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영락경 제2권
4. 용왕욕태자품(龍王慾太子品)[1]
[궤(金机) 앞으로 오르실 때]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이때에 금궤(金机) 앞으로 오르시는데, 안색이 편안하시고 용모도 즐거운 모습을 띠었다.
여러 하늘 사람들이 위에서 꽃을 뿌리며 향을 사르고 하늘의 풍악을 울려서 보살을 즐겁게 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아래에서 좌우로 모시고 있으면서 이구동성으로 소리쳐 하늘과 땅을 진동시켰으며,
80억해의 건달바[乾沓和子]는 종과 경쇠를 치고 노래를 해서 보살을 즐겁게 하였다.
당시 마나사(魔那斯)용왕과 문린(文麟)용왕과 이라발(伊羅鉢)용왕과 아뇩달(阿耨達)용왕 등 84억이 모두 와서 구름처럼 모였다.
이때에 여러 용왕들이 문득 이 게송으로 보살을 찬송하였다.
오늘 세간의 더러움을 여의시고
남섬부주에 내려와 태어나셨네.
세속을 따라 어머니 태(胎)에 처하셨으니
목욕으로 세상 티끌을 없애기를 바라나이다.
옛적 수없는 겁 동안에
공을 쌓고 뭇 업을 지으셨네.
서원은 이제 벌써 열매 맺어
성체(聖體)를 목욕하길 청하나니 허락하소서.
84억해의
용이 시방에서 몰려와
각기 높으신 분께 공양하고자
병을 올려 향탕(香湯)을 바치나이다.
높으신 분 본래 수없는 겁 동안
중생을 위해 고행하셨으니,
높고 높은 덕은 가없어서
불쌍히 여기사 원을 들어주옵니다.
세웅(世雄)을 목마르게 사모한 지 오래이니,
나고 죽는 고통을 싫어한 탓이라네.
이제 어질고 밝음을 보게 되니
해가 허공에 비춘 것 같나이다.
높으신 분 본래 큰 서원 발해서
제도 못한 이를 제도하고자 하네.
최승(最勝)께서는 벌써 해탈하셨으니
해탈 못한 이를 꼭 다시 해탈케 하소서.
과거의 항하 모래알과 같이 많은 부처님
그리고 미래와 현재의 부처님
그 공훈은 한량이 없는데
세존께서도 오늘 이미 갖추시었네.
설령 겁에서 겁에 이르기까지
사람 가운데 높으신 분을 선양하더라도
어찌 반딧불로써
부처님 해와 감히 경쟁하리오.
허공은 끝까지 궁구할 수 있고
수미산도 측량할 수 있고
바닷물도 다 마를 수 있지만
높으신 덕은 다함이 없어라.
비교하건대, 해와 달의 광명과
마니주와 명월주는
비록 세상의 어두움은 비추겠지만
능히 무명을 없애지는 못하리라.
오늘 비할 자가 없는 분께서
한 털구멍의 광명으로
하늘과 세간을 널리 비추어
음행ㆍ성냄ㆍ어리석음의 번뇌 없애셨네.
지나간 세상의 여섯 부처님도
남섬부주에 모두 태어나서
우리들의 공양 다 받으시고
향탕으로 높으신 몸 씻으셨네.
이제 다시 하늘의 스승을 만나니
억 겁 만에 비로소 출현하셨구나.
이제 각각 발아래 큰절하오니
오직 제때에 목욕하길 원하나이다.
여러 하늘과 세간의 백성
모두 바른 법 듣고자 하옵니다.
깊은 법의 근본을 연설하시니
삼계의 높은 분께 마땅히 절하오리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곧바로 동쪽을 보시는데, 얼굴빛이 평화스럽고 기쁨이 넘치셨다.
그리고는 여러 용왕에게 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형상(形狀)을 내려
남섬부주에 우뚝 서 걷으며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부류인
끝없는 네 가지 무리를 제도하리라.
금빛 몸에 밝은 증명 있어서
온갖 모습이 태양의 빛과 같구나.
깨치지 못한 이를 꼭 깨치게 하니
이제 성불이 멀지 않았도다.
태어남을 살펴보니 무수한 세대 동안
받은 형상이 한 가지가 아니구나.
비록 위ㆍ중간ㆍ아래가 있었지만
이러한 모습은 일찍이 없었도다.
