 때문이며,
일곱 번째 여래를 생각하며 걸식하되 여법하게 그것을 본받기 때문이고,
여덟 번째 만약 여래께서 군국(郡國)이나 현읍(縣邑)에 들어가시면 군국ㆍ현읍이 널리 안온함을 얻기 때문이며,
아홉 번째 눈 먼 자는 눈을 얻어 모두가 온갖 색상을 보기 때문이고,
열 번째 귀머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열한 번째 마음이 어지럽고 미혹된 자는 그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이고,
열두 번째 벌거벗은 자는 자연히 옷을 얻기 때문이며,
열세 번째 굶주린 자는 식량을 얻기 때문이고,
열네 번째 목마른 자는 물을 얻기 때문이며,
열다섯 번째 병자는 병이 낫기 때문이고,
열여섯 번째 분노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기 때문이며,
열일곱 번째 탐욕도 없고 질시도 없기 때문이고,
열여덟 번째 원한도 품지 않으며 화내지도 않고 자만심도 없기 때문이며,
열아홉 번째 마음에 번뇌를 품지 않고 널리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고,
스무 번째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종류를 부모의 몸과 같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스무 가지라 합니다.
여래께서 군국이나 현읍이나 마을에 들어가 걸식을 행하시는 것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보고 듣는 것을 있게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세존께서는 큰 슬픔[大哀]으로 오셔서 중생의 무수한 괴로움을 교화하시고 삼계에 이르러서는 때에 따라 구제하고 보호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그런 뜻을 나타내시고 자재함을 얻었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수보리여, 여래께서 군국이나 현읍에 들어가 걸식을 행하실 때 수없는 모든 천ㆍ용신ㆍ건답화ㆍ아수륜ㆍ가류라ㆍ진타라ㆍ마휴륵과 제석ㆍ범천ㆍ사천왕이 모두 시종하면서 받들어 공양하고는 부처님의 위신(威神)을 이어 도심(道心)을 내었습니다.
또 수보리여, 모든 천ㆍ용신ㆍ제석ㆍ범천ㆍ사천왕이 여래를 공양하고 여래의 몸을 보고는 도(道)의 밝음이 끝이 없으므로 고요한 도량에서 마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여래ㆍ지진께서 밝히신 정전(正典)을 우리들이 받아 가져서 경법(經法)을 받드는 것이 즐거워서 스스로 귀의하게 하려고 여래ㆍ지진께서는 대도심(大道心)을 내셨다.
이런 연유로 걸식을 행하시는구나’라고 합니다.
오직 수보리여, 관리를 원하고 벼슬을 탐내거나 재물을 좋아하고 부호[豪]에 뜻을 두거나 단정한 모습[色]을 구하거나 권속이 많기를 바라는 수많은 자들이
불세존(佛世尊)께서 전륜왕(轉輪王)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부처님을 뵈니 큰 슬픔[大哀]으로 가난한 집에 이르러 걸식을 행하신다.
세상의 영화와 관직을 버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신다’라고 합니다.
오직 수보리여, 모든 대존신(大尊神)과 천자(天子)ㆍ범천(梵天)이 부처님의 위신을 이어 여래를 관찰하여 보고는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여래께서는 충족하셔서 일찍이 굶주리거나 목마른 적이 없었다. 중생을 가엾이 여기므로 권속과 더불어 걸식을 행하신다.
우리들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진하여 정각을 이루는 것을 원하고 즐거워하여 권속과 함께 걸식을 행해야겠다’라고 하고는 대도(大道)의 마음을 내게 됩니다.
오직 수보리여, 만약 게으르고 나태하여 부지런하지 못한 무리들이 여래께서 군국(郡國)ㆍ현읍(縣邑)ㆍ주역(州域)ㆍ대방(大邦)에 들어오신 것을 본다면 마음속에 희열을 느껴, 머리를 숙여 삼보에 귀의하고 평등심을 내어서 최정각(最正覺)을 원하게 됩니다.
