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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색동자인연경 제3권
[금색 동자가 범인으로 몰리다(2)]
그때에 여러 순찰 관리들은 서로 의논하였다.
“여럿이 보다시피 이 동자는 몸가짐이 얌전하니 이런 중한 죄업은 지을 리 없고, 그렇다고 지금 다른 이상도 없으니 우리들은 가는 곳마다 이런 어려운 일만 만나는구나.
지금 그 일을 어떻게 다루어야겠느냐?”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 사건은 진실로 우리들이 의논할 것이 아니다.
나라에는 법을 맡은 대신이 있으니, 이제 동자는 끌고 여인은 들고 그분에게 가서 상세히 가리자.”
여러 의논이 결정되자 여인을 대가마[竹輿]에 눕히고 동자는 연행하여 함께 법무부[法司]로 갔다.
그때에 대신 용려는 직책이 법을 맡고 있었다. 그는 모든 법관들과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멀리 보니 여러 순경들이 왔다.
차츰 그 앞에 이르자 곧 물었다.
“너희들 모든 순경들은 무엇하러 여기에 왔느냐? 무슨 일이 있느냐?”
순경들은 대답하였다.
“지금 이 여인이 일조 반수의 별장에서 누군가에 의하여 살해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세 번이나 자세히 조사하였으나 별장 안에서 다만 금색 동자만을 보았을 뿐, 다른 단서[事狀]는 없으므로
즉시 동자에게 심문하였더니 동자의 대답이
‘여러 관리는 밝히 살피시오.
저는 이 일에 대하여 사건을 보았지만 실로 어떤 사람에게 살해되었는지 모릅니다’라고 하기에
저희들은 그를 연행하여 여기에 왔으니 밝은 판단을 내리소서.”
이때에 대신은 말했다.
“너희들은 잠깐 기다려서 자세한 처리를 기다려라. 왕께 가서 옳은 판단[理斷]을 구하겠다.”
이때에 법무대신[掌法大臣]은 곧 아사세 왕궁으로 가서 문을 지키는 문지기에게 물었다.
“왕께서는 어디에 계시고, 무엇을 하시느냐?”
문지기는 대답하였다.
“왕께서는 지금 전(殿)에 올라서 모든 궁녀들을 불러 풍악을 잡히고 즐기십니다.”
이때에 대신은 대청문에서 상궁[掌執者]을 불러서 그 일을 왕께 아뢰도록 부탁하였다.
“지금 일조 반수의 아들이 자기의 별장에서 기생 가시손나리를 죽였는데, 만약 지금 왕의 명령을 받지 않고서는 저희 신하들로는 재판할 수 없다고 하여라.”
이때 상궁[掌執宮嬪]은 속히 왕께 나아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왕은 마침 즐기기에 바빠서 자세히 보지도 않고 곧 상궁에게 명하였다.
“너는 가서 대신 용려에게 말하기를
‘마땅히 자세히 살피고 사실대로 처리하라’고 하여라.”
상궁은 명을 받들고 나가서 왕의 명을 선포하였다.
“대신 용려 등 모든 법관에게 명하노니, 살피어서 그 일을 밝히도록 하라”
[대신 용려가 금색 동자를 죽이려 하다]
이때에 대신 용려는 법무부로 돌아와 모든 순경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가서 사형 맡은 사람[膾宰]을 불러서 속히 오도록 하라.”
그들이 오자 말하였다.
“지금 이 동자는 자기의 별장에서 기생 가시손나리를 죽였다.
너희는 지금 그 사람을 잡아 묶고 북을 쳐서 거리마다 알려서 다들 듣고 알게 하고 남문으로 나아가 시체를 버리는 기시림(棄屍林)에 가서 쇠창으로 목숨을 끊도록 하라.
그런 뒤에 죽은 여자와 함께 섶가리에 올려놓고 불 질러 태워라.”
이때 사형 맡은 사람들은 명령은 들었으나, 금색 동자를 보니 얼굴모양이 아름답기가 흡사 금산과 같았으므로 가슴을 아파하며 서로들 말하였다.
“너희들은 어떠냐? 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느냐?
지금 이 동자는 인간 중에선 얻기 어렵게 얼굴이 볼품이 있다.