유쾌하여라, 굳건한 맹서
뜻을 잡아서 이지러지지 않으니
나타난 것은 과보에 응함이지만
본래 청정하기가 허공과 같아라.
세상에는 세 가지 견고한 법
몸ㆍ목숨ㆍ재물의 보화가 있지마는
이것도 오히려 구경(究竟)은 아니니
처음부터 끝까지 믿을 것이 못되네.
나는 이제 이 세 가지를 다 버려서
법신은 공하여 형상이 없으며
다함도 없고 생명마저 없어서
자연히 도의 근본 이루노라.
세상 보배에는 위험이 많고
허깨비 같아서 오래 머물지 못하지만
이제 얻은 7보(寶)의 재물은
형체가 없어 다할 수가 없도다.
중생의 심(心)ㆍ의(意)ㆍ식(識)은
세 가지 번뇌로 덮여졌나니
이제 이미 3명(明)을 얻어서
처음ㆍ중간ㆍ마지막까지 통달하였네.
세간과 하늘사람 널리 위하여
불사(不死)의 법을 반드시 굴리리라.
법의 바퀴는 대천세계를 덮어서
인자한 마음으로 널리 윤택하게 하리.
태어남을 받으면 네 가지 결박 있고
3세(世)의 근심도 여의지 못하지만
이제 얻은 4성제(聖諦)
결박도 없고 다시 물들지도 않는다네.
슬기로 고통의 진리[苦諦] 보면
지(智)가 없어도 그 지(智) 깨달아
청정한 성품은 더러움 없음 같아서
증득함을 받아 영원히 담박하도다.
근본의 익힘[習]은 다시 낙(樂)을 일으켜
물들고 집착하고 애착함이 다함없어
저 티끌을 내 마음이 받아들이니
얽히고 맺힘이 마침내 불어만 간다.
나는 이제 본래 청정함을 보아
즐거운 생각, 고통스런 생각 멸해 없애니
담연(澹然)하여 근심ㆍ기쁨 없어져서
나고 죽음과는 영영 이별했노라.
지나간 세상에선 세 가지 행이 있어
어리석은 애착을 내게 한 근원이었지만
벌써 다 없애서 이젠 처하지 않으니
번뇌의 마음 아주 없어졌노라.
현재 64지옥에
이끌려 명실(冥室)의 더미 이르렀지만
영영 버려서 함께하질 않으니
64지옥에 밝음[明]을 얻었네.
미래의 수없는 번뇌가
사람의 마음을 덮어 가리면
법 구름[法雲]을 삼계에 펼쳐서
미치지 못한 곳까지 윤택케 하리.
청정한 가르침은 입에 부드럽고
말소리는 애조 띤 난새 같나니
이 행의 속임 없음을 말미암아서
법을 설하매 모자라거나 새는 일이 없도다.
중생이 번뇌[陰蓋]에 덮여서
희롱하면서도 부끄럼 없더니
이제 비로소 부끄러움을 얻어
잘난 체하는 마음을 헐어 없앴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셔서
여러 삿된 무리 항복시키시고
법좌에 올라 사자후를 하면서
본행(本行)의 인연을 연설하시네.
지나간 세상 여러 부처님 수기하시고
오는 세상, 지금 세상도 마찬가지이니,
5탁(濁)으로 쇠미해가는 세상에
능인(能仁)이란 이름의 부처님 계시네.
이제 내가 스스로를 관찰해 보니
뜻의 성품이 보통과는 달라
명호도 이미 헛되지 않아
아버지는 싯달타라 부르셨도다.
그 까닭에 대중 속에 있으면서도
평범하게 보아서 두려움 없고
청정한 총지의 지혜를 얻음은
불초한 사람 제도하기 위함일세.
모든 법의 근본에
일어나고 멸함에 처소가 없고
또한 성패도 없음을 보지 못한다면
고요하게 응당 지혜로 관해야 하리.
모든 법이 본래 그 머무른 처소가 없음을
널리 분별한다면
고요하고 깨끗해서 돌아갈 데 없나니
이것이 바로 율행(律行)에 응함이라네.
봄[見]도 아니고 봄이 없음[無見]도 아니고
구함도 없고 지키는 바도 없어서
나와 남이 적막하여 공(空)하니
무상(無相)과 무원(無願)도 마찬가지네.
감로의 미묘한 맛을
무릇 실컷 마시고 싶다면
상념을 잊고 온갖 집착 없앨지니
이것이 보살의 지혜에 응함이니라.