오직 수보리여, 모든 불존(佛尊)을 뵙게 되면 끝내 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음향(音響)을 듣고 보게 되면 순식간에 도의 근본을 생각하게 되어 구경(究竟)의 깨달음으로 인하여 멸도(滅度)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직 수보리여, 여래께서 군국이나 현읍에 들어가시면 모든 속박된 자들과 뇌옥(牢獄)에 갇혀 있는 자들이 해탈을 얻고, 중생이 만약 여래의 명호(名號)를 들으면 성지(聖旨)를 이어 자연히 해탈을 얻어서 자비스런 은혜에 보답하고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걸식을 나타내 보인 것입니다.
오직 수보리여, 족성자(族姓子)ㆍ족성녀(族姓女)가 만약 여래의 공훈(功勳)의 덕을 듣는다면 명칭을 찬탄하며 나아가 그 이름을 부르며,
받들어 여래에게 별미의 음식이나 의복ㆍ이불ㆍ상(牀)ㆍ와구(臥具)와 기타 다른 것으로 공양을 올리지만,
부모ㆍ형제ㆍ자매나 부녀자와 자손들을 부양해야 한다든지, 인연이 없는 자는 짐짓 가서 여래를 받들어 뵈올 기회가 없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군국이나 현읍에 들어가셔서 걸식을 행하시게 되면 마음으로 뛸 듯이 기뻐하며 공양을 바치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됩니다.
오직 수보리여, 사천왕(四天王)이 여래의 발우를 받들면, 만약 가난한 무리들이 재보(財寶)가 적어서 적게 보시하더라도 여래의 발우를 보면 자연히 가득 차 있고,
큰 부자가 많이 보시하더라도 여래의 발우가 비어 있음을 보게 되니,
스스로 부처님을 받들어 보시하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냅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직 수보리여, 가령 여래께서 약간의 음식을 취해도 다 가지런히 합착(合著)되며, 백천억의 발우도 다시 한 발우에 합착되지만 섞이지 않는 것은 각각 모두 본래와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무수한 모든 천(天)과 용신ㆍ건답화ㆍ아수륜ㆍ가류라ㆍ진타라ㆍ마휴륵이 여래께서 나타내 보이는 변화를 보고는 일찍이 없었던 선한 마음을 내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직 수보리여, 여래의 몸은 금강(金剛)의 무량한 복이 모였습니다.
여래의 몸은 생장(生藏)과 숙장(熟藏)이 없으며, 또한 부정(不淨)한 대소변도 없으며, 굶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으신 데도 걸식을 행하며, 현재 먹고 있어도 들어가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의 밝고 큰 지혜와 진정한 법을 보고는 모두 도심을 내게 됩니다.
또 수보리여, 어떤 중생이 여래에게 음식을 베풀되, 많거나 적거나 거칠거나 부드럽거나, 감미롭거나 좋지 못하거나, 바치는 음식은 여래에게 덕의 근본을 심고 복을 세우는 것도 한량이 없고 끝이 없는데, 하물며 중우(衆祐:부처님)가 다함이 없이 멸도(滅度)에 이름이겠습니까.
이런 까닭으로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여래께서 한결같이 삼매정수(三昧正受)에 들면 무수한 신존(神尊)과 모든 천자들과 많은 범천왕과 색행천자(色行天子)가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을 보고는 삼매를 버리지 않고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지금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는 것이지 굶주리거나 궁핍해서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제천(諸天)과 백성들이 그 뜻과 이익을 보고는 모두 도심을 내는 까닭에 여래께서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여래께서는 항상 현성(賢聖)의 자재함을 생각하여 걸식을 행하며, 탐욕도 질투도 없고 또한 먹지도 마시지도 않습니다.
