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나찰집 중권
[느낌]
보살이 수(受)의 생기는 곳을 사유하고, 곧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용맹하여 겁내지 않고, 모든 시끄러움을 떠나 고요한 선정을 얻어 일체지(一切智)의 지위에 들어가 수를 보고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오래전부터 중생을 속여 왔다.
나는 모든 중생에게 청하지 않는 친구가 되려 하니, 너는 지금으로부터 다시는 요란한 일을 하지 말라.”
수(受)가 말하였다.
“내가 어떠한 요란한 일을 하였습니까?”
보살이 말하였다.
“몸을 받은 이는 체성이 괴로움뿐인데, 거짓으로 즐거운 모습을 나타내어 어리석은 마음을 속이니, 비록 친한 듯하나 실은 큰 원수이다.”
수가 말하였다.
“실로 그러한 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중생이 오히려 나를 애착하되 마치 벌이 꽃을 찾아서 향기로운 맛을 탐내는 것과 같이 요란하기 끝이 없습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너의 말이 진실하다.
사람들은 즐겁기 위하여 바다에 들어가서 갖가지의 어려움을 만나고,
즐거움 때문에 진중에 들어가 화살이 구름과 빗발과 같고, 칼과 창으로 서로서로 해치고,
즐거움을 위하는 까닭에 멀리 험한 길을 지나고, 넓은 벌판을 건너되 주리고 목마르고 어려움이 한 가지가 아니며,
즐거움을 위한 까닭에 모든 고행을 짓되 못에 뛰어들거나 불에 들거나 다섯 가지의 뜨거운 것으로 몸을 지지고, 가시덤불 위에 눕고, 스스로 굶으면서 음식을 끊고, 서까래를 얽어 자리를 삼고, 나무껍질과 풀로 옷을 삼고, 나무 열매와 채소를 먹으며, 즐거움을 위한 까닭에 모든 기계를 거들어 밭을 갈고, 재산을 늘리고, 집을 짓고, 의복을 짜거나 깁는다.
이러한 일들이 모두 즐거움을 위하는 까닭에 생기는 무량한 괴로움이다.”
수가 말하였다.
“사실입니다. 나는 능히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즐거움의 인연을 위하여 무량한 고통을 받게 합니다.
나는 극히 가볍게 들떠서 잠시도 머무르지 않지만 중생들은 즐거움을 받는 일에 탐착하여서 나를 항상하다 합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일체 중생은 참으로 불쌍하다.
생각마다 너에게 목이 마르고 미혹되지만, 중생들은 어리석어서 너에게 교란되고 괴로워하는구나.”
수가 말하였다.
“나의 허물은 이것뿐이 아닙니다.
다시 여러 가지 허물이 있어 곱이거나 이보다 많으니,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운동하고 흘러 다니며, 일체 중생들은 항상 나를 받아들이고 삼키되 싫어할 줄 몰랐습니다.
마치 기름을 불에 부은 것 같이 족한 줄을 모르니, 이는 모두가 나를 즐기고 애착한 까닭이며, 능히 나의 허물을 보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내가 오늘 애와 수를 높은 소리로 크게 불러, 지혜의 칼을 빼고 베려 하노라.”
수가 말하였다.
“그대의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렇지만 나의 허물은 아닙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너의 말을 살보니 마땅히 너를 베어야겠다. 네가 만일 없으면 애도 없을 것이다.”
수가 말하였다.
“나는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촉(觸)에게 부림을 당하고 있으니, 그대가 나를 해치더라도 그대에게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
[접촉]
보살이 곧 그를 놓고 지혜의 손으로 촉을 붙잡고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기에 일체 중생의 괴로움을 내는가?
수(受)가 너를 인하여 생겨서 생사의 다리가 이내 자라나서 열반의 문을 닫는구나.”
촉이 말하였다.
“능히 수를 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까닭은 세 가지의 인연으로 촉이 생기니, 마치 불을 켜려 할 때에 사람의 힘과 부싯돌[鑽]과 부싯깃[燧]의 세 가지가 화합하여야 불이 생기는 것과 같이, 나도 그러합니다.
안(眼)과 식(識)과 연(緣)의 세 가지가 화합하여야 촉이 있게 되고, 촉의 인연을 말미암아 수가 납니다. 만일 6입(入)이 없으면, 내가 무엇에서 나올 수 있겠습니까?”
보살이 말하였다.
“네 말이 옳다. 세 가지의 인연을 여의면 촉이 없을 것이며, 촉을 내는 무리로는 6근(根)이 가장 가까우리라.
촉이여, 너는 잠시 있어라. 꼭 6근을 붙들어다가 너와 함께 벌을 주리라.”
[6입]
그때 보살이 촉의 모습을 체득하여 알고 다음으로 6근을 추궁하였다.
“이 6근의 색(色)은 제비의 둥지와 같고, 또한 물거품과 같으며, 처음 생기는 종기와도 같으니, 오래지 않아 곧 터질 것이다.
무슨 강한 힘이 있기에 높은 체함이 이러한가?”
6입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보살이 말하였다.
“네가 있는 까닭에 촉에게 힘을 주는 것이다.
본래 아무 일도 없는데 그릇 되게 반연을 내고, 일체의 괴로움을 내는구나.
나는 다만 다툼을 끊으려 할 뿐인데, 어찌 너와 더불어 입씨름을 하겠는가?”
“나의 허물은 적으며, 다만 촉을 내었을 뿐입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내가 지금 촉의 근원이 너에게서 생겼음을 관찰하였다.
6입이란 무량한 괴로움의 큰 굴택(窟宅)이니, 너는 항상 미친 듯이 방일하고, 한번도 고요히 안정하지 않았으니, 뜻은 가벼이 날뛰어 길들지 않고, 반연하는 곳에는 싫어할 줄 모르는구나.
6근은 어리석어서 여섯 가지의 감촉을 탐내고, 여러 가지의 6진(塵)을 구하는구나.”
“마음이 크신 중생이시여, 그대가 나를 항복시키고자 한다면 마땅히 먼저 명색(名色)을 조복하시고, 그대가 애써서 나를 막으려 한다면 반드시 먼저 명색을 막으십시오.”