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운경 제1권
[인욕 바라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또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인내(忍耐)를 청정하게 했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안에서의 인내,
밖에서의 인내,
법을 위한 인내,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인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인내,
곳곳마다 참는 인내,
이유가 없는 인내,
괴로워하지 않는 인내,
가엾이 여기는 인내,
서원(誓願)의 인내이다.
[안에서의 인내]
보살의 안에서의 인내[內忍]란 무엇인가?
보살은 배고픔ㆍ목마름ㆍ추위ㆍ더위ㆍ근심ㆍ슬픔ㆍ통증과 몸과 마음의 극심한 고통을 스스로 참고 받아들이며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이를 보살의 안에서의 인내라고 한다.
[밖에서의 인내]
보살의 밖에서의 인내[外忍]란 무엇인가?
보살은 남에게서 나쁜 말이나 꾸지람이나 헐뜯고 욕하며 비방하는 소리를 듣건,
혹은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권속(眷屬)이나 화상(和上)이나 아사리(阿淞梨)나 사도(師徒)나 동학(同學)을 헐뜯고 욕하는 소리를 듣건,
혹은 불ㆍ법ㆍ승 3보를 헐뜯는 소리를 듣건,
이와 같이 가지가지로 헐뜯는 일이 있더라도 보살은 참고 성내지 않는다.
이를 보살의 밖에서의 인내라고 한다.
[법을 위한 인내]
보살의 법을 위한 인내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모든 경에서
‘모든 법은 적정(寂靜)하고 모든 법은 적멸(寂滅)하여 열반과 같다’고
말씀하신 미묘한 뜻에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만약 이 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법을 알지 못한다면 끝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으리라.’
그런 까닭에 보살은 열심히 묻고 독송한다. 이를 보살의 법을 위한 인내라고 한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인내]
보살의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인내란 무엇인가?
보살은 성나고 괴로우며 독한 마음이 일어날 때 이렇게 생각한다.
‘이 몸은 어디에서 생겨 어디로 사라지는가?
나로부터 생겼다면 무엇이 나이며, 저것으로부터 생겼다면 무엇이 저것인가?
법상(法相)이 이러하니, 어떤 인연으로부터 일어나는가?’
보살이 이렇게 생각할 때,
생겨나는 곳을 볼 수 없고, 또 연(緣)이 일어나는 곳을 볼 수 없으며,
또 나로부터 생기는 것을 볼 수 없고,
저것으로부터 일어나는 것도 볼 수 없으며,
역시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것도 볼 수 없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성내지 않게 되고 괴로워하지 않게 되며 독한 마음을 품지 않게 되어 진노(瞋怒)한 마음이 곧바로 줄어들게 된다.
이를 보살의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인내라고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인내]
보살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인내란 무엇인가?
혹 어떤 사람은 밤에는 참는데 낮에는 참지 못하고,
혹 낮에는 참는데 밤에는 참지 못하며,
혹 저 나라에서는 참는데 이 나라에서는 참지 못하고,
혹 이 나라에서는 참는데 저 나라에서는 참지 못하며,
혹 지식인에게는 참는데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참지 못하고,
혹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참는데 지식인에게는 참지 못한다.
그러나 보살은 그렇지 않아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항상 참는 마음을 낸다.
이를 보살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인내라고 한다.
[곳곳마다 참는 인내]
보살의 곳곳마다 참는 인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부모와 스승과 장로와 부처(夫妻)와 남녀(男女)와 대소(大小) 내외(內外)와 같은 이런 사람들 틈에서는 참는데,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참지 못한다.
보살의 인내는 그렇지 않아, 부모에게 참는 마음을 내는 것과 같이 전타라에게도 똑같이 참는 마음을 낸다.
이를 보살의 곳곳마다 참는 인내라고 한다.
[이유가 없는 인내]
보살의 이유가 없는 인내란 무엇인가?
사연이 있는 까닭에 참는 마음을 내는 것이 아니고,
이익이 있는 까닭에 참는 마음을 내는 것이 아니며,
두려움 때문에 참는 마음을 내는 것이 아니고,
남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참는 마음을 내는 것이 아니며,
서로 친구인 까닭에 참는 마음을 내는 것이 아니고,
부끄럽기 때문에 참는 마음을 내는 것이 아니라
보살은 항상 인내를 닦는다.
이를 보살의 이유가 없는 인내라고 한다.
[괴로워하지 않는 인내]
선남자야, 보살의 괴로워하지 않는 인내란 무엇인가?
성낼 만한 인연이라도 번뇌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면 인내라고 하지 않는다.
성낼 만한 인연을 만났을 때, 주먹으로 치건 칼이나 몽둥이나 손을 휘두르건 다리로 차건 헐뜯어 욕하건 그 가운데서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을 곧 인내라고 한다.
보살은 어떤 사람이 와서 화를 내어도 참고 화를 내지 않아도 참으니,
이를 보살의 괴로워하지 않는 인내라고 한다.
[가엾이 여기는 인내]
보살의 가엾이 여기는 인내란 무엇인가?
때로 보살은 큰 능력을 가진 왕이나 왕에 버금가는 자가 되어 고통 받는 중생을 위해 그 주인이 되기도 한다.
그 고통 받는 중생이 찾아와 욕하고 괴롭힐 때에도 보살은 내가 곧 주인이란 생각에 화를 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중생은 내가 당연히 구제해 항상 옹호해 주어야 할 터인데 어떻게 화를 낼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는 이제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가련하고 불쌍하게 생각하며 화를 내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를 보살의 가엾이 여기는 인내라고 한다.
[서원의 인내]
보살의 서원의 인내란 무엇인가?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예전에 모든 부처님 앞에서 일찍이 사자후(師子吼)를 하여 서원하기를,
≺내가 성불해 모든 생사의 진흙탕 속에 있는 모든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리라≻고 하였다.
내가 지금 그들을 구제하고자 한다면 성을 내어 그들을 괴롭혀선 안 된다.
만약 내가 참지 못한다면 나 스스로도 도탈(度脫)하지 못할 텐데, 하물며 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있겠는가?’
선남자야, 비유를 들어보겠다.
눈을 치료하는 법을 잘 알고 있는 훌륭한 의사가 있었다.
여러 중생이 안예(眼翳)를 앓거나 안막(眼膜)을 앓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눈병에 많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이 의사는
‘내가 중생들의 눈병을 고치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바로 그 후에 그 의사 자신이 장님이 되고 말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의사가 다른 사람의 눈을 고칠 수 있겠는가?”
제개장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제개장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의 무명(無明)의 어둠을 없애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스스로 어둠의 덮개를 없앤 후에 남의 것도 없애 주어야 한다.
안으로 지혜가 없으면서 능히 남의 병을 치료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이러한 인연으로 인내를 닦고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이를 보살의 대서원의 인내라고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다 갖추면, 이를 보살이 인내를 청정하게 한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