모든 신자(信者)를 위하여 경도(經道)를 널리 펴서 출가하여 교화를 배우려는 족성자ㆍ족성녀 때문에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먹고 마신 적이 없고 굶주린 자는 스스로 도덕(道德)에 이르지 못하므로 이들로 하여금 소원하는 바를 빠짐없이 갖추게 하려고 걸식을 나타낸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여래께서는 현성(賢聖)을 생각하여 스스로 걸식을 행하며, 모든 어질지 못한 것을 구제하고 여러 장애를 제도하여 집착함이 없게 하여 대도(大道)의 한없는 지혜에 이르게 합니다.
또 수보리여, 여래께서는 미래 세상의 변방 땅의 모든 나라를 가엾이 생각하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여 후세에 도법(道法)을 믿지 않는 자가 없게 합니다.
장자(長者)나 범지(梵志)가 마음에 스스로
‘이들 성사(聖師)께서는 걸식을 행하지 않았는데, 제자들은 무슨 까닭으로 함부로 걸식을 하는가?’라고 생각하고는
모든 비구와 비구니를 보고는 화를 내며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부처님께서 걸식을 나타내 보이면, 마음에 스스로
‘부처님께서는 위없이 존귀하신 분이신데도 중생을 가엾이 여겨 걸식하시니 제자도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라고 생각하고는,
공양하는 것을 찬탄하며 손으로 스스로 짐작하여 비구에게 보시합니다.
이들 학사(學士)가 부처님의 지극한 가르침을 이어서 걸식을 행하게 되면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든 비구와 비구니에게 공양하게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걸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모든 제왕이나 태자ㆍ장자ㆍ범지ㆍ대신ㆍ백관과 모든 자식들이 위없이 바르고 진실하신 여래께서 걸식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되면,
만약 많은 사람이 도법(道法)을 즐겨 믿어서 집을 버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행하여 사문이 되어도
‘우리들 가문의 성(姓)은 호족의 존귀한 출신으로 사문이 되었는데 도리어 서민이나 가난한 집이나 비천한 이들에게 걸식할 수 있겠는가?’ 하며
걸식을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걸식을 행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스스로
‘여래 대덕께서는 마치 허공과 같으신 데도 가엾이 여겨 걸식을 행하시는데 하물며 우리들이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모든 하열함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걸식을 행하는 것을 즐겨하게 됩니다.
또 수보리여, 여래께서는 널리 세상의 습속(習俗)을 따라서 그들을 교화합니다.
그 즐거움을 권하려는 까닭으로 각 중생을 따라서 마땅히 변화하는 법의 이치를 받게 하여 도의 가르침을 줍니다.
여래께서 각자를 따라서 그것을 건립(建立)하되 그 방편으로 말미암아 일찍이 굶주리거나 허기짐이 없고, 여러 가지 재앙이나 기갈의 어려움이 없었으며, 지치는 일도 없고, 인색하거나 질시함도 없으며, 모든 악이 없고 모든 의혹을 끊었습니다.
이와 같이 수보리여, 여래의 이러한 한량없는 방편으로 중생을 구제하려는 까닭에 걸식을 행하여 어둡고 막힌 것을 제도하여 도의 밝음을 보게 한 것입니다.”
여인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현자께서는 때에 따르는 방편으로써 이러한 대애(大哀)를 사용하고 이와 같은 중우(衆祐)의 청정을 닦아서 걸식을 행할 수 있습니까?”
수보리가 대답했다.
“누이여, 나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마치 일체의 들여우ㆍ토끼ㆍ사슴들ㆍ작은 벌레들은 백수(百獸)의 왕인 사자를 감당할 수 없어 혼자 걸어가도 그 앞에 나타나서 사자후를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일체의 성문이나 연각승은 여래의 위신ㆍ예절과 선권방편(善權方便)을 감당할 수 없는데 어찌 일체의 대자대비를 펴겠습니까?”
여인이 이 선권방편과 여래의 대비심을 설했을 때, 그 여인의 부모와 장자와 집안의 어른과 아이 및 나머지 장자들이 집 안에 들어와서 이 설법을 듣고는 2만 8천의 사람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