우리가 비록 사형하는 일을 맡았지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悲心]이 있다.
이런 사람을 어찌 차마 죽이겠느냐. 차라리 우리들 스스로가 목숨을 끊는 게 낫지, 결코 사형을 집행할 수는 없다.”
이때 대신 용려는 그들의 논의함을 듣고 다시 성내어 말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시간을 오래 끌고 빨리 명을 따르지 않느냐?”
이때에 사형 맡은 이들은 합장하고 나아가서 애절하게 고하였다.
“대신과 왕께서는 중지하시기를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비록 사형 맡은 사람에 참여는 하였지만 그 일을 감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동자는 얼굴과 몸매가 단정하고 엄숙하여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거늘 어떻게 차마 죽이겠습니까?”
대신은 듣자 더욱 성이 나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이 만약 왕의 명을 쫓지 않는다면 오늘 반드시 너희들의 처자ㆍ권속을 모두 같이 죽이겠다.”
모든 사형 맡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들 놀래고 무서워하면서 서로 말하였다.
“지금 어찌하면 법 맡은 대신이 바른 법에 의하여 이치에 맡게 행하지 않은가?
이 동자는 얼굴이 엄숙하고 아름다워 사람 중에 얻기 어렵거늘 버리고 그의 목숨을 해치라고 명하며, 또한 우리들에게 만약 죽이지 않겠다면 처자와 권속을 다 함께 죽인다고 하는가?
어찌하여 우리들은 이런 힘들고 괴로운 일을 맡았는가?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때 그들은 죽음의 공포가 핍박하여 곧 살 계교를 내었다.
“지금 이 동자는 누구나 사랑하는 이니, 많은 사람들이 모인 네거리에 끌고 가자.
모두들 그것을 보면 이 동자가 발을 돌린 사이에 군중들은 가엾다는 마음을 일으켜서 차마 보지 못하고 반드시 방편을 내서 구호할 것이다.”
그런 뒤에 모든 사형 맡은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핍박하기가 끊는 것 같고 베는 것 같아서 다들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괴롭다. 우리들은 어떤 죄업을 지었기에 이렇게 우리들로 하여금 의리 아닌 일을 집행하도록 핍박하는가?”
그때에 대신 용려는 극도로 성을 내며 사형 맡은 이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자꾸 지체하느냐?”
모든 사형 맡은 이들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눈물을 억지로 억제하고 곧 동자에게 가서 그의 옷을 가지고 두 팔을 묶었다.
그들이 다 묶자 대신 용려는 그 일을 모두 보고, 곧 법무관청[掌法司]을 떠나 기시림으로 향하였다.
이때에 모든 관중들은 헤어지는 분함에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아이고[苦哉], 위험이 촉박했구나. 인간 중에 얻기 어려운 이 동자가 얼마 안 있으면 죽다니.”
사형 맡은 사람들은 동자를 감금하고 거리를 두루 다닐 때에 천천히 하여 구원할 것을 생각하였으며, 또한 시장[闤闠]으로 데리고 갔다.
이때 왕사성의 성 안팎에 사는 남녀노소들과 다른 곳에서 온 무리들은 모두 모여서 금색 동자가 팔이 묶인 것을 보고 쓰리고 슬프고 어리둥절하여 함께 물었다.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묶였습니까?”
사형 맡은 사람들은 목메어 울면서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이 동자가 가시손나리를 죽였다고 하여 이렇게 붙잡아서 버리려고 합니다.
모든 곳에 사람들이 다 들었듯이 이제 기시림에 버려두며 뒤에 오래지 않아 곧 죽을 것입니다.”
무리들은 듣고 모두 서러워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외쳤다.
“아이고, 아이고[苦哉苦哉]. 이다지도[一何] 위험이 급박한가?
이 동자는 얼굴이 단정하고 엄숙하여 누구나 즐겨보고 몸이 원만하고 금색의 광명이 있어서, 눈에 들고 마음에 맞아 누구나 쳐다보았으며 몸가짐이 고르고 조용하며 지혜가 밝고 날카로웠으며 자비로운 마음이 구족하여 중생을 사랑하였고, 항상 법의 욕망을 일으켜 큰 위덕을 갖추었는데 이러한 사람을 어찌 죽이는가?
