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보리심경론 상권
5. 시라바라밀품(尸羅波羅蜜品)
무엇을 일컬어 보살이 지계(持戒)를 수행한다고 하는가?
지계는 자리와 이타와 양자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이니, 이와 같은 지계는 바로 보리의 도를 능히 장엄한다.
그리고 보살은 중생을 조복시켜 그들로 하여금 고뇌를 여의게 하고자 계를 지니는 것이다.
지계를 닦으면 일체의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이 모두 청정해져서 불선행(不善行)의 마음을 능히 버리며,
악행과 금계(禁戒)를 훼손한 것을 능히 잘 꾸짖고,
작은 죄에 대해서도 마음은 항상 두려워하게 되니,
이를 일러 ‘보살이 처음으로 지계를 닦을 때의 마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계를 닦기 때문에 일체의 모든 악과 허물을 멀리 여의어서 항상 좋은 곳에 태어나니,
이를 일러 ‘자리’라고 하였다.
또한 중생을 교화하여 악을 범하지 않게 하니,
이를 일러 ‘이타’라고 하였다.
또한 자기가 닦은 바를 보리의 계(戒)로 돌려 온갖 중생을 교화하여 자신이 획득한 이익과 동일한 이익을 획득하게 하니,
이를 일러 ‘양자 모두의 이익’이라고 하였다.
또한 지계를 닦음으로 인해 욕망을 여의게 되며 나아가 번뇌[漏]가 다하여 최정각(最正覺)을 성취하게 되니,
이를 일러 ‘보리의 도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계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신계(身戒)이며,
둘째는 구계(口戒)이고,
셋째는 심계(心戒)이다.
신계를 지니는 것이란
일체의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을 영원히 여의는 것으로서 물건이나 목숨을 빼앗지 않고 남의 재물을 침해하지 않으며,
외적인 색[外色: 자신의 처 이외의 여인]을 범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살생 등의 인연이나 그것의 방편도 행하지 않는 것으로서 몽둥이나 나무ㆍ기와ㆍ돌 따위로 중생을 상해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어떤 물건이 다른 이에게 소속된 것이나 다른 이에 의해 수용된 것이라면 풀 한 포기, 잎사귀 하나라도 주지 않은 것은 취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일찍이 섬세한 여색을 곁눈질하는 일이 없으며, 네 가지 위의(威儀)를 갖추고서 공경하여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신계’라고 한다.
구계를 지니는 것이란
일체의 망어(妄語)ㆍ양설(兩說)ㆍ악구(惡口)ㆍ기어(綺語)를 끊어 없애고,
항상 남을 속이거나 화합을 이간질하지 않으며,
비방ㆍ훼손하거나 말을 꾸미거나 아울러 방편으로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말할 때에는 정성을 다하고 부드럽고 충성스럽고 믿음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서 말은 항상 이롭고 교화를 권유하고 선을 닦는 것이어야 하니,
이것을 일컬어 ‘구계’라고 한다.
심계(心戒)를 지니는 것이란
탐욕ㆍ진에ㆍ사견을 제거ㆍ소멸하고 항상 유연한 마음을 닦아 허물이나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니,
이러한 죄업은 악한 과보를 얻는다고 믿는 사유의 힘으로 인해 죄업을 짓지 않게 되는 것이다.
즉 가벼운 죄에 대해 지극히 무겁다는 생각을 내고,
설혹 잘못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후회하면서 중생들에게 진뇌(瞋惱)를 일으키지 않으며,
중생을 보고 애념(愛念)의 마음을 내며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으며,
마음에 인색함이 없고 즐거이 복덕을 지음으로써 항상 사람들을 교화하며,
항상 인자한 마음[慈心]을 닦아 일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니,
이것을 일컬어 ‘심계’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10선업계(善業戒)에는 다섯 가지 이익이 있으니,
첫째는 능히 악행을 제압하는 것이며,
둘째는 능히 선심을 조성하는 것이고,
셋째는 능히 번뇌를 막는 것이며,
넷째는 청정한 마음을 성취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능히 계를 증장시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불방일의 행을 능히 잘 닦는다면,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러한 사람은 정념(正念)을 구족하고 선악을 분별하여 결정코 능히 십선업계를 닦게 될 것이다.
