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의족경 상권
5. 경면왕경(鏡面王經)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께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비구들이 식사 때가 되어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가 걸식하려 하다가 스스로 생각했다.
‘지금 성에 들어가면 때가 너무 이르다. 우리들이 어찌 이교도(異敎徒)인 범지의 강당에 갈 수 있겠는가.’
이리하여 비구들은 서로 위로하면서 각자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이때 범지들은 자신들끼리 언쟁이 붙어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점차 서로 이렇게 비방하고 원망했다.
“우리는 이러한 법을 아는데 너희는 무슨 법을 아느냐?
우리가 아는 법은 도에 합치되지만 너희가 아는 법은 무슨 도에 합치되느냐?
우리의 법은 훌륭히 수행할 수 있지만 너희의 법은 친밀하기 어렵다.
앞의 말을 할 때는 뒤의 말에 집착하고, 뒤의 말을 할 때는 앞의 말을 번복하며, 많은 설법을 하여 참으로 역량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실행에 옮기기 어렵게 한다.
너희에게 뜻을 말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한다.
너희는 분명 법에는 전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 터이니, 너희는 도무지 어떻게 대답하려느냐?”
이렇게 범지들은 설전(舌戰)을 벌여 점차 서로 상대방을 해쳐 하나의 피해를 입으면 셋으로 갚아 주었다.
비구들은 이들이 이렇게 다투는 소리를 듣고 말했다.
“이와 같은 행동도 옳지 않다. 그대의 말 또한 도를 안 것이 아니다. 그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라.”
비구들은 사위성(舍衛城)에 이르러 걸식하여 식사를 마치고 발우를 챙긴 다음 기수급고독원으로 돌아와서 부처님께 예배를 올렸다. 그
리고 모두 한 쪽에 앉아 성에서 겪은 일을 부처님께 사실대로 모두 말씀드렸다.
“이 범지들이 배우는 도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때나 해탈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 범지들은 이 일생(一生)에 있어서만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랜 과거에 이 염부리(閻浮利)에는 경면(鏡面)이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왕은 어느 날 사자(使者)에게 명하여 자기 나라 안에 사는 눈이 없는 장님들을 모두 대궐로 데려 오게 했다.
사자는 분부를 받고 즉시 길을 떠나 장님들을 대궐로 데려 와서 왕에게 보고하였다.
왕은 대신에게 명하여 장님들을 데리고 가서 코끼리를 보여 주게 하였다.
대신은 장님들을 코끼리가 있는 우리로 데리고 가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보여주고 코끼리를 만져 보게 하였다.
그러자 발을 만지는 사람, 꼬리를 만지는 사람, 꼬리의 밑둥치를 만지는 사람, 배를 만지는 사람, 옆구리를 만지는 사람, 등을 만지는 사람, 귀를 만지는 사람, 머리를 만지는 사람, 어금니를 만지는 사람, 코를 만지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다.
이렇게 코끼리를 모두 보여 준 다음 왕에게 데리고 갔다.
왕이 모두에게 물었다.
“너희들도 코끼리를 잘 보았느냐?”
“저희들은 잘 보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생겼더냐?”
그러자 발을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기둥 같더라고 하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빗자루 같더라고 하고,
꼬리 밑둥치를 만진 사람은 지팡이 같더라고 하고,
배를 만진 사람은 둑과 같더라고 하고,
옆구리를 만진 사람은 벽과 같더라고 하고,
등을 만진 사람은 높은 언덕 같더라고 하고,
귀를 만진 사람은 큰 키[箕]와 같더라고 하고,
머리를 만진 사람은 절구와 같더라고 하고,
어금니를 만진 사람은 뿔과 같더라고 하고,
코를 만진 사람은 동아줄과 같더라고 했다.
이렇게 왕에게 모두 대답한 뒤 장님들은 서로 코끼리는 내가 말한 것과 같다느니 하면서 언쟁을 벌였다.
왕은 이때 게송을 읊었다.
지금 앞 못 보는 장님들이 모여서
공연히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여
하나를 보고 나머지는 틀렸다 하니
한 마리 코끼리 때문에 서로 비방하네.
이야기를 마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때 경면왕은 나의 전신(前身)이고, 봉사들은 강당에 있던 범지들이다.
그때도 그들은 지혜가 없어 공연히 언쟁을 벌이더니 지금도 그들은 어리석어 공연히 쓸데없는 언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때에 이 경의 뜻을 요약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자세히 알게 하시는 한편 후세 사람들을 위해 뜻을 밝힘으로써 우리 경법(經法)이 길이 머물도록 하셨다.
이에 『의족경』을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이가 자신은 옳고 남은 그르다 하니
날로 어리석음에 빠져 어느 때에 해탈하겠느냐.
스스로 도가 없으면서 배움은 다 이렇다 하니
참된 수행 없이 갈팡질팡 어느 때에 해탈하겠느냐.
늘 스스로 깨어 있어 존귀한 행(行)을 얻으며
스스로 진리를 보고 들어 수행이 비길 데 없네.
이미 세상의 오택(五宅)에 떨어진 신세이니
스스로 훌륭한 수행으로 저들보다 나아야 하느니라.
어리석고 음란하면서 선행을 하려 하고
삿된 도를 배우면서 해탈을 얻으려 하네.
보고 들은 대로만 옳다고 받아들이니
비록 계를 지킨다 하더라도 옳다 할 수 없다네.
세상 사람들 행실을 보니 모두 수행하지 않아
총명한 이들조차 범지들의 행(行)을 닦네.
그러나 저들의 수행에도 공경히 대하여
나보다 못하다 낫다 생각해서는 안 된다네.
이런 집착 저런 집착 모두 끊어버리고
나만이 훌륭한 수행이라는 생각도 버려
스스로 지혜로운지조차 알지 못해도
그 보고 들음 오직 진리만 본다네.
양 극단에 대하여 애착이 전혀 없어
나고 나지 않음 멀리 여의어 버렸네.
양변(兩邊)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진리를 보아 정도(正道)에 머문다네.
보고 들은 바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되
삿된 마음일랑 조금도 지니지 말라.
지혜로 진리를 보아 마침내 뜻을 아니
이로부터 세속을 버리고 공(空)을 얻었다네.
스스로 어떤 법도 행하지 않으면서
본래 법을 행하여 진리를 구한다네.
단지 계행을 지키고 진리를 구하여
한량없는 중생을 건져 해탈을 얻게 하여라.
부처님께서 『의족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모두 환희에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