성현의 밝음은 어찌하여 숨었으며 바른 법은 가려지고 그른 법이 불타는가?
왕께서 나타나 왕위[尊極]에 계시는데, 어찌하여 이런 횡액[橫枉]이 그를 핍박하는가?”
이때에 사람들은 게송을 말하였다.
얼굴은 겸손하고 공순하며 또한 귀하고
가장 높고 더욱 수승하게 장엄하여서
우리들 이와 같이 보고 또 보며
유달리 묘하고 귀엽기 일찍이 없었다.
우리들 이제
형관에 붙들린 동자를 보니
어찌나 슬픈지
몸과 마음 부서지네.
많은 사람의 눈에 들고
많은 사람에게 귀여움 받았는데
어쩌다 이렇듯 고운 몸에
왕의 엄한 형벌 미치는가?
대중들 평소에 쳐다볼 때에
그는 기쁜 마음 한없었는데
어찌하여 법 맡은 이에게 걸렸는가?
모질도다, 대신은 눈물 없네.
입으론 늘 법률 말했고
말한 대로 잘 행하였는데
이렇듯 착한 이 자세히 보라.
어떻게 이런 죄 범하겠는가?
이에 곧 그른 법 행하면
바른 법은 숨거나 사라지나니
만약 지금 공덕을 참작한다면
우리들 괴로움 사라지련만.
이때 성안에서 이 동자를 끔찍하게 사랑했던 모든 여인들 중에 어떤 이는 헤어지는 괴로움이 핍박하여 땅에 뒹굴었고, 어떤 여인은 무릎을 치고 슬퍼했으며, 어떤 여인은 정신이 멍청하였다.
그들 모두가 친자식을 여의는 듯이 괴로워하였다.
이때 왕사성 안팎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동자가 곧 죽기로 되어 있는 까닭으로 다들 이별에 절박한 괴로움을 내어서 서로 불러 그 소리가 요란했으며 떨고 당황하고 구원할 수 없음을 슬퍼하였다.
[금색 동자의 어머니가 구원을 청하다]
이때에 일조 반수에겐 동녀(童女)가 있었는데 마침 거리에 나갔다가 그 일을 듣고 슬피 울면서 빨리 집으로 돌아와서 금색 동자의 어머니에게 가서 도착하자마자 온 몸을 땅에 던졌다.
이때 금색 동자의 어머니는 의아하고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무슨 일이냐? 너는 빨리 말해라.”
동녀는 아뢰었다.
“어머니는 아십시오. 금색 동자의 팔이 묶였으며 사형 맡은 사람들이 감시하여 따라가는데, 모두들 말하기를 별장에서 가시손나리를 죽였답니다.
그래서 오래지 않아 곧 기시림에 가서 죽을 거라고 합니다. 네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들 듣고 압니다.”
이때에 동자의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걱정이 극심해서 기절해 땅에 쓰러졌다.
물을 얼굴에 뿌리니 조금 있다가 깨어났는데 땅에서 일어나
“아이고, 내 아들아. 아이고, 내 아들아.” 하면서
떨고 놀래어 두서를 잃었으며 머리털이 쑥대같이 흐트러져 무릎을 치면서 집에서 뛰어나와 거리마다 돌아다녔다.
아들을 이별하는 근심이 핍박하였으므로 힘이 빠지고 마음은 지친 채 소리 높여 외쳐 만나는 사람마다 다 물었다.
“내 아들 금색 동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이고, 내 아들을 못 보는구나. 여보시오, 당신은 제발 도와주시오. 제발 도와주시오. 나로 하여금 아들을 보게 해주시오.”
이렇게 슬피 울면서 거리마다 두루 돌고 곳곳마다 다녔다.
이때 일조의 아내는 금색 동자를 보지 못하여서 극심한 괴로움이 핍박하였으므로 정신없이 다니면서 소리 높여 외쳤으며, 만나는 이마다 합장하고 말하였다.
“빨리 좀 도와주시오. 빨리 좀 도와주시오. 내 아들이 시다림 숲에 이르기 전에 나를 만나게 해주시오.
당신은 불쌍히 생각하시어, 내 아들이 죽기 전에 나를 만나게 해주시오.”
동자의 어머니는 간절한 말로 여러 사람에게 하소연하였으나 아들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또 외쳤다.