그리고 팔만 사천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계품(戒品)은 모두 다 십선계 중에 포섭되는 것이니,
이러한 십선계는 능히 일체 선계(善戒)의 근본이 된다.
나아가 이는 곧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악을 끊고 능히 일체의 불선법을 제압하기 때문에 이를 일컬어 ‘계’라고 한 것이다.
계에는 다시 다섯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바라제목차계(波羅提木叉戒)이며,
둘째는 정공계(定共戒)이고,
셋째는 무루계(無漏戒)이며,
넷째는 섭근계(攝根戒)이고,
다섯째는 무작계(無作戒)이다.
즉 스승으로부터 백사갈마(白四羯磨)를 받는 것을 ‘바라제목차계’라고 하며,
근본사선(四禪: 사정려)과 사미도선(四未到禪: 사미지정)을 ‘정공계’라고 하고,
근본사선과 초선의 미도선을 무루계라고 하며,
온갖 감관을 섭수하여 정념(正念)의 마음을 닦아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을 보고 듣고 각지(覺知)하여도 방일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섭근계’라고 하고,
육신을 버리고서 후세에 더 이상 악업을 짓지 않는 것을 ‘무작계’라고 이름한다.
보살이 닦는 계는 성문이나 벽지불이 닦는 계와는 같지 않으니, 공통되지 않기 때문에 ‘선지계(善持戒)’라고 이름한다.
즉 선계(善戒)를 지녔기 때문에 능히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살이 자심계(慈心戒)를 지니고 있음은 중생을 구호하여 안락하게 하기 때문이며,
비심계(悲心戒)를 지니고 있음은 온갖 괴로움을 참고서 위난(危難)을 제거하기 때문이며,
희심계(喜心戒)를 지니고 있음은 기쁘게 선을 닦으며 해태(懈怠)하지 않기 때문이며,
사심계(捨心戒)를 지니고 있음은 원수나 친구를 평등하게 대하여 사랑과 미움[愛恚]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혜시계(惠施戒)를 지니고 있음은 온갖 중생을 교화하여 조복하였기 때문이며,
인욕계(忍辱戒)를 지니고 있음은 마음이 항상 유연하여 미워함이나 장애가 없기 때문이며,
정진계(精進戒)를 지니고 있음은 선업이 날로 증가해서 물러나 되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며,
선정계(禪定戒)를 지니고 있음은 욕탐과 불선을 여의고 선의 갈래[禪支]에 오래 머물기 때문이며,
지혜계(智慧戒)를 지니고 있음은 다문(多聞)의 선근(善根)은 싫어함이나 만족함이 없기 때문이며,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계[親近善知識戒]를 지니고 있음은 보리의 위없이 높은 도를 성취하였기 때문이며,
악지식을 멀리 여의는 계[遠離惡知識戒]를 지니고 있음은 삼악도(三惡道)와 팔난처(八難處)를 멀리 여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보살인으로서 청정계(淸淨戒)를 수지하는 자란 이렇다;
욕계에 의지하지 않고 색계에 가까이하지 않으며 무색계에 머물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욕망과 번뇌를 버리고 미워하는 장애를 없애서 무명의 장애를 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단(斷)ㆍ상(常)의 두 극단을 여의어서 인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의 가명(假名)의 상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원인에 계박되지 않고 온갖 견(見)을 일으키지 않고 의심이나 후회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탐ㆍ진ㆍ치의 세 가지 불선근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아만(我慢)ㆍ교만(憍慢)ㆍ증상만(增上慢)ㆍ만만(慢慢)ㆍ대만(大慢)에 머물지 않고 부드럽고 온화하며 선에 수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이익과 쇠퇴, 훼손과 영예, 칭찬과 꾸짖음, 괴로움과 즐거움에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세제(世諦)와 허망ㆍ가명(假名)에 물들지 않고 진제(眞諦)에 수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번뇌하지 않고 뜨겁지 않아서 상(相)을 여의어 적멸한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요점을 간추려 말하자면,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무상상(無常想)을 관찰해서 염리(厭離)를 낳고 부지런히 선근을 닦아 용맹정진하는데 까지 이른다면,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보살마하살은 지계(持戒)를 수행하면서 이 같은 청정한 마음조차 살피지 않으니, 그 상념[想]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시라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