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아나누리 성채를 관광한다.
트빌리시에 카즈베기로 가는 도중에 아나누리가 있다.
이곳 마을에 닿기 전에 아름다운 성채가 있으니 바로 아나누리 성채이다.
아나누리 성채가 있는 곳은 1986년에 아라그비강에 댐을 만들어서 생긴 진발리 호수의 시작 부분에 해당한다.
성채로 가기전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아나누리라는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이 성채가 적들에게 포위되었을 때 성채에 비밀 터널이 있었다.
성안에 피신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물을 제공할 수 있어서 싸움에 지지 않았습니다.
적들은 결국 누리 출신의 아나라는 여자를 사로잡아 비밀 터널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고문을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말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그 후로 이곳을 아나누리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녀는 전설이 되었다.
이어서 스탈린으 자취가 남아 숨쉬는 고리를 방문한다.
이 곳에는 스탈린의 생가와 스탈린 박물관이 있고 스탈린이 사용하던 전용기차도 전시되어 있다.
조지아 고리는 구 소련의 정치가였던 스탈린의 고향이란다.
스탈린이 조지아 사람인 걸 이때 처음 알았다.
독재자로 평가받는 인물에 다른 한쪽에서는 위대한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늘 아이러니하다.
가이드가 스탈린에 대해 설명한다.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이 1879년 이곳 고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 스탈린은 친구들의 놀림에 시달렸으며 술 주정뱅이 아버지를 11세에 여의게 된다.
헌신적인 어머니의 노력으로 15세에 신학교에 입학한다. 1888~94년까지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나 그는 비밀조직에 가입하여 사회주의를 학습하다가 중퇴를 했다.
이후 직업혁명가로의 길을 걸으면서 체포되고 시베리아에 유배되기도 하고, 탈출했다가 다시 체포되는 일을 반복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레닌의 눈에 들어 당 서기장에 오르고 레닌 사후 소련의 일인자가 되었으며 반대파를 숙청하고 독제체재를 완성하였다.
고리에 세워진 스탈린 박물관은 스탈린 사망 4년 후인 1957년 고리 태생 스탈린에게 공식적으로 헌정한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스탈린의 개인 소장품과 함께 그의 생가와 전용 이동 열차가 전시돼 있다.
박물관은 1989년 조지아의 독립운동과 함께 폐쇄되었지만 다시 문을 열어 현재는 인기 있는 관광명소 중 하나가 되었다.
스탈린 생가
이어서 우플리스치게를 방문한다.
조지아 고리의 동방 10km, 쿠라 강의 좌안 우플리스치게 마을에 있는 동굴도시다.
건축의 특색과 최고 문화충의 토기로 보아 B.C. 1000년대 전반에 일어났다고 추정된다.
조지아의 연대기에는, 동 조지아에서 가장 견고한 성곽도시의 하나로 되어 있다.
9~11세기에는 조지아의 중요도시의 하나였으며 잠시 동안 그 수도이기도 하였다.
건축에는 고대 조지아의 목조건축을 모방한 자취가 보인다. 1957년부터 조직적인 발굴이 행해졌다.
건축에는 고대 조지아의 목조건축을 모방한 자취가 보인다. 1957년부터 조직적인 발굴이 행해졌다.
트빌리시 시내로 다시 돌아왔다.
트빌리시 시내관광을 좀 더하고 야경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너무 덥고 오랜 여행으로 모두가 힘들어 하고 있다.
근처 카페 시원한 곳에서 조금만 쉬기로 한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 하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트빌리시 관광을 위해 나오다가 길이 엇갈려서 혼란이 있었다.
다행히 빠르게 수습되어 관광을 이어갔다.
트빌리시 시내관광이 계속된다.
오늘 저녁은 한식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한식당으로 갔는데 지난번과는 다른 곳이다.
메뉴도 달라서 맛있는 한식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 후 트빌리시 야경투어를 한다.
트빌리시를 흐느는 쿠라강 보트를 타고 시내 전경을 감상한다.
야경투어가 끝나고 호텔로 들어간다.
모두들 지쳐서 휴식을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