“아이고, 어찌하여 내 아들을 못 보는가?”
이때에 그는 몸을 들어 땅에 던졌다. 맴돌며 뒤척이고 뛰고 하는 것이 마치 물고기가 물을 벗어나서 마른땅에 있듯이 하였으며, 가만히 있을 여가가 없게 뛰고 돌며 마음은 에이는 듯하여 슬프고 또 서러웠으며, 마치 갓 난 송아지가 어미 소를 잃은 듯이 놀래고 무서워하며 소리 질렀다.
“아이고 내 아들이여, 아이고 즐거웠으며,
아이고 잘도 참았는데, 아이고 큰 효자였는데,
아이고 많이도 원하여 얻은 아들이었는데,
아이고 잘도 생기어 누구나 좋아했는데,
아이고 몸과 사지가 원만하고 구족하였는데,
아이고 곱게 빛나는 금빛 몸이었는데,
아이고 모두가 기쁜 눈으로 보았는데,
아이고 대중 속에서 온화한 눈을 떴었는데,
아이고 총명하고 영리하고 지혜가 있어서 두려움 없고 즐거운 마음으로 착한 말을 널리 하였다.
아이고 자비한 마음을 넓게 가졌고 법의 의욕이 구족하여 중생을 아꼈는데,
아이고 가장 환한 가족이었는데,
아이고 우리 가족 중에 밝은 횃불이었는데,
아이고 내 마음에 사랑하고 좋아하였는데,
아이고 내 마음에 큰 보배였는데,
아이고 나의 진실을 모으는 아이였는데,
아이고 나의 묘한 감로 같은 눈이었는데,
아이고 나와 깊은 사랑을 서로 이었는데,
아이고 우리 식구 중에 큰 보배였는데,
아이고 아이고, 어찌하여 세밀하게 조사하지 못하는 이런 법관이 내 아들을 죽게 하느냐?”
이때에 동자의 어머니는 거듭 합장하고 다시 모든 사람들에게 슬프게 호소하며 빠진 힘과 지친 마음으로 게송을 말하였다.
괴롭다, 나는 지금 할 말도 없네.
무엇이 나로 하여금 행동케 하나
지금 나는 꿈같고 바보 같네.
내 마음 바싹 조여 이렇듯 헷갈리네.
자식 위한 근심 걱정 어찌나 절박한지
극심한 슬픔ㆍ마음을 뒤흔드네.
이제 간절히 모든 사람에게 비노니
잦은 물음에 눈물만 주룩주룩.
마음이 거칠면[不調寂] 얼굴이 아닙니다.
내 마음 도무지 즐길 것 없네.
내 아들 장차 시다림에 간답니다.
당신들 제발 구원하소서.
당신들 만약 눈물이 있다면
즉시 잘 보호하는 이의 능력 있으리라.
내 마음 참으로 구하는 것은
이제 내 아들 만나는 소원이라오.
내가 좋아함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색의 전단이건 바르는 향이건
내지 온갖 장식을
이 슬픔 구원하려고 다 드리겠나이다.
팔찌 따위 온갖 장식물은
나로 하여금 장엄할 수 없습니다.
자식을 여의려니 지친 서러움 깊고
얼싸안고 어루만지지 못함이 애석하오.
이제 다시 세 바퀴 돌지 않겠고
또한 두 발에 받들어 절도 않겠소.
알지 못하겠소. 무슨 인연으로
자식을 시체 버리는 데에 두어야 하는지.
시방세계 살펴보니 모두가 텅 비었고
다만 무너지고 타는 것만이 보일 뿐이오.
내 마음 타는 것 이와 같아서
정신이 멍하여 둘 바가 없습니다.
속히 시다림에 들어가
집행하는 이에게 죽임 당하면
그 뒤엔 큰 괴로움 다시 없으며
아들의 마음속 가장 즐거우리.
내가 금생에서 지은 죄 아니라
반드시 전생의 남은 재앙 탓이리.
자식에 대한 나의 짙은 괴로움
마치 사나운 불에 마른 풀 타듯.
다시 내 마음 진실케 되거든
원망 또한 친함처럼 죄업이 없고
내 아들 인연 진실해지거든
이 어려움 벗어날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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