사람도 없고 목숨도 없으면
모든 부처님의 곳간을 성취하니,
잘난 체하는 마음 꺾어 부수어
자만(自慢)의 뜻을 일으키지 말라.
최상의 지혜는 수(數)에 집착하지 않고
상상(常想)이 있다고 계교도 하지 않으니
중생이 물든 마음 일으키거든
비추어서 청정한 지혜를 알게 하리라.
성현에 약간의 품(品)이 있음은
중생의 근기가 같지 않은 탓이라
지혜로써 미래를 관찰하여
약간의 도마저 다 없애리라.
부처님 법 깊고 깊어
그 지혜 끝이 없도다.
오직 공(空)할 뿐 물듦의 집착 없으니
이것을 일러 법계의 청정이라 하네.
한 생에서 백 생을 지나
나아가 무수한 겁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제 영영 버리고
앞장서서 증득을 취하겠네.
만일 내가 중간에
목숨을 헤아려 법의 성품에 집착하면
항하 모래수의 여러 부처님을 지나쳐도
공무(空無)의 지혜는 밟지 못하리.
항상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부처님의 경법(經法)을 밝게 밝히면
이로써 스스로 깨쳐서
큰 서원(誓願)을 일으키네.
옛적에 나는 처음 뜻을 발해서
연각승(緣覺乘)을 구하리라 마음먹고서
한가하고 청정하며 사람 없는 곳에서
44억 겁 동안을 지냈고
불법과 성스러운 대중이 없는
70겁을 다시 지냈으며
그 뒤에 크게 통한 지혜[大通慧]께서
대승의 자취를 펼침을 만났어라.
이에 일찍이 들은 적이 없었던
성스러운 지혜의 한량없는 깨침과
사부대중을 자비로 수호함을
이제야 미미하나마 믿고 알았으니,
이때부터는 저절로
공덕의 업을 일으켜 세우고
수없는 부처님께 공양하면서
19겁을 다시 지냈노라.
뒤에 큰 나라의 임금인
비륜황제왕(飛輪皇帝王)이 되어서
7보가 앞을 인도하며 좇아오고
천 명의 자식이 재예(才藝)를 갖추었네.
청정한 사람으로서
부지런히 범행을 닦는 이
97억해 명의 집착 없는
해탈한 마음으로 공양 올리네.
그리고 나라의 곤궁함과
외로워 갈 곳 없는 이에게 보시하니,
창고에서 진기한 보배를 꺼내어
두루 구제하여 모자람 없게 했도다.
다시 수없는 겁 동안에
몸소 청정행을 스스로 닦되
왕위는 버려서 태자에게 맡기고
출가하여 법복을 입었도다.
인욕의 성품으로 어질고 온화하며
한가한 생활로 고요히 무념하다보니
차츰차츰 마음이 게을러져서
마치 사람이 연못에 빠진 듯하니,
선근은 점점 미약해져서
마치 열매가 익어 절로 떨어지듯
나고 죽는 고통에 오고 가면서
과보를 받음이 무수히 변했노라.
뜻은 가로막혀 큰 서원이 없고
나아가 몸의 근심을 면코자 하나
뜻의 업[意業]은 상념의 바람[想風]에 쓸려
우물쭈물하다가 끝내 궁구하지 못했도다.
이렇게 태어나고 죽어
윤회를 하면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다시 60겁을 더 지나고서야
보영부처님[寶瓔佛]을 만나 뵈었노라.
방편으로 교화하여 사람을 제도하시는데
오직 1승뿐이요 두 번째 길은 없었으니
작은 절개의 명성은 듣지도 않으시고
공(空)의 지혜로 번뇌가 다한 분이라네.
도의 한 모습[一相]과
아주 깊고 순수하고 맑은 행을 펴내시니
비로소 그를 따라 뜻을 발하니
큰 맹서의 마음 막기 어려워라.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7억의 아승기겁 동안
바른 법을 수호하고 따라서
이제 비로소 스스로 깨치었노라.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에 보살과 여러 중생ㆍ하늘ㆍ용ㆍ귀신ㆍ8부의 무리와 온갖 시방의 보살이 이 게송 설하심을 찬탄하고서 깊고 묘한 뜻을 받아들였고,
그 자리에서 84해(垓)의 사람이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였고,
다시 수없는 중생이 법인(法忍)을 얻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